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5화 (45/612)
  • 마왕 루시뷀트(2)

    길은 마왕성 1층과 4층 때처럼 외길.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퇴로가 없다는 것과 함정이 많은 것뿐이었는데 모든 촉감을 곤두세운 유세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쯤 걸었을까.

    둘의 눈앞에 한 개의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이제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 뒤로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예상이 가능하게 해주는 바로 그것.

    ‘보스라고? 설마...’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보랏빛 마력 사이를 흉폭하게 휘젓고 다니는 검은색 입자가 눈에 뛰었다.

    소악마들 또한 몸 내부에 조금씩 가지고 있던 마력덩어리.

    어둠의 마력.

    ‘젠장.’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 한 어둠의 마력의 덩어리를 확인한 유세현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다른 길을 찾아보죠.”

    “알겠습니다.”

    그 후 그들은 행여나 비밀통로가 있나 처음부터 끝까지 이잡듯이 뒤졌지만 안타깝게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막다른 길 뿐이었다.

    무심코 퇴로가 차단되었던 제단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때는 마지막에 나갈 수 있는 문도 같이 있었는데...’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뻔히 예상 되는 마당에 유세현은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세세히 찾아보죠.”

    “예. 은공님.”

    유세현은 다시 한 번 더 좀 더 세세히 길을 살폈다.

    허나, 결과는 똑같았다.

    “하아압!”

    챙!

    취후의 수단으로 벽을 부셔 보려 하기까지 했지만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문으로 들어가 보스를 잡아야 되는 것.

    유세현은 문을 열기 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상대는 예상 컨데 마왕.

    하지만 자신 또한 이곳까지 도달하며 상당한 양, 아니 다른 생존자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코인을 많이 흡수했다.

    또한, 보스몬스터도 많이 잡았다.

    수준이 갑자기 몇 단계가 급증하지 않는 바에야 해볼만 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그래 할 수 있어. 난 해낼 수 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유세현은 마침내 내부에 들어섰다.

    가구하나 없이 넓기만 해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는 옥좌의 위.

    그곳에는 전신이 새까만 어둠으로 되어 판금갑주를 걸치고 있는 마왕 루시뷀트가 앉아 있었다.

    휘이잉.

    바람도 불지 안 것만, 올려다보는 유세현의 목 사이로 스산한 한기가 흘렀다.

    차원이 다른 어둠의 마력의 양.

    아직 그 강함을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모든 것을 공략했던 이강호가 왜 이곳만큼은 그냥 지나치자 했는지 새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거라면!’

    선수필승.

    진짜 자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루시뷀트는 아직 마땅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유세현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타다닷!

    발 빠르게 움직인 유세현의 검이 루시뷀트를 향했다.

    노리는 것은 목!

    검이 닿을 찰나 붉은 눈을 번뜩 뜬 루시뷀트가 손가락을 튕겼다.

    치지직!

    순식간에 생성된 어두운 막과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고, 힘을 견뎌내지 못한 유세현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온 힘을 쏟은 것을 치고는 허무한 결과.

    유세현은 2차 공격을 대비하여 침착하게 자세를 다잡았다.

    공허한 두 눈으로 두 사람을 훑은 루시뷀트가 중얼거렸다.

    “남태영...그리고 레오릭을 쓰러트린 자 인가.”

    “크으으! 마왕 이 자식! 이제는 내가 상대해주마!”

    이번에는 검을 양손에 고쳐 쥔 남태영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보다 강한 유세현 조차 성공하지 못한 공격을 그가 해낼 수 있을 리는 만무.

    그는 곧 똑같이 튕겨져 나와 지면을 구르는 신세가 되었다.

    “으으으! 루시뷀트!”

    “미련한 남태영. 분을 터트리는 말투까지 하나도 바뀌는 것이 없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뷀트가 서서히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한걸음, 또 한걸음.

    단순히 걷고 있는 것 만으로도 둘을 쉽사리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빈틈이 보이고 안보이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 두려움.

    죽음의 근원을 다스리는 칠흑의 왕.

    천신과 대적하는 자.

    마왕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암흑투기를 정면에서 맞은 것과도 같이 심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유세현은 지지 않기 위해 검에 내제되어있는 스킬인 신성을 발동시켰다.

    가쁜 숨이 조금이라도 트이는 느낌.

    그사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유세현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 본 루시뷀트가 말을 이었다.

    “죽음이 드리워 있는 눈이군. 나에게나 어울리는 눈이다.”

    “......”

    솨악!챙!

    칭찬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유세현은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순식간에 접전이 펼쳐졌다.

    치이익!

    신성 검과 어둠으로 둘러싸인 철제 장갑이 부딪칠 때마다 파열음이 울리고 불꽃이 솟구쳤다.

    유세현은 마왕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갑옷의 빈틈을 검으로 노리며, 날아오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이뤄지는 공방이 어찌나 빠른지 수준이 안 되는 남태영이 끼어들 틈 조차 없다.

    후우웅!

    “큭!”

    왼쪽으로 고개를 내려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유세현의 귓속으로 괴음이 메아리쳤다.

    한방이라도 제대로 맞는다면 치명타를 면치 못 할 만 한 묵직함.

    유세현은 곧바로 검을 쓸어 올리며 관절 부위를 노렸다.

    루시뷀트 또한 몸을 트는 것으로 재빠르게 공격을 피했다.

    신체 능력만으로 보자면 거의 막상막하의 수준.

    다만 크게 차이가 있다면.

    쿠구궁!

    무형의 기운이 재빨리 움직이는 유세현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스켈레톤 킹에게 얻어 자신도 가지고 있는 스킬.

    [암흑투기]

    마왕이 사용하는 암흑투기는 사용자의 정신력의 차이가 큰 만큼 스켈레톤 킹때 와는 압박감이 차원이 달랐다.

    “으윽...”

    신음을 내뱉은 유세현은 황급히 암흑투기를 사용하며 맞불을 쳤다.

    하지만 스스로 누구인지 깨우쳐, 기억과 권능이 돌아온 마왕의 정신력을 고작 일반 생존자 한명이 극복하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다.

    “흐아압!”

    결국 유세현이 할 수 있는 것은 힘찬 기합과 함께 온힘을 사용하여 최대한 멀찍이 떨어지는 것 뿐.

    비틀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던 남태영이 루시뷀트를 보며 분한 듯이 이를 갈았다.

    “내, 내게 힘이 더 있었다면...”

    “짜여져 있는 틀을 눈치 채지도 못 하는 인간이 불가능한 말만 입에 담는군.”

    “뭐라고?”

    “그 감탄사. 이젠 그것도 질리는 구나. 너에게 더 이상 볼일은 없다.”

    탁!

    쾅!

    루시뷀트가 손가락을 재차 튕기자 무형의 힘에 의해 벽에 튕겨져 나가 부딪친 남태영의 몸이 축 늘어졌다.

    유세현의 시선이 남태영을 향했다가 빠르게 마왕에게 돌아왔다.

    그가 죽으면 그간 한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된다.

    하지만 그를 신경 써줄 틈이 없었다.

    신체 능력이 막상막하라고 쳐도, 그것과 상관없이 스킬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특히나 저 어둠의 마력은...’

    마왕의 내부에서 이글이글 들끓고 있는 흉흉한 마력.

    마력을 느끼고, 볼 수 있게 된 것이 이럴 때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유세현을 향해 몸을 돌린 루시뷀트가 조심히 말을 이었다.

    “남태영은 죽지 않았으니 안심해라. 그래서는 끝이 나지 않을 테니.”

    “......”

    마왕의 말에서 문득 이전에 상대한 적 있던 데스크라토스가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만들어져 역할을 부여받고, 그렇게 오랜 시간 지내다 기억이 되살아난 몬스터.

    추후 이강호가 설명한 바, 데스크라토스는 강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하지는 않다고 했다.

    쥬레이족의 복제긴 하지만, 특유의 재생능력이 없어 1서클 파이어 에로우에 맞으면 일격에 죽을 줄 알았다는 것.

    그 말을 들은 유세현은 차이가 뭐가 있을까 잠시나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너무도 단순하다.

    기억을 되살렸냐 못 살렸냐.

    ‘젠장. 그래서 마왕도 이렇게 강해진 건가...’

    완전히 잘못 걸렸다.

    상대는 마왕, 그것도 기억을 되찾아 원본에 보다 더 가까워진 존재.

    그런데 방금 전 끝낸다는 뜻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 순간 유세현은 문득 이전 마왕의 말에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끝낸다고? 설마?’

    “...너, 설마 죽고 싶은 거냐.”

    이 말이 이 방에 들어와 유세현이 처음 꺼낸 말이었다.

    루시뷀트의 입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마 웃는 것 같았다.

    “왜? 이해가 되지 않나? 스스로 죽으려고 한다는 게.”

    “......”

    이해가 그렇게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자살 하려 했던 적은 유세현에게도 있다. 다만, 이강호가 목숨을 걸고 막아 주었을 뿐이다.

    “아니, 이해된다.”

    “그럴 줄 알았다. 네 눈은 이미 죽어 있더군. 내 친히 그 알량한 삶의 끝을 고해주마.”

    말과 동시에 나타난 생성된 4개의 새까만 불구덩이가 유세현을 노려왔다.

    “큭!”

    유세현은 황급히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허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연이어서 무수한 마법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유세현은 모든 것을 다 피하기 위해서 땅 위를 계속 데굴데굴 굴러야만 했다.

    “크하하하! 언제까지 피하는지 보겠다. 인간!”

    광소를 내뱉는 마왕의 모습은 마치 여흥을 즐기는 것 같은...아니, 억지로 즐기는 듯한 느낌을 물씬 자아낸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승산이 없다.

    ‘이렇게 되면!’

    프로즌 디퓨전과 암흑투기 두개의 스킬을 동시에 사용한 유세현이 골렘의 핵을 손에 쥐었다.

    일격필살.

    어떻게든 시선을 분산시켜 단 한번에 끝을 보려는 셈이었지만 그 순간 억지 웃음이 뚝 끊긴 루시뷀트가 손을 들어올렸다.

    “어째서...왜 그렇게 발악을 하는 거지?”

    의문어린 말과 함께 점점 어둠의 마력이 한데 뭉치며 이윽고 거대한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신의 무구와 필적한다는 마신구.

    촤아악!

    고작 단 한 번에 일격에 골렘의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며 그 틈을 검격이 쇄도해 들어왔다.

    매끄럽게 움직이는 마왕의 육체는 동등한 스텟과 상관없이 프로즌 디퓨전, 암흑투기 그 어떤 것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미친!’

    챙!

    지지직!

    아이템의 격차를 생각한 유세현이 황급히 몸을 틀어 최대한 공격을 흘렸다.

    허나, 그 순간 대검에서 스멀스멀 올라온 어둠이 신성을 잡아먹으며 루카스의 검을 부패시키기 시작했다.

    닿는 모든 것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부패의 권능.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