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 삼자 회의
(173/210)
173화 : 삼자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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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화 : 삼자 회의
2022.08.08.
“안에 있던 영물은 꽤 강했을 텐데, 생각보다 일찍 나왔군.”
‘사도련주!’
진천우가 맨 앞에 선 이를 보고 눈을 치켜떴다.
지하에서 지도를 획득하고 바로 떠난 줄 알았는데, 왜 아직 남아있지?
‘설마 우리를 기다린 건가?’
그 즉시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무림 최악, 최흉이라는 사파인의 정점에 군림하는 자다.
굳이 성향을 제쳐 두고라도, 그러한 위치에 있는 자가 아무 이유 없이 행동할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도련주 바로 옆에 선 이에게 있었다.
“맹주님?!”
무진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더니, 서둘러 양 눈을 손으로 비빈 뒤 다시 한번 소리쳤다.
“정말 맹주님이십니까!?”
어째서? 어떻게!
이곳은 사도련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다.
그런 곳에 련과 대적점을 지닌 맹의 최고 수뇌가 있을 수 있지?
심지어 맹주는 사도련주와 달리 절대 고수이긴커녕, 어떤 무공도 쓰지 못하는 범인이었다.
그가 지닌 상징성과 거기에 완전 대비되는 유약함을 생각하면, 절대로 맹 밖을 떠나서는 안 되는 존재다.
“그렇기에 반드시 내가 직접 나서야 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구나.”
슥!
맹주가 주름진 손을 무진의 어깨 위에 올렸다.
그는 아주 단순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킬 줄 알았다.
지금 당장도 특별한 내가중수법이나 혈도를 자극하는 방법을 쓴 것도 아닌데, 무진은 맹주가 올린 손을 시작으로 가슴과 온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정말 맹주님이시군요.”
“그래.”
“그럼 맹주님, 도대체 이곳에는 왜 오신 겁니까?”
“저들이 불렀는데, 안 올 수가 있어야지.”
아니, 맹주가 누가 부른다고 가는 그런 위치인가?
아무리 사도련주라도 함부로 맹주를 오라 가라 할 수 없었다.
“음?”
그때, 맹주의 말을 유심히 듣던 진천우가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저들?’
하나가 아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억?!”
그뿐 아니라 무진도 뒤늦게 숨을 크게 토했다.
누군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작은 체구에 어떠한 기운도 드러내지 않은 평범한 아이.
그러나 그 아이를 본 순간, 진천우는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확실히 사도련주 한 사람으로는 맹주를 부르지 못하지만.’
사도련주와 저자가 함께라면, 아무리 맹주라도 직접 맹 밖으로 나오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맹주를 부르는 수단으로 사마대전이란 말도 안 되는 짓까지 저지른 판국에!!’
“늦어서 미안하군.”
새로 도착한 인물이 무심하게 한마디 뱉고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슥!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 쪽으로 천천히 손을 내밀더니, 마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로 다시 입을 뗐다.
“그럼 바로 회의를 시작하지.”
그렇게 천마의 제안과 함께,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천하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세 절대자와 구경꾼 둘이 머리를 맞대었다.
* * *
“어리군.”
“넌 늙었고.”
“그게 전설로만 전해지는 반로환동인가?”
“그래, 네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경지지.”
우우웅!
천마와 사도련주가 가볍게 기운을 일으켰다.
허나 가볍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둘의 수준을 생각해서지, 거기 있던 다른 이에게는 전혀 포함되지 않는 소리였다.
슥!
다행히 둘은 여기서 진짜 사마대전을 펼칠 생각은 없었는지, 곧 기운을 갈무리했다.
‘제법…….’
‘아무렇지 않게 제압하는 건 힘들겠군.’
잠깐의 기세를 나눈 뒤, 천마와 사도련주는 서로를 인정했다.
역시 반로환동의 경지에 괜히 전설로 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반면, 천마는 사도련주도 제 경지의 거의 턱 밑까지 닿았다고 느꼈다.
확실히 반로환동은 늙은 몸을 젊게 바꿔주지만, 천마는 너무 젊어진 까닭에 오히려 반로환동 전보다 더 약해졌다.
물론 빠른 시일 내로 과거 전성기 이상의 실력을 구가하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사도련주가 버거운 상대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둘 다 말다툼이나 하려고 날 부른 건 아니겠지요?”
적절한 시기에 맹주가 끼어들었다.
“크흠!”
“…….”
둘은 헛기침과 침묵을 보이며, 마지막 남은 미련마저 끊었다.
“확실히 이런 거나 하려고 우리가 모인 건 아니지.”
사도련주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하더니, 천천히 손에 쥔 지도를 땅에 펼쳤다.
“이거군요.”
맹주가 바로 지도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를 여기까지 오기 위해 큰 수고를 치렀다.
일부러 사도련과 교가 충돌하는 극단적인 일을 일으키면서까지 천하의 이목을 집중시켜, 간신히 비밀스럽게 여기로 온 것.
그런 귀찮은 짓을 벌인 대가는 상당했다.
“여기 지도의 동쪽 부분이 맹이 가진 정보와 정확히 일치하는군요. 그리고 서쪽에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은 맹에서도 정보가 많지 않아서.”
“그쪽은 련이 가진 정보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군요. 그럼 이 지도와 맹, 련이 가진 정보대로라면, 동쪽과 서쪽에 경계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군.”
맹주와 사도련주가 각자 자신이 가진 기밀을 풀었다.
역시나 그들은 경계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두 곳이 경계로 향하는 입구?’
옆에서 함께 지도를 보던 진천우가 뜻밖의 정보를 접하고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그렇게 한참 두 사람이 정보를 나눈 뒤.
“그럼.”
“그쪽은 뭐 없으신가?”
맹주와 사도련주가 동시에 천마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대로 맹과 련의 기밀을 듣기만 하고 아무것도 내주지 않으려고?
천하의 천마가 어디 그런 시정잡배 같은 짓을!
피식!
시선을 느낀 천마가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두 곳을 인정해주지.”
“음?”
“무슨 뜻이지?”
사도련주와 맹주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천마가 부연 설명을 했다.
“교는 그 두 곳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게…….”
“수작 부리지 마라.”
천마가 맹주의 말을 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가 찾았다는 두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돼 있을 텐데?”
“…….”
“안 그래도 한정된 그곳에 교의 몫까지 나눠줄 생각인가?”
“…….”
“그럴 필요 없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직접 나아가겠다.”
휙!
천마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맹주는 그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 천마를 불렀을 때부터, 그가 열성적으로 협력할 거란 기대는 추호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천마는 떠나면서 필요한 모든 말을 남겼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직접 나아가겠다.
즉, 련과 맹이 찾은 통로 외에 교가 찾은 세 번째 통로가 존재한다는 뜻.
통로가 셋이라면, 맹과 련이 다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후우!”
맹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천마가 직접 나설 모양입니다.”
“그래 보이는군.”
그가 직접 나선다면 세 번째 통로의 진압 여부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천마가 안 된다면, 누가 나서도 힘들 테니까.
“그럼 교의 일은 이것으로 일단락하면 되겠군요.”
“그리하면, 남은 건 련과 맹의 일이겠군.”
련주와 맹주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잠시 뒤 서로 눈을 맞췄다.
그것만으로 그들 사이에 시뻘건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둘은 너무 오랫동안 격렬히 반목한 탓에, 도리어 친형제 이상으로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 협상을 시작해보지요.”
맹주와 련주가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며, 빠르게 양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이쪽은 련이…….”
“저쪽은 맹이…….”
둘은 사전에 짠 것처럼 빠르게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가져갔다.
이때까지는 큰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협상이 계속 진행되고, 둘 다 어느 정도 필요한 건 모두 확보한 뒤가 문제였다.
“크흠, 여긴…….”
“흥! 이쪽은 안 된다.”
“왜 안 됩니까?”
“아무튼, 안 된다면 안 돼!”
“죄송하지만, 맹도 여긴 포기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필요한 건 모두 확보했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 하나 앞에서 둘은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어허!”
“안 됩니다.”
우우웅!
어찌나 그 기세가 격렬한지, 사도련주가 저도 모르게 기세를 올릴 정도였다.
다행히 련주의 진심이 아니니 그 기세는 그리 대단치 않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맹주에게는 그 정도도 참기 힘든 수준이었다.
슥!
그때, 무진이 조용히 맹주 옆에 서서 사도련주의 기운을 끊었다.
영물의 내단을 완전히 소화한 덕분이었다.
“호?”
이에 사도련주가 잠시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걸로 사마대전에 이어 정사대전까지 벌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사마대전도 따로 목적이 있어 꾸민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니…….”
맹주와 련주가 협상을 재개했지만, 여전히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둘의 의견은 계속 평행선을 이뤘다.
“흐음!”
“크음!”
결국, 둘이 동시에 언짢은 표정을 짓던 그때.
“아!”
사도련주가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신이 난 표정으로 입을 뗐다.
“뭣?!”
이를 들은 맹주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도대체 이런 걸 생각해내다니.
과연 사도련주!
‘역시 제정신이 아니군!’
하지만 그의 의견이 아무리 비상식적이라도, 이 상황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담 답은 하나였다.
“알겠소.”
“좋아! 드디어 해결됐군.”
척!
그렇게 둘은 오랜 협상 끝에 서로 앞으로 내민 손을 움켜 쥐며 극적타결을 맺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안건이 해결되자, 다음은 쉬웠다.
“이건…….”
“저건…….”
얼마 뒤, 맹주와 련주는 협상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협상이 모두 끝났을 때, 맹주 옆을 지키던 무진만이 뭔가 좋지 않은 기색을 보였다.
“맹주님.”
“응?”
그는 조심스럽게 맹주를 부르고,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맹주는 처음에는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싶었다.
“아!”
잠시 뒤, 그는 무진이 이러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맹주와 련주의 협상에서 두 통로에 진입할 인물을 정했다.
거기에 무진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진천우는 들어있지 않았다.
물론 맹주가 그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 통로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 있기에 인원을 엄선해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모두 마친 뒤, 맹주는 진천우를 통로에 진입하는 인원에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안하네.”
물론 그간 파악한 진천우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렇기에 맹주는 사과와 함께 그에게 통로에 진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을 맡기려 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진천우는 맹주의 사과를 정중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럼 전 앞으로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는 맹주가 따로 맡길 역할 대신 스스로 재 역할을 정할 예정이었다.
이미 그에 필요한 조건을 타이쿤이 충족시켜 주었다.
진천우가 제 눈앞에 나타난 푸른 현판을 확인하며, 다시금 맹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경계로 진입하는 숨겨진 통로를 찾으시오.]
[아직 누구도 찾지 못한 경계의 통로가 있습니다. 이를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