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5화 (15/612)
  • 제단(2)

    “서로 돕는다? 물론 좋은 말이긴 합니다.”

    “그, 그러니깐!”

    “하지만 지금 과대님이 하는 말씀은 서로 돕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방적으로 저희에게 업혀가겠다는 겁니다.”

    험난한 세계에 도착하여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챙겨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어설프고 얕은 동료애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조금만 위험해보여도 도망을 칠 테니깐.

    이강호는 지금도, 이 이후로도 아무의미 없는 짐짝을 데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서는 무력을 선보여서라도 혼자 제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자신은 판도라 인이다.

    개인의 성장을 돕지는 않을지언정, 앞을 막진 않는다.

    또한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수도 있는 법.

    물론 차이가 있다면 고양이가 아닌 호랑이라는 점이지만, 이강호는 아예 딴생각 먹지 못하도록 차라리 약간의 여지를 주었다.

    “아니, 정 그러시다면 좋습니다. 같은 학과라는 정을 봐서 잡는 것도 도와 드리죠 하지만 그럴시 이전처럼 코인의 일부는 저희 겁니다.”

    “...뭐? 그러면 우리가 강해질 수가...”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들어가지 마시죠. 말을 들어보니 산으로 들어가자던 세현이의 의견을 무시하셨던데, 사실상 지금 이런 상황은 모두 과대님이 만드신 겁니다.”

    “......”

    정에 호소 해보려고 했었던 학과 사람들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이어서 김주희가 울상을 지어보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 합리적이고 빈틈이 없는 말.

    이용석은 입술을 곱씹었다.

    ‘젠장 저 개자식이!’

    본래라면 이한철과 자신은 둘 사이에 껴 싸우는 척 하다가 뒤로 은근슬쩍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작전을 시작도 하지 못한다.

    이용석은 재빨리 남은 인원을 살폈다.

    자신 포함 남자 9명 여자 5명으로 첫날 죽은 11명, 식량을 찾다가 죽은 1명과 빙계 마법에 맞아 죽은 2명을 빼고 총 14명이 살아남은 상태.

    이중에서도 여자 3명의 전투능력은 거의 없다 시피 하니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11명에 불과했다.

    ‘젠장 고작 해봐야 3마리정도 잡는 건가.’

    이용석은 일단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멍하니 밖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따라 들어갈 기회를 엿보는 게 훨씬 나으니깐.

    “좋아 알았다. 우리 둘은 들어간다. 나머지는 어떻게 할래?”

    이용석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척했다.

    어차피 다들 들어갈 걸 알기에 저번 일로 땅에 떨어졌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는 셈.

    “저희도 갈게요.”

    “저, 저두요. 오빠.”

    이강호에게 몸을 위탁하려던 대부분의 사람은 이구동성이 되어 과대 쪽으로 몰렸다.

    그중에서는 이전 프로즌 에로우를 먹었던 남학생도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 쪽에 붙어서라도 따라가겠다는 의지.

    확실히 옳은 선택이긴 했다.

    가만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들어가 강해지는 것이 두 번째 튜토리얼에서 보다 유용할 터이니.

    “결국 다 가겠다는 거죠?”

    “그래.”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이강호는 어두컴컴한 계단 아래를 살피며 지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아래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드르륵 쾅!

    처음에 느슨하게 열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빠른 속도로 문이 닫혔다.

    “이, 이게 무슨!”

    “퇴로가!”

    동시에 천장 불이 켜지며 빛이 환하게 주위를 밝혔다.

    이강호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흙으로 이루어져있던 깨끗한 공터와 달리 덕지덕지 붙어있는 점액질과 새하얀 실타래.

    실타래를 조심스레 한 올 만져본 이강호가 유세현을 향해 말했다.

    “이번 몬스터는 웹 스파이더인거 같다.”

    “웹 스파이더? 거미?”

    “그래. 여기 몬스터의 수준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미가 내뿜는 실에는 절대 맞지 마라. 단번에 구속된다.”

    “...알았어.”

    이강호의 말을 들은 유세현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태까지 대충 말해주던 이강호가 이런 식으로 상세하게 적에 대해 알려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낀 것!

    공포를 느낀 학과 인원들은 자연스레 뒤로 물러나고 이강호와 유세현을 선두로 하여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삭. 사사사삭.

    5분쯤 걸었을까.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던 유세현의 귀에 이질감이 섞인 소리가 포착되었다.

    무엇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

    하지만 바로 앞 시야에 포착되는 것은 딱히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유세현은 본능적으로 방패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 순간 이강호가 크게 외쳤다.

    “천장이다!”

    촤아악!

    동시에 유세현의 머리위로 무수한 실타래가 쏟아졌다.

    그는 황급히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치이익!

    다행이도 방패 앞에 발려져있던 맹독 덕에 실이 타오르며 구속되지 않았다.

    유세현은 황급히 독에 녹아버린 실의 끝을 두 눈으로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한 순간. 유세현은 볼 수 있었다.

    동굴 이곳저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실에 모습을 은폐하고 있던 새하얀 거미의 모습을.

    “저건!”

    “내려온다!”

    유세현과 이강호가 선두에 서준 덕에 타겟이 되지 않아 무사한 학과 학생들은 곧바로 전투 준비를 했다.

    거미의 수는 총 5마리!

    하지만 막상 적이 모습을 드러내자 쉽사리 돌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연히 천장에 달라붙어 있을 때는 몰랐지만 몸체의 크기가 총 2m정도로 너무도 흉측하고 크게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흔히 있는 곤충 공포증.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거미는 곤충이 아니었지만 징그러운 것은 변함이 없다.

    더군다나 새하얀 몸체의 색깔과 대비되는 붉은 눈은 공포감을 더욱 조성한다.

    만약 이것을 먼저 본 뒤 후에 켈투자드를 보았다면 켈투자드가 귀엽게 느껴졌을 정도.

    “내가 두 마리, 유세현 너도 두 마리! 나머지 조가 한 마리!”

    그때 앞으로 치고나간 이강호가 두 마리를 향해 참마를 휘두르며 외쳤다.

    “뭐?”

    이에 이용석은 당황한 어조를 내뱉었다.

    14명이 사람이 모여서 고작 한 마리의 몬스터를 이것은 폭리가 아닐 수 없는 것!

    “이강호 너무하지 않냐! 우리가 고작 한 마리...”

    하지만 그런 그의 외침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여태까지 대적해왔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웹 스파이더가 자신을 향해 돌격해온 것!

    “이런 미친!”

    이용석은 황급히 검을 내려찍어오는 앞다리를 막았다.

    하지만 곧 힘에 눌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씨바아알! 힘이 뭐 이리...다들 공격해!”

    간신히 버팀 이용석이 외쳤다.

    하지만 겁을 잔뜩 먹어 사색이 된 일행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이등병 마냥 멍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이한철!”

    “혀...형!”

    그 나마 잘 싸우는 쪽에 속하는 이한철조차 망설이는 상황.

    그 사이 거미는 두 번째 다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으윽! 씨바아알! 어떻게 좀 해봐!”

    이용석은 잔뜩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질린 채 외쳤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다리가 찌르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촤아악!

    남학생이 캐스팅하여 발사한 냉기화살이 웹 스파이더에게 제대로 들어가 꽂혔다.

    하지만 파괴력은 현저히 낮아 얼리는 것이 아닌 잠시 움직임을 막는 정도.

    이내 빠르게 움직인 둘째 다리가 이용석의 어깨를 제대로 관통했다.

    “끄아아악!”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이용석은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 사이 웹 스파이더의 눈이 다른 사람들을 훑었다.

    얼굴만 한 큼지막한 눈에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잔뜩 스며들어가 있었다.

    일개 잡 몬스터 주제에 무려 중간보스인의 힘을 가지고 있는 웹 스파이더.

    눈 8개의 제단은 뭐가 달라도 확연히 달랐다.

    “도, 도와줘라! 이강호! 코인은 다 먹어도 되니깐!”

    본능적으로 죽음을 예상한 이용석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강호는 어쩐 일인지 이미 두 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운 상황.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요?”

    하지만 이강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끄아아아악!”

    웹 스파이더의 다리가 이번에는 이용석의 복부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강호는 그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처럼.

    “제, 제발 빨리 빠알리이...”

    이용석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를 본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의 몸은 저 정도의 상처로 결코 죽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깐.

    ‘하지만 이대로 계속 놔누면 확실히 죽겠군.’

    이강호는 들어오기 전 했었던 약속 이행을 위해 곧바로 참마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가속스킬 엑셀을 사용해 순식간에 웹 스파이더에게 접근하여 약점인 실을 내뿜은 엉덩이 구멍을 푹 찔렀다.

    치이익.

    키에에엑!

    구멍에서 단번에 초록색 점액이 주륵 주륵 흘러나왔다.

    사람으로 치자면 뇌 또는 심장이 되는 중추 기관이 파괴된 셈!

    그 덕에 절명하여 땅에 털썩 쓰러진 웹 스파이더는 더 이상의 움직임 없이 코인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어디 잘 하고 있나.’

    이강호는 그 코인을 맛있게 먹은 뒤 유세현을 쳐다봤다.

    약점을 알고 속전속결 처리한 자신과 달리 두 마리를 한 번에 전담한 유세현은 침착하게 적을 살피고 있었다.

    ‘빠른 기동성은 홉 고블린 이상이군. 하지만 힘과 방어력은 미노타우르스 워리어와 칸 암모나이트 이하다. 충분히 해볼만 해. 아니 의외로 상대하기 쉽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은 곧바로 프로즈 디퓨전을 발동시켰다.

    현재로서 유지가능 시간은 10분.

    솨아아.

    몸에서 퍼져나가 냉기가 웹 스파이더의 몸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멀 등급의 스킬인 프로즌 에로우를 맞았을 때와 달리 웹스파이더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비슷한 숙련도지만 등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확연한 힘!

    키에엑!

    위기감을 느낀 두 마리의 웹 스파이더는 곧 무작위 공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세현은 이미 준비를 끝마친 상황.

    그는 침착하게 방패를 들어 앞다리 공격을 막았다.

    치이익!

    치명적인 맹독이 독이 닿자 되려 웹 스파이더의 다리가 타들어갔다.

    동시에 화들짝 놀란 웹 스파이더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된 찰나의 순간을 유세현은 놓치지 않았다.

    “흐압!”

    당찬 기합소리와 함께 롱소드가 오른쪽 거미의 눈을 사선으로 휩쓸고 지나갔다.

    총 8개에 달하는 눈 중 5개가 일격에 베어진 상황.

    시각에 장애가 생긴 웹 스파이더는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거리며 엉뚱한 곳을 다리로 찌르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다!’

    유세현은 공격을 방패로 막으며 눈을 파괴해나갔다.

    본래였으면 거미 다리에 나 있던 갈퀴 같은 털들 때문에 움직임이 구속되어 공격하기 힘들었겠지만 미리 발려져있던 독 덕에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죽어!”

    유세현은 눈을 잃고 갈 길을 못 찾는 웹 스파이더를 난자했다.

    암모나이트를 상대하며서 느꼈듯이 인간형과 달리 급소를 확인하기 어려운 몬스터는 모름지기 데미지를 중첩시키는 게 가장 빨리 잡는 왕도이기 때문이다.

    촤아악!

    그의 검이 움직일 때 마다 튀어나오는 기분 나쁜 초록색 점액질이 온몸을 더럽혔다.

    하지만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운 것에 대한 보상은 두둑했다.

    중간보스의 능력을 가지고 있던 몬스터답게 보상으로 순도 높은 민첩 코인 4개나 나온 것.

    “후우...꼴이 말이 아니네. 이강호 넌 또 벌써 처리했냐?”

    “뭐, 그렇지.”

    주위에 누워있는 시체를 확인한 이강호와 유세현은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었다.

    누가 보면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직장인 같은 느낌.

    학생들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

    누구는 질투. 누구는 경외.

    하지만 그런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학생들조차도 공통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이 앞에 이보다 더 센 몬스터가 있다면, 또한 만약 그들이 죽는다면 자신들은 결코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용석과 이한철도 지금은 그들의 무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협력한다. 뒤통수도 안 노린다. 하지만...’

    도우미는 분명 말했었다.

    일주일 뒤에 보자고.

    그렇다면 이 이후 다른 게 준비되어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강해진다면?

    ‘그때는 두고 보자.’

    이용석과 이한철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의 일치.

    이곳에서 만큼은 그를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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