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살인(2)
“허허 형씨. 왜 그리 표정이 안 좋아? 아까 싸우다가 다치기라도 했어?”
“......”
유세현은 말없이 그릇을 받아 들었다.
후르륵.
그 후 사람들은 라면을 정신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게 먹는지 걸신이 영접한 모습.
그렇게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슬슬 목이 마르려던 때.
마도철은 지금을 위해 미리 준비해왔던 비장의 아이템을 꺼냈다.
“허허. 다들 목 마르지? 그렇다면 이걸 꺼내야겠군. 이제는 구할 수 없어서 우리도 아껴 마시는 건데. 특별히 대접하지!”
1.5 리터짜리 이온 음료.
이전 김주희가 경계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마도철은 일부러 기분 좋게 한 모금 마셔 보인 뒤에야 일행들에게 내밀었다.
“잘, 마실게요.”
김주희가 얼른 받아들었다.
이에 옆에 위치해있던 부하들이 단번에 들고 일어나는 모습을 연기했다.
“형님! 저희는요! 진짜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허허허. 레이디 퍼스트 모르냐? 그리고 오늘은 우리 지금까지 길잡이 해줬던 형씨들이 있는 만큼, 아끼지 않고 있는 거 다 풀거니깐 너희들도 다 마실 수 있어 짜식들아.”
“크~역시 우리 형님! 통이 크셔!”
겉으로만 보자면 훈훈한 의형제의 모습.
하지만 그들의 다정한 눈은 유세현과 이강호가 2통째 되는 이온음료를 마시는 순간 확 뒤 바뀌었다.
제일 먼저 이상이 발생한 것은 김주희.
물을 마시던 김주희의 몸이 별안간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눈을 깜박일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의식은 깨어있었지만, 아무리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서, 선배님!’
김주희는 필사적으로 둘에게 눈동자를 굴리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곧 이어 유세현과 이강호의 고개 또한 땅으로 툭 떨어졌다.
앉은 자세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지만 영락없이 약에 취한 모습.
마도철과 심복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 순간을 위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에게 실실거리는 고역을 인내했다.
“크크크...애들아. 알아서 처리해라.”
“크큭. 형님은요? 뭘 하시려고.”
“크흐흐흐.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자리에서 일어난 마도철은 천천히 김주희에게 다가갔다.
김주희의 저항 하고 싶었지만 움직이는 것은 오직 눈동자 뿐.
두 눈에 절망감이 감돌았다.
“크흐흐흐 흐하하하! 그렇게 봐봤자다!”
우왁스러운 손에 의해 안 그래도 반 넝마 조각이던 상의가 단번에 찢겨 떨어져나갔다.
한국여자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만한 가슴과 그 밑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잘록한 허리.
“크흐흐 이년 봐라? 많이 구른 것 치고는 색이 괜찮은데?”
더러운 손이 그녀의 가슴을 거침없이 탐했다.
이에 남아있던 여자들은 고개를 휙 돌렸다.
이미 한번 당한 적 있는 그녀들은 앞으로 김주희가 겪게 될 치욕이 눈앞에 너무도 훤히 보였다.
“크크. 형님 저희도 일이 끝나면...”
“크큭. 알았다 알았어. 짜식들아.”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자, 부하 두 명이 무기를 치켜세웠다.
마도철의 손이 하의 쪽으로 슬쩍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합!!”
힘찬 기합과 함께 심복들이 무기를 내려쳤다.
푹.
무기가 몸을 관통하는 음색.
“크헉.”
곧바로 주위에 피가 튀고 남자의 신음 소리가 이어졌다.
몸에 정신이 팔려있던 마도철은 이때까지만 해도 누가 내뱉은 음성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크아아악! 혀, 형님!”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마도철은 경악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강호의 참마가 김창식의 심장부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유세현을 노린 부하는 종아리가 부러져 지면을 구르고 있었다.
“너, 너희들 어떻게!”
김주희의 눈빛이 안도감에 빛나는 반면 마도철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분명 마시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터인데 그 강한 약이 통하지 않았단 말인가.
효과가 이미 입증 되어 있었던 만큼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과부하가 걸렸다.
그 와중 유세현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후회할거라 했잖아.”
“......”
이미 계획을 눈치 채고 있었단 말인가.
마도철은 정신이 확 들었다.
지금 해야 되는 일은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이 틀어져버린 이상 정면에서라도 어떻게든 죽여야 한다.
“전부 공격해!”
“크으...으아아아!”
그의 외침에 부하 한명이 이강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리가 부러진 부하도 허우적거리며 무기에 손을 뻗었다.
그사이 마도철은 유세현을 노렸다.
크기가 크기인 만큼 방패는 거치시켜 놓은 상황.
그는 일부러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무기가 반동에 의해 서로 튕겨 나갈시 여차하면 매직스킬인 [물어뜯기]로 일격에 숨통을 끊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솨아아.
트드드득!
유세현에게서 별안간 뿜어져 나온 냉기가 움직임이 둔하게 만들었다.
‘이게 무슨! 스킬?’
마도철은 깜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힘을 빼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전투는 한방이다.
챙!
그러나 검신이 맞닿는 순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힘.
“크아아악!”
단번에 튕겨져 나간 마도철의 몸이 지면을 굴렀다.
그사이 이강호에게 덤볐던 두 명의 목이 완전히 잘려나가며 잔디 위로 쓰러졌다.
“크으...이게 무슨...”
인상을 잔뜩 구긴 마도철과 이강호의 시선이 교차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눈.
사람이라면 같은 사람을 베는데 있어 조금의 망설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피에 젖은 참마를 고쳐잡고 있는 이강호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다.
그것이 마도철의 눈에는 더욱 끔찍이 자리 잡았다.
이대로라면 둘에게 살해당할 것이 너무 불보듯 뻔했으니까.
어떻게든 반전을 만들 껀덕지가 필요했다.
‘젠장! 뭘 어떻게 해야 되지?’
주위를 살피던 도중 문득 쓰러져있는 김주희가 눈에 띠었다.
“으으! 너희들 어떻게! 어떻게 잠들지 않았지? 아니 어떻게 마비도 오지 않은 거지?”
마도철은 분을 참지 못하는 연기를 하며 슬금슬금 발을 뗐다.
허나, 그것을 유세현이 눈치 채지 못 할리가 없었다.
“조잡한데다. 더럽기까지 하군.”
김주희에게 다가갈 틈도 없이 유세현의 공격이 거칠게 이어졌다.
상하좌우.
본능적으로 방어하려 뻗었던 손바닥이 반으로 갈라지고 팔이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스킬은 당연히 쓸 틈도 없었다.
스륵.
어느새 마도철의 목에는 기다란 검신의 끝이 닿아 있었다.
마도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에 호소하는 것 뿐이였다.
“사, 살려줘! 아니,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절대로! 두 분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식량, 생필품 전부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제발...목숨만은...”
그는 머리까지 조아려 가며 처절하게 외쳤다.
이강호가 유세현을 힐끗 흘겼다.
처분을 맡기겠다는 뜻.
유세현의 내면에서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와 이강호는 본디 그들이 하는 행동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고블린들의 기습.
코인을 점차 흡수하고, 행동패턴도 익숙해지는 만큼, 사람들이 멍청하게 계속 당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습격하는 고블린의 숫자도 항상 일정하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유세현은 자기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어쩌면 사람을 죽여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허나, 그럼에도 굳이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이유를 꼽자면, 죽일 수 있다는 아직 확신이 아직 서지 않아서.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꼭 해야 되는 것이라면...’
미리 의견을 맞춰 F랭크 이하의 독은 무엇이든 중화시켜주는 해독초를 캐지 않았더라면 쓰러져있는 것은 자신들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김주희는...아마 윤간 당하고 노리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세현은 검을 양손으로 고쳐 잡았다.
막상 상황이 발생했는데 봐주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다.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적이 된 자들은 나중이라도 함께하는 것이 가능할지언정, 감정적으로 적인 된 자는 되돌리기 힘들다.
아니, 되려 앙심을 품고 뒤통수를 후려갈길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리고 막상 그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자신은 분명 살려준 것을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차라리 후환이 되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 하는 게 나았다.
“미안하지만. 봐줄 마음은 없어.”
“제발!! 제발 부탁이다! 제발!! 내가 앞장 설게! 내가 몬스터의 습격을 대신 받아줄게! 그러니!”
“포기해라.”
단호한 중저음의 목소리.
그 순간 마도철은 깨달았다.
절대로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음을.
“크윽! 그렇다면 너 만이라도!”
발악하듯 몸을 튕긴 마도철이 곧장 유세현을 향해 이빨들 들이댔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주었던 스킬.
[물어뜯기]
허나. 안타깝게도 고개를 든 그의 눈앞에 비친 것은, 목이 아닌 자신에게 날아오고 있는 검신 있었다.
서걱. 촤아악.
입부터 시작하여 단번에 두 동강이 나는 마도철의 머리.
뇌수가 흘러내리고 피가 흩뿌려지는 그 모습은 굉장히 그로테스크 했으나 유세현의 시선은 이미 여자들을 향해있었다.
협박을 받았던 뭐하든 간접적으로 마도철을 도와준 자들.
“사, 살려주세요. 저희는 그냥 너무 무서워서...그래서...”
“제, 제발 어떤 일이든 할게요. 예? 저, 저 몸매 좋아요! 그러니 제발...”
굳이 뭐라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여자들은 입고 있던 옷들을 전부 벗어던졌다.
마도철 패거리들에게 했던 것처럼 몸을 바치면 적어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
‘어떻게 할까.’
약에 취한 척 했을 때 그들이 환호하거나 좋아하는 등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였었다면 당장에 죽였을 것이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별로 어렵지 않으니깐.
하지만 저 여자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도와주었다는 행동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제거할 수도,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도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자비를 베풀 수도 있는 상황.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였다.
“강호야 어떻게 하는게 나을 것 같냐?”
“난...”
잠시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강호의 경우는 이미 답이 나와 있었다.
“...죽이는 게 나을 것 같다.”
“...!!”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제발 살려주세요. 뭐든 할게요. 흐허헝헝.”
판도라대륙에서 유적이 발견될 시 사람들은 개떼처럼 달려든다.
조금이라도 좋은 아이템을 얻고 강해져서 살아남기 위해.
그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에게 일부러 꼬리를 물게 한 뒤 마지막에 뒤통수를 치는 자들도 존재했다.
비인도적인 일이 자연스레 발생하는 세계.
일일이 사정을 봐주다한 같은 사람에게 두 번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강호는 협박을 받을지언정 자신이 선택한 것에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 되었다.
허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이 많은 베테랑만이기에 가능한 생각.
“흐으으윽...흐윽...제발...”
“제발요! 제발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젠 기댈곳이 유세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들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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