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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42화 (42/612)
  • 이중함정(2)

    마물들은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난전을 유도하여 뒤를 노리는 것뿐이었지만 미꾸라지 같은 이강호는 좀처럼 걸려들지 않고 있었다.

    ‘그래, 체력이 떨어져도 혼자 계속 날 뛸 수 있나 어디 한번 보자.’

    허나, 김주환은 초조해 하지 않았다.

    체력이 많이 빠진 사자가 잡기 쉬운 법.

    하지만 그때였다.

    [2번 게이트가 정상 작동되었습니다. 1번 게이트를 30분 안에 작동시키면 잠겨져있던 문이 개방됩니다.]

    갑작스레 눈앞으로 알림창이 나타났다.

    옆 방에서 먼저 장치를 가동시키는 데에 성공 한 것.

    그리고 그 순간 이강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렇다면 나도 슬슬 시작해 볼까.’

    그는 사실 장치의 위치를 알아 낸지 꽤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장치를 가동시키지 않고 전투만하고 있었던 이유는 순진한 생존자들 틈에 섞여 노리는 적을 걸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이강호를 주시한 만큼, 이강호 또한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것!

    눈치를 보는 적들은 이강호가 보기에 아직 많이 미숙했다.

    제 딴에는 눈동자만 슬쩍 굴려 쳐다봤기에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미 무수한 경험을 한 베테랑의 눈을 속을 수는 없는 법.

    본디 감시의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투가 이뤄지는 도중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에만 아주 살짝 흘겨보는게 정설이지만, 이렇게까지 해도 눈치를 채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속하는 게 바로 이강호.

    피아식별을 끝낸 이강호가 망설임 없이 벽에 박혀있는 수정구슬에 손을 얹었다.

    [1번 게이트가 작동되었습니다. 2개의 게이트가 정상 작동되고 있습니다. 문이 개방됩니다.]

    털컥!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음색이 잔잔히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더욱 매섭게 몰아쳤다.

    이미 몬스터의 적당량 있기에 더 이상 불어날 필요는 딱히 없었지만, 연기를 하기에는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진다.

    이강호는 몬스터의 군세에 못이기는 척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김주환이 생존자들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흐아압!”

    “이 개자식들아! 죽어서 코인이나 돼라!”

    지시를 받은 인원들은 저마다 힘찬 기합과 함께 이강호의 전방으로 나섰다.

    겉으로는 보다 더 많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나선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을 시야를 차단하기 위한 수단.

    베테랑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정말 깜찍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였으나, 이강호는 흔쾌히 그들의 작전에 동조해주며 몬스터를 죽여 나갔다.

    이윽고 몬스터들은 점점 빠르게 줄어드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눈치를 살피고 있던 김주환은 곧장 제 2단계를 시행했다.

    1단계가 난전을 유도하며 시야를 차단하기 위함이라면 2단계는 타겟의 경각심을 확인하는 것.

    솨아악.

    5명이 넘는 생존자들이 순식간에 이강호의 주위를 스쳐지나갔다.

    이강호는 할 일만 할뿐 당연히 반응하지 않았다.

    김주환의 눈이 이채가 스쳤다.

    지금이 바로 거사를 행할 순간이었다.

    “수현아 지금 간다.”

    “...형. 역시 아무리 봐도 이러지 않는 게...”

    김주환의 말에 동생 김수현이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여태까지 생존자 집단 중 제일 강했던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이 차근차근 진행될수록 스멀스멀 밀려 올라오는 불안감.

    그의 아직도 이강호를 처음 만났던 장면이 잊혀 지지 않았다.

    그 강했던 마기병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던 압도적인 힘.

    비록 갈라진 3일간 많이 따라잡았다고는 하지만 이강호에게는 자신에게도 없는 여유라는 것이 존재했다.

    “수현아 형만 믿으라고 했지?”

    “...알겠어.”

    허나 김수현은 김주환의 판단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현대에서나 이곳에서나 여태껏 싸움만 할 줄 아는 자신을 잘 이끌어준 것은 머리가 뛰어난 형 김주환이였으니까.

    솨아악!

    날렵하게 움직인 형제의 검이 이강호의 등 뒤를 쇄도해 들어갔다.

    동시에 이강호의 앞에 위치해 있던 생존자 3명 또한 몸을 돌려 이강호의 목을 노렸다.

    겉으로만 보기에는 정말 완벽한 연계.

    독기 어린 눈으로 검을 휘두르는 생존자들은 이강호의 반응속도가 뛰어난 것을 아는 만큼 팔 하나 정도 잘려나가는 것은 감수하고 있었다.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크고, 잘려나간 팔이야 다시 붙이면 되니까.

    허나.

    촤자작!

    “어?”

    “응?”

    잘려나간 것은 이강호의 목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이 몸을 돌리는 순간,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강호가 먼저 선수를 친 것.

    “무, 무슨...”

    생존자 3명은 내뱉은 감탄사를 끝으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투둑.

    사선으로 잘려나간 3명의 목이 순식간에 지면을 떨어졌다.

    “꺄아악!”

    몬스터와 싸우던 여성 생존자 한명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바로 뒤에 위치해 있던 김주환과 김수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 미친 반응속도는 무엇인가. 이미 알고 있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도 늦었어!’

    동시에 노려오는 두개의 검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김주환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실상으로 둘의 롱소드는 당장에나마 심장과 목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이강호의 몸 주위에 무기가 도달하자,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스파크가 튀며 그들의 손이 튕겨나갔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고 숨겨왔던 1서클 방어마법.

    [쉴드]

    쨍그랑!

    마력을 적당히 사용한 덕에 방금 전 일격으로 마법이 산산이 부서 졌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크윽 방어스킬? 도대체 언제?”

    기습에 실패한 김주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사이 이강호의 거침없는 손이 곧장 두 형제를 향했다.

    ‘인탱글’

    촤아악!

    미처 정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지면을 뚫고 나와 발목을 노리는 나무뿌리!

    하지만 김주환과 김수현 또한 힘과 민첩이 F랭크 최상에 다 달은 생존자였다.

    그러니 쉽사리 당할 수는 없는 법.

    김주환과 김수현은 뿌리를 베기 무섭게 황급히 도약하여 자리를 피했다.

    허나, 그것이 공격의 끝이 아니었다.

    ‘그리스’

    물질의 마찰계수를 0으로 만들어주는 마법.

    지면이 미끈미끈해지자 바닥에 착지한 둘의 몸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단번에 뒤로 나동그라졌다.

    “씨발. 이게 무슨...”

    “형! 형! 앞을 봐!”

    곧장 돌격 해오는 이강호를 본 김수현이 당황어린 어조로 외쳤다.

    “크윽, 씨바아알!”

    김주환은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허나, 무너진 자세에서 나오는 공격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촤악!

    결국 언월도의 날카로운 예기를 막지 못한 김주환의 오른쪽 팔목이 단번에 잘려나갔다.

    “크아아악!”

    김주환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이리저리 구르거나 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지금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이강호라는 악귀에게 목이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

    “파이어 에로우!”

    재빨리 검을 휘둘러 간격을 만든 김수현이 다급하게 마법을 시전 했다.

    허나, 이강호는 살짝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간단히 회피했다.

    슈우웅!

    쾅!

    그 덕에 피해를 입은 대상은 재수 없게 뒤에 위치해 있던 애꿎은 생존자와 몬스터 뿐이었다.

    “크아악!”

    이강호의 눈이 불에 타고 있는 생존자의 얼굴을 흘끔 흘겼다.

    여러 번 자신을 주시한 이력이 있는 명실상부 한 적이었다.

    ‘인과응보군.’

    어차피 확실하게 적으로 인식한 생존자들을 살려둘 마음은 없다.

    단지 빨리 죽냐 조금 더 늦게 죽냐의 차이일 뿐이다.

    “으으! 왜! 왜! 왜! 갑자기 사람들을 죽이는 거야! 앞에 몬스터가 있잖아 몬스터가!”

    그때 힘겹게 마수를 상대하던 생존자 한명이 이강호를 향해 외쳤다.

    인상을 바득바득 쓰고 있는 것이 아직 무슨 일이 벌어 졌는지 모르는 눈치.

    이강호가 무심하게 말을 툭 내뱉었다.

    “저들이 날 먼저 죽이려했다.”

    “뭐, 뭐라고? 죽이려고 해?”

    일반 생존자들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뭐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는 이 상황에서 여유가 좀 생겼다고 등 뒤를 노리다니 정신이 나가도 제대로 나가지 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으아! 뭐,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몬스터들을 다 처리하고 해! 이러다가 전멸한다고!”

    “마, 맞아! 싸울거면 다 끝나고 해라! 이 새끼들아!!”

    기습을 행하느라 밸런스가 순식간의 무너진 생존자 집단은 몬스터에게 밀리고 있었다.

    몇 명은 이미 몬스터에게 당하기까지 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사상자가 너무도 어이없게 발생한 것이다.

    “그, 그래! 일단은 몬스터를 물리치자!”

    “다들 모여!”

    김주환 형제가 너무도 쉽게 밀리는 모습을 보이자 모략에 가담했던 생존자들이 은근슬쩍 일반 생존자들 틈 사이로 껴들었다.

    이미 제대로 낙인이 찍힌 김수현이나 김주환이야 빼도 박도 못하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평소 안면을 터놓지 않던 만큼 얼버무릴 수 있을 거라 생각을 하는 것!

    그들은 이전 말한바와 같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두 형제에게 가세해 싸우고 싶지 않았다.

    궁지에 몰리 김주환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의 계획에는 전혀 없었다.

    그간 봐온 바로 그저 힘과 민첩이 조금 더 높게거니 했는데, 이정도로 차이가 날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제길...어떻게 해야...’

    마땅한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선동을 야기해 몰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러한 시간을 이강호가 주지 않을 터다.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그나마 협공뿐이었는데, 눈치 빠른 모략 인원들이 등을 돌렸다.

    ‘씨발...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결국, 김주환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조했던 생존자들은 나와서 싸워라! 안 그러면 내가 가담한 놈들 전부 이름을 불겠어!”

    “뭐라고?”

    “이런 개새끼가!”

    다급한 상황이라 그런지 정말 멍청하게도 생존자 틈에서 욕지꺼리가 터져 나왔다.

    명실상부하게 모략을 세웠다고 스스로 시인을 한 셈.

    이강호는 단번에 김주환을 처리할 수도 있었으나 좀 더 상황을 지켜봤다.

    어차피 한 명도 놓칠 일은 없겠지만, 알아서 한데 모여주면 좀 더 처리하기가 수월해진다.

    “제기랄 김주환 저 자식...어떻게 하지?”

    “일단은 무시...”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도끼눈을 치켜 뜬 김주환이 한 번 더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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