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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화 : 천마전 (5) (208/210)


208화 : 천마전 (5)
2022.10.29.


“헉! 헉!”

진씨세가의 가주는 연신 헉헉거리며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올랐다.

평범한 학사에 불과한 그에게 이만한 계단을 오르는 건 상당한 고역이다.

“헉! 헉! 헉!”

또한 평범한 학사인 탓에 자신은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참가할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지하에 있던 의자가 움직이고 곳곳에 벽이 솟구쳐 아들과 헤어진 뒤, 소천마나 현석이 진천우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때, 그 혼자 숨겨진 통로를 열고 위로 올라간 이유였다.

“헉!”

그렇게 홀로 지하에서 빠져나온 진 가주는 곧장 통로에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고, 그리고 올랐다.

“헉! 헉!”

입에서 단내가 나다 못해 피비린내가 났다.

그럼에도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 이건 오직 그만이 할 수 있었다.

평범한 학자인 동시에 진씨세가의 가주인 자신만이.

“헉! 헉! 헉! 도착……했다!”

쿵!

한참동안 계단을 오른 진 가주가 느닷없이 벽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정확히 그의 주먹이 닿은 벽면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벽이 완전히 뒤로 밀리자, 진 가주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그렇게 크지도 좁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는데, 공간 한가운데 여러 색색의 돌과 문양으로 이뤄진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건 진법도였다.

그것도 평범한 진법이 아닌, 이곳 경계를 한데 아우르는 대진법을 나타낸 아주 특수한 진법도.

경계는 특히 진법과 기관의 수준이 높아 아주 간단한 거로도 경계 바깥의 대진법과 맞먹었다.

그런데 경계에서도 대진법으로 분류되는 그걸 겨우 이만한 공간 안에 펼쳐낼 수 있는 진법도라니.

이게 얼마나 고도의 물건인지는 감히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게 숨겨져 있는 공간을 아무렇지 않게 찾은 진 가주의 정체 또한!

그는 진법도를 발견하자마자, 급히 손을 내밀었다.

“간신히 찾았다. 이걸 당장…….”

휙!

그러나 그 순간, 진 가주가 뻗은 손 바로 앞에 시리도록 차가운 검이 나타났다.

진 가주는 백색 검이 내뿜는 서늘한 예기에 깜짝 놀랐는지 그대로 몸이 굳었다.

“누구냐?”

검의 주인이 물었다.

목소리는 낮지만 젊다.

그러면서 동시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상대 목에 댄 검의 각도를 교묘하게 쥐어 얼굴을 가린 채, 아주 노련한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는 절대 쉽게 틈을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거나 아니면 아예 목숨 걸고 단호히 부정해야 한다.

“이건!”

헌데 진 가주는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제삼의 선택지를 택했다.

휙!

“뭣?!”

난데없이 몸을 앞으로 내미는 상대를 보고 도리어 검의 주인이 화들짝 놀랐다.

이때, 자신이 급히 검을 치우지 않았다면, 이자는 목에 아주 큰 검상을 입었을 것이다.

‘뭐지? 내가 검을 치울 거라고 예상한 건가?’

그게 아니면, 자신이 젊다고 무시한 건가?

또 그게 아니면…… 보기와 달리 대단한 고수?

“자네!”

휙!

그런데 진 가주는 단순히 몸을 앞으로 내미는 데 끝내지 않고, 아예 눈앞의 상대를 끌어안듯 달려들었다.

‘이자가!’

마침내 검의 주인이 크게 화를 냈다.

허나 그는 결코 섣불리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까 염려했듯, 이자가 대단한 고수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 이 이해되지 않는 행위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이거나 허허실실(虛虛實實)일수도?

“자네가 어떻게 신검을 지니고 있는 건가!!”

“?!”

허허실실이다!

난데없이 허를 찔렀다.

“어떻게!”

한눈에 자신의 검이 신검인 걸 알아챘지?!

신검의 주인, 무인이 더욱 경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맹의 대표로 경계로 넘어간 뒤, 동행한 책사들의 활약으로 경계 너머에서 괴물을 키우던 장소를 찾아냈다.

거기서 조금 더 깊게 조사하던 중, 우연히 신검을 단서 삼아 이 장소로 넘어오는 통로를 찾아냈다.

그런데 간단한 조사 후 바로 일행에게 돌아와 이곳에 대해 알리려던 찰나, 갑자기 한쪽 벽이 밀리고 낯선 상대가 튀어나왔다.

그자는 지금껏 만남 경계 너머의 선인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겼으니, 무진이 경계하는 건 당연했다.

“자네, 아주 잘됐군.”

휙!

그자가 제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움직임.

이런 것쯤 아주 간단히 피할 수 있다.

아니, 조금만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아예 양 손목을 잘라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것은, 저자가 제 쪽으로 달려오면서 떠든 한마디 때문이었다.

“신검을 지니고 있다는 건, 검선의 제자라는 뜻이겠군.”

이자가 어떻게 검선에 대해 알지?

허나 그런 말은 도리어 무진의 의심을 부추길 뿐, 결코 검이 멈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비록 반쪽짜리, 아니 반의 반도 안 되는 가짜 신검이지만, 그래도 신검은 신검이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떻게 제가 지닌 신검에 대해서도 알지?

이때도 그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다음 한마디.

“제발 그걸로 내 아들, 천우를 구해주게!!”

“천우?”

멈칫!

드디어 무진의 검이 멈췄다.

아니, 그뿐 아니라.

“진천우? 그를 말하는 겁니까!”

덥석!

이제 되레 무진이 진 가주를, 차마 멱살은 잡지 못해 대신 소매를 거칠게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어딥니까! 당장 안내하십시오!”

* * *

‘이딴 걸로 날 막겠다고?’

가사롭다.

천마가 천마신공의 운기를 빨리했다.

우우웅!

그것만으로 기공의 힘이 배로 강해졌다.

이대로 단숨에 자신을 옭아맨 무형의 기운을 모조리 깨트리려 했는데.

……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

예상 밖의 상황에 천마가 짧게 숨을 뱉었다.

‘재밌군.’

그래, 이 정도 반항은 해야지.

안 그럼 너무 시시하지 않겠는가.

‘어디!’

천마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우우우웅!!

그 순간, 천마신공이 아까보다 훨씬 격렬하게 휘몰아쳤다.

휘몰아친 기운은 그대로 폭발하듯 부풀어 올랐다.

그럼에도 주위를 둘러싼 기운은 꿈쩍하지 않았다.

‘정말 제법!’

어떻게 이만한 힘을 모은 거지?

이게 경계의 주인이 다루는 진정한 힘인가?

그런데 그걸 이제 막 주인의 자격을 얻은 진천우가?

그야말로 놀람의 연속.

허나 그렇다고 순순히 당해줄 천마가 아니었다.

우우웅!!!!

그는 기운을 모으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천마신공은 점점 더 빨리,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쩍!

천마를 찍어누르는 무형의 기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워낙 강대한 기운이라 겨우 가는 실금이 난 데 불과했지만, 천마는 상대가 한번 약점을 보이면 거기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진짜 무인이다.

그는 자신의 천마신공을 금이 난 쪽으로 찌르고 찌르고 찔렀다.

찌직! 찌지직!

그렇게 실금에 불과했던 것이 점점 더 길어지고 커졌다.

그러다 결국.

쩌저적!!

하늘부터 땅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금이 나고 말았다.

당연히 천마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천마의 목적은 무형의 기운을 뚫는 게 아니라, 이곳 경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

쩌저저적! 쾅!!

잠시 뒤, 결국 천마신공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 무형의 막이 커다란 균열과 함께 깨지고 말았다.

천마는 그대로 지금껏 억압받은 기운을 폭발하듯 불러일으켰는데…….

스륵!

“?!”

순간, 그의 옆으로 검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쳤다.

그것은 작고 희미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눈길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천마는 마치 홀린 듯 천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스스!

검은 나비의 날갯짓.

그리고 그 날갯짓으로 퍼지는 색색깔의 아름다운 가루들.

그것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지독한 독이었다.

“쯧!”

천마가 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조차 손짓으로 독을 날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지독했으니까.

하지만 잠시 뒤, 손짓한 손마저 독에 중독된 듯 팔 전체가 붉고 푸르게 물들었다.

“성가시게!”

그건 바꿔 말하면, 천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허나 이 이상 칭찬할 건 없었다.

아무리 지독한 독도 천마의 생명을 끊을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지금 몸은 비루하기 그지없으나, 한때 불사신이었던 몸인 만큼 튼튼하기로는 정평이 났다.

천마는 제 몸 주위에도 천마신공을 둘러 독을 완전히 차단했다.

그걸로 끝날 줄 알았건만.

파스스! 파스스!

독접은 쉬지 않고 사방에 독을 뿌렸다.

파스스스!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아니, 환상독인가?

사방에 수십 마리 독접이 날아들며 독을 더욱 짙게 뿌렸다.

‘뭐 하는 짓이지?’

다시 말하지만, 이 몸을 독에 중독시키려는 시도는 헛수고다.

그러나 천마는 어느 순간부터 뒷목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이런 기분이 든 게 몇 년 만이지?

천마의 예리한 감각은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지금처럼 뒷목에 돋는 소름으로 나타났다.

그럼 지금이 위기라는 뜻?

어째서?

‘뭐든 간에 일단 이 자리를 피하면 되겠지.’

천마는 그 이유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다.

천마가 되기까지 몇 번의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그는 지금 가장 좋은 타개책은 이 자리를 잠시 물러나는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스르륵!

뭔가가 제 발을 묶고 있었다.

이게 뭐지?

그리고 어느새?

달칵달칵!

‘저건?’

천마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제 발을 묶은 녀석을 바라보았다.

웬 손바닥 크기의 목각인형이 그의 발치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움직인 자리에서 생전 처음 보는 질긴 검은 식물이 자라나 자신의 발을 묶었다.

놀랍게도 이 식물은 자신의 완력으로도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천마신공을 직접 일으켜도 약간 견디기까지 했다.

“감히 넝쿨 주제에!!”

우우웅!

천마가 그 즉시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독이고, 넝쿨이고, 이곳 경계고 뭐든 다 쓸어버리겠다.

그가 그리 마음으로 더욱 강하게 천마신공을 불러일으키려던 찰나.

화륵!

드디어 저 멀리서 진천우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확히 천마신공으로 박살난 무형의 기운의 잔재 너머에 서있었다.

파스스! 달칵달칵!

진천우의 양 어깨에 독접과 목각인형이 올라섰다.

좀 더 정확히 그 두 녀석은 그쪽으로 피신한 것.

피신?

뭐로부터의 피신?

화르륵!

그때, 아까 들었던 불꽃 소리가 울렸다.

진천우의 오른손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꽃의 용.

오싹!

흑염룡을 본 순간, 천마의 뒷목이 다시 시큰거렸다.

저 녀석이 특별한 건 안다.

‘하지만 그저 등장만으로 내가 위기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데?’

“?!”

그 직후, 천마가 뭔가를 깨달았다.

그의 주위에는 아직도 색색의 가루 독이 사방에 산재해 있었다.

만약 그것들에게 불을 붙이면?!

당장 피해야……!

꽈악!

그러나 여전히 검은 넝쿨이 천마의 발을 묶고 있었다.

“하하!”

빌어먹을 웃음이 나왔다.

그걸 보며 진천우가 천마를 향해 흑염룡을 날렸다.

그리고 잠시 뒤.

콰콰콰쾅!!!!!

귀청을 뚫는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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