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단(3)
“선배님. 정말 대단하세요!”
무력의 차이가 확연히 들어난 뒤 김주희는 아예 대놓고 이강호에게 철썩 달라붙었다.
유세현은 그 여우같은 모습이 눈꼴 시리고 아니 꼬았지만, 이강호가 이전에 했던 말을 믿으며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반나절이 흐른 지금.
쓰러져있는 웹 스파이더의 시체 저편으로 굳게 닫혀져 있는 두개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제단의 끝에 마침내 다다른 것이다.
“이건?”
가까이 다가간 유세현이 문을 살폈다.
문에는 서로 다른 문양이 새겨져있었는데 왼쪽의 거미문양은 보스로 향하는 문. 오른쪽의 태양문양은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문이었다.
문제는 문이 둘 다 열리는 게 아니라 과반수에 의해 하나만 열리게 설계되어있다는 것.
그래서 본래 이강호는 학과 사람들과 이곳에 오기 싫었다.
행여나 방해를 받을 수 있었으니깐.
그렇게 된다면 무조건 적으로 이곳을 클리어 해야 하는 자신은 불필요한 살생을 해버려야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겠군.’
첫 전투이후 학과 학생들의 주도권은 이강호가 완전히 휘어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야욕이 있는 이용석과 이한철도 목숨이 아깝기는 한지 이곳에서 만큼은 시비를 걸지 않았다.
즉 현재로서 그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뜻.
“강호 선배님~어디로 가실 거예요?”
김주희가 이강호를 향해 물어왔다.
이강호는 그런 그녀의 말에 주위를 훑었다.
학과 일행 모두가 지시를 내려주 길 원하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강호는 당당히 왼쪽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갈 거야. 학과 인원 분들은 모두 문에 손을 올려 주세요.”
여태까지 잘해온 만큼 별 의심도 없이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지시에 따랐다.
끼이익!
트드득!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제일 선두에 있던 이강호가 슬그머니 내부를 살폈다.
돔형으로 생긴 커다란 공터.
벽과 바닥등 내부 이곳 저곳에 실타래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나 촘촘한 곳은 천장.
“이, 이건...”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웹 스파이더를 상대했었던 학과생들은 대충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천장에 분명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여태까지 상대해오던 일반 웹 스파이더는 아닐 것만 같았다.
꿀꺽.
문이 열리고 1분도 안 지났건만 사람들의 목에서 저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정 또한 살짝 사색이 된 게 결코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
그리고 이강호는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문을 잘못 고른 것 같군요.”
“......”
“이 앞에는 분명 여태까지 싸웠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몬스터가 있을 겁니다.”
이강호의 말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사람들의 표정이 꿋꿋이 변했다.
이강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유세현을 제외한 여러분은 여기서 제가 싸우는 걸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사실은 너가 손쉽게 처리하고 코인을 독차지 할 생각은...”
“과대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해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같이 싸우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코인도 나눠드리지요. 하지만 여기서 말하건 데 결단코 제가 도와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번 몬스터는 저도 벅찰 것 같으니까요.”
“......”
태클을 걸던 이용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이 곳에 들어와 한명도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강호 덕이다.
그는 이곳까지 오면서 학과 생들의 능력과 팀 워크가 좋아지자 늘어난 웹 스파이더도 적절히 분배해 사냥하게 했다.
즉 수준을 생각하여 애초부터 사냥을 못하게 하면했지, 다 잡은 것을 빼았는 행위를 하진 않은 것!
그러니 지금의 이용석은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코인 독점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도 자신은 참가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나 현대에서나 목숨은 1개였으니깐.
“...알았다. 우리는 전투에서 빠지마.”
“예. 이해해주셔서 다행이네요. 유세현.”
“응. 가자.”
둘은 나란히 방패를 치켜들고 내부로 조심스럽게 돌입했다.
솨아아!
갑작스레 무수히 많은 실타래가 순식간에 그들에게 쏟아졌다.
밖에서 상대했었던 웹 스파이더가 쏘는 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양.
경계를 잔뜩 하고 있었다곤 하나, 유세현이 민첩이 조금만 더 부족했다면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큭! 여러 마리인가?”
“아니! 한 마리다!”
이강호의 외침과 동시에 거구의 거미가 실을 타고 하늘에서 쭈욱 내려와 지면에 자리를 잡았다.
웹 스파이더의 2개가량 되는 거체와 징그럽게 움직이는 16개의 다리.
8개의 붉은 눈을 번뜩인 거미가 앞발을 비볐다.
“제기랄! 이건 더 이상 거미라고 할 수 도 없잖아!”
유세현은 황급히 롱소르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일격은 교차시킨 2개의 발에 간단히 가로막혔다.
웹 스파이더를 상대하면서 독이 닳아 탓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
“엑셀!”
그 사이 이강호가 거미의 뒤를 잡았다.
이강호는 엑셀의 가속을 이용한 그대로 엉덩이 구멍을 노렸다.
하지만.
촤아악!
참마를 찌르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구멍에서 발사된 실타래가 그를 덮쳤다.
“이강호!”
“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
실타래를 피해 지면을 두 바퀴 구른 이강호는 자세를 고쳐 잡기 무섭게 다시 달려들었다.
유세현 또한 방패와 롱소드로 열심히 공방을 나누며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문 밖에 있는 학과 생들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켜봤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돼.”
이게 사람들의 전투란 말인가.
만약 자신들이 들어갔다면 정말 30초도 안 걸려서 전멸 했을 것이다.
“미친.”
“허...”
이용석과 이한철 또한 입이 쫙 벌어졌다.
빠르게 움직이는 둘을 보며 그들은 자신의 계획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뭣도 모르고 뒤통수를 치려했다면, 자신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솨아악!
그사이 바람을 가른 이강호의 참마가 다시 한 번 엉덩이 구멍을 노렸다.
아까 전엔 본능적으로 피해버렸지만 이번에는 날아오는 실과 함께 꽤 뚫어버릴 생각!
하지만 거미도 이런 이강호의 생각을 읽었는지 전과는 살짝 다르게 몸을 움직여 회피했다.
이강호의 입술이 씰룩였다.
‘호오, 이 놈 봐라?’
6개의 눈의 제단.
3개의 통로의 코인을 5명이서 나눠먹었었던 에반은 동료 2명과 함께 제단을 클리어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강호는 8개의 제단도 그보다 살짝 더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다.
4개의 통로를 클리어하고 열게 된, 눈 8개의 제단은 이걸 열 수 있는 자에 준하는 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힘과 민첩으로만 본다면 유세현과 코인을 나눠먹은 자신보다 우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을 내뿜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공격스킬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장기전으로 간다.’
이강호는 빠르게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마비독 스킬을 발동시켰다.
곧 맹독이 스며들었던 참마의 끝부분이 마비독이 달라붙으며 녹색으로 더욱 짙어졌다.
홉 고블린처럼 단순히 확산시키거나 발사하지 하지 않고 손끝을 타고 흘러 창끝에 맺히도록 스킬을 응용한 것!
이는 판도라에서도 오래버텨온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정밀 컨트롤이었다.
“흐읍!”
노리는 부분도 몸통에서 다리로 달라졌다.
다리를 잃게 되면 빠르다는 이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니깐.
“유세현! 다리부터 노려라!”
“알고 있어!”
유세현 또한 다리를 노렸다.
문제는 자신의 속도보다 거미 쪽이 더 빨라 다리에 나있는 강철같은 갈퀴에 막혀버린다는 것.
어떻게든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프로든 디퓨전을 써야하나?’
이강호 또한 휩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만약 그가 영향을 받게 되어 느려진다면 안 쓰느니만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이강호보다 약한 자신이 마비독을 마시고 전선에서 이탈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어? 그러고 보니 마비독을 왜 안 쓰는 거지?’
유세현은 생각하기 무섭게 크게 외쳤다.
“이강호! 마비독은!”
“이미 쓰고 있다!”
키리릭!
그러고 보니 거미의 움직임이 미묘하게나마 느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비독 가루가 흩날리는 건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흡!”
유세현은 자신을 향해 내리치는 두개의 다리를 지면을 굴러 피함과 동시에 이강호를 살폈다.
그리고 창에서 흘러내려 이강호의 발밑을 적시고 있는 녹색 액체를 보는 순간.
유세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스킬을 단순히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응용하고 있다는 것을.
‘컨트롤이 가능했던 건가!’
숙련도는 단순히 위력의 증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유세현은 둔기로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친구인 이강호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
유세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로즌 디퓨전을 발동시켰다.
솨아아!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바닥을 타고 서슴없이 흘러갔다.
유세현은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이강호에게 닿지 않도록 범위를 줄일 수 있을까.
하지만 별다른 생각이라고는 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살던 현대사회에선 마력이란 것도, 스킬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깐.
그렇기에 유세현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처음 배울 때는 넘어지고 쓰러져 다친 적이 많았지만, 계속 타다 보니 나중에는 자신의 수족처럼 변해 묘기도 부릴 수 있게 된 자전거.
반드시 해내보이겠다는 집념의 결과였다.
‘더 이상 나아가지 마라!’
유세현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명령하듯 의식을 집중했다.
하지만 스킬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주위를 차갑게 만들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다면 이강호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만큼 해제를 해야 되는 상황.
‘좀 멈춰! 이 자식아!’
“유세현! 조금 있으면 네 스킬이 나한테도 영향을 미친다. 해제를...”
“알고 있어! 아주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유세현은 안간힘을 쓰며 더욱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한기가 거미의 거대한 몸뚱이를 넘어 이강호에게 닥치기 직전.
보랏빛으로 이루어진 입자가 자신의 주위를 일렁이고 있는 게 힐끔 스쳐 보였다.
유세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번더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아가지마!’
그러자 정말 우습게도 매섭게 나아가던 냉기가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췄다.
냉기와 이강호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 2m.
어찌 된 것인지 영문을 잘 몰랐지만 유세현은 일단 어떻게든 멈췄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스킬의 범위를 알고 있던 이강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베테랑인 그로서도 지금 상황은 결단코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깐.
‘이건 마력제어? 어떻게 심법도 익히지 않은 신출내기가...’
자신이 마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은 심법을 익히게 된 10년 차였다.
또한 천재라고 불리며 심법 없이 마력 컨트롤이 가능했었던 자들도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과거에는 튜토리얼도 넘지 못하고 죽어버렸던 자신의 친구가 어떻게 이런 조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유세현 너 이거 어떻게...”
“흐아압!”
이강호는 유세현에게 보다 상세하게 묻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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