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선인 등장
(175/210)
175화 : 선인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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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화 : 선인 등장
2022.08.13.
“흠…….”
진천우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타이쿤의 도움으로 숨겨져 있는 통로를 찾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시간제한이 있었고, 제한 시간 안에 들어가는 대가로 가지고 있던 내공의 상당수를 소모했다.
‘이 앞에는 뭐가 있을지 모른다.’
어떤 위험이,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내공을 보존한 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스윽!
그런데.
슥!
“흠…….”
스윽!
이미 꽤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
위험은커녕, 위험의 전조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지?’
진천우나 너무나 순탄한 진행에 살짝 고개를 저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통로는 어디 미로처럼 복잡하지도 않은 그냥 외길이었다.
‘하지만 위험은 언제나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법.’
스윽!
진천우는 계속 긴장을 풀지 않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항상 감각을 열어놓고 혹시 모를 기습과 기관, 진법의 발동을 예의주시했다.
“…….”
그러나 계속 시간이 지나도 뭔가가 일어날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달칵!
“?!”
드디어?!
급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식!
확실히 거기에는 매우 무서운 형상을 한 무언가가 있었다.
“음?”
하지만 진천우는 그것이 뭔지 알아차리고, 저도 모르게 기 빠진 소리를 냈다.
-식! 식!
그건 확실히 매우 무서운 뱀의 형상을 했다.
아니, 정확히 뱀이 맞았다.
-식!
허나 매끈한 흰 몸체를 가진 그것은 기껏해야 엄지손가락 굵기에 세 치 길이에 불과했다.
뭐, 그게 마냥 작은 크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숨겨진 통로를 통과하면서 온갖 말도 안 되는 위험을 상상했던 만큼 살짝 김이 빠진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보아하니 독사도 아닌 평범한 뱀이군.’
설마 자신이 저런 뱀 따위에 쓰러질까.
-식!
그때, 백사도 진천우를 발견했다.
-식?
녀석이 진천우를 보며 잠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식!!
뭔가에 매우 크게 놀란 듯, 몸을 놀렸다.
-식식!
백사는 그대로 통로 끝 작은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따로 더 기척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녀석은 이대로 달아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싱겁군.’
도대체 저 뱀은 뭘까?
진천우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그리고 끝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어?”
그러다 또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고 인상을 썼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당연했다.
“이게?”
진천우가 눈앞에 보이는 빛무리를 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출구?”
그랬다.
어느새 그는 통로 끝까지 도달해버렸다.
저건 정말 출구가 맞는 걸까?
* * *
휙!
천마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숨겨진 통로 입구에 남은 흔적은 비교적 최근에 남긴 것이다.
그 말인즉, 자신과 먼저 안으로 들어간 자와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로 따라잡아야겠지.’
따라잡으면?
그다음은?
쓸데없는 질문이다.
씩!
천마가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 또한 먼저 들어간 진천우처럼 숨겨진 통로에 온갖 방해가 있을 거라 확신했지만, 행동은 정반대였다.
진법? 기관?
그까짓 게 제 앞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있나!
휙!
그때, 갑자기 천마를 향해 뭔가가 날아왔다.
-식!
그건 조금 전에 진천우가 놓친 백사였다.
슥!
천마는 그 즉시 제 쪽으로 날아온 백사를 반 토막 냈다.
‘뭐지?’
그는 동강 난 백사 사체를 보고 도리어 고개를 저었다.
설마 이런 거로 자신의 발길을 늦출 생각인가?
그럴 리가!
-식! 식식!
“역시!”
천마가 곧바로 동강 난 뱀 사체에서 눈을 뗐다.
그가 고개를 들자마자, 사방에서 백사들이 달려들었다.
수십, 수백, 아니 수만 마리가 넘는 백사가 천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 통로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것들은 잠깐 사이 엄청난 기세로 튀어나왔다.
슥!
하지만 천마는 이번에도 가벼운 손짓만으로 백사들을 모조리 도륙 냈다.
그것으로 끝나면 참 좋으련만.
-식! 식식식!
아쉽게도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백사 수만 마리를 도륙 내자 다시 수만 마리가 새로 등장했다.
스르륵!
게다가 그것들은 처음 모습을 보인 평범한 백사와 달리 몸속에 지독한 독을 품고 있었다.
허나 당연히 그런 독으로는 천마의 걸음을 늦출 수 없었다.
휙!
천마는 또다시 손짓 한 번으로 독사 수만 마리를 도륙 냈다.
-쉬익!
그러자 이번에는 더 지독한 독을 지닌 독사들이.
-쉬이이익!!
그다음에는 천하에 손꼽힐 독을 지닌 독사들이 등장했다.
도대체 이곳에 얼마나 많은 뱀이 있는 거지?
휙!
그럼에도 천마는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그것들을 모두 치워버렸다.
-쉬이익!
그런데 그다음 나타난 것.
“허?”
그걸 본 천마가 이번에는 조금 많이 놀란 듯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쉬익! 쉭쉭!!
아름드리나무보다 더 굵은 몸체에 삼층 전각보다 긴 길이의 뱀.
틀림없는 영물이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다.
-쉬이익! 쉭! 쉬이이익!!
무려 세 마리의 영물 뱀이 천마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휙!
-쉭!
놀랍게도 그것들은 천마의 손짓을 보고 몸을 비틀어 피하기까지 했다.
천마가 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허나 하나만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나보다 먼저 들어간 놈은 이것들을 피한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어딘가 숨은 장치라도 있는 건가?’
-쉬익!
천마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영물 뱀들이 다시 그를 덮쳤다.
‘그럼 그 장치는 어딨는 거지?’
이때, 천마는 존재하지도 않는 장치를 찾느라 어쩔 수 없이 그것들과 잠시 어울려 줘야 했다.
‘이 주변을 내 감각으로 완벽히 뒤졌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다니. 도대체 어떤 장치이길래 이렇게 꼭꼭 숨긴 거지?’
……아무래도 그는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 * *
빛무리가 펼쳐지던 출구는 함정이 아니라 정말 출구였다.
“여긴?”
진천우가 통로 밖, 녹음이 우거진 숲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울창한 나무 틈새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셨지만, 그가 눈살을 찌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누구?’
숲 한가운데 작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끝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 위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제 또래 정도 되는 사내.
그는 품이 큰 도복 차림에 옆에 제 키보다 훨씬 긴 창을 들었다.
“자네가 첫 번째군.”
“첫 번째?”
“그래, 경계의 틈에 들어온 첫 번째.”
슥!
사내가 뜻 모를 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손에 든 창을 이쪽으로 겨눴다.
“아쉽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네.”
휙!
진천우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우스워서.
‘이깟 창으로 날 죽이겠다고?’
아무리 봐도 지금 사내의 움직임은 무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한낱 범인의 움직임.
창의 투로가 눈에 훤했다.
하지만 진천우는 상대를 낮잡아 보는 걸 그쯤에서 멈췄다.
이곳은 여전히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소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상대.
휙!
그는 곧바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이대로 창을 쳐내고 저자의 한 팔을 잘라버려야겠다.
바로 목을 베지 않은 건, 상대에게 경계에 대해 물을 게 있어서였다.
쉬익!
검이 빠르게 상대의 창대를 향해 날아갔다.
진천우는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제 쪽으로 날아오는 창을 노려보았다.
혹시나 마지막에 사내가 숨겨둔 실력을 꺼낼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사내는 진천우가 휘두르는 검과 부딪치는 그 순간까지 여전히 평범하디 평범했다.
챙!
그 직후, 커다란 소리가 터지자, 진천우는 확신했다.
이대로 제 검이 저 창을 날려버리리란 걸.
“?!”
허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건, 예상을 뛰어넘는 말도 안 되는 광경.
‘왜 내 검이 부서진 거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쉬이익!
검이 부서질 정도로 충격이 있었음에도 자신을 노린 창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뻗어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진천우가 바로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지만, 어쨌든 그가 전력으로 대나이신법을 발휘하면 절대 못 피할 창이 아니었다.
쉑!
그런데 창이 여전히 진천우를 노리고 날아왔다.
휙! 휙!
그가 오른쪽으로 몸을 피하면, 창도 오른쪽으로 꺾였다.
휙! 휙!
반대로 왼쪽으로 꺾어도 창이 계속 따라왔다.
휙!
결국 진천우는 전력을 다해 뒤로 달아났다.
다행히 그의 발은 창이 날아오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쉐엑!
하지만 그렇게 하자, 창은 곧바로 처음의 몇 배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도대체 어떻게?!’
앞서 말했듯 창을 쥔 사내의 실력은 평범한 범인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이같이 뛰어난 창술을 지녔을 리…….
“어?”
그 순간, 진천우는 보았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이 더 이상 사람의 손에 들려있지 않다는 걸.
도복 차림의 남자는 아예 저 멀리서 자신이 땀을 뻘뻘 흘리며 창을 피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창을 던진 건가?’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해지겠지만, 진천우는 자신이 직면한 상황이 그리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달리 다른 선택이 없었다.
휙!
그는 급히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만약 정말 창을 던진 게 다라면, 그 창은 당연히 자신의 왼쪽으로 날아가야 했다.
휙!
‘역시나!’
하지만 창은 저 혼자 공중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물건.
그러나 이를 알아차리는 게 너무 늦었다.
푹!
창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쿵!
진천우는 그대로 몸에 창에 박힌 채 뒤로 쓰러졌다.
“필중(必中)의 창이다.”
사내가 그 모습을 보며 슬며시 조소를 지었다.
분명 자신은 무공을 지니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지만, 제 손에 들린 창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한번 노린 곳에 반드시 박힌다.
그렇기에 꿰뚫지 못하는 게 없는 창.
이 창이야말로 그 유명한 모순(矛盾) 고사에 등장하는 바로 그 창.
“이처럼 세상의 이치를 비트는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이를 바로 선인(仙人)이라고 하지.”
그리고 그런 선인들은 경계 너머에 무수히 산재 돼 있다.
“너희 경계 밖의 놈들은 그저 때가 올 때까지 행복하게 살다 그때가 되면 모조리 사라지면 그뿐이거늘, 어찌 천기를 거스르려 하느냐?”
사내가 창을 회수하기 위해 진천우 쪽으로 다가왔다.
“…….”
“…….”
그는 잠시 쓰러진 진천우를 내려다보더니, 무언가 말할 듯 말 듯하다 결국 입을 닫았다.
이제 와 때늦은 충고가 무슨 상관일까?
사내가 곧바로 자신의 창을 다시 회수하려고 했는데.
덥석!
“그 말 계속 지껄여 봐라.”
창에 찔러 죽은 줄 알았던 사자(死者)가 제 가슴을 찌른 창을 움켜잡더니,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