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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 조우 (165/210)


165화 : 조우
2022.07.20.


달칵!

무언가가 달아났다.

그런데 그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녀석은 마치 제비처럼 빠르게 땅을 훑으며 달려갔다.

평범한 무인의 경신법으로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속도.

하지만 현석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

휙!

그는 몸 안에 갈무리된 충만한 내력을 이용해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달칵?!

놈이 자신을 뒤쫓는 인간을 보며 흠칫 몸을 떨었다.

곧바로 녀석은 더욱 속도를 올렸다.

그 앞에 조금 전 현석이 박살 낸 수많은 인형 파편이 널브러져있었지만, 놈은 그 모두를 미끄러지듯 피했다.

사실 이것들을 피하면서 달아나는 건 쓸데없이 시간을 끄는 일이다.

허나 녀석이 그리한 이유는, 이들 파편 너머에 몰래 숨겨진 통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만 통과하면 저 인간은 절대 자신을 쫓아올 수 없었다.

팟!

즉시 숨겨진 통로로 몸을 날렸다.

놈은 눈앞의 통로를 보며 성공했다며 확신했다.

그러나 그때.

덥석!

어느새 숨겨진 통로 앞에 선 현석이 놈을 손아귀에 쥐었다.

달칵! 달칵달칵!!

놀란 녀석이 다급히 발버둥 쳤다.

허나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결국 손바닥 안.

“허 참!”

현석이 제 손에 붙잡힌 놈을 보며 혀를 찼다.

살아생전 이리도 신기한 걸 볼 기회가 몇 번이나 되겠는가?

‘처음 여기서 목각 인형이 움직이는 것도 놀랍고 신기했지만, 녀석들은 스스로 움직이기보다는 따로 기관이나 장치에 의해 움직인다는 느낌이었는데.’

이 녀석은 달랐다.

그러니까 지금 제 손에 쥐어진, 한 뼘보다 조금 더 큰 검은색 목각 인형은.

달칵달칵! 달칵!!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에서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네 정체가 뭐냐?”

달칵!

“어떻게 혼자 움직이는 거지?”

달칵!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달칵!!

현석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인형은 그의 손에서 벗어날 생각뿐이었다.

말을 못 하는 건가?

아니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건가?

“날 공격한 목각 인형들을 조정한 게 너냐?”

멈칫!

최소한 의사소통은 되는 모양.

달칵달칵!!

그 직후, 녀석은 언제 자신이 움직임을 멈췄냐는 듯, 일부러 아까보다 더 크고 거칠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다고 넘어갈 현석이 아니었다.

“다시 묻지. 내 질문에 답할 생각은?”

달칵달칵!

인형은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 양 몸부림만 쳤다.

“그래, 알겠다.”

현석이 갑자기 목소리를 깔았다.

자신은 이미 같은 질문은 두 번이나 물었다.

그런데 녀석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그의 사부 사도련주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는 걸 아주 싫어했다.

그리고 제자는 사부를 닮기 마련.

아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생각하면, 제자란 마땅히 사부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넌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

녀석이 뭔가 잊은 것 같은데.

꽈악!

달칵!

지금 네놈을 손에 쥐고 있는 게 누군지를.

꽈아악!

현석이 목각 인형을 강하게 쥐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단단하군.’

적어도 자신이 박살 낸 다른 목각 인형들보다 훨씬 단단했다.

좋은 일이다.

그 말은 적어도 그것들보다는 쉽게 박살 나지 않을 거란 얘기.

‘마음껏 힘주어 쥐어틀어도 되겠군.’

꽈악!

현석이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달칵달칵!

그러자 녀석이 곧바로 온몸을 비틀며 그것에 반항했다.

“호?”

확실히 보통 힘이 아니었다.

현석은 따로 낚시를 해본 적 없지만.

‘아마 낚시꾼들이 말하는 손맛이 이런 거겠지.’

그는 그 손맛을 더 느끼기 위해 다시 손에 힘을 더했다.

꽈아악!

달칵달칵!

그러자 놈도 더욱 거칠게 반항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꽈아악!!

달칵!!

꽈악!

달칵!

꽉!!

달……칵!

꽉!!!!

…….

결국, 짧은 실랑이 끝에 놈이 침묵했다.

‘끝났나?’

현석이 제 손 위에서 축 늘어진 목각 인형을 바라보며 살짝, 아주 살짝 손에서 힘을 뺐다.

휙!

그 순간, 놈이 곧바로 몸을 일으켜 현석의 손에서 달아났다.

영악한 것!

알고 보니 녀석은 죽은 척한 것이다.

그러나 현석도 만만치 않았다.

척!

녀석이 처음부터 자신을 피해 달아나려 했던 곳은 복도 중앙에 뚫린 쥐구멍.

그런데 그 구멍은 이미 현석이 한쪽 발로 막아버렸다.

놈을 손에 쥐어짜는 동안, 진작에 쥐구멍의 위치를 찾아두었다.

달칵?!

목각 인형은 제 구명줄이 가로막힌 걸 보고 잠시 멈칫했다.

쾅!

그 틈을 노려 현석이 놈의 허리를 밟아버렸다.

달칵!

놈이 발아래에서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으로 움켜쥐는 것보다 발로 밟는 게 훨씬 강하다.

목각 인형은 자신이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빠져나갔다고 여겼겠지만, 사실은 현석이 그저 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녀석을 일부러 놓아 준 것이었다.

꽈아악!

현석이 체중을 실어 인형을 밟았다.

그것도 그냥 밟는 게 아니었다.

꽈아아악!!

일부러 발바닥을 좌우로 비틀며, 말 그대로 가볍게 지르밟았다.

달칵!!

녀석은 그래도 몇 번은 더 반항을 하는가 싶더니.

툭!

한 번.

툭툭!!

두 번.

툭툭툭!!!

세 번.

툭툭툭툭툭!!!!

그렇게 제 몸을 밟고 있는 발을 손으로 계속 치면서 완전 항복의 뜻을 내비쳤다.

“그래. 그래야지.”

현석이 그제야 목각 인형이 제 말을 들을 태도가 됐다며, 살짝 발을 들려는데.

스륵!

갑자기 그의 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일부러 떨군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게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현석의 품에서 떨어진 붉은 천은.

달칵?!!!

그대로 목각 인형을 덮었다.

그런데 녀석은 그저 얇디얇은 천에 덮였을 뿐인데.

달칵달칵!!!!

탁탁탁탁탁탁탁!!!!

아까 항복할 때보다 더 격려하게 현석의 발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 * *

달칵달칵!

“흠…….”

손바닥 크기의 검은 목각 인형은 한번 항복한 뒤부터, 아니, 자신을 덮었던 붉은 천을 걷어준 뒤부터 태도를 바꿨다.

아주 순종적으로.

달칵달칵!

“그렇단 말이지?”

그 뒤부터 녀석은 현석이 묻는 말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달칵!

아쉽게도 인형은 말을 할 줄 몰랐다.

달칵달칵!

대신 녀석은 손짓 발짓으로, 그게 안 되면 바닥에 어설픈 그림을 그려서라도 어떻게든 현석이 묻는 말에 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덕분에 대충 의문이 해결되었다.

“그러니까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에 갇혀있었다?”

달칵!

목각 인형이 거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그런데 최근 한 인간이 이곳을 찾았다?”

달칵!

‘아마 그 사람이 사부인 모양이군.’

“그 인간이 널 바깥으로 꺼내려 했지만, 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달칵!

“밖으로 나가려면 이 붉은 천이 필요하다?”

달칵!

녀석은 현석이 다시 붉은 천을 꺼내자, 매우 두려운 듯 뒤로 물러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석이 바로 붉은 천을 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넌 붉은 천이 있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지?”

달칵칵!

목각 인형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말 몰라?”

달칵!

다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인형.

“흠…….”

‘정말 모르나?’

의심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당장은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목각 인형은 현석을 제 주인으로 인정했다.

“왜 갑자기?”

확실히 느닷없다.

달칵!

그러자 인형은 자신도 처음에는 현석이 제 주인인지 긴가민가했는데, 여러 시험 끝에 그를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했다고 했다.

달칵달칵!

아마 처음부터 자신이 현석을 주인이라 확신했다면, 이백 개의 목각 인형이 달려드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달칵!

결정적인 건 현석이 아까 집어넣은 붉은 천.

“이게 왜?”

달칵달칵!

목각 인형은 그 천은 제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달칵!

끝으로, 그럼에도 넌 아직도 내 주인인지 긴가민가하다고.

그래도 일단은 주인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흠…….”

대충 녀석에게서 들어야 할 건 모두 알아냈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사부가 돌아오면 직접 물어봐야겠군.’

연무장 지하에 숨겨져 있는 계단을 찾아준 것도, 자신에게 아래로 내려가라 한 것도 사도련주였다.

아마 사부는 이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올라가지.”

사도련주는 자신에게 지하에서 힘을 길러 교의 무인들을 막으라고 했다.

거기에 필요한 자리는 둘째 제자가 내줄 거라고 했다.

다행히 아래에서 보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서둘러 올라가면 늦지 않겠다 싶었다.

달칵!

현석이 위로 올라가려 하자, 목각 인형이 냉큼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더니 현석의 소매 속에 쏙 들어갔다.

“…….”

달칵!

그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가만히 노려보자, 녀석은 오히려 뭐냐는 얼굴로 현석을 바라보았다.

참고로 목각 인형에 얼굴 표정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도 고갯짓하는 모습이 마치 진짜 얼굴 표정이 느껴질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쯧! 됐다.”

결국, 현석도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며, 자신이 내려올 때 사용한 계단을 올랐다.

탁!

그가 계단을 모두 올라 연무장 바닥을 열고 위로 나오려는데.

쾅!!

“음?”

느닷없이 위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무슨 일이지?”

현석이 급히 기감을 올려 주위를 살폈다.

‘근방에 다수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디론가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그냥 이동만 하는 거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쾅! 쾅쾅쾅!!

그것들은 무슨 이유인지 련의 여러 기물을 차례로 박살 내며 이동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리고 의문은 또 하나 있었다.

이곳이 어딘가?

무려 맹과 교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는 초거대 세력인 사도련의 한가운데였다.

왜 련에서는 저 같은 행위를 막지 않는 거지?

당장 생각나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저게 모종의 이유로 련이 직접 주관하는 일일 거란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아주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설마 교에서 쳐들어온 건?’

그럴 리가!

현석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지하로 내려가기 전에 사부에게 사마대전에 대해 들었지만, 자신이 아래로 내려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교가 쳐들어온단 말인가.

‘게다가 련의 무인들이 아무렴 여기까지 교의 침입을 허용할까?’

그렇게 현석이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려 했다.

“음?!”

그때, 그가 방금 펼친 기감에 누군가 잡혔다.

문제는 그 상대 역시 현석을 눈치챘다는 것.

그러더니 그자는.

쾅!

곧바로 자신의 앞을 막는 벽을 박살 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쾅쾅! 쾅쾅쾅!!

그자는 그야말로 무식하게 현석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쾅!

그리고 얼마 안 가 마지막 남은 벽마저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벽을 뚫고 등장한 이는 검은 무복 차림의 여성이었다.

“넌 뭐냐?”

“…….”

슥!

그녀의 물음에 현석은 바로 마도를 꺼냈다.

그는 사도련주의 제자다.

게다가 련의 수뇌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련주의 셋째 제자와 비무해 승리했다.

그런 자신을 모른다?

‘적이군.’

더는 어떤 설명이 필요없었다.

휙!

현석이 바로 눈앞의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 상대가.

씨익!

자신에게 달려드는 현석을 보고 입꼬리를 사정없이 비틀었다.

“재밌네?”

소천마는 마치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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