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화 (1/612)
  • 첫번째 튜토리얼(1)

    빛 한줌 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둠침침한 공간.

    공허한 눈빛으로 공간을 유영하던 유세현은 무엇인가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눈을 번쩍 떴다.

    “으으으...머리야...”

    동시에 바늘로 뇌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두통이 그를 덮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머리가 아프단 말인가.

    유세현은 본능적으로 몸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이물질을 손으로 밀쳐내고 눈을 비볐다. 그러자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주위 풍경이 그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술병과 서로 얽히고설켜 아무데나 난잡하게 누워있는 사람들.

    그 모습을 본 유세현은 그제야 어제일이 떠올랐다.

    ‘아 맞아...MT 따라왔었지.’

    평소 사람들과 섞이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고, 군필자인 만큼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코 오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여후배와 친해지는데 도와달라는 친구 놈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따라오게 된 대학 멤버쉽 트레이닝.

    술에 떡이 되어 여태까지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MT에 가자고 조르던 친구 이강호였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분명 최후의 최후까지 좋아하는 여후배의 흑기사를 차처 하다가 뻗은 것이리라.

    정작 여후배는 잘생기기로 유명한 이용한 선배에 눈이 팔려 이강호를 신경 쓰지도 않고 있는 눈치였었는데.

    ‘강호야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우정이 돈독한들 누가 남자의 술을 흑기사 자처하여 대신 마셔준단 말인가. 그런데 그것을 유세현은 친우인 이강호를 위해 해주었다.

    그가 자신에게 해준 것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니깐.

    그래서 희망이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어찌어찌 여후배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물론 저 구석에서 이용한 팔을 베고 자고 있는 여후배 김주희의 꼬라지를 보아하니 실패한 것에 틀림이 없었지만.

    ‘으으...토할 것 같아.’

    그나저나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리고 나니 위장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강호를 위로해주는 것은 그가 깨어난 뒤에도 늦지 않을 것이다.

    ‘윽! 못 참겠다!’

    유세현은 자신의 손에 밀쳐져 불쌍하게 쭈그려 있는 이강호를 뒤로한 채 화장실로 뛰어가 거칠게 문을 젖혔다.

    쾅!

    ‘어?’

    그러나 문이 열린 저편에서 그를 반겨주는 것은 세면대도 아니면 뱃속의 안식을 선사할 양변기도 아니었다.

    지면을 이루고 있는 질척질척한 진흙과 빽빽한 나무로 우거져있는 울창한 숲.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유세현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있던 공간은 펜션 4층 이었으니깐.

    “이, 이게 무슨? 진짜 인가? 아니 그럴 리가...”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어나보니 화장실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졌다.

    마치 만화에나 나올듯한 초능력으로 자신들이 자고 있던 공간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유세현은 그 누구보다도 냉정한 사고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유세현은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이 진짜 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무게중심을 유지한 채 오른발만 앞으로 내밀어 조심스럽게 땅을 딛었다.

    살짝 댄 발바닥으로 진흙의 차가움과 특유의 끈적한 촉감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 말은 즉 슨.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진짜다.’

    생각을 마친 유세현은 곧바로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화장실문을 열었을 때와도 똑같이 진흙으로 이루어진 땅이 보였다.

    ‘역시.’

    이미 진짜라는 것을 알아낸 순간부터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과 같은 쇼크는 없었다.

    또한 상황이 심각하다고 인지해서인지 들끓던 위장도 어느정도 가라앉은 상태.

    유세현은 눈앞으로 보이는 것을 토대로 자기 나름 상황을 추측했다.

    우선 제일 가능성이 큰 것은 납치.

    ‘하지만 굳이 왜?’

    이해가 가지 않을 뿐더러 합리적이지도 않다.

    차라리 몸값이 비싼 부자집 자식 한명을 납치하지 이런 대량의 납치는 테러가 아닌 바에야 쓸 일이 별로 없으니깐.

    더군다나 해외 히말라야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산은 그리 높지 않으니깐.

    ‘아무튼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무슨 일 때문에 숲으로 이런 곳으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제 3자인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심각함하다는 것을 인지한 유세현은 곧바로 쓰러져있는 학생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 * *

    “일어나! 이강호! 야! 좀 일어나봐 짜샤! 아오! 나 잠들고 도대체 몇 병을 더 쳐 마셨길래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냐!”

    귓가에 멤도는 걸쭉한 욕. 그리고 자그맣게나마 들려오는 사람들의 불안 섞인 목소리.

    이강호는 술에 취에 언제 뻗었었냐는 듯 상반신을 번쩍 일으켰다.

    “어? 정신 차렸냐? 머리는 좀 어때?”

    이강호의 두 눈에 한껏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세현의 얼굴이 보였다.

    튜토리얼에서 죽은 뒤 20년간 보지 못했던 15년 지기 친구.

    이강호는 그제야 확신했다.

    단 한번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Ex 등급]의 아이템인 신의 회종시계가 제대로 발동되어 제대로 과거로 돌아왔음을.

    “다짜고짜 하는 말이라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상황이 꽤 심각해. 지금 우린 산으로 둘러싸인 숲 한가운데에 있어. 핸드폰도 권외라 터지지도 않고. 내 생각엔 누군가에게 납치 된 거 같긴 한데 이게 또...”

    이강호는 뭐라 실컷 떠들고 있는 유세현을 무시하고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정확히는 자신의 기억.

    회귀에 대한 부작용으로 몇몇 중요한 기억들이 손실되어 천천히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사전 경고로 안 덕분이다.

    그렇기에 이강호는 아직 튜토리얼이 시작되지 않은 지금 어떤 기억이 날아갔냐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튜토리얼의 진행순서와 통과방법. 얻어야할 히든피스들의 위치. 그리고 만났을 시 미리 쳐죽여 놓아야 될 적까지.

    꽤나 꼼꼼히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초반부인 현재로서는 딱히 필요할만한 중요한 것을 잊어 먹은 것은 없는 듯했다.

    ‘후우...이 정도면 예상했던 손실률보다도 훨씬 괜찮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돌아 올테니.’

    이강호는 안심하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남아있던 신발을 신고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을 포함해서 평생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던, 하지만 무척이나 익숙한 숲이 그의 눈에 비쳤다.

    “...그래서 말인데. 막연히 구조를 기다리기 보다는 이 숲을 다 같이 빠져나가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넌 어떻게 생각 하냐?”

    “......”

    “이강호. 이강호? 내말 듣고 있는 거냐? 아니면 아직 술이 덜 깨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 저기 여보세요? 내말 들리세요?”

    한편 유세현은 자신의 말에 이강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자신의 눈앞에서 손을 휘휘 내젓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판도라 대륙에서 20년을 떠돌았던 이강호로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

    그의 입에서 실소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비록 15년 지기 친구였었지만 회귀한 지금의 자신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깐.

    더군다나 자신의 기억으로는 여기 있는 모두는 튜토리얼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즉 여기 있는 이들은 판도라 대륙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이들뿐이라는 것.

    이강호는 튜토리얼이 제대로 시작되면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될 나약한 존재들과 같이 다닐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보호해가며 나아가기에는 자신의 어깨에는 이미 너무도 많은 무거운 짐들이 들려있었으니깐.

    “어, 듣고 있었어.”

    이강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비추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냐? 그럼 니 생각은 어때? 나도 일단은 과대 형 쪽 의견에 동참하는데.”

    “납치범들이 오기 전에 자력으로 이 숲을 빠져나가보자는 거?”

    “응.”

    “흠...그게 과연 가능할까?”

    “뭐?”

    마치 안될 것을 이미 가정하에 두고 있는 이강호의 아리송한 말에 유세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활기차고 혈기왕성한 그가 제일 앞서서 길을 뚫어 보겠다고 선봉을 맞겠다고 나섰으면 나섰지 결코 이런 나약한 말을 할 위인은 아니란 것을 15년간의 세월로 너무도 잘 알게 된 탓이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분위기도 살짝 변한 것 같았다.

    평소의 행실이 항상 방정맞았었다면 지금은 뭔가 좀 의젓해진 듯한 느낌.

    “그럼 너는 위험할거 같아서 반대한다는 거지?”

    “아니 뭐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야. 짜샤 확실히 해. 지금 좀 심각한 상황이니깐.”

    “...그럼 나도 그냥 찬성.”

    “짜식.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 그럼 과대 형 한테 보고한다?”

    “그래라.”

    ‘역시 기분 탓이었나?’

    유세현이 여태까지 이강호에게서 드는 이상한 기분을 애써 털어내며 과대에게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파바밧!

    갑작스레 터져나온 환한 빛 함께 사람의 모습을 띈 한 남자가 갑작스레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현이 미처 한발자국도 채 움직이지 못한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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