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 사마대전 (1)
(163/210)
163화 : 사마대전 (1)
(163/210)
163화 : 사마대전 (1)
2022.07.16.
와아아!
“이 무슨?!”
련의 입구를 지키는 무인은 제 눈을 의심했다.
확실히 위에서 조만간 사마대전이 발발할 거란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리 빨리 시작될 거라고는 듣지 못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근처에 정체모를 무리가 나타났단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바로 위에 보고했지만, 그때까지도 그것들의 교의 마인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놈들이 이렇게 다짜고짜 돌진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 무리를 이끄는 자는 머릿속에 전략이란 게 아예 없는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무식한 행위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당장 지금의 상황만 해도, 누구도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준비가 돼 있을 리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순순히 당할 련이 아니었다.
“당장 타종을 하고 문을 닫아라! 그리고 무기를 들어라! 지원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적을 막아야 한다!”
땅땅땅!
곧바로 사방에 시끄러운 종소리가 울리고, 련의 무인들이 무기를 꺼냈다.
아무리 전쟁 준비를 다 끝마치지 않았어도 이곳은 련의 입구, 즉 사도련의 얼굴이다.
원래부터 방비를 철저히 하던 곳이고, 전쟁 준비를 가장 먼저 시작한 장소이기도 했다.
때문에 지금 입구를 지키는 무인들은 평소의 배나 되는 인원인 백 명.
이 정도면, 타종 소리를 듣고 지원이 올 때까지 충분히 견딜 수 있으리라 봤다.
확실히 그 생각은 옳았다.
끼이익!
게다가 무려 한 뼘 두께의 강목으로 이뤄진 사도련의 대문까지 굳게 닫았으니, 더욱더 그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허나 문을 지키는 무인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교의 무인들을 이끄는 자의 존재.
쾅!!
조금 전 굳게 닫힌 대문이, 느닷없이 순식간에 박살 냈다.
“무, 무슨?!”
그 충격으로 저 멀리 날아간 무인들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부서진 대문을 바라보았다.
스윽!
잠시 뒤, 흙먼지가 걷힌 자리에 웬 여인이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정리하며 박살 난 대문 파편 위에 섰다.
소천마는 자신을 바라보는 백 명의 시선을 무심하게 훑어보다, 툭 하고 한마디 뱉었다.
“쓸어버려.”
처음에는 저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말이 자신들에게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련의 무인들은 오늘 이때까지 미인계 같은 건 믿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허나 마치 인세의 것이라 믿기지 않는 고혹적인 매력을 품은 소천마를 마주한 뒤부터, 그들의 판단력은 저도 모르는 새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틈을 교의 무인들이 놓칠 리 없었다.
와아아아아!!
그들이 소천마의 명을 따르기 위해 몸을 날렸다.
“마, 막아라!”
“죽는 한이 있어도 막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련의 무인들이 침입자를 막으려 검을 뽑았지만, 교의 검은 물결은 놀랍도록 빠르게 밀려들었다.
“막아라! 절대 물러서지 마라!”
“여기가 뚫리면, 사도련의 입구가 뚫리는 거다!”
“절대 그 같은 일을 허락지 마라!”
련의 무인들이 사력을 다해 막아섰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교의 무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절반이 넘는 인원이 제압당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도 머지않아 제압당할 게 자명했다.
그렇게 련의 무인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갈 때쯤.
땅!
갑자기 귀청을 찢는 커다란 소리에 련과 교의 무인들 모두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뒤, 절망에 빠져 있던 련의 무인들이 갑자기 기세를 올렸다.
이윽고 이들의 기세는 등 뒤에서 거칠게 울리는 한 남자의 고함으로 절정을 찍었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더러운 발을 들이는 것이냐!!
커다란 거한이 곧바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따르는 한 무리의 무인들도 거한을 따라 적을 막아섰다.
“셋째 공자님이다!”
“와아! 지원이 도착했다!!”
사도련주의 셋째 제자는 황급히 달려온다고 겨우 십수 명의 수하밖에 데려오지 못했지만, 등장과 동시에 완전히 사그라든 줄 알았던 무인들의 기세를 다시 불피우고도 남았다.
그가 일으킨 불길에, 조금 전까지 모든 걸 쓸어버릴 것 같던 교의 검은 물결이 주춤할 정도였다.
‘겨우 한 놈이 모습을 보였을 뿐인데?!’
혈마도가 달라진 련의 기세에 혀를 내둘렀다.
‘서둘러 저 기세를 끊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는 잔뼈가 굵은 무인답게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여기서 그와 같은 일을 해낼 자는.
“멧돼지 같은 놈이군.”
……아쉽게도 자신이 아니었다.
휙!
소천마가 나섰다.
“네년이냐!”
셋째 놈도 한눈에 누구를 꺾어야 적의 기세를 완전히 죽일 수 있는지 알아차렸다.
부웅!
그가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턱!
“아니!?”
그러나 소천마는 셋째의 검을 맨손으로 잡아냈다.
“말도 안 되는!”
셋째는 자신의 검이 희고 고운 섬섬옥수에 붙잡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손에 쥔 검에 내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우우웅!
검이 커다란 울음을 토해냈다.
셋째가 지닌 기운은 기본적으로 양기(陽氣).
내력을 머금은 검이 순식간에 붉게 달궈졌다.
그럼에도.
“잔재주는 이게 끝인가?”
끄그극!
소천마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셋째의 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검째 셋째를 힘으로 찍어눌렀다.
“!?”
당연히 그는 가만히 당할 수 없었다.
셋째가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그녀의 손에서 검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러니까 잔재주는 소용없다니까.”
으득!
“컥!”
결국 검을 빼내지 못하고, 그대로 소천마의 손에 눌려 땅으로 떨어졌다.
“…….”
“…….”
모두가 그대로 말을 잃었다.
련의 무인들도, 교의 무인들도.
사도련주의 셋째 제자는 꺼지기 직전의 불꽃을 즉시 되살려낼 정도의 인물.
그런 그가 이리도 허무하게 패배할 줄 몰랐던 련의 무인들은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더불어 교의 무인들도, 제 주인이 지독한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르르!
이 순간 몸을 잘게 떠는 이는 련보다 교가 더 많았다.
퍽!
“컥!”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물결이 련의 무인들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바로 혈마도가 소천마에게 다가갔다.
“…….”
그녀는 혈마도가 가까이 다가와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이번에도 바로 쳐들어가실 겁니까?”
혈마도가 지금 소천마가 노려보는 련의 심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느닷없이 사도련의 입구를 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일단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두근!
오히려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설마 그녀가 이처럼 대단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소천마는 마치…….
‘안 된다. 감히 그분과 이분을 비교하다니.’
혈마도가 아주 잠시 교의 진정한 주인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급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 불경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감히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소천마의 행보가 충격적임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어쨌든, 이제 그녀가 명한다면 련의 심부를 치는 것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헌데.
씨익!
소천마는 계속 사도련의 심부를 노려보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아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나오시지.”
…….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기에 혈마도는 그녀가 왜 허공에 대고 뭐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천마가 다시 입을 떼기 시작하자.
“시험 삼아 보낸 사제가 이렇게 처참하게 깨지는 건 예상에 없었을 텐데? 참고로 거기서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이 녀석을 죽여주진 않을 거야. 누구 좋으라고? 헌데도 계속 거기서 죽치고 있을 거면, 좋아. 당장 사도련의 모든 담장을 무너트리고 태워버려.”
“존명!”
소천마의 마지막 말이 자신들을 향한 말임을 알고, 교의 무인들이 급히 몸을 날렸다.
아니, 그들이 막 몸을 날리려던 찰나 그녀가 손을 들어 명령을 취소했다.
모두 갑자기 눈앞에서 일렁거리는 현상 때문이었다.
그 일렁임 너머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사도련주의 둘째 제자.
방금 소천마의 말처럼 사제를 상대의 역량을 평가할 시험대로 내보내고, 대신 자신은 련의 심처에서 죽음의 함정을 준비한 자.
원래 이 함정은 반란을 성공시킨 뒤 사도련주에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교의 오백 정예가 오든, 그들을 이끄는 자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든 상관없었다.
전설적인 천마가 직접 오지 않는 이상, 교는 절대 자신의 함정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까.
허나 상대가 이를 먼저 눈치채고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사도련의 모든 담장을 허물고 불까지 지르겠다니.
이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어째서 그대가 이 같은 짓을 저지르는지 이해할 수 없군.”
“개소리하지 마. 합의한 약조를 깨고 저 안에 온갖 함정을 준비한 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어디서 발뺌이야?”
……잠깐.
합의?
무슨 합의?
련과 교가 따로 합의를 했단 말인가?
“그런 그대야말로, 이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든 것은 합의 내용에 없었을 텐데?”
둘째가 낮은 목소리로 질책했지만 소천마는 오히려 콧방귀를 꼈다.
“아니지. 내가 한 건 제대로 합의된 내용의 범위 내지. 내 덕분에 바깥의 시선을 더 잘 속일 수 있게 됐잖아? 이 광경을 보고 누가 련과 교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할까?”
?!
련과 교가 손을 잡아?
그랬다.
사실 이 두 세력은 어떠한 목적 때문에 남몰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완벽히 숨겨야 했기에, 두 세력은 사마대전이란 커다란 미끼를 던져 천하를 속이려 했다.
다만, 원래 계획은 사도련 인근의 평야에서 적당히 충돌하는 거였는데, 소천마의 느닷없는 기습으로 모든 계획이 헝클어졌다.
그렇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새로운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좋았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이른 충돌에, 아직 맹에서조차 제대로 된 감시자를 파견하지 못했다.
덕분에 지금 련 주위를 감시하는 인원은 어설픈 쭉정이뿐.
련이 그들을 속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뿌득!
분명 교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행했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둘째는 더는 그들의 폭주를 비난하지 못하고 그저 이를 갈며 입을 뗐다.
“좋소. 인정하겠소. 그럼 이제 그대들은 여기서 빠르게 물러나시오. 나머지 뒷공작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다행히도 이런 뒷공작은 둘째의 특기였다.
그는 서둘러 사도련주가 떠나기 전에 남긴 임무를 해결하려 했는데.
“…….”
“시간이 촉박한데 왜 가만히 서 있는 거요?”
어째서인지 교의 무인들은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소천마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
아쉽게도 그녀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준 인원으로 련을 쳐라.
천마에게 들은 정식 명령은 이것뿐.
그 외 교와 련의 사정은 어디까지나 혈마도가 이동 중에 떠든 내용에 불과했다.
아마 그것뿐이라면 소천마도 순순히 물러나 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를 먼저 자극한 건 다름 아닌 사도련이었다.
죽음의 함정.
그것도 원래는 사도련주를 죽이려 만든 함정.
이걸 천마를 뛰어넘으려 마음먹은 그녀가 흥미를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어차피 저걸 작동시킨 건 저쪽이다.
그 말인즉, 이후 소천마가 저걸 박살내도 따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
그러니까 그 말인즉!
“쳐라!!”
소천마는 그 즉시, 두 절대자의 계획에 없던 진짜 사마대전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