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 천마전 (2) (205/210)


205화 : 천마전 (2)
2022.10.22.


‘이건?’

소천마는 중년인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천마신공?’

어째서 저놈이?

하지만 그녀의 의문은 진천우보다 짧았다.

휙!

짧아도 너무 짧았다.

소천마는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먼저 몸을 날리더니, 곧바로 양손에 천마신공과 성화를 동시에 피웠다.

‘네놈이 어떻게 천마신공을 쓸 수 있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어차피 여기서 이 자리에서 처리하면, 그 의문은 쓸데없는 것이 될 터.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을 믿었다.

화르륵!

그리고 자신이 가장 최근 손에 넣은 힘.

바로 성화를 믿었다.

우우웅!

소천마가 천마신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다음에는 중년인의 눈앞에서 천마신공과 성화를 합쳤다.

눈부신 빛이 사방에 폭사했다.

그야말로 천지를 뒤엎을 무시무시한 기운이 중년인을 향해 날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지워버리며.

당연히 소천마는 이것으로 그를 처치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슥!

그렇기에 중년인이 자신의 거대한 천마신공을 향해 느리게 한 손을 뻗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흘렸다.

양손도 아닌 한 손으로 어쩌자는 거지?

심지어 저 한 손에 맺힌 천마신공의 기운은 매우 희미했다.

그런데 중년인의 손이 폭사하는 소천마의 천마신공에 닿는 그 순간!

“?!”

그녀는 경악한 듯 두 눈을 치켜뜰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제 천마신공이 어떻게 저런!!

소천마는 자신의 천마신공이 속수무책으로 무효화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녀를 진정으로 분노케 한 건 따로 있었다.

“별것 아니군.”

별……것?!

휙!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새 다시 몸을 날린 뒤였다.

쾅!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중년인과 일합을 나눈 뒤.

“큭!”

소천마가 즉시 뒤로 물러났다.

“…….”

반면 중년인은 어떤 표정 변화 없이 물러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무미건조한 얼굴이 소천마의 가슴을 더욱 진탕시켰다.

“이이……!”

“진정하게.”

“놔!!”

그녀는 자신을 말리러 다가온 현석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허나 그는 손에 힘을 주어, 소천마의 매서운 손속을 견뎠다.

“뭐냐?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냐?”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

“뭐!”

소천마가 폭발했다.

그녀가 현석에게 진심이 당긴 일격을 날리려던 찰나, 누군가 갑자기 소천마를 뒤에서 껴안았다.

진천우.

“그만…….”

그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 말은 소천마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셔도 됩니다.”

현석에게도.

자신이 있으니 굳이 직접 소천마를 분노를 몸으로 받아 풀어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애초에 이까짓 일로 쓸데없는 분노를 쌓아두는 이가 아니었다.

-안 덤비는군.

소천마가 진천우의 몸 뒤에 숨은 채 전음을 건넸다.

-조금 전, 혼란은 나와 저 녀석을 동시에 처리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도 저 녀석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어.

-아마 제 차례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막 판 위에 오른 탓에 그녀가 모르는 초한전의 규칙을 진천우가 설명하려는데.

-알아.

-네?

-이 판이 장기 규칙이란 것쯤 보자마자 알았어. 아무렴 내가 장기 하나 못 둘까 봐?

소천마가 확인한 건, 초한전의 기초 규칙이 아니었다.

-처음 벽을 허물어트렸을 때, 놈의 발치에 말과 코끼리가 누워있었지. 내가 아는 너는 장기든 뭐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녀석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광경이 펼쳐졌다면, 필시 저놈이 규칙을 무시한 어떤 짓을 저지른 거겠지.

그녀가 확인한 건, 기초 위의 무언가.

그러니까 중년인이 어디까지 장기의 규칙을 무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걸 행여 모두 무시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한계가 있는 듯 자신들에게 속이는 게 아닌가였다.

-그런데 아까 같은 절호의 기회를 날린 걸 보면, 할 수 있는데 일부러 감추는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정말 제 차례가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군.

슥!

그때, 소천마가 현석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는 곧바로 그 눈빛을 읽고 몸을 날렸다.

육중한 체격의 현석이 온몸의 괴력을 발산해 마도를 내려쳤다.

챙!

“큭!”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기습도 너무나 쉽게 막히고, 오히려 현석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중년인이 그리 말하며 느긋하게 몸을 풀었다.

사실 굳이 몸을 풀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시야에 자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흠칫하는 셋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자신은 저것들이 겁먹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어떤 놈부터 처리할까?’

첫 대면부터 갑자기 공격을 펼치고 유난히 불사신이었던 자신을 철저하게 꺾은 그 괴물이 생각나게 하는 저년부터?

그게 아니면 지금 바로 제 앞에 서서 경계 너머의 둘뿐인 신물 중 하나인 마도를 손에 쥐고 있는 이놈을?

그러나 중년인은 맨처음 목을 꺾을 놈을 이미 정해두었다.

휙!

그가 바로 몸을 날렸다.

그의 시야에 자신을 노려보며 두 눈을 치켜뜬 진천우가 보였다.

‘저놈은 빠르다.’

그러니 절대 놓치지 않는다.

가짜 천마를 흡수하면서 얻은 건 비단 전설의 천마신공이 끝이 아니었다.

경계 바깥, 천하를 삼분하는 세력 중 마교가 지닌 모든 비전 무공 역시 포함돼 있었고, 그중 교의 제일 보법인 천마보가 있었다.

천마보는 달아나는 데 사용하는 보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진짜 효용은 달아나는 적을 쫓는 데 있었다.

쿵!

중년인이 땅속 깊숙이 족적을 새기자, 그 주위로 강한 기파가 퍼져나갔다.

그 기파는 그대로 땅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땅을 잡았다는 건 곧 그 위에 선 사람 역시 붙잡았다는 소리.

한번 붙잡힌 이상, 땅 위에 선 존재는 그게 무엇이든, 설령 그게 신선이라 할지라도 움직이지 못하고 천마의 발밑에 조아려야만 한다.

그게 바로 천마군림보의 요체.

쿵!

중년인이 첫 발보다 더욱 강하게 두 번째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바로 진천우의 발을 붙잡았다.

이제 그는 달아나지 못한다.

‘끝이다.’

중년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웅!

천마신공.

그것도 소천마의 성화를 섞은 천마신공조차 파훼한 진짜배기 천마신공.

거기에 닿으면 진천우라도 살아날 수 없다.

“…….”

헌데도 그는 제 목을 노리고 찔러오는 중년인의 손을 보고도 담담한 시선만 보내왔다.

‘포기한 건가?’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놈이라면!’

중년인은 방심하지 않았다.

앞서 진천우에게 몇 번이나 당했다.

또다시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설령 진천우가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어도 소용없도록 온몸에 더욱 힘을 주었다.

우우웅!

그 즉시 천마신공의 기운이 배가 되었다.

그리고 중년인이 몸이 처음보다 배 이상 빠르게 쏘아졌다.

이대로 단번에 진천우의 목을 베기 위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뿐 아니라,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

‘도대체 뭘 숨긴 거지?’

중년인의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진천우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려보며 계속 손을 뻗었다.

허나 이때 진천우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중년인이 주의해야 할 상대는 자신이 아니라 따로 있었다.

휙!

“?!”

느닷없이 등 뒤에서 쏘아지는 살기에 중년인이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쾅!

팔이 쩌릿쩌릿 울린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틈이 없었다.

중년인은 경악에 찬 눈으로 방금 자신의 배후를 기습한 소천마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넌 아직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이번에는 바로 옆에서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중년인이 기겁하며, 저린 팔을 급히 옆으로 틀었다.

챙!!

눈부신 불똥이 사방에 터졌다.

아쉽게도 현석의 마도 역시 그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허!”

허나 중년인은 여전히 계속 두 눈을 치켜뜬 채 자신의 발아래를 확인했다.

하나, 둘…… 무려 세 개나 찍힌 자신의 발자국.

그가 처음으로 둘의 공격에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기습.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중년인이 소천마에 이어 현석을 향해서도 소리쳤다.

“어떻게 두 놈 다 자기 차례가 아님에도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왜? 네가 먼저 규칙을 어겨놓고, 우리는 어길 수 없다고 생각했나?”

소천마가 코웃음치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중년인이 아무리 당황했다지만, 이리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에 당할 순 없었다.

휙!

그러나 소천마의 공격을 피한 직후, 측면에서 날아오는 현석의 공격.

그 공격이 너무 절묘했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소천마의 공격을 피할 걸 예상한 것처럼.

쾅!

“윽!”

두 사람의 합공에 중년인은 또 뒤로 물러나야 했다.

설마 이 둘이 이처럼 합이 잘 맞을 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이리 밀리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둘이 규칙을 무시하기 때문.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내가 먼저 규칙을 어겼으니까 자신들도 규칙을 무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신에게는 녀석들에게 없는 권한이 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다고?

“네놈……!”

중년인이 소천마와 현석과 손을 섞는 와중에 무섭게 고개를 직각으로 꺾었다.

그 끝에 진천우가 보였다.

여전히 처음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놈.

그리고 아주 일부나마 자신이 가진 권한을 훔쳐간 놈.

이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건 저 녀석밖에 없다.

‘그래서 더 빨리 저놈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허나 후회할 틈이 없었다.

이 순간에도 소천마와 현석이 매섭게 그를 몰아붙였다.

분명 중년인은 가짜 천마를 흡수해 막대한 힘을 얻었지만, 그는 그것을 다룰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경계에서 흘러나오는 불사의 힘과 다양한 보패를 다루는 싸움이 아닌, 몸을 사용하는 무공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처럼 쉬지 않고 휘몰아쳐 오는 둘의 합공에 완벽히 대처하지 못했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합!”

쾅!

중년인은 좌우에서 동시에 날아오는 소천마와 현석의 공격을 단순한 기합 한 방으로 해소했다.

“큭!”

“무슨?!”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콰쾅!!

그는 둘을 뒤로 밀어내는 동시에 천마신공을 사방에 흩뿌렸다.

여기서 흘러나온 막대한 기파가 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즉, 소천마와 현석의 합공을 한순간에 격퇴시켰다.

믿을 수 없는 결과!

‘이것이 진짜 천마신공?’

당사자 또한 자신이 펼친 결과에 매우 놀라워했다.

어쨌든, 이걸로 성가신 둘을 치웠다.

저 둘이 다시 돌아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터.

그 사이에!

“내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중년인이 이번에야 말로 진천우를 죽이려고 몸을 날렸다.

진천우가 제 쪽으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손날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이건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그런데 그가 눈을 치켜뜬 이유는 단순히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 아니었다.

설마 했는데.

“당신…….”

방금 전, 중년인이 보인 무위를 생각하면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신 천마지?”

우뚝!

그 한마디에 진천우를 향해 날아오던 손이 갑자기 멈췄다.

더불어 중년인의 표정도 한껏 일그러졌다.

“네놈…….”

그는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라고 소리치려 했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 손이 멈춘 건 중년인의 의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허허!”

제 입이 느닷없이 자신이 전혀 의도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씨익!

역시나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순간, 중년인의 입가가 마치 천마처럼 웃기 시작했다.

1666442341351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