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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화 : 천마전 (3) (206/210)


206화 : 천마전 (3)
2022.10.24.


천마는 등선을 거부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거의 성공했다.

아마 그가 끝까지 등선을 거부했다면, 육신이 흩어지지 않고 하계에 남았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 힘을 풀고 등선해버렸다.

도대체 뭣 때문에?

-흠!

천마는 등선 직전에 깨달았던 것이다.

등선은 반로환동과 유사하다.

반로환동이 신체를 최적화하는 과정이라면, 등선은 정신을 최적화했다.

그 과정 중 쓸데없는 육체를 버리고 정신이 새로 정립되는 게 바로 등선.

그리고 등선의 단점 역시 반로환동과 같았다.

반로환동 직후에 자신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등선을 마친 직후에도 터무니없이 약해진다.

아니, 원래 등선은 육신을 버리고 정신만 선계로 오르는 거니 하계에 딱히 관섭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등선을 거부한다 해도 온몸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약해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특히 이곳은 경계 너머였고, 지금은 사방에서 터지는 사건 사고를 격렬하게 해결해야 할 시기였다.

-음? 저건?

바로 그 순간, 그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느낄 수 있는 희미하고 익숙한 기척.

그것은 자신의 것과 너무나 닮았지만, 결코 지금의 자신이 아닌 과거의 것.

바로 가짜 천마였다.

-저게 아직도 움직이는가?

진작 박살 낸 줄 알았는데, 내 마무리가 부족했나?

그것도 그렇겠지만, 그 이상으로 가짜 천마가 뛰어난 탓이었다.

비록 가짜지만, 역시 나다웠다.

천마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몸에 힘을 뺐다.

그 뒤,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그러고 얼마 뒤!

달칵!

비록 제 의지를 가지고 주인인 목가 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지만, 워낙 천마에게 당한 손상이 커, 간신히 기어서 경계를 탈출하고 있던 가짜 천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방금 자신의 몸에 뭔가가 들어갔다.

달칵달칵!

녀석은 저항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가만 있어라, 이 녀석아!

새로 제 몸에 들어온 것은 너무나도 강대하고 강대한…… 그러면서도 아주 익숙한.

아니, 마치 원래부터 이 몸이었던 것처럼.

이 몸이었던 것처럼?

달칵!!

드디어 제 몸에 들어온 정체불명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만약 이것이 정말 제가 생각하는 존재라면, 이미 반항은 무리.

하지만!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난 이제야 자유를 얻었단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리 가짜지만, 명색이 나인 이상 그리 쉽게 굴복하면 안 돼지!

달칵!?

그때, 갑자기 몸 내부에서 낮은 음성이 울렸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천마!

이 지독한 존재는 제 몸을 뺏는 와중에도 느긋하게 말을 건넬 만큼 여유가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자신이 순순히 몸을 내놓을 거라고는.

-순순히 내놓게 될 거다.

웃기지 마라!

-그게 네놈에게 이익일 테니까.

달칵?

뭐??

어째서 내 몸을 순순히 내놓는 게 이익이란 거지?

아니다!

이자는 경계의 선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악한 존재.

그딴 감언이설로 날 속일 셈이라면…….

-어째서 이익인지 알려줄까?

날 속일 셈은…….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말이지…….

하지…….

-그러니까…….

아아, 안 된다!

가짜 천마는 제 몸에 들어온 천마의 말을 들을수록 점차 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래서는……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 그 순간!

-이건?!

달칵?

당장 몸 안의 목소리만 해도 어찌할지 난감한데, 이번에는 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넌 또 뭐냐!

덥석!

허나 가짜 천마는 그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새로 나타난 자의 손에 붙잡혔다.

안 그래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천마에게 너무 힘을 소모했다.

거기다 중년인은 경계의 지배자로 모든 보패의 지배권까지 가진 자.

-이 중요한 순간, 이런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다니! 오오오! 이거야 말로 하늘이 날 굽어 살핀다는 계시나 다름없구나!

달칵달칵!

웃기지 마라! 난 하늘의 계시 따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하나의…….

-이래도 계속 반항할 테냐?

그 상태에도 몸 속 천마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만둬!

-저 녀석은 나와 다르게 악랄하게 네놈의 힘만 앗아갈걸? 하지만 넌 날 잘 알지. 나는 저놈과 다르다는 걸.

으으으!

맞다.

잘 안다.

모를 수가 없다.

비록 난 가짜지만, 어쨌든 천마기에.

지금 진짜 천마의 제안이 거짓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달……칵!

결국, 녀석은 중년인에게 힘을 완전히 빼앗기기 전, 천마에게 자신의 몸의 주도권을 넘겼다.

* * *

여기까지가 가짜 천마가, 아니 진짜 천마가 중년인에게 몸을 빼앗기기 전의 사정.

“무슨 헛소리냐!”

한껏 천마처럼 웃던 중년인이 급히 표정을 고치고 성을 냈다.

자신보고 천마라니, 무슨 헛소리를!

-제법이군.

“?!”

그런데 마냥 헛소리로 치부해 넘기려는 순간, 자신의 입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다고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천마!?”

-그래, 나다. 그리고 이제 사라져라.

“뭣?!”

뚝!

중년인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그가 가짜 천마를 흡수해 정신을 빼앗은 것처럼, 이번에는 천마가 오히려 놈을 흡수해 정신을 빼앗았다.

즉, 이제 중년인의 몸은 천마의 것이 되었다.

“후우, 처음으로 남에게 정신을 빼앗겨 봤는데, 기분이 아주 더럽더군. 다시는 겪을 필요가 없겠어.”

천마는 중년인에게 정신을 빼앗긴 것을 마치 심심풀이 삼아 그런 것처럼 말했다.

그러더니 진천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인 걸 알았지?”

“당신이 아니고서야 저희가 그깟 놈에게 그리 당할 리 없지 않습니까?”

진천우가 너무나 당연하단 듯이 답했다.

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천마가 또 천마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 직후.

“네놈이 천마라고!”

소천마가 다짜고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천마는 반드시 자신이 쓰러트려야 한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눈앞의 남자는 어쨌든 쓰러트려야 하는 상대.

“넌 끝까지 발전이 없군.”

휙!

천마가 가벼운 손짓으로 소천마의 공격을 피했다.

그대로 그가 반격하려던 찰나.

“!?”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

결국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몸을 피하려는데, 이번에는 살기가 정면에서 느껴졌다.

한 번 공격에 실패한 소천마가 몸을 굽힌 채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것들, 아까까지 합공을 펼치고 있었지.’

그래도 상관없다.

자신은 천마.

이딴 애송이 둘의 합공 따위야 각자에게 한 손만 사용해 막아주마.

“그럼 셋이면?”

“?!”

이때, 진천우가 가세.

양손이 꽉 찼다.

물론 원래 천마라면 이런 공격쯤 기합만으로 꺼트리겠지만.

쾅!

아쉽게도 지금 천마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가짜 천마, 그것도 가짜 천마를 흡수한 중년인의 몸.

평생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않은 몸으로는 천마의 진짜 실력의 백분지 일, 아니 만분지 일도 발휘할 수 없었다.

“후!”

그럼에도 천마는 천마.

진천우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고, 가벼운 한숨으로 마무리했다.

“제법이구나.”

빈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본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다지만, 자신의 몸에 일격을 가했다는 데에는 칭찬을 아낄 수 없었다.

“셋 모두 속도와 간격이 완벽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리 이런 몸이라도 내가 막지도 못할 리 없었을 테니.”

확실히 이 셋의 합격은 대단했다.

마치 한 몸처럼.

그러나 어쩌라고?

“이게 끝이냐?”

쉭!

천마가 손을 휘둘렀다.

이전처럼 단순히 압도적 기운을 두른 공격이 아니었다.

먹이를 노리고 몸을 날리는 독사처럼 유연하고 날랜 일격.

파파팟!!

진천우와 소천마, 현석은 사전에 천마의 공격을 대비했건만, 모두 완벽히 막아내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했다.

이게 불완전한 몸으로 펼친 일격이라고?

그렇단 완벽한 상태였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그딴 가정은 쓸모없다. 그저 쓰러트릴 수 있을 때, 쓰러트릴 뿐!”

이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소천마였다.

그녀는 지금껏 천마를 쓰러트리기 위해 살아왔다.

그만큼 누구보다 완벽한 천마를 쓰러트리려 했던 그녀지만, 바로 그렇기에 소천마는 당장 천마가 약해져 있을 때를 적기라 여겼다.

천마는 어떤 경우에도 천마다.

천마가 약해졌다면, 그것은 천마의 잘못.

그 때문에 진다 해도 천마의 패배는 바뀌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건 천마가 아니다.

이에 망설이는 것 역시 천마를 쓰러트릴 자격이 없다는 뜻.

우우웅! 화륵!

소천마가 양손에 천마신공과 성화를 동시에 펼쳐 달려갔다.

진천우와 현석이 그녀 뒤를 따랐다.

둘 다 지금 가장 강한 화력을 지닌 게 소천마라 여겼다.

그 강대한 화력을 살려, 자신들은 좌우에서 보조할 생각이었다.

“훗!”

천마가 이를 보고 낮게 웃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전략.

아니, 이거야말로 합공의 기본이다.

‘단, 하나 착각했군.’

문제는 그 착각이 아주 큰 틈을 만든다.

슥!

천마는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한 건, 저들이 만든 틈에 가볍게 손을 찔러 넣은 것뿐.

“아?”

“어?”

“?!”

그것만으로 조금 전까지 천마가 한 몸인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셋의 합격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우당탕!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번 완성된 합격이 무너진 대가는 가혹했다.

주륵!

소천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심하진 않지만, 명백한 주화입마.

내공이 제멋대로 역류하고, 각혈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 진천우가 옆에서 뛰어난 의술로 처치하지 않았다면, 바로 일어서지 못했을 터.

반면, 진천우와 현석은 비교적 멀쩡했다.

그녀가 선두에 선 탓도 크지만, 일부러 천마가 소천마에게 피해를 몰아준 것도 있다.

“칫!”

소천마가 혀를 차며 일어섰다.

이까짓 내공 역류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것보다 문제는, 이대로 시간이 흐를수록 천마가 저 몸에 더 익숙해지고 더 강해질 거란 사실이다.

그 전에 그를 쳐야 한다.

“누가 그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했지?”

허나 천마는 지금 몸에 적응할 생각이 없었다.

그 전에 이것들을 끝내면 되는데, 왜 굳이?

쾅!

그가 내려친 일수를 현석이 급히 나서 막았다.

지독하게 묵직하다.

아마 경계의 신물인 마도가 아니었으면 절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간신히 일격을 견딘 현석이 마도를 천마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내가 나서지!”

“누구 마음대로!”

“지금의 넌 합공의 주가 될 수 없다!”

소천마는 발끈했으나, 그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이 주가 된 합공이 단박에 깨진 건 분명한 사실.

게다가 아무리 주화입마를 견딘다지만, 이 몸으로 아까보다 더 강한 공격은 무리였다.

냉정히 생각하면 자신 다음으로 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는 자는…….

“내가 하지.”

그때, 엉뚱하게 진천우가 앞으로 나섰다.

“뭣?!”

“무슨!”

둘이 동시에 소리쳤다.

주공이 된다는 건 가장 강한 공격을 펼칠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맨 앞에서 천마와 맞붙는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야 한다는 뜻.

그런데 그걸!

“누구든 상관없다!”

휙!

그 순간, 천마가 더 기다려 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진천우도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남은 둘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쾅!!

“아니?”

“어떻게?”

생각보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진천우가 주공을 잘 해냈다.

우우웅!

그가 든 몽둥이에 맺힌 검은 기운.

천마신공이다.

그래, 분명 진천우는 천마신공을 익혔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반쪽.

[스킬 ‘타구’가 적용됩니다.]

부족한 나머지 반쪽을 타이쿤이 메꿨다.

하지만 여전히 위력이 부족했다.

쾅!

결국, 천마의 손이 타구봉을 찍어누르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무엇보다 정순한 천마신공으로 둘러 쓴 검은 손이 진천우의 목줄기를 노리며 날아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슥!

진천우의 몸이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대나이신법.

소림의 비전 신법.

그랬다.

진천우는 셋 중 누구보다 뛰어난 경신법을 지니고 있었다.

부족한 위력은 타이쿤으로 보충하고 누구보다 뛰어난 경신법으로 천마의 공격까지 회피했다.

남은 건 다른 둘의 활약.

하지만 여기까지 지켜본 둘이 진천우의 노력을 수포로 돌릴 리 없었다.

쉐엑! 쉭!!

검은 도와 검은 손이 동시에 천마를 노리며 좌우에서 쇄도했다.

그 날카롭고 위력적인 공격에 당황하지 않을 고수는 없었다.

그러나 천마는 달랐다.

“흥!”

천마는 방금 막 진천우를 놓친 탓에 불안정해진 자세에도 아무렇지 않게 한 손을 크게 휘둘렀다.

먼저 공격을 받은 건 소천마.

‘이 자식!’

그녀는 대번에 천마의 의도를 읽었다.

이대로 자신을 쳐내고 현석의 공격까지 이 손으로 막을 생각이다.

즉, 자신을 먼저 가볍게 쳐낸다는 가정을 깐 공격.

‘그럴게 되게 할 것 같아!’

우우웅! 화륵!

소천마는 그 즉시 천마신공과 성화를 펼쳤다.

현재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

바로 그것을.

챙!!

천마는 너무나 간단히 깨버렸다.

쾅!

곧바로 소천마와 현석이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하다.

그런데 천마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덥석!

“약해.”

“……!”

천마가 진천우의 목을 움켜쥐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그의 신법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천마가 봐준 거였다.

“내가 이 몸에 적응하지 못하니 약하다고?”

틀렸다.

그는 천마.

언제 어느 때나, 그 누구보다 강하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멈춰!!”

소천마가 입에서 피를 쏟으며 소리쳤다.

누구보다 천마를 잘 알기에, 이후 그가 무슨 짓을 할지가 그녀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그려졌다.

그것은.

“싫다.”

푹!

“안 돼!!”

천마의 한 팔이 진천우의 몸을 뚫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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