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의 섬(2)
그래서는 앞으로 살아남기 힘들 터인데.
유세현은 어차피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 사이 도우미가 상공에서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 대리자 여러분 2차 튜토리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곧바로 진행 설명을 시작 하겠습니다.”
마치 확성기를 통해 나오듯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생존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잡답을 멈추고 전부 고개를 들어 도우미를 바라봤다.
“여러분께서는 지금부터 2차 튜토리얼의 베이스 존이 외각 지역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여러분들은 이곳 중앙지점이 되는 곳까지 일정 시간 내에 도착하셔야 됩니다.”
도우미가 손을 한번 휘젓자 외딴 섬의 모습이 3D 홀로그램처럼 나타났다.
유세현은 유심히 섬의 모습을 살폈다.
인원이 많은 만큼 상당히 여러 가지 루트가 있는 듯 했다.
“어떻게든 도착만 하면 되는 겁니까?”
한 남성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안 시간 내에 도착만 하면 됩니다. 만약 먼저 도착하시게 된다면, 시간이 종료 될 때까지 휴식을 편히 취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도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실패로 치부하여 생명을 잃게 됩니다.”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터져 나온 도우미의 말에 생존자들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단순히 산에서 끼니를 때우며 버텨온 몇몇은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통과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니!”
“맞아! 그 판...뭐시기 시계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거 아니었냐!”
공포 때문에 자신의 말에 대한 모순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항상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는 도우미는 그들 또한 납득 수 있도록 친히 부과설명을 덧붙였다.
“판도라세계에는 무조건적으로 법칙을 지켜야 되는 곳도 존재합니다. 만약 법칙을 지키지 않게 되면 웬만한 강자도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그러니 이번 튜토리얼이 그것을 감안하여 제작된 만큼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도 안되냐’라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이 세계 자체가 그들에게는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럼 곧바로 전송을 시작하겠습니다. 팀을 이루고 계신 분들은 서로 손을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도우미의 손짓과 함께 하늘에 디지털화 시킨 숫자가 나타났다.
[672:00:00]
약 4주간 되는 시간.
섬의 모양이 생각보다 작았던 것 치고는 관대하기 그지없는 시간.
그만큼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뜻이리라.
“선배님! 손! 손! 주세요!”
행여나 같이 이동되지 않은 불상사가 생길라 김주희가 얼른 팔에 달라붙었다.
먼 치에서 이를 보고 있던 이용석이 부득이를 갈았다.
‘누가 똥차이고 누가 벤츠인지 모르는 년.’
이용석은 다짐했다.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려는 일반 생존자 들과 달리,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싸그리 코인을 쓸어 모아 이강호와 유세현보다 강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날이 오는 날엔.
‘나에게 붙지 않은 걸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마.’
파아앗!
강렬한 빛이 주위를 환하게 비췄다.
그리고 빛이 완벽히 사그라들 무렵, 남아있는 사람은 도우미밖에 없었다.
* * *
‘시작된 건가.’
떨어진 곳은 섬의 최고 하단부분 이었다.
뒤로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앞으로는 시작의 길의 비교도 안 될 만한 커다란 봉우리가 높이 솟아있었다.
“이제 시작인가?”
“그런가봅니다 형님.”
동시에 타 생존자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섬이 작은 만큼, 다른 팀과 스타트 지점이 겹친 것이 분명했다.
유세현은 혀를 찼다.
약했던 처음이라면 몰라도, 강해진 지금에 와서 일반 생존자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아니, 되려 같이 나아가게 된다면 몬스터를 분배해야 되는 만큼 습득하게 되는 코인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타 생존자들과 엮이지 않고 싶은 결정적인 이유.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유세현은 지난 밤 김주희를 통해서 펜션에 있었던 일들을 들었다.
정확히는 김주희가 그냥 멋대로 떠드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말 중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정보도 속해있었다.
사람도 죽으면 몬스터와 같이 스텟 코인을 남긴다는 것.
아니, 더 나아가 스킬까지 떨어트릴지도 몰랐다.
평범한 학과생이었던 이용석과 이한철조차 3일 만에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까지 코인을 습득하려 했다.
다른 생존자라고 그러지 않으라는 법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편하게 코인을 먹기 위해 살인을 행한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으니까.
‘그러니 꼬이기 전에 움직여야 된다.’
유세현은 주위 지형지물을 살피고 있는 이강호에 곧장 다가가 옆구리를 툭 쳤다.
“강호야. 날파리가 꼬이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을 거 같은데...뭘 그리 보고 있어? 찾는 거라도 있는 거야?”
“어? 아. 이곳이 어딘지 확인중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머릿속에 새겨진 정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또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인가.
비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태까지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던 만큼 유세현은 일단 차분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말 안타깝게도 남성 한명이 김주희에게 접근해왔다.
이용석을 꼬신 빌어먹을 외모가 한몫 톡톡히 작용한 게 분명했다.
유세현은 일단 김주희가 어떻게 대응하나 가만히 관전했다.
“오~누님 설마 혼자서 떨어 진거야?”
“아뇨, 일행 있어요.”
김주희가 다가온 남자의 말을 칼같이 잘랐다.
1차 때의 모습을 보며 유세현과 이강호가 몰려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새삼 느낀 탓이다.
이에 4인조 집단의 리더, 마도철이 유세현과 이강호를 흘깃 바라봤다.
자신보다 비루한 몸과 별 볼일 없는 기본무기.
스텟이 수치화 된 이상,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게 되었음에도 아직 현대의 상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그들의 눈에 둘은 무척이나 약해보였다.
그나마 조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등 뒤에 매여져있는 거대한 방패 정도.
피식 웃은 마도철이 말을 이었다.
“저 둘을 말하는 건가?”
“네.”
“호오~사람 수가 적은거 보니. 많이 고생 했겠네~”
마도철이 한 걸음 더 내딛어 김주희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그 말투에는 조롱이 잔뜩 담겨 있었다.
김주희는 기분이 나쁜 것을 애써 꿋꿋이 참았다.
지금 여기서 괜히 위한답시고 감정적으로 나가 분란을 일으켜 봐야 유세현과 이강호가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김주희는 되려 평소보다 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렇다면요?”
“하하, 그렇긴 뭘~그런데 그럼 누님도 고블린들을 봤으니깐 알겠지?”
“뭘, 말씀하시는 거죠?”
“걔들이 얼마나 강한지.”
“......”
생각보다도 확답은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처음에는 고블린들이 무척 강해보였다.
허나, 제단에서 상대했던 웹 스파이더와 비교하자면 고블린은 생각보다 약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임이 틀림없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한 마리정도는 어찌어찌 잡을 수 있을 듯한 느낌.
아니, 사실 스텟만으로 따지자면 5마리는 쉽게 상대가 가능해야 했지만, 직접 전투하지 않고 강해진 만큼 그녀는 자신 스스로의 상태를 잘 몰랐다.
마도철이 한발 더 슬그머니 다가왔다.
“도우미의 말을 들어보니 앞으로 그런 놈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데. 우린 그놈들을 10마리도 넘게 상대할 수 있지. 그래서 제안하는 건데. 어때? 우리 팀에 합류하는 게. 저들보다도 더 확실한 대우를 보장 하지.”
고개를 내민 마도철이 슬쩍 귀에다 속삭였다.
그러면서도 가녀린 어깨에 자연스레 손이 올라갔다.
제 딴에는 그만큼 확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김주희의 눈이 재빨리 마도철과 나머지 3인방의 얼굴을 훑었다.
비릿하게 올라간 입 꼬리와 살짝 처진 눈가.
이 자들은 일주일간 오지에서 처절하게 생존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아니, 되려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오랜 그녀의 본능이 요동쳤다. 이 남자는 이용석보다도 훨씬 질이 떨어진다고.
“아뇨, 죄송하지만 거절합니다.”
단칼에 거절한 김주희는 뒤로 물러나 유세현과 이강호의 옆에 잽싸게 붙었다.
마도철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호오~ 누님~지금부터는 정말 많이 위험할 텐데 진짜로 괜찮겠어?”
“예. 전 괜찮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
김주희는 말을 붙일 건덕지를 깔끔히 끊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유세현은 그녀의 행동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녀는 오랜 기간 여우처럼 살아온 만큼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너무도 정확히 캐치하고 있었다.
‘그마나 다행이군.’
잘 대응 해준 덕에 서로간의 불화는 딱히 없었다.
그 예로 마도철은 이곳에 신경을 끄고 다른 팀에 있는 여자들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른 팀들 몰래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
하지만 유세현은 이게 제일 힘들거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내심 느꼈다.
여타 생존자들의 시선.
막 도착했을 때는 다들 정신이 없던 상태라, 몰래 빠져나갈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그들은 전부 풀숲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부족한 만큼 분명, 어느 한 팀이 이동을 시작한다면 안전이 확보된 길을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떼어낼 방법은...’
제일 쉬운 방법은 우선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제한이 있는 만큼,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몇몇 팀은 분명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그럼 자신들은 그 이후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지.’
우선 몬스터들의 수준이 제단보다 강하지 않아야 된다.
만약 제단보다 강한 수준의 몬스터가 등장하게 된다면 처리하며 나아가는데 상당히 애를 먹어 제 시간 안에 도착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
허나, 확률만으로 보자면 이곳에서 제단보다 강한 몬스터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확신한 이유.
이곳은 자율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1차 튜토리얼과 달리 이곳에서는 무조건 적으로 전투가 이뤄지게 된다.
즉, 이 섬은 몬스터를 잡고 강해진 생존자들과 단순히 버틴 생존자들이 자연스레 뒤섞이게 되었다는 것인데, 단순히 버틴 생존자들이 처음부터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밸런스 상황으로 볼 때, 등장하는 몬스터는 그리 강하지 않을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게 되는 것이다.
‘일단은 말해보자.’
유세현은 자신이 고뇌하며 생각한 추리와 계획을 이강호에게 말했다.
이강호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린 가면서 들려야할 곳이 있기 때문에 그럴 시간 없어.”
“...설마, 여기도 통로 같은게 존재하는 거냐?”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르네.”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반면 유세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강해지는 건 좋은 거니깐 나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뒤에 있는 팀들이 이전 학과생 들처럼 따라 붙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중간에 따돌리면 되잖아?”
“......”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
유세현은 고심한 스스로가 새삼 바보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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