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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4화 (44/612)
  • 마왕 루시뷀트(1)

    수준의 차이는 무척이나 심각하다. 또한 법이 없는 이 세계에서 힘이 부족한 자는 너무도 무력했다.

    그렇기에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해봐야 알량한 협상 아니면 전투 뿐.

    김주환이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잠깐! 우리 이제 의미 없는 전투는 그만 하는 게 어떻겠나?”

    “의미 없는 전투?”

    “그렇다. 우리가 졌다. 인정하겠어! 그러니 이만 전투를 끝내자! 마땅한 보상을 하겠다!”

    “보상? 뭘 말이지?”

    “이 던전의 공략에 있어 앞으로 우리 셋은 아무것도 이득을 취하지 않겠다. 그리고 제일 선두에서서 나아갈 것을 약속하지. 어떻겠나?”

    사실 김주환이 하는 말을 그저 구차한 변명에 불과했다.

    그냥 살고 싶기에 되는대로 지껄이는 것.

    입을 굳게 닫은 이강호가 한발 더 앞으로 내딛었다.

    움찔 거린 김주환이 재차 외쳤다.

    “튜, 튜토리얼이 끝날 때까지 너희들이 하라는 것은 뭐든 하겠다! 단 그 후에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사실 판도라에서는 한 개의 아이템 때문에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경쟁하는 일은 비일 비재하게 일어난다.

    단,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먼저 경쟁자들을 향해 선포를 한다는 것.

    그래야지만 추후 깔끔하게 끝을 낼 수가 있었다.

    경쟁할 때만 적이지 완벽히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 행동은 어디까지나 명백히 뒤통수였다.

    근본도, 집념도 아무것도 없이 죽인자의 코인을 먹고 던전의 보상까지 얻으려는 놈들.

    이강호의 몸이 지면에 사르르 동화되었다.

    세 명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이강호의 눈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잠겨져있던 문이 완전히 열렸습니다.]

    무척 간단한 글귀였지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유세현이 백화수의 구출에 성공했다는 것.

    “제기랄! 수현아! 시환씨!”

    “으아아아!”

    세 명은 동시에 항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막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한 셋과 이미 무수한 경험을 쌓은 이강호의 전력 차는 너무도 분명했다.

    제일먼저 당한 것은 생존자 집단에서도 많이 강했던 축에 속한 김시환.

    목을 노려올 것이라 생각해 그 주위을 방어하고 있던 그는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궤적에서 들어오는 창의 칼날을 읽지 못하고 허리를 내주고 말았다.

    단번에 피가 분수같이 솟으며 상체와 하체가 지면으로 나뉘어 떨어졌다.

    “무, 무슨...어, 어떻게...”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김시환이 연신 떨어져나간 상체를 허우적대며 중얼거렸다.

    “걸리적 거린다!”

    “커헉! 김주환 너어어!”

    그 순간 김시환의 몸체를 밟아 넘어선 김주환이 동생 김수현과 협공을 펼쳤다.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노리는 것이 역시 형제라 그런지 나름 합이 잘 맞는다.

    허나, 이강호가 이런 공격을 지금까지 받아 보지 못 했을 리가 없다.

    이강호는 창대를 지면에 꽃아 도약함과 동시에 발길질로 두 명의 턱을 걷어찼다.

    “크악!”

    둘은 그대로 나 뒹굴었다.

    순수한 체술 만으로의 압도.

    그들은 기술이나, 스텟이나, 스킬이나 그 무엇 하나 이강호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은 김수현이 형 김주환을 살폈다.

    팔이 한쪽 떨어져서 그런지 평소 같지 않다.

    ‘승산이 없다...’

    죽음을 면전에 둔 김수현의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어차피 둘 다 살아나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 1%의 확률일지언정 한사람도 살 수 있을 만한 방법을 선택하는 게 맞다.

    “형,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게. 그동안 트랩을 해제하고 최대한 멀리 도망가.”

    “...뭐? 야! 그걸 무슨 말이라고!”

    “형! 그냥 내말 들어! 저 남자는 절대로 못 이긴다고!”

    김수현이 생전 처음으로 김주환을 향해 화를 냈다.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 치고는 새삼 훈훈한 희생정신.

    사실 김수현은 나름 괜찮은 성품을 지닌 남자였다.

    다만, 형의 부탁을 거절 하지 못할 뿐.

    이강호는 그의 재능이 살짝 아쉽기는 했다.

    몬스터를 대량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대장군.

    그들이 행한 행보만 보자면 고작 3년차가 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한 이번에 그는 태양신공을 얻지 못한다.

    그러니 이것이 되려 좋은 쪽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참수형이 될 뻔한 상황을 본의 아니게 자신이 막아 준 것이 되니까.

    ‘하지만 그것도 다 끝이군.’

    김주환은 너무도 탐욕스럽다.

    그러니 결국 그에게 이끌려 다니게 되는 김수현은 어디로 가도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수현아...”

    “빨리!”

    “크흑! 미안! 정말 미안하다!”

    이내 죽기는 싫었는지 김주환이 트랩을 해제하러 뛰기 시작했다.

    번뜩이는 그의 안광을 보건데 앞을 가로막는 생존자들은 전부 베어버릴 기세.

    이강호는 그를 재빨리 죽이려 했으나 김수현이 앞을 가로막았다.

    “스트랭스, 경피부, 지옥불, 끓어오르는 피.”

    마지막 승부가 될 것이라 판단한 김수현은 가지고 있는 스킬이란 스킬을 죄다 사용했다.

    엑셀을 사용해 순식간에 접근한 이강호가 곧장 무기를 들고 있는 오른손을 노렸다.

    방어나, 회피하는 틈을 타 순식간에 끝장을 낼 생각.

    허나.

    서걱.

    김수현은 피하거나 방어하지도 않고 왼팔을 희생해 위력을 줄였다. 그리고 파고든 틈 사이로 검을 내질렀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정말 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만 가능한 방법.

    ‘쉴드.’

    이강호가 재빨리 방어마법을 사용했다.

    그리고 남은 모든 마력을 쏟아 부은 쉴드를 김수현은 뚫을 수 없었다.

    치지직!

    단번에 튕겨져 나가는 손목.

    “크윽...이 정도란 말인가...”

    무방비가 된 김수현이 중얼거렸다.

    곧바로 이강호의 무자비한 공격이 이었다.

    촤자작!

    트드득.

    여태까지 생존자들의 지주대가 되었던 김수현의 육체가 궤적을 따라 여러 조각으로 잘리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추후 대장군이 될 수도 있었던 남자답지 않은 허무한 죽음.

    이로서 남은 것은 한명이었다.

    이강호의 몸이 곧장 김주환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트랩을 해제하지 못한 김주환은 이강호의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되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라고!”

    힘도 의지도 그 어떠한 것도 담겨져 있지 않는 영혼 없는 공격이었다.

    이래서는 형을 한번 살려보겠다고 희생을 한 김수현의 행동을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서걱.

    이강호는 무정하게 그의 나머지 왼쪽 팔도마저 베었다.

    “왜! 왜 타협을 하지 않는 거냐! 우리를 그만큼 이용하면 되는 거잖아!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아아!!”

    균형이 잡히지 않아 비틀거리는 김주환이 죽기 싫어 미친 척 발악했다.

    아니, 죽을 땐 죽더라도 적어도 같이 죽어야만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씨발 하지만...이제 더 뭘 어떻게...’

    죽음의 사신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이강호가 만약 이대로 검을 휘두른다면 끝.

    고개를 치켜 올린 그의 눈 앞으로 무엇인가가 살짝 눈에 비춰보였다.

    방 어디서도 계속 볼 수 있었던 트랩. 그것도 지금까지 나타났던 종류와는 사뭇 다른 어두운 색상을 띠고 있는 트랩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을 터인데.

    ‘그래 씨발 어차피 죽을 거라면...’

    빨간색은 퇴로차단. 푸른색은 가시낙하. 지금 본 어두운 색은 그도 전혀 몰랐지만 그럼에도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여태까지 본적 없는 것인 만큼, 분명 이강호를 조금이라도 엿 먹일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으아아아 이개새끼야아아!”

    김주환은 조금이라도 더 버티기 위해 남은 마력을 모두 사용해 온몸을 마수화 시켰다.

    그리고 곧장 이강호의 등 뒤 끝에 위치해 있는 트랩을 향해 돌진했다.

    그 모습이 마치 달려드는 성난 황소를 자아내게 했다.

    ‘최후의 발악인가.’

    이강호는 몸을 살짝 틈과 동시에 심장이 위치해 있는 왼쪽가슴을 깨부셨다.

    “크아아아!”

    허나 마수화와 코인으로 한계를 뛰어넘게 된 김주환은 바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쓸데없는 발악.

    이강호가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그의 두 눈에도 함정이 뻔히 보였다.

    ‘무슨!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는데...설마?’

    백화수를 구출한 뒤에만 작동하는 이중트랩.

    ‘제기랄!’

    이강호는 온 힘을 다해 질주했다.

    창을 던져 맞힐 수도 있지만 직선 방향이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다.

    “하압!”

    촤악!

    이윽고 이강호의 창이 김주환의 몸을 반으로 완전히 갈랐다.

    허나, 정말 아쉽게도 이미 살짝 늦은 뒤였다.

    이제는 싸늘한 주검이 된 김주환이 길게 늘어난 코 끝부분으로 함정을 발동시킨 것.

    파앗!

    쿠구궁!

    트랩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벽을 타고 빠르게 지나가자 마왕성의 내부 전체가 갑자기 흔들렸다.

    이강호는 처음 보는 트랩인 만큼 전후좌우 아래 위 까지 모든 곳을 살피며 혹시 모르게 발생될 일을 대비했다.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차분히 생각하는 이강호의 뇌리 속으로 트랩의 발동조건이 떠올랐다.

    ‘맞아. 이건 이중트랩 이었지. 그렇다면 설마?’

    이강호는 황급히 퇴로차단 트랩을 해제한 뒤 밖으로 나섰다.

    밖에서는 이미 전투를 마친 생존자들의 이목이 어느 한곳으로 쏠려있었다.

    제일 오른쪽에 위치해 있는 세 번째 문.

    모든이의 주목을 한 번에 받고 있는 그곳에는 김주희와 백화수로 추정되는 여자 한명 밖에 없었다.

    * * *

    “은공님! 은공님!”

    “...!!”

    기절해 있었던 유세현은 남태영의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생존을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그의 본능이 재빨리 주위 상황을 살폈다.

    약간의 조명이라도 있던 이전 장소와는 사뭇 다른 어둠침침한 공간.

    “저, 정말 죄송합니다 은공님. 소인 때문에...”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남태영이 중얼거렸다.

    유세현은 그제야 잠시나마 까먹고 있던 이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래, 분명 백화수를 구하는 데는 성공했다. 트랩도 분명 조심했는데...’

    탈출도 중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진과 함께 무수히 많은 트랩이 앞을 가로막았다.

    허나, 유세현이 어떠한 존재인가.

    1차 튜토리얼 부터 친구 이강호를 따라다니며 치열한 전투를 치뤄 여타 생존자들보다도 훨씬 많은 코인을 먹었다.

    그러니 그는 백화수를 등에 업고도 충분히 트랩을 탈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남태영.

    트랩에 걸린 그를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가 기어코 이런 사단이 나고 만 것이다.

    ‘젠장. 보상만 아니었어도...’

    아무튼 이제 와서 왈가왈부해봤자 이미 늦었다.

    중요한 것은 이곳을 어떻게 벗어나는가.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남태영공. 이곳이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유세현의 물음에 남태영이 다시 한 번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차피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에 유세현은 곧바로 주위 조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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