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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 비밀수련 (2) (162/210)


162화 : 비밀수련 (2)
2022.07.13.


“목각인형이라니?”

그것도 한 개가 아니었다.

달칵달칵!

지하에는 아주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 좌우로 사람 크기만 한 목각인형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한 줄에 백이 넘었다.

좌우를 합쳐 총 이백 개 이상.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분명 사도련주는 자신에게 지하로 내려가 강해지라고 했다.

그 말은, 이 목각인형들이 수련용이란 뜻인가?

‘하지만 어떻게?’

현석은 일단 입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인형에게 다가갔다.

“흠…….”

혹시 몰라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인형은 매우 평범했다.

사실 사람 크기라는 게 특이할 뿐이지, 다리 대신 긴 쇠봉으로 땅에 박힌 인형은 양팔도 좌우로 늘어트린 채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달칵달칵!

허리 부분에 손을 대니 부드럽게 돌아갔다.

‘가만 보니 인형들의 크기가 전부 미묘하게 다르군.’

그렇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진 않았다.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의 차이가 대충 한 뼘?

이 정도면 따로 목적이 있어 다르게 만들었다기보단,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그냥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좁은 복도에 좌우에 인형까지 세우다니, 정말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지?’

현석은 일단 더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한 세 발자국쯤 안으로 들어가자.

휙!

갑자기 오른쪽에 서 있는 목각인형이 저 혼자 돌아갔다.

녀석은 철로 만든 양팔을 길게 늘어트린 채 돌았기에, 그 팔이 정확히 현석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왔다.

당연히 이런 뻔한 공격에 당할 리 없었다.

현석은 여유롭게 인형의 기습을 피하고, 바로 허리춤의 마도를 뽑아 반격을 하려 했는데.

달칵!

휙!

‘내 공격을 피해?’

놀랍게도 목각인형은 그의 공격을 피했다.

단순히 속도라 빨라 놓친 게 아니었다.

바닥에 단단히 인형을 고정할 줄 알았던 쇠봉이, 그 순간 뒤로 물러나며 공격을 피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바로 따라가 박살 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현석을 노리는 건 정면의 인형만이 아니었다.

휙!

어느새 등 뒤의 인형이 팔을 휘둘렀다.

그걸 피하면 다시 정면의 인형이 달려들었다.

그것마저 피하면, 이번에는 좌우 인형이 한꺼번에 팔을 휘둘렀다.

달칵달칵!

잠시 주춤한 사이, 이제는 사방에서 네 개의 인형이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인형을 고정하는 쇠봉은 앞뒤뿐 아니라 위아래로도 움직였다.

‘저게 인형마다 높낮이 차이가 나는 원인인가?’

결국 그 높이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인형들의 공격이 완벽한 상호보완을 이뤘다.

그렇기에 피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피하지 못하면 그전에 박살 내면 그만.

휙!

현석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쪽으로 날아오는 인형을 마도로 내려쳤다.

텅!

그런데 인형은 마도와 부딪치고도 멀쩡했다.

오히려 그 공격을 정체모를 반발력으로 튕겨내기까지 했다.

‘이 무슨?!’

현석이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치켜떴다.

련주의 강기조차 베어버린 현석이었기에, 단순히 인형이 단단해서 베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인형 겉을 둘러싼 정체 모를 검은색 재질이 자신의 공격을 상당히 흡수하고, 또 튕겨내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석은, 자신이 다시 한번 진심으로 목각인형을 베려고 하면 틀림없이 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휙!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이번에는 등 뒤의 인형이 그를 공격했다.

쉬지 않고 몰려드는 공세에 현석은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 약간이라도 틈이 있으면 내력을 끌어올려 바로 반격할 텐데, 목각인형들은 바로 그 찰나의 틈도 내주지 않았다.

……

“음?”

그런데 한순간, 그토록 거칠게 날아오던 공격이 뚝 끊겼다.

현석은 당황한 얼굴로 움직임을 멈춘 인형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곧 놈들이 공격을 멈춘 이유를 깨달았다.

“처음 자리로 돌아왔군.”

그는 어느새 계단 입구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좌우에 목각인형이 세워져 있지 않은 입구로 돌아왔기에 추가 공격이 날아오지 않은 거였다.

뿌득!

이 사실을 깨닫자, 절로 이가 갈렸다.

아마 처음부터 목각인형들의 목적은 이거였겠지.

복도 안으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

자신은 녀석의 의도대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났다.

상대는 살아있지 않은 인형이지만,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당한 채 넘어갈 수 없지.’

슥!

현석이 마도를 도집에 넣었다.

이미 제대로 상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담 마도의 힘을 빌릴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목각인형의 숲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예상대로 여기까지는 인형들이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휙!

현석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단숨에 안쪽까지 갈 생각이었다.

달칵달칵!

그러자 공중에서부터 목각인형의 공격이 시작됐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

처음에는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가 사도련주에게 전수받은 보법은 련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이고, 붉은 기운을 흡수한 다음부터 막강한 내공까지 얻었다.

유일하게 부족한 건, 내공을 얻은 지 얼마 안 돼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

허나 목각인형의 공격을 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현석의 몸은 빠르게 새로 얻은 내공에 적응했다.

‘이게 여기서 수련하라고 한 이유였나?’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빨라졌다.

그러자 목각인형들도 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들은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빨라지고 교묘해졌다.

종국에는.

퍽!

더 이상 완벽히 피하는 건 무리라, 양손을 사용해 목각인형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후!”

막은 팔이 얼얼해질 정도의 충격에 현석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공격.

‘그래도 겨우 이 정도로는 날 막을 수 없다.’

설사 지금보다 더 빨라지고, 더 강해져도 문제없었다.

그 이유는 눈앞의 것들이 결국은 인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처음에는 인간과 다른 너무나 인형다운 움직임에 당황했지만, 익숙해지니 인간처럼 부드러운 관절의 움직임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달칵!

또다시 목각인형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분명 고정돼 있던 팔이 갑자기 꺾이는 게 아닌가?

휙!

그와 동시에 놈들의 공격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뀌었다.

“엇?!”

현석이 놀란 얼굴로 몸을 비틀었다.

아무리 기습적인 변화지만, 못 피할 공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목각인형의 수는 무려 수백.

사방팔방에서 공격이 쉬지 않고 날아오니, 점차 피하는 것도 막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퍽!

결국 처음으로 왼쪽 어깨에 목각인형의 공격이 적중했다.

숫제 쇠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충격.

고통을 참는 게 쉽지 않았는지, 현석은 맞자마자 오만상을 찡그렸다.

“음?”

그런데 그가 인상을 찡그린 건 단순히 고통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건?!”

현석은 곧바로 방금 맞은 왼쪽 어깨를 바라보며 두 눈을 치켜떴다.

* * *

비무가 끝나고 혼절한 무진이 정신을 차리자, 검선이 툭 던지듯 한마디 했다.

“약조한 대로 조만간 맹에 들르겠다.”

“감사합니다!”

그는 진천우에게도 한마디 남겼다.

“마도는 이미 주인을 찾았다.”

“…….”

검선은 진천우가 또 다른 무구에 대해 물을 걸 알고 있었다.

‘벌써 주인을 찾았다니.’

진천우는 예상 밖의 정보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지금 가진 정보를 정리했다.

그런 뒤 다시, 검선에게 마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를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팟!

“내 용건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며 검봉에서 몸을 날렸다.

허공을 받고 사라지는 뒷모습에서는 과연 천하에 세 손가락에 드는 절대고수의 면모가 엿보였다.

“흠…….”

진천우가 순식간에 멀어지는 검선을 보며 잠깐 망설였다.

어쩌면 자신의 여덟 걸음으로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

막상 검선을 따라잡아도 얻을 게 없었다.

찰나의 고민이 끝나는 사이, 검선의 신형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럼 내려가지.”

“그러지.”

잠시 뒤, 진천우는 무진과 함께 검봉에서 내려갔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무한의 계단이 앞을 막았지만, 이미 한 번 계단을 올라온 둘은 내려올 때도 수월하게 계단의 시련을 격파했다.

그런데 검봉에서 내려오자마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을 막아섰다.

무진이 그들을 알아봤다.

“맹에서 나온 분들입니까?”

“넵!”

그들은 짧은 대답과 함께 청죽으로 만든 얕은 죽편을 무진에게 건넸다.

죽편은 하얀 명주실로 봉인돼 있었는데, 실 끝에 매달린 푸른 옥에 천(天)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天)급 명령서.

맹주가 직접 내리는, 그래서 맹에 속한 이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서.

“흠?!”

무진은 명령서 내용을 확인하고 바로 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명령서를 옆으로 넘겼다.

진천우가 슬쩍 턱짓으로 이런 걸 내게 보여줘도 되냐는 눈치를 줬지만, 무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딱히 자신이 봐도 문제 되지 않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네가 꼭 봐야 하는 내용이란 뜻이었다.

“뭐?!”

진천우는 명령서의 첫 구절부터 기겁했다.

사마대전(邪魔對戰).

명령서에는 맹은 여기에 참가할 생각은 없지만, 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반드시 지켜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무진 외에도 다른 추가 인원을 이미 보냈다고 했다.

“자네도 따라갈 텐가?”

무진이 넌지시 물었다.

자신이야 천급 명령을 받았으니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진천우는 달랐다.

그는 검봉에 함께 올라 검선이 맹에 들르도록 설득을 도운 것만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러니 굳이 사지(死地)로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간다.”

허나 진천우는 일말의 고민 없이 따라가겠다 말했다.

두근!

어째서인지, 사마대전이란 말을 듣는 순간 그의 가슴이 뛰었다.

흥분? 두려움?

아니,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지금 당장 출발하지!”

진천우가 미치도록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걸음을 재촉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강하게 엄습했다.

* * *

“저기인가?”

소천마가 정면을 노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온몸은 피범벅이었다.

그러나 그중 소천마의 피는 한 방울도 없었다.

모두 제 뒤를 따라오는 오백 마인들의 피였다.

“…….”

이들 모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녀의 뒤에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완벽하게 기강을 잡은 걸까?

소천마가 저 멀리 보이는 사도련의 정문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마디 뱉었다.

“늦었군.”

부르르!

동시에 오백 마인들이 잘게 몸을 떨었다.

늦었다고?

보름 거리를 열흘 만에 달려왔는데?

심지어 그들은 출발하기 전, 소천마와 거하게 한판 붙느라 넝마와 다름없는 상태였다.

“좋아, 모두 마령환을 취해라.”

꿀꺽!

소천마의 명에 오백 마인들이 즉시 품에서 엄지손톱 크기의 환약을 꺼내 삼켰다.

일단 시키기에 군말 없이 따랐지만,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이럴 때 느끼는 불안함은 절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다 삼켰으면, 돌격.”

……이번에도 누구 하나 의문을 품는 이는 없었다.

팟!

가장 먼저 혈마도가 달려갔고, 그 뒤를 따라 오백 마인들이 차례로 몸을 날렸다.

와아아!!

그렇게 련의 수뇌부 중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세로 사마대전이 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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