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7화 (7/612)
  • 첫날밤(3)

    “알았어. 조심해서 갔다 와라.”

    “그래. 알았다.”

    이윽고 짧게 말을 마친 이강호가 숲 속으로 사라졌다.

    유세현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과 함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후우...”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

    지금의 이강호는 자신이 알던 이강호가 아닌 것인가.

    초조해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막연히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다 보니 잡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역시 자신도 여지없는 사람이다.

    ‘젠장!’

    결국 자꾸 나쁘게 드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폭포하부로 다가가 목을 축이려던 유세현은 물을 마시기 직전 하던 동작을 멈췄다.

    알지도 못하는 이 세계에 도착한지 이제 고작 몇 시간.

    계속 여기에 있었을 자이언트 터틀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몸이 이세계의 미생물에 면역력이 있을지가 없는지는 미지수이다.

    ‘분명 지금에 강호라면 알거 같기도 한데...’

    우연이라고 보기에 이강호는 너무 착착 일을 해내가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마냥.

    그렇기에 지금의 이강호라면 물을 마셔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도 있다.

    허나, 의지하며 기대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유세현은 자신이 할일을 생각했다.

    ‘불을 피워 끓여보자.’

    이곳에 있는 대부분이 낯설지만 결국 숨 쉴 수 공기가 존재하는 세계.

    그렇다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자신이 살던 세계의 법칙은 통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몬스터가 불에 반응을 하냐 안하냐를 아직 모른다는 것.

    ‘아직은 해가 저물지 않았다. 그렇다면 연기만 주의하면 된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은 빠르게 움직여 바짝마른 나뭇가지와 낙엽 등을 모았다.

    잘못된 재료가 섞이면 시커먼 연기가 날 수도 있는 탓!

    그리고는 인간을 초월한 강한 힘으로 나뭇가지를 돌려 불씨는 옮기는 것으로 모닥불을 만들었다.

    ‘됐다. 그럼 통이...’

    물을 담을 만 한 통이라고는 이강호가 잘 손질해놓은 등껍질밖에 없었다.

    ‘손질해놓은걸 사용하곤 싶지만...쓸데가 있으니 해놓은 거겠지.’

    잠시 두 개의 등껍질을 바라보던 유세현은 아무 미련 없이 눈을 뗀 뒤 쓰러져있는 자이언트 터틀의 시체를 롱소드를 이용해 파내기 시작했다.

    * * *

    가방을 메고 숲속으로 사라진 이강호가 원래에 있던 폭포로 돌아온 것은 약 2시간이 지날 때 쯤 이었다.

    유세현은 그런 그를 모닥불 잔재 앞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일단 너가 없는 동안 필요하다고 생각된 걸을 해봤는데 말이야.”

    “아...물 끓인 거야?”

    “응. 혹시 모르니깐. 마셔보니깐 아무이상 없더라고. 너도 마셔. 군생활 할 때 마셨던 냄새나는 쓰레기 물보다는 훨씬 났더라.”

    “......”

    이강호의 두 눈이 살짝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생각이 깊은 건 알고 있었지만 끓이는 용의주도함까지 보일 줄이야.

    더군다나 자신이 손질해놓은 등껍질은 사용하지도 않았다.

    돌보다 딱딱해 보이는 만큼 눈딱 감고 사용해도 괜찮았을 텐데.시간이 흘러 막 대하는 친한 친구들과는 달리 배려심 또한 깊다.

    “그나저나 음식 가져온다고 했었지? 어디 있냐? 나 지금 배고파서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아...이거 먹어라. 2개 다 먹으면 포만감이 찰 거다.”

    “...그래. 수고했다. 잘 먹을게.”

    유세현은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그가 내민 레몬같이 생긴 열매를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안전이 검증된 물을 제공해줄 테니 먹을 것과 교환하자는 상인같이 보였다.

    기브 엔 테이크.

    사실 먹을 것과 마실 것의 가치는 그 차이가 좀 컸지만 그나마 아무것도 안하고 받아 먹는것 보다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인가.’

    이강호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아 마무리 손질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현대에서는 느낄 수 없던 칠흑 같은 밤이 시작된다.

    * * *

    삐이!삐이!삐이!

    밤이 깊어지자 숲 안에서 풀벌레들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펜션에 남았던 학생들은 3인 1개조로 감시를 맡게 된 사람들을 제외하고 전부 취침에 들 준비를 했다.

    “후우욱...숲의 밤은 역시 쌀쌀하네요. 과대 형.”

    “그러게요 오빠. 너무 추워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경계에 집중해라. 낮에는 다행히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혹시 모른다.”

    “...에, 에이 오빠. 그런 농담 하지마세요.”

    과대 이용석의 일침에 옆에서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김주희와 이한철은 자신들도 모르게 표정이 꿋꿋이 굳었다.

    아직까지도 포악하게 달려드는 그 고블린의 얼굴이 내 뇌에 생생하게 박혀있었으니깐.

    ‘젠장! 유세현 그자식이 이강호만 꼬드겨 가지 않았으면!’

    그렇기에 아까 일을 다시 떠올린 이용석은 유세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시껄렁한 소리에 농담으로 받아쳤다고 최대 전력인 이강호를 쏙 빼가다니.

    ‘제기랄 일주일이 지나서 만나면 되면 다시는 찍소리도 못하게 패버린다.’

    이강호가 전투를 잘한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친구라고해도 그를 독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니, 적어도 한 학과의 과대표를 맞고 있는 이용석에게는 그랬다.

    과대표를 맡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동력과 판단력, 책임감이 필요했으니깐.

    그러니 학과의 일반 학생들은 적어도 지금은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이 생존으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후우...아직도 20분 남았나.”

    “으으...시간이 지날수록 더 추워지는 거 같아요.”

    평소 귀하게만 대접받던 김주희가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은근슬쩍 이용석 팔에 달라붙었다.

    이용석은 물컹하고 기분 좋은 감촉에 눈을 살며시 흘겼다.

    일부러 자석과도 같이 찰싹 달라붙은 그녀가 몸을 비비고 있었다.

    ‘호오 얘 봐라?’

    어제까지만 해도 학과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한 이용한에게 관심을 보이던 여자.

    어제의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무시하곤 했었다.

    또한 얼마나 영악한지 자신 말고도 관심을 보이던 이강호에게 받아먹을 호의는 다 받아먹고 그가 뻗어버리자 마자 눈길조차 주지 않지 않았던가.

    허나,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여우답게 앞으로의 실세를 아는군.’

    이강호가 남아있었더라면 그에게 붙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자가 사라진 초원에 이제 남은 것은 호랑이인 자신뿐.

    이용석은 그래도 혹시 몰라 은근슬쩍 손을 내려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잉, 선배님도~”

    이한철에게는 들키기 않기 위해 쥐꼬리 만 한 소리로 말한 대답이었지만 김주희가 의도하는 바는 단순하고 알기 쉬웠다.

    이용석은 곧바로 펜션의 문고리를 당겼다.

    “그렇게 많이 추워?”

    “예. 선배님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게...”

    “으음...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근무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들어가 있어라.”

    “어...어? 저, 정말요? 정말 괜찮아요?”

    김주희가 고개를 살짝 돌려 이한철을 흘겼다.

    그리고 그 찰나를 이용석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럼그럼. 한철아! 얘 몸이 안 좋은 거 같아서 먼저 들어 보내려는데 괜찮지?”

    “아...예. 뭐 몸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죠.”

    이한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하지만 그도 실상은 둘이 오간 행동과 대화를 어렴풋 알고 있었다.

    아무리 깜깜해서 잘 안 보인다지만 익숙해지면 실루엣정도는 보인다.또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런 텅 빈 공터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죽여 봤자 콧소리 섞인 애교가 안 들릴 리가 있겠는가.

    ‘씨발. 여자밖에 밝힐 줄 모르는 병신 같은 새끼가...’

    하지만 아무리 속으로 욕을 한들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은 생존에 제일 중요한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었으니깐.

    ‘젠장...10분만 참자’

    이한철은 입을 악 다문 뒤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한없이 어둠침침해야 될 숲에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또한 점점 빛이 커지는 것이 아무리 봐도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지만 김주희와 이용석에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미처 놓여버린 것!

    뒷목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낀 이한철은 황급히 좌측부을 감시하고 있던 이용석의 어깨를 흔들었다.

    “용석이형! 용석이형!”

    “형?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내가 과대님이라고 부르라고...”

    “아니, 형! 그것보다!”

    이한철은 황급히 불빛이 있던 방향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급해 보이는지 불 같이 화를 내려던 이용석 조차 굳은 얼굴로 그의 손가락이 주시하는 방향을 처다 봐야만 했다.

    “저, 저건 뭐냐?”

    “나도 몰라 형!”

    “그...이강호 애들이 돌아온 건가?”

    반쯤 당황한 이용석에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 늦은 밤에 군필자인 그들이 횟불을 들고 돌아온다?

    이곳이 만약 군대이고 작개지역이라고 하여 자신들이 점령한 진지였다면 있을 수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은 처음 발을 딛은 세계.

    그들이 무리해서 횟불까지 들고서 돌아 올 리가 없다.

    “씨발!”

    좋지 않은 느낌이든 이한철은 이용석의 지시가 없었음에도 재빨리 펜션으로 뛰어 들어가 불을 켰다.

    지이잉.

    “어, 어? 뭐야?”

    “아, 아 눈뽕! 뭔데?”

    한데 엉켜 자고 있던 곳곳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음색만 들어보자면 아직도 MT를 온 것 같은 편안함에 찌든 목소리.

    이한철은 그런 그들의 나태함을 묵살하듯 다급하게 외쳤다.

    “씨발! 전부일어나! 비상이다! 비상! 몬스터가 온거같다고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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