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화 (2/612)

첫번째 튜토리얼(2)

“무, 무슨...누구? 납치범?”

“아...아니 그보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튜토리얼 진행을 맡은 도우미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넋이 나가있는 주위 사람들을 향해 무미건조한 표정 그대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무감정 없는 기계를 보는 것만 같았지만 이강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표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남자는 누가 뭐래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두둥실 떠있었으니깐.

“뭐 뭐야? 마술?”

“마, 말도 안돼. 어떻게 사람이!”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도우미는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진행을 계속해 나갔다.

“일단 여러분들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벗어나셨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앞으로 여러분은 통칭 <판도라>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저에게서 기본 훈련을 받게 됩니다. 저희는 이 과정을 튜토리얼이라고 지칭 합니다.”

“이, 이게 무슨 말이야? 튜토리얼? 그보다 당신 누구야 우리를 집으로 보내줘!”

“맞아 보내줘! 여긴 어디야!”

도우미의 말같지도 않는 소리를 듣다 못한 남학생이 한명이 고함을 지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되어 이구동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도우미가 미친놈이나 사기꾼으로 보이는 게 너무도 다분했으니깐.

그 덕에 심각한 표정으로 도우미의 말을 듣고 있는 건 정말 거의 없다시피 했다.

“또한 여러분들은 현재를 기점으로 육체한계 설정제약이 해제됩니다.”

“야 이 새끼야 무시 하지 마! 미치려면 곱게 미쳐라! 이 새끼야! 우리는 너가 속임수를 쓰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

결국 이어지는 설명에 폭발한 다혈질 남학생 한명이 도우미 발밑으로 달려들어 이리저리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남학생의 손에 잡히는 것이라고는 그 무엇도 없었다.

“이, 이게 무슨...마. 말도 안돼.”

“응?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비켜봐 내가!”

다른 사람들도 달려와 도우미의 발밑을 휘저었다.

하지만 결단코 그 어떤 것도 나오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을 제일 빨리 납득시키기 위한 방법.

그것은 현대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법칙을 몸소 보여주는 것.

이강호는 과거 제일 날뛰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도우미의 존재를 여기서 인정했다.

“그럼 지금부터 앞으로 펼쳐질 튜토리얼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시작합니다. 설명은 한번밖에 하지 않습니다.”

다행이도 과거 때와 똑같이 도우미가 최종설명을 하기 전에는 난리를 치던 이들 모두가 치묵하게 되었다.

아니 되려 날뛴 학생들이 심각함을 느끼고 더 귀를 세워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은 여기보이는 병장기중 맘에 드는 물건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선택시간은 5분을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레 이목을 한눈에 받게 된 도우미가 한 팔을 들어올렸다.

지이잉

도우미의 등장 때 처럼 터져나온 빛과 함께 무수히 많은 종류의 병장기들이 나열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창의 대명사라고 할 수있는 끝부분이 날카로운 장창과 창처럼 길지만 검처럼 혼합해서 사용할 수 있는 참마.

그 외에도 활을 시작하여 일본도. 롱소드. 낫. 바스타드소드. 대검. 철퇴까지.

주류무기와 비주류무기와 한데 걸려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에서밖에 볼 수 없는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이, 이거 정말 진검인가?”

방금 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남학생 동기. 이한철이 살짝 뺀 일본도의 검신의 끝에 손끝을 갔다대었다.

지익.

사람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얇은 겉가죽이 순식간에 갈라지며 피가 세워 나왔다.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이런 절삭력이라니.

깜짝 놀란 이한철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얼른 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세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병장기를 직접 고르게 만들다니 앞으로의 생길 일들이 굉장히 불안했다.

‘하지만 어차피 닥쳐올 일이라면.’

유세현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닥칠 것이 예정되어있는 것이라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신중히 택하는 것뿐이다.

그는 우선 이한철이 절삭력을 시험해봤던 일본도의 앞으로 가 섰다.

길이는 주방에 있는 식칼보다 나름 길어 보이지만 창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고 할 수 있다.

만약 호랑이 같은 동물과 전투하는 것이라 한다면 무기를 다뤄본 적이 없는 비전공자인 자신은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어이없게 이빨에 물려 죽게 될 것이다.

‘이건 패스.’

그렇다면 지금 선택해야 될 것은 그나마 멀리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장창을 선택해야 되나?’

장창은 길고 찌르기에 유용하다.

벨 수도 있지만 효율을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

즉 초심자인 그에게 창은 정말 찌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

‘이것도 패스’

유세현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을 예상하며 무기를 바라봤다.

“앞으로 1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더 고려하고 싶어도 이제 시간은 얼마남지 않은 상황.

결국 기다란 리치를 생각해 바스타드 소드 앞으로간 유세현은 기다란 검을 들어올렸다.

꾸우욱.

힘이 모자라서 그런지 양손으로 들었음에도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도 안 된다.’

“30초 남았습니다.”

마치 학교 시험을 보듯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선택해야 될 시간.

유세현의 눈이 두 가지의 무기로 향했다. 창과 검처럼 쓸 수 있는 참마와 바스타드 소드보다는 좀 더 작고 짧지만 그래도 검치고는 기다란 롱소드.

친구인 이강호는 이미 참마를 고른 것 처럼 보였다.

‘그래 너가 그 무기를 선택했다면...’

“10초 남았습니다.”

도우미의 카운트 다운을 들은 유세현은 망설임 없이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 * *

“무기 선택시간이 끝났습니다.”

“아 잠깐만 아 진짜 잠깐만!”

1초까지 센 도우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병장기를 없애버렸다.

그 덕에 선택장애 걸려 무기를 고르지 못한 이한철의 입에서는 투정이 나오고 있었다.

“아 진짜 일본도 고를게 응?”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한철이 도우미의 발을 향해 방방 뛰었지만 도우미가 그에게 병장기를 지급하는 일은 추호도 없으리라.

아마 그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강호는 이런 위급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멍청하게 무기조차 고르지 못한 이한철 보며 입맛을 다신 뒤 사람들이 선택한 무기를 둘러봤다.

총 30명의 인원 중 자신과 똑같은 참마를 선택한 자는 총 7명.

그리고 장창을 선택한 인원이 13명.

이들은 그나마 생존률이 높다.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합리적인 것을 도태로 무기를 선택한 것이니깐.

문제는 일본도를 선택한 3명과 활을 선택한 6명.

베기에 밖에 효용성이 없는 일본도를 선택한 것은 아마도 멋 때문이었을 것이고 활을 선택한 것은 몬스터가 나타나도 멀리서 쏘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궁선수라도 되지 않는 한 활을 선택한 것은 엄청난 실수다.

지금부터 대적할 몬스터들은 열화판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현재 떠올리고 있을 만 한 호랑이같은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었다.

‘뭐 막상 직접 대면하면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이강호는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마지막 남은 인원을 바라봤다.

그 누구도 잡지 않은 롱소드를 선택한 친구. 유세현.

이강호가 참마 다음으로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무기였다.

아니, 자신처럼 참마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차라리 롱소드가 났다.

베고 찌르는데에 유용하다지만 길이가 길어 컨트롤하기 힘든 반면에 롱소드는 일본도보다도 훨씬 길고 베기 찌르기도 유용하니깐.

거기다가 검등의 면적 자체가 넓어 돌려 막기에도 수월하다.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여러분들은 아까전 말했듯 인간이라는 종의 육체한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게 어떤 뜻인지 모르시는 분이 많으실거라 예상됩니다. 그래서 지극히 간단한 설명을 위해 지금부터 생성될 고블린 1마리를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한철의 투정 끝나기도 전 도우미가 뜬금포로 다시 손을 올려들었다.

지이잉

아까와 같은 빛은 없었다.

단지 게임데이터를 불러오듯 위에서부터 아래로 생전 처음 보는 무엇인가가 생성되었을 뿐이다.

쥐를 닮았지만 생각보다도 험악한 인상과 얼굴에 비등한 커다란 귀.

그에 비해 사람의 2/3정도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이 몬스터는 한손에는 야구방망이 비스무리하게 생긴 조악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인상은 더럽지만 수적 우세는 무렵 30배. 또한 마른 체형으로 봐선 굉장히 약해보였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마음을 졸이고 있던 여학생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1로 싸워도 왠지 밀리지 않은 기분이 든 탓이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허나, 그런 기분은 도우미가 팔을 내림과 동시에 무너졌다.

최고로 가까운 선두에서 멀뚱히 활을 들고 있던 여학생 김주희를 향해 고블린이 맹렬히 돌격한 것이다.

“꺄아아악!”

김주희의 입에서 단번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10m라는 거리를 단번에 좁힌 고블린이 들고 있던 방망이가 무색하게 그 큰 주둥이 김주희의 목을 향해 들이 댔다.

고작 2초.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무슨!”

질주를 확인한 유세현의 두 눈도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4족 보행을 하는 동물이 아니다.

사람과도 같은 2족 보행을 하는 생명체.

그런데 저 작은 체구에서 저런 힘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보다도 진심으로 놀라운 것은 다른 것에 있었다.

서걱.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김주희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이던 고블린의 목이 단번에 땅을 뒹굴었다.

목을 잃고 반사적으로 꿈틀거리는 육체 3보 뒤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친우 이강호.

그 다루기 힘들어 보이는 참마의 날 끝 부위로 정확히 목을 쳐 날려버린 것이다.

‘강호가 어떻게 저런 걸?’

이강호의 옆집에 이사 온 15년 전 이래로 웬만한 행동을 같이해온 유세현은 이강호 그 자신보다도 더 그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가 여태까지 운동이랍시고 해온 것이라고는 축구와 태권도뿐.

저런 것을 익힌 적은 없었다.

솨아아!

잘린 단면으로 부터 터져 나온 푸른피가 김주희에게 쏟아졌다.

“으아..으아아...아아아.”

질척하고 뜨거운 액체로 젖어가는 얼굴과 몸.

김주희는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겠는지 기절하여 그대로 지면으로 힘없이 나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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