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2화 (52/612)
  • 거짓의 숲(1)

    도시에서 빠져나간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커다란 광장이었다.

    그곳에는 그간 조우하지 못했던 여타 생존자 집단이 즐비해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것이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하여 상황을 판별하는 중인 듯한 모습.

    유세현이 광장 안으로 발을 완전히 내딛었다.

    [거짓의 숲에 입장하셨습니다. 14일 안에 숲을 탈출하십시오.]

    정화 다음에는 탈출.

    알림창을 확인한 사람들의 미간이 절로 꿈틀거렸다.

    튜토리얼이라는 것은 숨 쉴 틈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물론, 그만큼 판도라가 험난하다는 뜻이었지만 발등에 붙은 불을 끄기에도 급급한 생존자들이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후우...정말 지독하네요.”

    “그러게요. 그래도 이정도 인원이 같이 모여서 가게 된다면...”

    김우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반면 유한동의 입에서 안도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가 많으면 많을 수 록 통과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것.

    유세현은 그 사이 광장에 있는 팀들을 하나씩 살폈다.

    일반 마력을 지닌 사람이 60명, 어둠의 마력을 지닌 사람이 62명.

    그 옆에 있는 팀은 각각 40, 52명으로, 어느 팀을 살펴봐도 어둠의 마력을 지닌 사람이 대체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렇게 되면 이한별의 팀은 양호하다 못해 탑 클래스에 속한다.

    ‘후...분명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 록 막연한 의심만 늘어난다.

    유세현은 일단 생각을 접고 광장 끝에 만들어져 있는 숲으로 수십 개의 갈림길에 다가갔다.

    갈림길은 전부 숲 내부로 이어져 있었다.

    [제한 인원: 300명]

    단순한 문구임에도 단번에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동시에 이 많은 사람들이 왜 바로 출발하지 않고 멀뚱멀뚱 서있는 지도 깨달았다.

    그들은 조건에 맞게 최대한의 인원을 모아서 출발하려는 것이리라.

    뒤 쫓아와 알림창을 확인한 이한별이 슬그머니 물었다.

    “저...세현씨는 어느 방향으로 가실 생각인가요?”

    도시 때처럼 뒤따르고 싶다는 의미.

    그리고 이것은 어둠의 마력을 신경 쓰고 있던 유세현에게 나쁜 권유가 아니었다.

    북동쪽에서 어둠의 마력을 느낀 유세현이 손가락이 5, 6번째 갈림길을 왔다갔다 반복했다.

    “이 두 곳 중 한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그러시군요. 그럼 저희 팀의 인원수가 85명이니까. 다른 팀을 포섭해 200명 정도를 더 모아서...”

    “아뇨, 저는 지금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유세현이 이한별의 말을 단번에 잘랐다.

    난데없는 선언에 깜짝 놀란 이한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 왜요?”

    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

    유세현은 사실대로 대답할 마음이 없었다.

    타인에게 특기를 까발리는 것일 뿐더러, 흡사 그녀가 자신을 믿는다하더라도 어둠의 마력을 지닌 당사자가 발뺌하면 끝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요.”

    “...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다 모으고 가는 게 좀 더...”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유세현이 5번째 길로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뒷모습을 잠시동안 넋 놓고 바라보던 이한별의 발걸음이 빠르게 팀으로 향했다.

    * * *

    “저는 굳이 무리해서 지금 당장 그의 뒤를 쫓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놈 따까리라도 되나요?”

    “흠, 그래도 어설픈 100명보다는 확실한 1명이 낫다고...혼자 숲으로 들어간 것도 자신감이 있기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믿고 따라가고 싶습니다.”

    이한별의 팀 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그의 무력과 합리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한 누군가는 당장 뒤쫓아 가자고 하고, 코인 분배 건에 대해 불만이 있던 또 다른 누군가는 생존자들이 모인이상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논쟁.

    그렇게 20분이라는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자 이한별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후...그럼 지금까지처럼 다수결로 정하도록 할게요. 괜찮으시죠?”

    “...그럽시다.”

    “그럼, 따라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쪽은 좌측으로.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쪽은 우측으로 모여주세요.”

    그녀의 말 마 따라 사람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한별은 빠르게 인원수를 세어나 나갔다.

    좌측을 끝내고 우측의 인원수를 세어 나가는 그녀의 뇌리 속에 묘한 위화감이 쏠렸다.

    구출에 성공한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우측에 몰려있다.

    ‘왜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하려던 이한별은 그냥 지나쳤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따라가겠는 쪽이 저를 포함해 45명이고 아닌 쪽이 40명이네요.”

    희비가 엇갈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파들이 팀을 이탈하는 경우는 없었다.

    100명 정도 되는 대규모 팀이라면 모를까 애매한 40명으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전부 알기 때문.

    악질적인 팀에게 걸리면 되려 총알받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해요.”

    이한별의 팀은 늦은 만큼 유세현을 뒤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렇게 그녀의 팀이 숲길 저편으로 모습을 감춘 후였다.

    광장 외곽에서 이한별 팀의 행동을 주시하던 한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곰 같은 등치와 큰 키, 굵은 팔뚝에 용 문신을 새겨 눈이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는 남자 이태광.

    그가 옆에 위치해 있는 오른팔 김길태를 불러 세웠다.

    “길태야.”

    “예. 형님 무슨 일이시죠?”

    “너도 아까 봤지? 저 길로 한 놈이 걸어 들어가는 거!”

    “예. 봤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김길태의 말에 이태광이 히죽 웃었다.

    그 딴에는 순수하게 미소를 지은것이지만, 여타 생존자들이 보기에는 광기를 잔뜩 머금은 연쇄 살인마의 모습처럼 보인다.

    김길태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가 웃을 때마다 자꾸만 계획이 어긋났기 때문이다.

    “길태야. 지금 우리 팀 인원이 총 몇 명이지?”

    “159명...아니 30명 늘어 189명입니다.”

    “그래? 그러면 저기 5번 째 길로 몇 명이 들어갔는지 확인 좀 해보고와라.”

    “예? 설마?”

    “빨리 갔다와. 임마”

    “...예.”

    김길태는 100m나 되는 거리를 정말 순식간에 왕복했다.

    허리를 살짝 굽힌 그가 곧바로 이태광을 향해 보고했다.

    “86명 들어갔다고 써져 있습니다.”

    “흐음...86명?”

    “예. 그런데 형님 설마 따라 들어가실 생각은 아니시죠?”

    “지금 생각중이야.”

    “......”

    이태광의 대답에 김길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충고를 해봤자 더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

    그의 계획은 이곳에서 강자 100명을 더 포섭하여 길 자체 하나를 완전히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태광이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행동으로 보건데 이미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김길태는 아파오는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계획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다.

    “길태야...”

    “인원들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래. 그래. 역시 넌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어서 너무 좋아!”

    김길태의 말에 이태광이 다시 한 번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윽고 그가 이끄는 189명 또한 숲 내부로 모습을 감췄다.

    * * *

    숲은 무척이나 습했다. 길 또한 걸으면 걸을수록 폭이 좁아져 이제는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유세현이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주위환경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언제 급습할지 모르는 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다.

    마력의 양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적이 어디쯤에서 튀어나올지도 대충 예상이 되었으니까.

    그러면 이런 그가 인상을 구긴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유세현은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어둠의 마력을 잔뜩 지닌 무리들이 이동했었던 길을 따라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누구지?’

    조금 더 가까이 위치해 있는 무리가 이한별의 팀인 건 대충 예상이 간다. 그러나 조금 더 떨어진 쪽의 무리는 알 수 없었다.

    유세현은 일단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비좁은 만큼 이곳에서 조우해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

    크릉!

    그 순간 풀숲에서 튀어나온 야수 한마리가 유세현의 목덜미를 노려왔다. 언뜻 보기에는 호랑이와 닮았지만, 무척 큰 차이가 있다면 얼굴부분은 살이 있는 반면 나머지는 전부 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유세현은 이미 알고 있었던 만큼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목을 베었다.

    단번에 분리되어 떨어져나가는 머리와 몸통.

    그는 구울과 해골병사를 상대했던 것처럼 발로 머리통을 짓이겼지만 야수의 몸체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솨아악!

    종아리 사이로 곧장 날카로운 발톱이 쇄도해 들어온다.

    야수의 몸체는 속도에 한에서 마기병을 웃돌고 있었다.

    허나.

    콰직!

    그렇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고 있지 않던 유세현의 상대는 되지 않는다.

    척추를 완전히 박살내자 몸체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췄다.

    유세현의 시선이 주위에 위치한 풀숲으로 향했다.

    습격했던 마수와 동일한 어둠의 마력을 지닌 존재들이 그새 주위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수는 대략 100마리 정도.

    장치를 가동시키기 위해 마기병들과 전투할 때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때도 이렇게 적에게 포위되었다.

    ‘해볼까.’

    유세현은 한 바퀴 빙 돌며 검으로 풀숲을 휩쓰는 것으로 신호탄을 쏘았다.

    크어엉!

    장단에 맞추듯 마수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이빨을 들이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의 마력에 의해 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암흑투기가 일대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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