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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6화 (46/612)

보상(1)

‘무슨!’

깜짝 놀란 유세현은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지만 루시뷀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은 자의 눈을 하고 있는 자여! 삶에 미련이 없는 자여! 어째서 그렇게 발악을 하는 것인가!”

그 순간 루시뷀트의 붉은 안광과 유세현의 두 눈이 교차했다.

루시뷀트가 무엇인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강호라는 놈 때문인가.”

“...!!”

초월자와 신. 그리고 몇몇의 성체 드래곤만이 가지고 있는 사물을 판별하는 힘.

통찰.

마왕의 패도적인 검이 유세현의 목 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다.

“나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너희 침입자들이 항시 부러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그 몸이 부러웠다.”

“큭!”

“그런데 나도 가지지 못한 자유를 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너 같은 놈이 가지고 있는 거지!”

흥분에 찬 말과 함께 루시뷀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이윽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유세현의 검이 부러져 나갔다.

챙!

휘휘휙! 푹!

저 멀리 날아가 땅에 박히는 검날.

자살을 결정한 마왕은 전혀 봐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아니, 애초부터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루시뷀트가 암흑투기만 사용한 상태에서 마법만 난사해도 유세현은 중압감에 짓눌려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분명 마신구까지 꺼내면서 직접 상대한 건 아마 그가 마왕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체력이 다 떨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는 유세현의 눈동자가 남태영을 향했다.

안도와 씁쓸함이 섞인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래도 태양 심법을 얻을 수는 있겠구나...’

자신을 살려준 남자를 위해 죽는다.

자살하려 했던 사람치고는 깨나 괜찮은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더 좋은 것도 같이 주고 가는 게 났겠지.’

유세현은 숨겨뒀던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데스크라토스의 정수.]

직접 먹게 되면 일시적으로 모든 스텟을 D급까지 강제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비장의 아이템.

마력이 폭주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이강호에게 익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을 운명이라면 육체능력이 비슷한 마왕을 죽이고 나온 코인과 스킬을 이강호가 먹고 더 강해졌으면 한다.

‘그래, 이게 내 마지막 전투다.’

유세현은 힘이 다 떨어져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움직여 황급히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데스크라토스의 정수를 꺼냈다.

허나, 미처 입으로 들어갈 틈도 없이 염력 비스 무리한 것이 데스크라토스의 정수를 잡아당겼다.

너무도 허무하게 허공에 둥둥 떠 마왕을 향해 이동되는 데스크라토스의 정수.

정수를 붙잡은 마왕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게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 그런가.”

유세현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더 이상 대응해 볼 힘이 없다.

‘시답잖은 인생이었네.’

죽는 게 두렵지는 않다. 항상 생각해 왔으니까.

다만 가지고 있는 아이템하고 스킬이 아쉬웠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암흑투기도 강호에게 줄 걸...그리고 이 귀걸이도...’

영혼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는 귀걸이.

무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마왕의 혼을 수집하게 되면 무슨 스킬을 사용이 가능해질까.

‘수집이라...어?’

거기까지 생각한 유세현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스쳐지나갔다.

‘가능할까?’

순간적으로 고민이 될 정도로 도박 수 였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왕은 이곳에서 어떻게든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니까.

어쨌거나 한 번 말해볼 가치는 있는 것.

유세현는 대검을 치켜세우고 있는 마왕을 향해 외쳤다.

“마왕! 아니 루시뷀트!”

“...뭐지?”

“너 아직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냐?”

“당연한...”

거기까지 말한 마왕은 더 이상 말을 있지 않았다.

갑주내부가 어둠으로만 가득 차 있는 만큼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행동으로 보건데 말 장난에 어울리지 않겠다는 의지리라.

유세현이 투기에 눌려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내, 내가 너를 마왕성 밖으로 안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군. 나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인간인 네놈이 어떻게...”

“들어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하다니...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자신이 있다면 내려쳐라. 그리고 밖에 한번 나가지 못한 채 안식을 맞아라.”

관심을 가지게 만들기 위한 도발.

쿵!

대검의 굵직한 검신이 유세현의 얼굴 바로 옆에 내리 꽂혔다.

몸을 굽힌 마왕이 얼굴을 들이 댔다.

“거짓이라면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남태영도 죽일 것이다. 네가 그렇게 위하는 이강호도 내가 직접 나서서 다 죽일 것이다. 그 누구도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알겠어. 그런 건 걱정 하지 마라. 그런데 그전에 너 아이템 정보창을 읽을 수 있냐?”

“무슨 뜻이지?”

“데스크라토스의 정수의 효과를 알아낸 것처럼 다른 것도 알 수 있냐는 뜻이다.”

“가능하다.”

루시뷀트의 답은 칼 같았다.

유세현은 마른 침을 한번 삼켰다. 지금 부터 취하는 행동을 그가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럼 내가 끼고 있는 귀걸이의 효과를 네가 직접 읽어봐라.”

“......”

마왕의 붉은 안광이 살며시 유세현의 귓볼로 향했다.

잠시 동안 살펴보던 마왕이 몸이 순간적으로 들썩였다.

무슨 의중인지 깨달은 것.

“영혼의 수집...설마 네놈?”

“그래, 마왕. 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내 앞에서 죽어라. 그러면 너를 내가 이 귀걸이에 흡수시키고 이곳에서 데려나가 주겠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우습게만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라. 난 애초에 너가 온전한 상태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단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너에게 다른 선택권을 하나 만들어 주었을 뿐이야. 결정은 어디까지나 너의 몫. 나를 죽이고 그냥 죽던지. 아니면 죽고 영혼인 상태라도 이곳을 빠져나가 보던지.”

유세현의 말은 진중하면서도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무섭게 뿜어져 나오던 마왕의 투기가 뚝 끊겼다.

“어떻게 할 거야? 선택 해.”

“선택이라...”

선택이란 말에 마왕의 눈이 다시 한 번 귀걸이로 향했다.

그간의 인생에 있어 본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있었던가.

기껏해야 직접 나서 침입자를 죽이거나, 영원한 안식을 결심하는 것 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크흐흐흐...크하하하하!”

잠시 망설이던 마왕의 투구 사이로 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까 전에 내비쳤던 광소와는 사뭇 다른 웃음소리였다.

“크하하하! 반 만 년, 아니 스스로를 자각한 이후로 처음 듣는 진지한 개소리였다. 나를 죽여 영혼을 흡수하는 것을 데려가는 것으로 포장시키다니!”

‘...틀린건가.’

유세현이 살며시 눈을 감으려는 찰나였다.

마왕이 그의 몸을 갑자기 잡아끌어 올렸다.

“좋다. 그 제안 받아들여주마. 기꺼이 네놈의 수집품이 되어주마.”

“...진심이냐?”

“물론. 단,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네놈의 사상이 너무 맘에 안 든다. 타인을 위해 살다니...그런 놈은 언제 픽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지. 그러니...”

슈우웅!

푹!

말과 동시에 유세현의 심장 속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손이 살을 비집고 들어왔다.

피가 역류하고 온갖 기생충이 혈관을 타고 몸을 휩쓰는 느낌.

“...네가 나를 지니고 있을 수 있는 존재인지 시험해 보겠다.”

그 짧은 말을 끝으로 무수한 어둠이 유세현의 전신을 감쌌다.

* * *

“으아아악!”

뼈와 혈관,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폭사 되면 이런 느낌일까.

뇌가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유세현은 정신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당장이라도 스스로의 목을 잡아 뜯어 자살하고 싶은 마음을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시험...분명 마왕은 시험을 해 본다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버틴다면...’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허나.

“으으윽!”

한 마리의 야수가 몸 속에서 난동을 피운다. 당장이라도 살 가죽을 찢고 터져 나올 것 같은 힘.

1초가 마치 1년 처럼 느껴졌다.

“으아아!”

쿵쿵!

유세현은 주먹을 지면을 내려치고 머리를 받으며 버텼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억겁의 시간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이 이글이글 끓어오르던 신체 내부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둠의 마력의 근원. 마심원을 승계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특수특성: 마(魔)가 개화됩니다.]

[특수특성에 의해 모든 마력이 순도 100%의 어둠의 마력으로 대체 됩니다. 신성 종류 스킬 사용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으윽...마...심원?”

유세현은 애써 정신을 먼저 가누며 주위를 살폈다.

뭐가 뭔지 아직 알 수는 없었지만 이제는 마왕이 약속을 지킬 차례.

하지만 내부 어디를 찾아봐도 마왕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것이라고는 밝은 빛을 내뿜는 코인과 다 녹슬어 가는 조악한 검 하나 뿐.

아이템명: 마검 루베르크

등급: 레전더리 [SSS Rank]

현 등급: 노말 [F Rank]

상세정보: 마왕 루시뷀트가 죽음의 권능을 사용하여 집적 제작한 마신구 입니다. 강력한 부패의 힘을 담고 있었습니다만 주인이 바뀌게 되면서 그 힘을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제 힘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마땅한 등급의 무기를 흡수 시켜야 합니다.(30일 1회 흡수제한), 타인의 손길을 거부합니다.(아이템 귀속)

사용능력: 부패의 어둠(사용 불가능), 형태변환(1일1회 사용가능)

소비마력: ??

지금은 낡은 단검처럼 조악하고 초라해진 모습이지만 정보만으로 보았을 때 마왕이 사용하던 그 거대한 대검이 틀림없었다.

유세현의 손이 자연스레 귀걸이로 향했다.

‘설마? 이미 자살을?’

아이템명: 영혼의 귀걸이

등급: 유니크 [B Rank]

상세정보: 영혼석으로 만들어진 귀걸이 입니다. 오랜 시간 벤시 퀸의 몸속에 위치해 있어 죽은 영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생겼습니다. 마왕의 영혼을 흡수한 상태입니다. 귀걸이가 사용자에게 항시 귀속됩니다.

사용효과: 영혼수집.(2명제한)

수집한 영혼: 루시뷀트.

사용가능 스킬: 흑암(1일 1회), 흑뢰(1일 1회)

‘자살하는 걸 보여주기 싫었던 건가...’

유세현이 그리 생각하며 침착하게 검을 집는 순간이었다.

왼쪽 귓볼이 잔잔히 흔들렸다.

[영혼의 귀걸이가 마왕의 혼을 완벽히 잠재울 수 없습니다. 착용자의 시야가 마왕에게 공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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