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함께하는 싸움 (1)
(185/210)
185화 : 함께하는 싸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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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 함께하는 싸움 (1)
2022.09.05.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정작 목소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쾅! 퍽!
대신 처음 나타났던 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쾅!
현석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을 쓰러트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마도로 내려쳐 머리를 터트렸지만, 어디에도 피는 튀지 않았다.
이것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쾅!
현석이 마도에 더욱 힘을 실어 휘둘렀다.
퍽퍽퍽!
그때마다 적 여럿이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적을 쓰러트리고 또 쓰러트려도, 계속 쉬지 않고 튀어나왔다.
“이게 뭐냐? 이것도 인형이냐?”
현석이 너무 놀라, 급히 제 품에 숨은 목각 인형에게 물었다.
달칵!
허나 녀석은 그건 아니라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확실히 이지가 없이 그저 달려들 뿐인 적은 앞서 녹의 노인이 부린 다수의 인형과 다를 바 없지만, 이것들은 미묘하게 달랐다.
“기관도! 진법도 아니다!”
퍽!
이때, 타구봉을 든 사내가 눈앞의 적을 쓰러트리며 소리쳤다.
굳이 적을 쓰러트리며 소리칠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소리쳤다는 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군.’
상대는 지금 정보교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현석이 이를 받아들였다.
“앞서 싸운 적 중 인형을 다루는 자가 있었다. 이건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굵게 늘어졌다.
아직 인형화로 바뀐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타구봉을 든 사내는 원래 현석의 목소리를 알지 못했기에 별 의문 없이 넘겼다.
어차피 중요한 건 목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
퍽!
사내는 바로 제 눈앞의 적을 향해 타구봉을 내려쳤다.
쾅!
현석도 지지 않고 마도를 휘둘렀다.
둘 다 솜씨가 대단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를 쓰러트리면 둘이, 둘을 쓰러트리면 셋이, 셋을 쓰러트리면 다섯의 새로운 적이 달려들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라도 실수할 수밖에 없었다.
핏!
“큭!”
다행히 그 실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
현석이 불과 한 뼘 길이로 잘린 제 소매를 노려보며, 다시 마도를 휘둘렀다.
곧바로 일곱의 적을 베자 다시 열 명의 적이 달려들었다.
‘이대로는…….’
현석이 열을 베며,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리 그의 실력이 뛰어나도 체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점점 더 늘어나는 적의 수도 수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것도 성가셨다.
‘응?’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뭐지?’
쾅!
현석이 정면의 적을 베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는 바로 좌우에서 달려드는 적을 벴다.
그 뒤 다시 정면에서 적이 달려들었다.
이 역시 베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등 뒤에서 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함정?’
아니었다.
퍽!
등 뒤에서 커다란 몽둥이 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거지?
‘당연히 먼저 당해버린 줄 알았는데?’
적에만 신경 쓰다 보니 그만 잊은 게 아니었다.
그만큼 타구봉을 든 사내의 기척이 희미했다.
아니, 너무 익숙하다고 할까?
익숙하다고?
‘왜 오늘 처음 보는 저자의 기척이 이토록 익숙하지?’
휙!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깊게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현석은 바로 눈앞에서 달려드는 적을 벴다.
확실히 한 방향이라도 적이 달려오는 방향을 제한하니 훨씬 싸우기 수월해졌다.
아니, 사각인 배후가 튼튼해지자, 그 효과는 단순히 한쪽 방향을 막은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턱!
그러다 보니 둘은 어느새 서로 등을 맞대며 싸우게 되었다.
‘놀랍군.’
정확히는 믿기지 않았다.
단순히 급한 상황이라고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그럴 수 없었다.
타인에게 완전히 자신의 배후를 맡긴다는 건, 본래는 아주 깊은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
휙!
그런데 현석은 이제 제 등 뒤에서 뭔가가 달려드는 기척을 느끼고도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퍽!
잠시 뒤, 기대대로 사내의 타구봉이 적을 쓰러트렸다.
씨익!
어째서일까?
이를 느낌과 동시에 현석의 입가에 얕은 호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마도를 휘둘렀다.
마도는 자신의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적 셋을 베고, 그대로 더 뒤까지 뻗어 두 명의 적을 더 벴다.
자연스럽게 배후를 지키는 사내 몫까지 벤 것.
그러자 그 역시 현석의 왼편의 적을 연달아 다섯을 몽둥이로 찍어버렸다.
쾅쾅쾅! 퍽퍽!
퍽퍽퍽! 쾅쾅!
뭐랄까?
이런 일이 몇 번 더 이어지자, 둘은 어느새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한 몸이 되니, 다시 한 방향이 줄었다.
이제 현석은 정면과 오른쪽만 맡게 되었고, 타구봉의 사내는 제 정면과 현석의 왼쪽을 맡아주었다.
“하!”
그 사실이 너무나 놀랍고 신기해서, 현석은 연신 마도를 휘두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 대단하군!”
본래 칭찬에 인색한 그인데도 칭찬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칭찬이 어색해서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처음 하는 칭찬이라서?
아니면 이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이상해서?
뭐가 됐든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동시에 궁금해졌다.
‘누구지?’
대체 누구길래 이런 실력을……. 아!
“혹시 자네, 맹에서 나왔나?”
현석도 경계에 들어서기 전에 사도련주에게 대충 상황설명을 들었다.
발견된 통로는 셋.
그중 하나는 천마가 독점하고, 련은 소천마 일행을 끌어안았다.
반면 맹은 독자적으로 하나의 통로를 이용했다.
그렇다면 꽤나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을 텐데, 이자는 왜 혼자인 걸까?
‘아니, 그것보다 이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군.’
그러고 보니 둘은 처음 봤을 때 잠깐 스치듯 본 것 외에 다시 정면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순간도 갑작스러운 적습으로 얼굴을 살필 틈이 없었다.
휙!
쾅! 퍽!
지금도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등을 맡기며 신뢰하는데도, 얼굴조차 알지 못하다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자신의 소속을 말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으니, 생각이 끝날 때까지 날 지켜주게.”
“뭐?”
이 상황에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심지어 그때까지 자신을 지켜달라고?
이놈이 미쳤나?
허나 현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생각과 정반대 말이었다.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긴 뭐가 중요하겠는가!
“중요해.”
“알겠네.”
알겠긴 뭘 알아!!
현석은 왜 자기가 생각과 정반대로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 같았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부탁이라도, 저자의 부탁이라면 반드시 들어주려는.
그거야말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내가 미쳤지!’
하지만 현석은 이번에도 제 생각과 달리 바로 몸을 움직였다.
부웅!
그가 손에 쥔 마도를 크게 한 바퀴 휘둘렀다.
그러자 주위 적들이 단번에 쓸려갔다.
이때, 등 뒤의 사내는 재빠르게 자신의 등에 붙어 이동했다.
‘움직일 수 있잖아!’
뭔가 한곳에 멈춰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닌 모양.
‘그럴 거면 도우라고!’
쾅!
그러나 현석은 이번에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빠르게 정면과 좌우 그리고 등 뒤까지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을 벴다.
여기에 등 뒤에 붙은 사내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했다.
당연히 처음보다 훨씬 힘들었다.
핏!
“칫!”
결국 몰아치는 적에 한쪽 뺨이 얕게 베였다.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를 느끼며, 현석이 더욱 빠르게 마도를 휘둘렀다.
확실히 이대로는 안 된다.
이대로 계속 쉬지 않고 달려드는 적과 싸워봤자, 종국에는 지쳐 쓰러질 뿐이다.
처음 들렸던 목소리.
아마 그 목소리의 주인이 이곳의 지배자일 게 분명했다.
바로 그를 찾아 쓰러트리거나, 그게 아니면 여기서 달아나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엎을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달칵!
적을 베며 현석이 조용히 고개를 내리자, 그의 품에 숨어있던 목각인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인형화를 다시 펼칠 만한 힘이 모이지 않았다.
거대화는 당연히 무리였다.
하지만 그만한 힘이 아니면 이 난관을 타개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현석이 막막한 마음에 가볍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렇게 되면 별 수 없었다.
-아쉽지만, 여기서 물러나지.
바로 등 뒤에 사내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까부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그 생각을 멈추고 자신과 함께 탈출에 집중한다면 못 도망갈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딜 달아나려고!
그 순간, 처음 들었던 불쾌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설마 전음을 엿들은 건가?
그건 그야말로 이 공간을 지배할 정도의 절대 고수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스스스!
거기다 불쾌한 목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연기였지만.
“?!”
현석은 흰 연기를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물론 그는 연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저건 매우 위험한 거란 사실을 인지했다.
휙!
당장 본능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연기에 숨어 제 쪽으로 날아오는 적이 더욱 위협적으로 변했다.
‘이건 정말 도망쳐야 한다!’
“가세!”
어차피 적에게 전음도 읽히겠다, 현석은 육성으로 고함을 지르며 등 뒤의 사내의 팔을 잡았다.
아니, 잡으려 했다.
휙!
“내 몸에 손대지 마.”
그가 곧바로 몸을 틀어 현석의 손을 피했다.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한가?
허나 중요했다.
빠직!
“무슨?!”
현석이 갑자기 사내의 몸에서 빛이 나는 걸 보고 두 눈을 치켜떴다.
빠지직! 빠직!
이제 보니 그의 몸에 서늘한 뇌기가 서려 있었다.
‘이것 때문에 건드리지 말라고 한 건가? 그리고 뇌공을 익혔으면, 왜 적에게 쓰지 않고 이러고 있었지?’
쓰지 않은 게 아니었다.
쓰지 못하는 거였다.
그는 지금 손에 타구봉 대신 다른 걸 들고 있었다.
기다란 창.
빠지직!
뇌기는 창끝에서 뿜어져 나와 사내를 감전시켰다.
빠직! 빠지직!
“괘, 괜찮나?”
괜찮냐고?
한눈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석은 당장 그를 도울 수 없었다.
휙!
이때도 적들이 쉬지 않고 몰려들었다.
그는 혼자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해치우는 것도 버거웠다.
“후우!”
그때, 창을 든 사내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드디어 뇌기를 뿜는 창을 장악한 건가?
빠지직!
그건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창을 들었다.
“어쩐지 주울 때는 멀쩡하다 싶어, 주인이 죽은 뒤에는 쓸 수 있는 줄 알았지.”
주울 때는 멀쩡했다고? 주인이 죽은 뒤?
이건 다 무슨 소리지?
“보패라더군.”
“뭐?”
“선인들이 사용하는 무기. 그러니까 여기 경계 너머의 놈들이 쓰는 무기. 아마도 저 연기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도 보패인 것 같군.”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딨냐고 말하려다, 현석은 제 품에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목각 인형이 하나 들어있단 걸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때, 사내가 창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보패에는 보패란 거지.”
“뭐?”
“그러니까 이거라고!”
휙!
남자가 손에 든 창을 힘껏 던졌다.
빠지지직!!
그 즉시 ‘필중의 창’이 목표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