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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5화 (5/612)
  • 첫날밤(1)

    그러니 최대한의 유혈사태를 피할 방법은 그의 말대로 숲으로 전진하여 흙을 몸에 바르고 냄새를 숨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난 지금 부터 숲으로 혼자 들어갈 예정이라서 말이야.”

    “뭐? 혼자?”

    “응.”

    사람들을 설득 하는 데는 그만큼 오랜 시간 소비된다.

    적어도 반나절 이상.

    또한 현대인인 만큼 아무리 설득해도 그들이 펜션 같은 안락한 취침장소를 포기할지도 미지수이다.

    자신은 나중에 있을 중심부 공략을 위해 최대한의 코인과 주요 아이템을 모아둬야 하는 상황.

    그로서는 유세현의 말에 응해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그 설득하는 건 네가 알아서 해. 그럼 난 지금부터 바로 숲으로 들어간다. 잘 살아남아라.”

    이강호는 거침없이 숲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채 한발을 내딛기 전 그의 어깨를 유세현이 강하게 붙잡았다.

    “아...아니 잠깐만 혼자서 가겠다고?”

    “응.”

    “장난이지?”

    “장난 아니야.”

    이강호는 단언하게 말했다.

    이에 선배의 조롱에도 인상을 구기지 않았던 유세현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야. 너 진짜로 아직 술기운 덜 가셨냐? 아니면 미치기라도 한거냐? 그 고블린이라는 놈들이 뭉쳐 다니면 어쩌려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허...참.”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강호의 평온한 대답에 답답해진 유세현은 허탈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이강호는 그런 행동을 보이고 있는 유세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말이 어딜 봐서 열이 오를만한 부분이 있는가.

    고작 혼자 가겠다는 것 뿐인데.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유세현의 말은 이강호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야 이 새끼야! 그럼 나랑 같이 가자는 말은 왜 안 하는 건데?”

    “응?”

    “너 내말 여태까지 귓등으로 쳐들었냐? 갈거면 적어도 같이 가잔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새끼야! 너 지금 나 지금 일부러 엿 먹이는 거지? 엉?”

    “......”

    이강호는 서운한 유세현의 표정에 입을 꾹 닫았다.

    ‘왜 이러는 거지? 결손 된 기억이 더 있나?’

    동시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와 같이 다닌지 15년.

    그사이 즐겁게 놀기도 했고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저 ‘평범한’ 친구 사이었다.

    ‘아니, 쟤한테는 아닌가.’

    판도라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루며 바뀐 자의식 때문에 여태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던 이강호는 기억을 좀 더 더듬어 본 뒤에야 유세현의 반응을 머릿속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듬직한 동료.

    안 그래도 친했던 두 사람이지만 유세현은 특히나 ‘그일’ 이후로 자신을 더욱 믿고 있었다.

    ‘그일? 그 일 뭐였지?’

    그래 무슨 큰일이 있었다.

    그런데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 기억도 결손 된 기억에 포함되는 것.

    ‘뭐, 두고 가는 것에 이 정도로 분노할 정도면 따라오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유세현은 구르고 구른 자신이 보기에도 냉철한 사고 판단의 소유자.

    지금으로서 데리고 다니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이강호는 애써 억지 웃음을 지으며 굳게 닫았었던 입을 열었다.

    “당연히 엿 먹이려고 한 거였지! 짜샤!”

    “아...이 새끼가...진짜 기분 나쁘니깐 앞으로 이딴 개짓거리는 하지마라. 진짜로...알았냐?”

    “하하. 알았어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게.”

    “후우...뭐 알았다면야. 그럼 펜션으로 들어...”

    “아니. 떠난다는 건 진짜야.”

    펜션으로 들어가기 위해 먼저 뒤 돌아 걷던 유세현의 발걸음을 떡하니 멈췄다.

    유세현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이강호를 쳐다봤다.

    “진심이지?”

    “진심이야. 그보다 진짜로 따라 올거야? 너야말로 괜찮겠어?”

    “...괜찮고 자시고 너 아니었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MT야. 잠시만 기다려 나도 가방 챙겨 나올게.”

    말을 마친 유세현은 재빨리 펜션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방을 찾아 등 뒤에 멨다.

    사람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듣는 권위적인 과대와 나머지 학생들은 아직도 별 쓰잘데 없는 토론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태.

    그는 소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말없이 펜션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사라진 것을 알면 스스로 떠난 것이라는 걸 이용석도 알테니깐.

    “저...유세현 선배님 어디 다른데 가세요?”

    하지만 이제 막 떠나려고 신발 끈을 조여매고 있을 무렵 조심히 동향을 살피던 김주희가 유세현을 향해 물어왔다.

    유세현은 그런 그녀를 지긋이 응시했다.

    ‘강호가 좋아하던 애인데.’

    강호와 함께 떠난다고 말해주어야 하는가.

    아주잠깐 고민이 들었지만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김주희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면 강호 스스로 직접 제안했을 터이니.

    “의견이 안 맞아서 난 떠나려고.”

    “...예?”

    김주희의 얼굴이 두 눈이 단번에 도토리마냥 커졌다.

    그녀로서도 이 안락한 장소를 굳이 두고 왜 떠나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과대 말에 따라서 여기 있을 거지?”

    “...예. 그런데 왜 떠나시는 건데요?”

    “그건...과대에게 물어봐.”

    유세현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을 나서기 전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그리고 잘나신 과대님한테 전해줘. 지금 생각하고 있는 계획 다시 짜야 될 거라고.”

    “......”

    뜻을 알지 못하는 김주희는 그저 잠시동안 멀뚱멀뚱 유세현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이용석이 고함을 지르며 펜션 밖으로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젠장! 이강호 어디 있어! 어디 있어어!!”

    그는 펜션 주위를 황급히 서성이며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애타게 찾는 이강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진 후.

    “으아아아! 유세현 이 새끼가아아아!”

    숲 속은 안 그래도 민감해져있던 이용석의 분노섞인 고함소리로 메아리쳤다.

    * * *

    사륵 사르륵.

    아무도 그 발길이 닫지 않아 마구잡이로 뻗어있는 풀잎들과 여러 나뭇가지.

    유세현은 장애물이 되는 자연환경들을 빠르게 헤져 나가는 이강호를 유심히 살폈다.

    ‘역시 너무 익숙해.’

    아무리 이강호가 군대에서 나뭇가지들을 부수며 숲에 길을 만드는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지만 이것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기다란 참마를 사용하는데 있어 너무도 절도 있는 동작들.

    ‘후우. 아니 내가 너무 민감해진 건가.’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강호의 성격에 자시에게 말을 안 할리가 없었다.

    자신과 그와의 우정은 그 정도이니깐.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냐는 것.

    손목 시계를 살펴보니 숲에 들어온 지도 어느새 1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야. 이강호. 지금 너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어딘지 알고는 있는 거냐? 뭐 이리 바쁘게 움직...”

    “쉿!”

    유세현의 물음에 재빨리 검지를 입으로 갔다댄 이강호가 다른 한손을 귀에 갔다대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흡사 TV프로에나 나오는 생존전문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뭐가 들리나?’

    지금의 이강호가 허투루 뭘 할리가 없다고 판단한 유세현은 일단 그를 똑같이 따라 귀를 기울였다.

    콰과과과!

    지금은 미약하게 들리지만 강한 물줄기에 소리가 오른쪽 방향에서 들려왔다.

    둘은 굳이 서로 말을 섞지 않아도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

    미약하던 물줄기의 소리는 걸으면 걸을 수 록 커지더니 지금은 이내 귀를 자극할 만큼 이나 크게 울리고 있었다.

    “폭포인가?”

    “맞아. 다만 주인이 있지만.”

    “주인?”

    이강호의 말에 유세현이 나란히 옆에 다와 풀숲을 향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이, 이건?”

    30m위에서 떨어지는 세찬 폭포의 하부.

    물살이 굉장히 빠른 그곳에는 거북이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있었다.

    다만 평소 보던 것과 차이가 있다면 그 크기가 사람만 하다는 것과 등에 볼록한 가시가 솟아올라있다는 것이다.

    [자이언트 터틀]

    말 그대로 커다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격은 생긴 것 답게 온순하여 먼저공격하지 않지만 적의를 띄기 시작하면 몸을 두꺼운 갑옷안에 넣은 채 딱딱한 갑주로 회전해서 공격해오기에 초심자에게는 고블린보다도 귀찮게 되어버리는 상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딱딱한 갑주 말고는 별 볼일이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즉!

    “내가 먼저 사냥을 할테니 어떻게 하는지 잘보고 따라 해라.”

    이강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자이언트 터틀을 향해 달려들어 그 큰 참마를 힘껏 내리쳤다.

    콰득!

    밥 만 먹고 운동만 해 일반인보다 근육을 키운 보디빌더 선수들이 힘이 평균 [F Rank] 17%인 것을 감안하자면 5%의 코인을 흡수해 18%오른 이강호의 힘은 지구로 치면 천하장사 급.

    그 강력한 힘에 방심한 채 있던 자이언트 터틀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그 목을 내어주어야만 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유세현은 참 쉽게 말하는 이강호를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자신은 이강호와 달리 저렇게 일격에 죽일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잡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외형이 거북이인 만큼 지능이 낮아서 그런지 종족이 죽거나 위험해 처한다고 해서 도와주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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