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1화 (41/612)
  • 이중함정(1)

    ‘그래도 이건 말해주면 안 되지.’

    이것은 지식이 아닌 어디까지나 미래의 이야기.

    유세현에게 미리 말해 놓은 게 있는 만큼, 그는 오해받는 것이 싫었다.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털어 놨을 때 나이차 있게 되는 만큼 친구라는 틀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이런 걸 생각하게 될 줄이야.’

    이강호는 판도라에서 생존을 시작한 뒤로부터 친해진 사람에게 조차도 존대를 하며 벽을 두었다.

    감정을 주며 사람을 대하기에는 너무도 남을 이용해먹으려는 악인이 많거니와, 추후 배신을 당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갈수록 감정이 메마르고 이윽고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어졌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유세현의 친근감이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트고, 장난까지 치는 상대.

    그렇다고 해서 유세현이 자신을 얕보는 것은 아니었다. 되려, 가지고 있는 지식을 떠나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의견을 존중을 해준다.

    이제는 인정한다. 자신은 유세현과 벽이 만들기 싫다는 것을.

    표정을 굳힌 이강호가 손을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이 건에 대해서는 그냥 나에게 전부 맡겨줘. 대신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으니깐. 늦으면 나 대신 백설화도 좀 구해주고. 암흑투기 스킬까지 먹었으니 이제 마왕을 제외하고 여기서 너를 당할만한 놈은 딱히 없을 거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알았어. 너의 그 말 갖지도 않는 의견 특별히 존중해주마. 대신 그 두 형제는 진짜로 조심해라. 코인하고 스킬을 제법 쓸어 담은 것 같더라.”

    “하하. 알겠어. 알겠어. 너 무서워서라도 조심할게.”

    “참...말이라도 못하면...알았으면 됐다.”

    둘은 가볍게 주먹을 툭치는 것을 말을 끝냈다.

    그리고 대망의 다음날.

    생존자들은 팀을 나눴다.

    김주환 형제와 모략자들은 미리 정해두었던 대로 이강호 혼자 있는 왼쪽 문으로 붙었다.

    유세현은 모른 척 그것을 수용해주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나눠지는 팀.

    결국, 왼쪽 문은 이강호와 김주환 그룹이, 중간 문은 유세현과, 김주희 남태영을 포함한 군인과 일부 생존자들이 향하게 되었다.

    남태영은 본디 이강호와 같이 가기로 결정되어 있었지만, 행여나 싸움에 휘말려 죽으면 안되기 때문에 일부러 유세현 쪽에 붙게 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선두에 서 있던 이강호와 유세현이 동시에 문에 손을 올렸다.

    끼이익!

    커다란 문은 불길한 마찰음을 자아내며 정말 천천히 열렸다.

    내부는 회랑이 기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밖으로는 마수와 마기병, 소악마. 여태까지 상대했던 모든 몬스터가 섞여있었다.

    “1분대 2분대! 각 진형대로!”

    “예!”

    군인들을 이끄는 정동호 중사의 외침과 동시에 교전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움직인 군인들이 먼저 좌측을 점령했다.

    그러자 생존자 집단들 또한 질세라 우측에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코인을 흡수한 그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기병 한 마리에 벌벌 떨던 나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촤악!

    키에엑!

    생존자들의 들고 있는 각종무기에 쓸려가는 몬스터들!

    정면을 맡고 있던 유세현은 자꾸 머릿속을 휘젓는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이강호가 믿어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믿고 맡은 바에 소임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이강호를 위한 것이다.

    유세현은 천천히 진군해 나아가며 행여나 장치가 있을까 주위 구석구석을 살폈다.

    회랑의 지붕을 받쳐주고 있는 기둥과 틈 사이. 그리고 옆 벽까지.

    허나, 아무리 주위 깊게 봐도 마력의 분포도 처음과 일정할 뿐 육안으로 확인이 되는 것은 없었다.

    ‘역시 깊숙한 곳에 있는 건가.’

    생각을 하는 잠깐 사이에도 몬스터들은 밑도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끝없이 돌격해오는지, 주위에 몬스터를 생성하는 장치라도 있는 듯한 느낌.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져가는 생존자들은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무슨 몬스터가 이리 많아!”

    “제기랄! 이런 엿 같은 몬스터들! 코인이나 되 버려라.”

    생존자들은 오만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분발했다.

    허나, 10분이 더 지나자 기어코 부상자가 발생했다.

    “꺄아악!”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였다.

    어제 정보를 제공해주었던 여자, 평소 약한 축에 속했던 강희수가 팔목을 크게 당한 것이다.

    “흠...”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장치를 찾아 나아가기는 커녕 점점 부상자만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가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는 이상, 아무리 강하다 한들 혼자 무작정 앞으로 나서는 것은 미련한 짓.

    일을 쉽고, 편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타협하여 다른 생존자들을 돕는 게 정답이었다.

    ‘어쩔 수 없군.’

    유세현은 곧장 프로즌 디퓨전을 펼치며 생존자 집단으로 돌격하는 적을 막아섰다.

    생존자 집단의 두 눈이 화들짝 커졌다.

    설마 여태까지 단독으로 행동해온 그가 도와줄지는 미처 몰랐던 것.

    유세현은 현 생존자 집단을 이끌고 있는 임시 리더를 향해 툭 말했다.

    “퍼져있는 생존자들을 불러들여 서로 등을 맞대게 하세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허억, 허억. 예? 지, 지금 뭐라고 하셨죠?”

    허나, 몬스터의 군세에 밀린 임시리더는 제한 몸 지키기 만으로도 벅차 정신을 잘 못 차리고 있었다.

    그간 김주환이 하는 행동을 곁눈질로만이라도 배워 놓았더라면 이렇게 집단을 이끌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것은 김주환과 김수현의 지시에만 무작정 따른 폐해였다.

    ‘쯧.’

    혀를 찬 유세현이 어쩔 수 없이 임시리더를 향해 고개를 들이 밀었다.

    “폐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제가 생존자 분들의 지휘를 맡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마, 마음대로 하세요. 아, 아니 해주세요!”

    말을 꺼내자 임시리더는 기다렸다는 듯 유세현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지휘는 제가 맡겠습니다. 정동호 중사님!”

    유세현이 곧장 좌측에 분포 되어있는 군인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크윽! 알겠네! 우리도 합류하겠네! 1분대 2분대는 길을 뚫어! 3분대는 후방을 맡아라!”

    “예! 알겠습니다!”

    짬밥 생활만 10년이 넘게 한 사람답게 정동호 중사는 재빨리 소대를 데리고 억지로 길을 뚫어 유세현이 있는 장소로 합류했다.

    그 사이 유세현 또한 재빨리 생존자들을 불러 모았다.

    “생존자 분들은 제 우측으로 붙어주시기 바랍니다.”

    “크흑! 아, 알겠습니다 다, 다들 이쪽으로 붙죠!”

    “예, 예!”

    이윽고 어느새 한데 뭉친 집단은 원의 형태를 뛰며 몬스터를 상대하는 형태가 되었다.

    최전방에 서 있던 유세현이 앞에 있는 적을 전부 베어나가며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전방은 전부 제가 맡겠습니다. 군인 분들은 좌측, 생존자들은 우측을 맡아주세요. 그리고 싸울 수 없는 부상자는 중간 쪽으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 전방을 자네 혼자 말인가? 괜찮겠나?”

    “예, 지금부터 길을 뚫겠습니다.”

    “...오!”

    생존자들의 표정에 이채가 넘쳤다.

    평소에는 집단을 무시하는데다가 아이템까지 많이 독점하고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냉소한 목소리가 정말 든든하기 짝이 없는 것.

    촤악!

    유세현의 의해 전방이 정리되며 길이 뚫리고.

    서걱!

    옆으로 치고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군인과 생존자들이 등을 맞대고 상대한다.

    그렇게 그들은 얼마안가 방의 중심부를 넘어설 수 있었다.

    ‘어디지?’

    유세현의 부릅뜬 눈이 다시 한 번 더 주위 사물을 살폈다.

    그러자 회랑의 끝 부분에 위치해 있는 벽 틈으로 주위와는 많이 다른, 밝은 빛을 내뿜는 마력의 덩어리가 보였다.

    저것이 장치일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번에는 물량 승부인지 보스급 몬스터드 등장하지 않고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마친 유세현은 곧장 암흑투기를 발동시켰다.

    여태까지는 생존자들의 앞에서는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스킬.

    쿠구궁!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에 짓눌린 마기병들이 무릎을 꿇는 등 제 몸을 가누지 못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뭔데 갑자기 몬스터들이...”

    “모, 몰라! 일단은 죽여!”

    갑자기 이상현상을 보이는 몬스터들의 행동에 생존자들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곧 유세현이 앞으로 홀로 치고나가자 생존자들은 지금 상황을 만든 것이 그의 힘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군.’

    마력뭉치를 따라간 다다른 벽에는 자그만 한 수정구슬이 박혀 있었다.

    유세현은 망설이 없이 수정구슬에 손을 얹었다.

    [2번 게이트가 정상 작동되었습니다. 1번 게이트를 30분 안에 작동시키면 잠겨져있던 문이 개방됩니다.]

    내부에 있는 생존자들의 눈앞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김주환이나 김수현이 있는 곳보다도 먼저 장치를 가동시키는데 성공한 것!

    주위에서 갑자기 터져나온 몬스터들을 마지막으로 그 군세가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사이 다시 생존자 틈으로 돌아온 유세현은 몬스터들을 학살해 나갔다.

    손목을 부여잡고 이를 지켜보던 강희수가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간 숨기고 있었다니.

    욕을 먹을 것을 예상하고서도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준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사, 살았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아아!”

    이윽고 내부의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자 생존자 한명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여태까지 많은 몬스터를 상대했으나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잡은 적은 그들도 처음이기 때문.

    처음에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저 코인을 얻기 위해 멋모르고 따라 들어온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성취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보다도 한걸음 더 발전한 기분.

    유세현은 모두에게 공로가 있는 만큼 코인을 적절하게 분배한 뒤 방을 나섰다.

    이강호가 들어간 문은 자신이 들어갔던 곳과 다르게 굳게 닫혀있었다.

    예상과도 같이 미리 뒷 공작을 친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단 내가 할 수있는 것은 없다.’

    트랩은 내부에서만 해제가 가능하기 때문.

    그렇다면 이제 유세현이 해야할 일은 이강호가 게이트를 작동시키기를 기다렸다가 계획대로 누구보다도 먼저 백설화를 구하는 것 뿐이었다.

    * * *

    푹!

    키에엑!

    한편, 이강호가 돌입한 왼쪽 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들이 밀리던 유세현쪽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김주환과 김수현 주위로 똘똘 뭉친 생존자 집단이 차분히 몬스터를 처리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에게서 조금 떨어진 전방에서는 이강호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난투를 벌이고 있었다.

    창의 축을 이용해 적의 공격을 전부 피하고, 베어 넘기는 날렵한 움직임에는 빈틈이란 것이 없었다.

    김주환의 눈이 흘끔 그를 흘겼다.

    ‘끝까지 우리를 안 믿는군...’

    계획을 행하기 위해, 트랩을 발동시켜 퇴로는 이미 차단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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