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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6화 (26/612)
  • 첫살인(1)

    키히힝!

    예기치 못한 공격에 깜짝 놀란 크낙사스가 뒷발굽을 이용해 곧바로 김주희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꺅!”

    김주희의 몸이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런 직접적인 공격은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받아본 것이었다.

    배가 욱신거리고 헛구역질이 났다.

    이곳이 현대였다면 죽어라 주위에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허나, 마음을 독하게 먹자 고통이 이상하게 견딜 만 했다.

    치잉!

    손이 반자동적으로 일본도를 향했다. 이전에는 죽어있는 시체를 베는 것만으로도 수전증이 일어났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으아아아!”

    그녀는 곧장 다시 크낙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강호와 같은 날카로움과 예리함은 없었다.

    유세현처럼 안정감이 있지도 않았다.

    그저 무자비하게, 숨이 터져나가도록 난자할 뿐이다.

    엉치살, 등살, 옆구리살.

    조금씩 이지만 서서히 잘려나가는 크낙사스의 육체.

    크어엉!

    고통을 이기다 못한 크낙사스가 이제는 아예 몸을 돌려 매섭게 달려들었다.

    김주희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회피해본적도 없기에 할 줄도 모른다.

    촤악!

    날카로운 뿔이 왼쪽 팔을 슬쩍 스쳐 지나가자, 살점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며 피가 흘렀다.

    “으읍!”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종이에 손가락을 살짝 베였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각.

    하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을 따로 있었다.

    김주희는 입을 악물며 재차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서 간절함과 절박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그리고 얼마나 일본도를 휘둘렀을까.

    마침내 크낙사스의 육중한 몸이 고꾸라졌다.

    “하아...하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겨지지 않았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없었다.

    김주희는 가쁜 몸을 억지로 이끌며 유세현의 곁으로 다가갔다.

    “선배님...저...직접 싸웠...이겼...”

    털썩.

    결국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크낙사스들을 정리한 유세현이 곧바로 김주희의 신체를 살폈다.

    회복력이 초인 급으로 올라간 지금, 치명상이 될 만한 곳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 예로 떨어져나간 살점도 조금씩 복구가 되고 있는 상황.

    아마도 기절의 이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면에 있으리라.

    “정말, 너가 말 한대로 됐네...”

    중얼거리는 이강호의 표정은 놀라움에 물들어 있었다.

    타인의 두려움을 이겨내게 만드는 방법 따위 그는 모른다.

    두려움 때문에 싸우지 못한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전부 죽었으니까.

    판도라에서 자신과 뜻을 맞춘 사람들은 전부 외부의 개입이 없이 스스로 극복한 사람들이었다.

    고로 이강호는 김주희가 근접전투를 끝내 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활을 추천했던 것이고.

    그런데 유세현이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판도를 완전히 바꿨다.

    무관심과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연기.

    고작이 세 가지만을 이용해서.

    “으음...”

    김주희가 깨어난 것은 10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저도...잘 싸울 수 있어요.”

    이것이 눈을 뜬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유세현은 그저 그녀의 손위에 코인을 올려줄 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건?”

    “너가 잡은 크낙사스에게서 나온 코인이다. 흡수해라.”

    “아...”

    김주희의 입술이 움찔거렸다. 눈가도 살짝 촉촉해졌다.

    처음으로 직접 손에 얻은 코인.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친 상처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안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치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이것은...그래, 성취감이다.

    여태까지 남에게 의존만 해올 때는 절대 느끼지 못했던 감정.

    “저도, 같이 사냥할게요.”

    김주희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주위에 위치해있던 마지막 크낙사스가 쓰러지자 생각지도 못한 알림창이 나타났다.

    유세현이 탈출조건을 넘어 홀로 100마리를 사냥하는데 성공했을 때였다.

    [크낙사스 100마리를 사냥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오늘은 더 이상 이 지역에서의 사냥이 불가능 합니다.]

    섬에 생존자들이 수 만 명으로 한정되어있듯, 자원 또한 한정되어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강한 생존자들이 한곳에 죽치며 코인 독식을 하지 못하도록 마련 된 법칙이었다.

    “내가 접근하면 다 도망치네.”

    “그렇지. 오늘은 더 이상 못 잡아.”

    바로 옆에서는 김주희가 크낙사스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었다.

    맞고 찌르고, 채이고 찌르고.

    비효율적인데다 사냥속도도 느려, 융통성이라고는 정말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무식한 사냥이었지만, 벌벌 떨기만 했던 처음에 비해 훨씬 보기 좋았다.

    아픔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전투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두두두두!보다 못한 크낙사스들이 동료를 돕기 위해 돌진해왔다.

    이강호처럼 가지고 있는 힘을 100% 활용한다면 모를까 그녀는 아직 1:1 힘든 상황.

    유세현은 슬쩍 그녀의 앞을 막아주었다.

    법칙에 의해 지금 전투를 하고 있는 크낙사스를 제외한 나머지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야, 이강호. 쟤가 저거 잡으면 바로 나갈 거냐?”

    “아니,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더 있을 생각이야. 한번 나가면 다신 못 들어오거든.”

    “음...그렇단 말이지.”

    유세현은 한결 여유롭게 스테이터스를 살폈다.

    물리저항력이 약 5%, 마법저항력이 6%정도 상승해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곳을 나갈 때 쯤은 두개의 저항력 모두 50%가 넘게 된다.

    저항력코인이 다른 코인에 비해 얻기 힘들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곳은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크윽!”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마도철의 패거리가 분발하고 있었다.

    그 수는 총 6명. 이전에 비해서도 확연히 많이 줄어든 숫자였는데 그중에서도 사냥을 하고있는 것은 남자 4명뿐이었다.

    여자 둘은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둘의 시선을 의식한 마도철이 으득 이를 갈았다.

    “저 자식들은 벌써 다잡은 건가?”

    “형님! 이놈들 너무 단단합니다.”

    “그러게요! 웬만한 곳은 아무리 베도 끄떡도 안하는데요?”

    크낙사스의 공격력은 그렇게 무섭지 않다. 신경 쓰이는 것은 무게를 이용한 돌진 정도.

    하지만 가죽이 생각보다 너무 질겼다.

    사람들의 코인을 상당수 독식한 자신은 그렇다 쳐도 부하들은 좀처럼 잘 잡지 못하는 상황.

    ‘그럼, 저놈들은 힘 코인을 얼마나 처먹은 거지?’

    마도철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귀찮게 하던 남자 3명과 앵앵되던 여자 1명을 마저 죽이고 코인을 흡수했다.

    비록 사람에게서 떨어지는 코인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힘 코인은 몇 개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힘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여태껏 갖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비교를 해보니 그들은 힘 스텟은 자신이랑 비슷하거나 좀 더 우월했다.

    적의 목을 손쉽게 따는 게 그 증거.

    그리고 그래서일까?

    마도철은 이제 김주희를 제외하고서라도 더욱 둘의 코인이 탐이 났다.

    둘의 목을 자르게 된다면 어떤 코인을, 얼마나 높은 순도의 코인을 떨어트릴 것인가 흥분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죽이기 더 힘들어진다.’

    이곳의 몬스터가 떨구는 코인의 대부분은 저항력코인.

    만약 앞으로 이런 몬스터가 계속 나온다면 추후 그들의 몸은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이 될 수도 있었다.

    ‘좀 더 이용해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군.’

    아직 즐길 여자도 있고, 본래라면 좀 더 산을 오른 뒤에 죽일 생각이었지만 이 이상 강해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다.

    마도철은 목표를 달성하기 무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둘에게 접근했다.

    “허어~형씨들도 다잡았나 보지?”

    “예.”

    너무나도 짧고 간결한 대답.

    그런 유세현의 행동은 언제 봐도 재수가 없었지만 마도철은 입가에 머금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후후~그런데 왜 안 나가고 있어?”

    “신경 안 쓰셔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만.”

    “에헤이~그러지 말고~설마 여기서 더 사냥하면서 코인을 얻으려는 건가? 산을 올라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알고...그럴 여유가 있겠어?”

    “......”

    “오~진짜인가 보네? 걱정마지 마. 우린 바로 떠날 생각이다.”

    “그럼...”

    “하지만 보다시피 슬슬 날이 저물고 있잖아? 일단 하룻밤은 자고가려고~그래도 우리가 너희를 열심히 따라다녔는데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 아쉽군.”

    마도철이 아쉬운 척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마치 무엇인가가 생각난 것 마냥 연이어 박수를 쳤다.

    “아! 이것도 인연인데 어때? 마지막으로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하는 게.”

    마도철이 부하들을 향해 힐끗 신호를 보냈다.

    잽싸게 뛰어온 부하들이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곳에 들어있는 것은 인스턴트 음식인 라면이었다.

    “거절합니다.”

    “에헤이! 그러지 말고~나중에 또 만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이건 이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물품인거 잘 알지?”

    이번에는 데리고 있던 여자들을 향해 눈을 힐끗 흘겼다.

    이제는 공포심 때문이라도 그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게 된 여자들이 잽싸게 둘에게 다가가 붙었다.

    “에이~그러지 말고~같이 먹어요~예?”

    “맞아요~”

    여자들은 은근슬쩍 가슴을 밀착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상에 스킨십을 싫어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때마침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김주희가 이를 발견한 것.

    “선배님...저 또 한 마리 잡는데 성공...”

    단번에 말꼬리를 흘린 그녀의 눈가가 씰룩였다.

    아직까지는 미소를 어찌어찌 간신히 유지하고 모습이지만, 입 꼬리가 살짝 비틀어져 있는 게 독이 잔뜩 오른 모습.

    만약 유세현과 이강호가 눈 앞에 있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을지 모른다.

    “호호...선배님? 이 분들은 여기 왜 있는 건가요?”

    “오호~주희씨! 밥이나 같이 한 끼 하자고 부른 거지!”

    설명을 덧붙인건 마도철이었다.

    유세현이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명 후회하실 텐데요...”

    뭔가 의미심장하면서도 서늘한 말.

    마도철은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웃어넘겼다.

    마비약과 수면제에 대한 것은 자신들밖에 모르지 않는가.

    “하하하. 뭐? 생각보다 식성이 좋나보지?”

    “예. 그러니 지금이라도...”

    “에헤이~라면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준비도 우리가 전부 하도록 하지. 너희 덕분에 여기까지 그나마 무사히 도착할 수 있던 것 같거든. 우리 애들도 많이 고마워 하고 있어~그지?”

    “예, 형님! 거기 형씨들 맛나게 끓여 줄 테니 가만히 구경하다가 먹기나 해! 사실 우리도 너희들 뒤를 쫓기만 한 게 좀 그랬거든. 이렇게 된 거 떠나기 전 보답을 하고 싶다.”

    말을 마친 마도철과 그 외 사람들은 돌을 다듬어 냄비를 만드는 등 여럿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유세현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단지 한숨을 길게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보글보글.

    김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특유의 향이 군침을 자아낸다.

    사람들의 눈은 온통 라면으로만 가 있었다.

    그 어떤 음식도 맛있게 만들어 준다는 야전 취사.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은 항상 별미지만 그중에서도 라면은 다른 음식들보다도 절대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조금 여행을 다녔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그 맛.

    하지만 잔뜩 상기되어 있는 김주희와 달리 유세현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맛있게 익은 라면가닥을 퍼 올린 마도철이 유세현을 향해 그릇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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