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 공동 전선 (4) (181/210)


181화 : 공동 전선 (4)
2022.08.27.


“막아라!”

녹의 노인이 기겁하며 목각인형을 불렸다.

달칵달칵!

그 즉시 인형들이 주위로 모였다.

놈들은 어떻게든 제 주인을 공격하려는 현석과 소천마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으직!

허나 소천마는 시위를 튀어나온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달칵달칵!!

그녀 앞에 목각인형들이 겹겹이 벽을 쌓았지만 소용없었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벽이 무너졌다.

전설로 전해지는 천마신공의 파괴력은 그 어떤 무공도 따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벽을 쌓다 무너진 인형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발길이라도 잡으려고 사방에서 팔을 뻗었다.

으직! 으지직!

현석이 이를 저지했다.

그는 마치 노련한 정원사처럼 쉬지 않고 가지치기를 했다.

그 덕에 소천마는 정면 외에 다른 쪽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앞으로 나아갔다.

“제법이야.”

그게 퍽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로서는 이례적으로 상대를 칭찬했다.

“…….”

물론 현석은 전혀 기뻐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가지치기에 집중했다.

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목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놈!!”

소천마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오자, 녹의 노인이 급히 품을 뒤졌다.

그의 품에 아직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었다.

이 보패를 사용하면, 반경 백 장 가까이가 초토화된다.

“네년이 수하들과 함께 죽을 셈이 아니라면……!”

“싫은데?”

휙!

어느새 소천마가 노인의 코앞에 도달했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그러니까 네놈 말 듣기 싫다고.”

휙!

“이런…….”

녹의 노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제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손을 뻗을 줄이야.

그는 제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과 그 구멍을 낸 소천마를 번갈아 보다,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 보패를 꺼낼 힘은 남아있…….

슥!

“컥?!”

소천마가 가볍게 한 팔을 휘둘렀다.

그 경로를 따라, 가는 선이 그어졌다.

그 선 끝에 녹의 노인이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품에 숨긴 보패도.

노인과 보패, 둘 다 소천마가 그은 선에 의해 양쪽으로 갈라졌다.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그와 동시에 목각인형들이 갑자기 발작하기 시작했다.

털썩!

아무리 현석과 소천마가 쓸어버렸다지만 인형은 아직도 수십이 넘게 남아 있었는데, 그들이 전부 동시에 쓰러졌다.

달칵!

그나마 몇 개가 여전히 움직였지만, 그래봤자 땅에 쓰러진 채 팔다리만 애처롭게 휘두르는 데 지나지 않았다.

“해냈다!”

곧바로 교의 무인들이 소리쳤다.

“소교주님께서 적을 쓰러트리셨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

그러자 련의 무인들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저 노인을 쓰러트리는 데 둘째 공자님의 공도 크다!”

“물론이지! 둘째 공자님이 아니었으면 소교주가 어떻게 저 노인 코앞까지 갔을까!”

와아아!!

꽤나 공격적인 어조였지만, 교의 무인들도 그건 어느 정도 인정했다.

더군다나 두 세력은 지금 손을 잡은 상태.

서로가 서로를 순순히 인정하자, 종국에는 둘 다 동시에 양팔을 들고 승리를 기뻐했다.

와아아아아!!

“조용.”

그런데 한껏 달궈진 열기에 소천마가 느닷없이 찬물을 부었다.

“아직 안 끝났다.”

“네?”

휙!

그녀는 방금 자신이 쓰러트린 녹의 노인의 시체 중 절반을 현석에게 던졌다.

현석이 말없이 그것을 받았다.

시체가 생각보다 무겁고 단단했다.

그런데 시체에서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

뒤늦게 현석도 시체의 정체를 알아채고 두 눈을 치켜떴다.

“이건?”

어찌나 놀랐는지 그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달칵!

“인형?”

그랬다.

소천마가 기껏 반으로 갈라버린 녹의 노인은 사실 목각인형이었다.

노인의 쭈글쭈글한 피부는 물론이고 머리카락 한 올, 눈썹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역시나 인형은 인형이었다.

‘언제 바뀐 거지?’

아니, 바꿀 시간은 없었다.

소천마가 녹의 노인을 처리하는 걸 자신과 여기 있는 모든 이가 봤다.

무엇보다 소천마 본인이 그걸 눈앞에서 놓칠 리 없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인형이었다는 건데.’

어떻게 인형이 인형을 조정할 수 있지?

거기다 이렇게 정교한 인형이라니?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현석은 혼란에 빠졌다.

이는 소천마도 마찬가지다.

“…….”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평소답지 않고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그 노인, 마지막에 품에서 뭔가를 꺼내 사용하려고 했는데?

달칵!

그때, 무슨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손바닥 크기의 인형이 현석에게 던지지 않은 녹의 노인의 남은 절반을 뒤지고 있었다.

저 녀석, 틀림없이 여기서 처음 보고 달아난 그놈이었다.

소천마가 바로 녀석을 붙잡았다.

녀석의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반으로 잘린 나무 장치.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휙!

그녀는 그 즉시, 손에 쥔 인형과 나무 장치를 단숨에 갈랐다.

한 번으로는 불안하니,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

후두둑!

목각인형과 나무 장치 모두 산산조각이 나 땅에 떨어졌다.

이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쿵!

“음?”

“……?”

갑자기 땅이 울렸다.

울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쿵!!

“어엇?!”

“왜 난데없이 지진이?”

쿵!!!

“이, 이런!”

“모두 엎드려!!”

땅이 사정없이 요동치자 놀란 무인들이 급히 몸을 숙였다.

쿵!!!!

시간이 지날수록 지진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모두가 바닥에 납작 엎드릴 때,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현석과 소천마.

“…….”

“칫!”

오직 그 둘만이 뭔가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더 확실하게 처리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그랬으면.

달칵달칵달칵달칵!!

이 꼴을 다시 안 봤을 텐데.

“이놈들!”

“살아있었군.”

“이번에는 진짜인가?”

소천마와 현석이 다시 나타난 녹의 노인, 아니 거대 목각인형을 노려보았다.

그는 지금 부서진 목각인형 파편으로 새로 재구성된 집채 크기의 인형 머리 부분에 앉아있었다.

좀 더 정확히는 머리 안쪽의 깊게 파인 곳에 들어가 있었다.

“감히 내게 이것까지 꺼내게 하다니.”

“흥, 지금까지 가짜를 앞세우고 자신은 땅속에 숨어있던 겁쟁이가 발악하는군.”

노인의 고함에 소천마가 야멸차게 받아쳤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훗!”

오히려 그는 코웃음치며 제 발치 아래 놓인 둘을 노려보았다.

가소로운 것들.

지금 제 인형과 크기 차이를 보라지.

거기다 자신의 거대 인형은 단순히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이 인형이야말로 나의 역작! 크기뿐 아니라 힘과 속도, 그리고 유연함까지 다른 인형과 비교가 안 된다!”

“그래?”

이 정도 얘기했으면 당연히 겁에 질려 몸을 떨 줄 알았지만, 역시나 소천마는 대번에 기대를 배신했다.

아니, 그녀는 오히려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했다.

제게 미쳤나?

아니다.

지금 그녀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상황판단을 끝냈다.

그 결과, 눈앞의 거대 인형은 전혀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다 일어나. 바로 튄다.”

“네?”

“튄다고. 출발!”

“조, 존명!!”

그녀의 몇 마디에 그 즉시 교의 무인들이 달아났다.

“뭐, 뭣?!”

놀란 녹의 노인이 급히 거대 인형을 조정했다.

휙!

확실히 그 속도는 엄청났다.

거대 인형이 달아나는 무인 하나를 붙잡으려는 순간.

쾅!

소천마가 천마신공으로 녀석의 팔을 쳐냈다.

“흐음……!”

그녀는 자신의 천마신공에도 멀쩡한 인형의 팔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크기가 커진 만큼 더 강해졌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

‘뭐, 상관없지.’

소천마가 수월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 통로가 보였다.

그녀의 수하들이 속속들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큼 몸집이 커졌으니 저 안으로는 못 들어가겠지.”

“이 년!!”

그 생각이 맞았는지, 녹의 노인이 분한 얼굴로 일갈을 질렀다.

어차피 저 거대 인형은 여기처럼 큰 공간이 아니면 쓸 수 없었다.

그럼 굳이 자신이 저것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교의 목적은 경계 너머의 조사이지, 노인을 물리치는 게 아니다.

“흥!”

소천마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단 듯,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곧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왜?

‘저건 왜?’

왜 저 사내는 자신을 따라오지 않고 여전히 저기 서 있는 거지?

* * *

쾅!

“하핫!”

천마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천마와 몸을 부딪치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쾅쾅쾅!

“하하하!!”

어찌 웃음을 참을 수 있을까?

놈과 싸우면 싸울수록 항상 어딘가에 막혀있던 뭔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서지는 게 느껴졌다.

화르륵!

이때, 등 뒤에서 시뻘건 불꽃이 튀어나왔다.

가짜를 조정하는 노인이 진법으로 만든 불꽃이었다.

허나 천마는 그 불꽃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눈썹 하나 불타지 않았다.

-어떻게?

이를 본 노인의 허탈한 목소리가 울렸다.

“멍청하긴!”

애초에 전설로만 전해지는 반로환동을 이룬 천마다.

그보다 못한 한서불침의 경지는 진작에 들어선 지 오래.

이까짓 불길로 그를 어쩔 수 없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오히려 이딴 외부의 불꽃보다.

화륵!

“흠……!”

천마는 아까부터 제 몸 안에서 스스로 피어오르는 정체 모를 불꽃이 의아했다.

‘내 딱히 화공을 익힌 적이 없거늘?’

물론 천마가 따로 마음먹으면 몸 안에 불을 피우는 것뿐 아니라 산도 태워버릴 수 있지만, 딱히 불을 피어오르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불이 피어오른 게 특이했다.

‘천마신공을 쉬지 않고 쓴 탓인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휙!

그때, 가짜가 자신에게 손을 뻗었다.

우우웅!

손끝에 맺힌 선명한 강기.

틀림없는 천마신공이다.

천마신공은 천마신공으로만 맞설 수 있다.

천마가 그 즉시 한 손에 천마신공을 두르고 그것을 뻗었다.

쾅!

곧바로 커다란 폭음이 터지고, 가짜가 뒤로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천마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

충돌 직전, 몸 안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천마신공에 더해졌다.

그러자 순간적이지만 위력이 올랐다.

‘이거?’

잘하면 쓸 만하겠는데?

그 즉시 천마가 몸을 날렸다.

뭐든 직접 부딪쳐 알아내는 게 그의 신조.

마침 눈앞에 이것에 가장 알맞은 시험체까지 있었다.

쾅! 쾅쾅쾅!

허나 아쉽게도.

쾅!!!!

달칵! 으지직!

“어?”

지금까지 쭉 멀쩡하던 시험체가 채 다섯 번도 견디지 못하고 부서졌다.

달칵!

부서트리고 나자, 가짜는 그냥 인형으로 변했다.

너무나 갑작스런 결과지만, 천마는 그것보다 방금 자신이 펼친 천마신공을 확인하는 게 급했다.

‘갑자기 천마신공의 위력이 급상승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스스로 피어오른 불꽃의 위력이 천마의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매우 놀라운 일이었으나, 이를 발견한 천마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아직 막힌 걸 다 뚫지 못했다.

이대로 몇 번만 더 실험체와 부딪히면 그걸 완전히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중간에 훌쩍 강해지는 바람에 실패했다.

마치 뭐 싸다 도중에 끊긴 것 같은 불쾌함.

-이, 이런!!

한편 자신의 평생의 역작인 인형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본 노인은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당장 달아나야 했다.

이 복수는 나중에 꼭…….

휙!

“헉!”

그 순간, 갑자기 몸을 숨기던 공간이 갈렸다.

노인이 고개를 돌리니 천마가 이쪽으로 손을 뻗은 게 보였다.

그는 그대로 공간째 노인의 몸을 베어버렸다.

“이…… 이 괴물 같은……!”

노인의 허무한 유언을 끝으로 천마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뭔가를 발견했다.

좀 더 정확히는 무엇이 없어졌는지 찾았다.

“안내인이 사라졌군.”

하지만 다행이다.

그 안내인이 흔적을 남겼다.

일부러? 아님, 실수로?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놈은 제법 유능했지.’

어쨌든, 여기까지 확실히 안내했으니까.

그럼 이후에도 그럴까?

‘모르지.’

모르면 확인하면 된다.

휙!

천마의 신형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1661606945018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