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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3화 (23/612)
  • 김주희(1)

    “에라이...그럼 안내나 한번 해보쇼!”

    “아,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머쓱해진 유세현이 꽁한 표정으로 이강호의 어깨를 툭 쳤다.

    이강호는 살짝 빈정대는 것으로 반격했다.

    이것이 김주희의 눈에는 뭔가 굉장히 유머스러워 보였다.

    마치 Tv프로에 나오는 꽁트 프로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던 학과팀 에서는 절대 볼 수 없던 분위기였다.

    김주희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히자 시선을 의식한 유세현의 입에서 헛기침이 흘러나왔다.

    “크흠. 뭘 그렇게 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배님. 그보다 출발할거 아닌가요?”

    “...그래.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깐. 정신 똑바로 차려라.”

    눈빛이 단번에 싹 바뀐 유세현이 등에 매고 있던 방패를 잡았다.

    이강호 또한 참마를 손에 쥐었다.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 둘의 얼굴에는 방금 전까지 존재했던 장난 끼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솨아아아!

    돌연 등 뒤에서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목을 서늘하게 만들기에는 너무도 충분한 세기.

    김주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앞으로 나아가는 둘의 뒤를 따랐다.

    * * *

    풀숲으로 들어간 그들은 곧장 1열로 진형을 짰다.

    선두는 이강호, 전투경험이 없는 김주희는 중단을, 유세현은 최후방을 경계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유세현의 팀을 마도철의 팀을 포함한 4개의 팀들이 뒤쫓았다.

    예상했던 대로 안전이 확인된 길을 찾아서 따라온 것이다.

    허나, 그들은 추후 후회할 가능성이 높았다.

    현재 이강호가 가고 있는 길을, 초보 생존자들이 상대하기에는 최악의 몬스터가 서식하는 장소였으니까.

    상당히 강한 물리저항력과 마법저항력을 지니고 있는 코뿔소형 몬스터.

    [크낙사스]

    사사삭!

    크낙사스의 초원까진 아직 멀었건만 미세한 소리가 포착됐다.

    이강호는 곧바로 손을 들어 둘을 향해 정지 신호를 보냈다.

    “선배님 뭐가 나오기라도...”

    “쉿.”

    김주희의 말을 대번에 자른 이강호는 오감을 집중시켰다.

    심법을 익히지 못한 만큼 아직 마력을 완벽히 제어할 수는 없었지만, 잔잔히 떨리고 있는 마력이 무엇인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작의 길에서도 죽어라 상대 했었던 고블린.

    “유세현.”

    “알고 있어.”

    유세현과 이강호는 방패를 치켜든 채 그들을 맞을 준비를 갖췄다.

    김주희 또한 장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솨아악!

    11시 방향. 풀숲을 뚫고 오는 고블린의 무리가 육안으로 보였다.

    김주희의 심장이 무척이나 매섭게 뛰었다.

    또한 장창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 하는 근접전투.

    해야 된다고, 해내야 된다고 마음속으로 하루 내내 몇 백 번이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또한 물리방어력이 오른 만큼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머리가 백지 상태로 변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너무도 무서웠다.

    캬아악!

    괴성과 함께 순식간에 튀어나온 고블린 5마리가 일제히 그들을 덮쳤다.

    “끄아아악”

    유세현의 머리 뒤로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단순하게 5마리씩 몰려다니던 시작의 길의 숲과 달리, 이 섬의 고블린들은 최소 15마리 이상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수를 나누어 동시 기습을 행한 것!

    1차 튜토리얼에서 강해지지 못했다면 자신 또한 저런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유세현은 이내 비명에 신경을 끄고 차분히 고블린의 움직임을 살폈다.

    맨 처음 상대할 당시와는 많이 달리 관절의 움직임까지 세세히 보였다.

    콰직. 서걱.

    궤적을 따라 움직이는 롱소드와 참마 의해 죽어나가는 고블린.

    남은 것은 이제 한 마리였다.

    유세현의 두 눈이 김주희를 흘긋 흘겼다.

    그녀는 눈은 꽉 감은 채 비명을 내뱉으며 창을 이리저리 찌르고 있었다.

    “꺄아아! 오지 마!”

    증가된 힘 때문에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고블린은 차마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마구잡이식으로 찌르는 창 또한 유효거리에서 벗어나 맞지 않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어찌나 한심한지 입에서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김주희 일단 눈을 떠라.”

    “꺄아아악!”

    “김주희!”

    패닉이 왔는지 유세현이 아무리 말해도 김주희는 들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짐이 되지 말라고 조건을 내민 것이었는데, 이래서는 활을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 도움이 안 된다.

    ‘이럴 가능성이 높아서 동행하기 싫었던건데...’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믿은 자신이 병신이다.

    ‘내가 잡아야 되나?’

    순간적으로 롱소드를 휘두르려 했던 유세현은 이내 팔을 다시 내렸다.

    만약 지금 처리해준다면 앞으로 김주희는 영원히 이런 식으로 전투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언젠간 분명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뭐, 나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발목, 아니 목숨 줄을 잡게 된다면 말이 많이 달라진다.

    유세현은 이강호를 슬쩍 봐라 봤다.

    이강호 또한 김주희의 상태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이런 애를 왜 굳이 데리고 다니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걱.

    결국, 고블린은 참다못한 유세현의 손에 마무리 되었다.

    “후우, 후우...”

    김주희는 전투가 끝났음에도 한동안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둘을 향해 재빨리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다, 다음에는 잘 할게요.”

    그 말이 유세현은 영 미덥지 못했다.

    그 후 그들은 밤이 되어 이동이 멈출 때까지 총 4번의 습격을 받았다.

    물론, 그 사이 김주희가 고블린을 직접 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 *

    달빛이 일렁이는 밤.

    유세현은 소변을 같이 보자는 핑계로 이강호를 슬그머니 불러내었다.

    “야, 이강호.”

    “왜?”

    “일단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라. 김주희는 도대체 왜 챙긴 거냐? 너 쟤한테 더 이상 감정 없다고 하지 않았냐?”

    유세현은 굉장히 단순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강호가 볼 것도 없다는 듯 즉답했다.

    “물론 관심 없어. 그저 확인해볼게 있어서 데리고 다니는 거다.”

    “확인?”

    “응. 그런데 이건 말로 설며하기가 좀 그렇네...아무튼 감정적 인건 절대 아니야.”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이 턱을 짚었다.“...그렇단 말이지...그런데 그 확인 할 것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해야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한 거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전자일 확률이 많이 높지만.”

    “...그러면 별로 상관없을 테니 묻겠는데, 언제까지 데리고 다닐 생각이냐? 계속은 아닐 거 아니냐.”

    유세현이 이런 말을 묻는 것은 김주희가 좋고 싫고를 떠나 감정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근접전투를 못하는 김주희와 계속 다니게 될 경우, 만약에 발생할 될 불상사.

    유세현은 그것이 걱정됐다.

    “아마 지금 이 상태로라면 튜토리얼이 끝난 후엔 볼일 없을 거야.”

    “튜토리얼? 지금 하고 있는 이 구간?”

    “아니, 3단계 마지막까지.”

    “......”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2차 튜토리얼 만해도 걸리는 시간이 무려 4주.

    이 안에도 무슨 상황이 터질지 모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르는 3차 튜토리얼까지 그녀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폭탄을 짊어진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그냥 활을 쓰게 해주는 게 어떻겠냐. 난 차라리 그편이 나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강한 적이 걔한테 근접하면? 어떻게 할 건데? 죽으면 안 되잖아?”

    “뭐, 그건 적당히 상황을 봐서...”

    “설마, 구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유세현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강호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너가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 어차피 지금 우리보다 강한 건 몇 없어. 그러니 괜찮아.”

    “있긴 있다는 거네.”

    확실히 지금까지 이강호가 보여준 무력은 독보적이었다.

    무술의 고수보다도 더 정교하면서 날렵해 보이는 창술.

    적의 위치파악 및 지형지물을 꿰뚫는 공감각.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 가지지 못했을 높은 등급의 스킬.

    확실히 이강호의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은 유세현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너 홉 고블린 상대할 때 잊었냐?”

    유세현은 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장수가 음독에 중독되어 허무하게 죽는 것과 같은 이치.

    유세현은 자신이 시험 당했던 것을 모르는 만큼 언성을 높였다.

    “너, 그때 죽을 뻔 했어. 짜샤! 그런데 누굴 챙기겠다고? 아 물론 너 머릿속에 들어온 이상한 지식 덕에, 네가 좀 잘 나게 바뀐 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너도 결국 사람이야. 죽으면 끝이라고. 이 멍청아. 알겠냐?”

    “......”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뭣 모르는 새내기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에게 하는 일침.

    이강호는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이것은 애초에 자신이 초래한 상황이었다.

    “뭐, 죽으면 끝이긴 하지.”

    “그러니깐...”

    “말했잖아, 중요한 거일 수도 있다고.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돌이킬 수 없어?”

    유세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기서 더 말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강호가 유세현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그래. 그러니 너가 좀 이해해줘라. 어차피 튜토리얼은 금방이야. 김주희는 내가 책임지고 알아서 할 테니깐.”

    “...후우...일단은 무조건 계속 같이 다녀야된다는 거네...”

    “그렇지.”

    유세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정말 활이라도 써야하게 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내키지 않았다.

    화살은 떨어지게 된다면 나무를 깎아 일일이 만들어야 했으며, 애초에 자재를 찾으러 다닐 여유도 없을 것이 분명하다.

    ‘역시 근접전투를 어떻게든 하게 만들어야 해.’

    답은 애초에 정해져 있는 상황.

    몸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코인.

    이 이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독기도 있고 눈치도 빨라서 해보려고 하는 것 같기는 한데...계속 패닉이 오니...’

    김주희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직접전투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별안간 유세현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어차피 안 되면 그만이다.’

    “야, 이강호. 내가 문득 계획 하나가 떠올랐거든? 너도 좀 협조해라.”

    “계획? 무슨 계획.”

    “난, 짐덩이와 다니는 건 싫거든. 너도 그건 그렇잖아?”

    “그야 뭐...”

    자이언트 골렘과의 전투 때 김주희가 꽁무니를 내빼고 도망쳤다면 신의 회중시계의 적용대상이던 머건 버렸을 것이다.

    지금 김주희가 그들과 같이 다닐 수 있는 것은 그때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혹시, 김주희를 바꿔보겠다는 거야? 지금 하는 행동으로 봐선 무리일 것 같은데.”

    “물론, 내가 억지로 바꿀 생각은 없어.”

    “그럼?”

    “스스로 깨우치게 해야지. 벼랑 끝으로 밀어 넣더라도.”

    유세현은 이강호를 향해 계획에 대해 털어 놓은 뒤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갔다.

    두터운 나무 기둥을 타고 위로 올라가자 김주희가 기다렸다는 듯 열매를 잽싸게 내밀었다.

    “선배님 배고프시죠. 이거 드세요.”

    말투가 평소보다 낮고 수그러든 것이 역시나 스스로도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우지 못한 전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와삭.

    유세현은 말없이 열매를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그의 기분을 살피던 김주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서, 선배님 정말 죄송합니다. 오, 오늘은 그게 너무 떨려서. 내일은 잘 해볼게요. 어떻게든...”

    “어, 그래. 잘해봐라.”

    유세현이 대충 손을 휘저었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기대감도 담겨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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