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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18화 (1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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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흐흑, 선배님. 행여나 선배님이 어떻게 되실까봐 정말 무서웠어요.”

    눈물을 글썽이는 김주희의 연기는 가히 일품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지 그 가상한 노력에 유세현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고, 김주희가 이런 행동을 할 때면 항상 주먹을 떨던 이용석은 애써 외면했다.

    힘의 차이는 그만큼 확실했으니까.

    “아무튼, 나는 괜찮아. 그러니 이제 좀 떨어져라.”

    “하지만 선배님 저는 아직 진정이 안돼서...”

    “난, 억지로 들러붙는 걸 제일 싫어해.”“......”

    결국 김주희는 이강호가 냉담하게 말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기색을 보였다.

    이에 유세현은 그제야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강호야 이제 이곳에서의 할일은 더 이상 없지?”

    “응. 나가자. 저 문이 출구...인거 같다.”

    주위 사람을 의식한 이강호가 말끝을 흐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사람들도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이전에 있었던 산도 위험했었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으니깐.

    이곳에서 반나절을 보낸 지금, 학과 학생들에게는 이제 처음에 만났던 고블린 정도는 단숨에 쳐 죽일 수 있을 만 한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드르륵 쿵!

    제단을 완벽히 클리어해서 그런지 과반수가 필요했던 이전과는 달리 문은 이강호의 손이 닿기 빠르게 열리며 환한 빛이 비쳐 들어왔다.

    “나가죠.”

    사람들은 이강호가 말하기 무섭게 너나할 것 없이 제단을 빠져나갔다.

    * * *

    도우미가 다시 나타나기 까지 이제 남은 기한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

    공터로 돌아온 학과 인원들은 제자리에 털썩 쓰러져 지친 몸을 달랬다.

    꾸르륵.

    그사이 몇몇의 인원들의 뱃속에서 공복을 알려오는 알람시계가 울렸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속에는 유세현도 포함되어있었다.

    “강호야. 이제 하루 동안은 뭐 할 거냐?”

    “아직 잡아야 될 몬스터가 있어.”

    “뭐?”

    3번째 통로에 위치해 있는 미노타우르스의 시체를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려던 유세현의 두 눈이 화들짝 커졌다.

    지금까지 상대로 최고 강해보였던 돌연변이 거미까지 잡은 마당에 딱히 잡을 몬스터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것.

    더군다나 통로와 제단은 이미 싹쓸이 하지 않았던가.

    “또? 이번에는 어떤 놈인데?”

    “아, 그거? 너도 아는 놈이야.”

    “...나도?”

    유세현은 생각을 더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날 밤 만났던 거대 몬스터를 깨우쳤다.

    “설마, 그 덩치 크고 질척질척한 놈?”

    “응. 그놈이 여기서의 마지막 상대다.”

    이강호는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을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출발할 기색.

    하지만.

    꾸르륵.

    무식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공복이 생각보다도 너무 심했다.

    “으음...그놈을 잡으러 간단 말이지...그런데 강호야.”

    “응?”

    “그놈이 어디 있는지 위치는 알아?”

    “대충은.”

    “...그럼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시간이 좀 있다면 뭐라도 간단히 먹고 잡으러 가면 안 되냐? 너무 활동해서 그런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야.”

    사실 배고픈 건 참을 수 있다.

    고3 수험생이 되어 공부할 때는 끼니를 거른 적도 많았으니깐.

    하지만 이것과 그것과는 별개다.

    안전한 지구와 달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되는 이곳에서 컨디션은 무척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음식 먹은 지가 꽤 됐네.”

    “응. 그래서 말인데 강호야. 그 미노타우르스 시체 식용으로 사용가능하냐?”

    “미노타우르스 시체를?”

    “응, 2족 보행을 하는 몬스터지마 생김새는 소처럼 생겼으니 먹을 수 있나 해서...”

    유세현의 말꼬리가 살짝 늘어졌다.

    여태까지는 이강호와 같이 지내며 물불 안 가리고 생존을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그도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된 새내기.

    한참 혈기왕성한 청년인 만큼 열매 대신 고기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강호는 곧바로 답했다.

    “먹을 수 있어.”

    “어떤 부위든?”

    “응.”

    “오~그래? 그런데 시간이...”

    “1~2시간 정도는 상관없어.”

    사실 이정도의 스펙이라면 내일 찾은 뒤 잡아도 된다.

    하지만 쇠뿔도 단번에 뺀다는 말이 있듯,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해 놓는 게 좋은 법.

    “그럼 내가 그나마 싱싱한 걸로 고기 좀 잘라온다! 이강호 넌 불이나 좀 붙이고 있어라!”

    유세현도 이강호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더 이상 불필요한 말도 않고 제 3통로로 뛰기 시작했다.

    이강호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유세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가 이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 * *

    치이익. 촤아아!

    돌로 만든 불판에 미노타우르스의 다리 살을 올려놓자 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와 함께 지글지글 익기 시작했다.

    “어? 뭐지?”

    “이, 이건 고기?”

    때문에 학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그들은 저마다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고기를 굽고 있는 유세현과 이강호를 유심히 쳐다봤다.

    “다 익었네. 먹자 강호야.”

    “그래.”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세현은 학과 사람들에게 무신경했다.

    처음에는 안쓰러워보여서 식량을 조금 나눠주었으나 그 결과로 이렇게 굶은 신세가 되었다.

    즉 두 번의 자비는 없었다.

    이런 정글, 아니 지옥에서 자신의 일은 어디까지나 자신 스스로 하는 것이다.

    “저 통로로 가면 신선한 고기가 많으니깐 직접 잘라서 드세요.”

    “뭐? 어디?”

    “저기 11시쪽에 보이는 통로요.”

    “아! 고맙다!”

    그래서 그는 대신 위치만 알려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헉!”

    과연 직접 잘라먹을 수 있냐는 것.

    학과생들이 들어간 통로에는 지면을 피로 새빨갛게 물들고 죽어있는 미노타우르스들이 즐비해있었다.

    “모, 몬스터를 먹는 거야?”

    “욱!”

    여학생 한명은 비위가 상했는지 헛구역질까지 했다.

    물론, 이 장면이 유세현에게 보일 리는 없었다.

    “카악! 퉷! 난 차라리 열매를 먹겠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스터라는 존재를 먹는 게 꺼림직 한지 빈손이 되어 공터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를 본 유세현은 혀를 찼다.

    지금 그가 구워서 먹고 있는 미노타우르스 고기는 웬만한 한우 고기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2족 보행을 하며 다닌 몬스터들답게 지방층과 단백질이 적절히 섞여있는 덕분.

    몬스터라는 선입견을 버렸다면, 그들은 오랜만에 맛있는 고기를 맛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게 이세계에서 여유롭게 먹는 마지막 고기가 될 수도 있었다.

    스르륵.

    그때 먹고 있던 불판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김주희가 또 다시 이강호에게 달라붙으려 다가온 것!

    친구가 이용당하는 것은 죽어도 보기 싫은 유세현이 더 이상 참지 않고 그녀를 향해 한마디 했다.

    “먹고 싶으면, 너가 직접 잘라먹어라.”

    “......”

    그녀의 얼굴은 단번에 울상이 되었다.

    또한 살짝 원망이 담긴 얼굴로 유세현을 쳐다봤다.

    마치 자신에게 왜 그러냐는 표정.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달라고 떼를 쓰는 일은 없었다.

    그저 분을 참기위해 입술을 한번 곱씹은 뒤 유세현을 향해 조심히 물을 뿐이다.

    “세현 선배님. 이 고기 진짜로 저기서 잘라온 건가요.”

    “그래. 맞아.”

    “...아, 그럼 혹시 고기 잘라오면 여기서 같이 먹는 건 괜찮죠?”

    “그건, 마음대로 해.”

    유세현은 흔쾌히 승낙했다.

    어차피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이용석 같은 남자에게 빌붙어온 여자가 그 괴상한 사체에서 고기를 떼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으니깐까.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가져올게요.”

    하지만 유세현의 생각과는 달리 김주희는 자그만 한 기합을 내뱉으며 통로로 사라졌다.

    * * *

    부들부들.

    죽어있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일본도의 날을 들이대고 있던 김주희의 손이 거칠게 떨렸다.

    일본도가 무겁거나 해서가 아니다.

    자이언트 터틀에서 나오는 힘 코인을 먹고 더 나아가 웹 스파이더에서 나오는 힘 코인과 민첩 코인도 운 좋게 얻은 그녀의 힘은 사실상 지구에서 약물을 복용하며 운동만하는 트레이너의 힘을 훨씬 웃돌았으니깐.

    하지만 그런 힘이 무색하게 정말 우습게도 여태까지 김주희가 직접 전투를 치룬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전투도 몬스터가 접근하기 전에 화살을 날려 깨작깨작 도운 것 뿐.

    한마디로 그녀는 직접 검을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에게 기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강해진 타입.

    몸을 대주는 척하며 지휘자인 이용석의 기분을 잘 맞춰준 덕분이다.

    ‘물론 대주진 않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안기고 나면 그 신비로움과 가치가 사라진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그녀의 어머니가 틈만 나면 해준 소리였다.

    김주희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난 걸 후회했다.

    친절하게 대해 준 것은 어디까지나 연애를 할 때 뿐.

    서로 사랑한다 생각하여 결혼하고 자신을 낳았지만 실태를 알고 난 어머니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뿐이었다.

    그래서 김주희의 어머니는 누누이 말했었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행복해진다.]

    [남자가 능력이 없어도 불행해진다.]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으면 일단 휘어잡고 간을 봐라.]

    그런 말 때문일까.

    김주희는 남자를 사랑의 상대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이용의 가치로만 바라봤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무척이나 잘 먹혔다.

    아름다운 어머니가 잘생긴 아버지의 외모만 보고 사랑에 빠져 결혼해서 그런지 자신의 외모가 타인에 비해 무척이나 우월한 덕이다.

    때문에 중, 고등학교 때는 돈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어 치장에 필요한 개인용품을 받아서 썼다.

    대학교에 들어온 최근에는 치근덕거리던 선배와 동기들에게 술과 밥을 얻어먹었다.

    그렇게 자신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 돈 많고 착한 좋은 남자를 찾아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목숨이 위협받는 이상한 세계에 갑작스럽게 떨어졌다.

    지금까지야 이용석에게 붙어 어찌어찌 목숨을 부지하며 버텼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자란 덕분일까 눈치가 빨라진 김주희의 눈에는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이용석이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은 자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몸 때문인 것을.

    펜션에서 일부러 부대껴 본 것도 이를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래, 지금까지는 잘 버텼어.’

    지금이야 학과생들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어 대놓고 건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용석은 얼마 안가 자신의 몸을 탐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자신은 몸을 내주어야 된다.

    스스로 몸을 지킬 자신이 없으니깐.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그 이후 이용석은 자신을 지켜줄 것인가.

    김주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목적을 이룬 후에는 아마 자신을 걸레 수준으로만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김주희는 더 이상 이용석에게 기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이미 자신이 이강호에게 치근 덕 대는 것을 이용석이 봐버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이강호 뿐이야!’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되려 아버지에게 맞지 않기 항상 생각을 행동해오던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머리 회전이 빨랐다.

    그렇기에 머리가 살기위해서는 이용석이 아닌 이강호에게 붙어야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강한 무력을 가진 만큼, 어설픈 학과생들과 달리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무척이나 뛰어나기 때문.

    또한 그는 펜션에서 이용석을 포함하여 자신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던 한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변한거지?’

    처음에는 순수해 보였던 이강호를 꼬시는 게 무척이나 쉬울 줄 알았다.

    손만 잡아줘도 헤벌쭉 콩깍지가 씌일 것 같아 보였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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