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 비무 (3)
(158/210)
158화 : 비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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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 비무 (3)
2022.07.04.
스릉!
탐색을 끝낸 셋째가 몸을 날린 순간, 현석도 곧바로 마도를 뽑았다.
‘느려!’
제법 매서운 일격이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경로였다.
셋째가 입가에 가벼운 조소가 지었다.
역시 새로운 사제의 실력은 저보다 아래였다.
앞서 경계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거기다 먼저 검을 뽑은 것도 제 쪽이다.
월등한 실력에 한 수 빠른 공격까지.
무엇 하나 자신이 질 요소가 없었다.
“아쉽구나!”
셋째는 아예 이번 일격으로 현석의 목을 쳐 버릴 생각으로 검을 내려쳤다.
사제의 정?
어차피 오늘 처음 본 사이다.
게다가 사파인에게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우습다.
그보다는 사부에게 자신의 월등함을 과시하며 당신의 후계자는 나뿐임을 드러내는 게 훨씬 중요했다.
휙!
무겁고 날카로운 일격이 현석의 목을 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팟!
마도가 갑자기 공기를 가르고 앞으로 뻗어나갔다.
한순 도 끝이 휜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가속.
“무슨?!”
셋째가 두 눈을 치켜떴다.
확실히 뜻밖의 가속이었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현석의 도는 정확히 자신의 심장을 향해 날아온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지금 제 목을 향해 떨어지는 자신의 검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대로라면 제 검이 놈의 목을 치는 대신, 자신의 심장이 꿰뚫릴 게 분명했다.
‘이놈, 설마?!’
련주의 제자가 아니라 날 죽이러 온 암살자인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여기서 자신이 죽으면 둘째는 경쟁자가 사라졌다며 기뻐할 거고, 련주는 겨우 이런 수에 당하는 놈은 제자의 자격이 없다며 신경도 쓰지 않겠지.
“웃기지 마라!”
셋째는 곧바로 손목을 비틀어 검의 경로를 바꿨다.
챙!!
검과 도가 부딪치자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상대의 일격이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일격으로 조금 전의 속도를 냈다고?’
이는 필시 련주가 자신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한 수를 넷째에게만 알려준 게 분명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처리하려 하다니!
배신감이 뼈에 사무쳤다.
허나 셋째는 이 상황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일단 거리부터 벌린다.’
그는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상대에게 숨은 한 수는 방금 드러났다.
반면 둘 사이 격차는 여전했다.
‘거리만 벌린 채 싸우면, 놈이 또 다른 한 수를 숨기고 있어도 언제든 반응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방금 전처럼 단숨에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자칫하면, 여기 모인 이들에게 자신이 넷째에게 겁을 먹어 물러난 꼴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얼마든지 겁먹은 개새끼로 보라고 해라!
그런 치욕을 당하는 대신, 자신은 보다 확실하게 녀석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줄 테니!
허나 셋째의 냉정한 판단에 순순히 당할 만큼 현석도 멍청하지 않았다.
휙!
그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챙!
또 다시 검과 도가 부딪혀 거센 불꽃이 튀었다.
챙챙챙!!
한 번 피어오른 불꽃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사방에 퍼졌다.
셋째는 이 와중에도 몇 번이나 다시 거리를 벌리려 시도했지만.
휙!
그때마다 현석이 집요하게 그를 쫓았다.
다시 말하지만, 둘의 무공 고하는 확연했다.
현석의 도법보다 셋째의 검법이 월등했고, 이 격차는 경신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휙!
셋째가 또다시 거리를 벌리기 위해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는 두 눈을 치켜뜨며 자신을 따라오는 현석의 발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놈은 곧바로 자신을 쫓아왔다.
스륵! 슥!
‘분명 나보다 몇 수나 떨어지는 발걸음인데!’
팟!
이상하게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렸다 싶은 순간, 어느새 현석의 신형이 제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는 단순히 발이 빨라서 벌어진 현상이 아니었다.
‘정확히 내 보법의 틈이 벌어지는 순간을 노려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헌데 셋째는 놀람을 곱씹을 틈도 없이 곧바로 또다시 경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스륵!
‘다르다!’
분명 둘은 같은 사부를 모셨다.
그렇기에 둘은 같은 보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현석의 보법은 자신의 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내가 익힌 보법에는 저런 걸음이 없다.’
그 말은?!
‘련주가 이놈에게만 더 좋은 보법을 줬구나!’
그렇다면 말이 된다.
아니, 애초에 그게 아니면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내공도 내가 더 높고, 무공의 숙련도도, 경험도 내가 더 위다.’
그런데도 이다지도 우위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려면, 놈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지녔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현석과 셋째가 익힌 무공은 확실히 달랐다.
그런데 현석이 익힌 무공이 더 뛰어난 무공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보다 더 사정이 나빴다.
현석의 무공은 셋째의 무공과 완전한 상극이었다.
“이놈!”
그 증거로 셋째가 일갈을 지르며 검을 횡으로 휘두르는 순간, 현석 역시 이를 상대하기 위해 마도를 횡으로 휘둘렀는데.
챙!
“큭!”
“……!”
또다시 불꽃이 튀며 둘 다 뒤로 물러났다.
둘 다 똑같이 한 걸음씩 물러났지만.
“큭!”
셋째는 둘의 무기가 부딪치는 순간, 제 몸 내부가 가볍게 진탕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쿡!”
둘의 비무를 지켜보던 련주가 낮게 조소를 지었다.
‘내가 손본 무공이 생각 이상으로 효과를 보이는군.’
그랬다.
련주가 현석의 무공을 셋째 놈과 상극이 되게 바꿨다.
본래라면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는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절대자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만일 셋째 제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련주에게 비겁하다고, 이 비무는 무효라고 소리치겠지만, 사실 이건 전혀 비겁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저 둘이 비무를 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 말대로다.
처음부터 오 년 이상 무공을 익힌 셋째가 이제 막 무공을 배운 지 반년도 안 된 현석과 싸우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현석에게 따로 이점을 주었다.
그러나 그 이점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암! 난 관대하니까.’
관대?
사도련주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그는 진심으로 스스로를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관대한 련주가 보기에 이 비무는 아주 정당했다.
정확히는 자신이 정당하게 만들었다.
챙! 챙!!
이 순간에도 둘은 끊임없이 무기를 부딪치며, 공방을 나눴다.
그때마다 계속 내상을 입는 첫째의 얼굴이 검게 죽어갔다.
하지만 정말 그만이 내상을 입은 걸까?
‘녀석, 제법 잘 참고 있군.’
련주가 흥미로운 눈으로 자신의 네 번째 제자를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분명 현석의 낯빛은 처음보다 희미하게 어두워졌다.
애초부터 실력 차가 확연한데, 어찌 녀석이라고 무사할 수 있으랴!
“…….”
그는 그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통을 참고 있을 뿐이다.
‘어찌어찌 반반을 유지하고 있군.’
정리하면, 본래 무공은 셋째가 월등하지만, 현석은 거기에 정확히 상극인 무공을 익혔다.
그럼에도 여전히 격차는 존재했다.
현재 셋째는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지만, 이 순간에도 현석은 계속 상처를 누적하고 있고, 그 몸으로 셋째 놈이 거리를 벌리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쫓고 있는 것이다.
둘 다 한계 직전.
련주가 그런 둘을 보며 즐거워했다.
‘한계를 뛰어넘어라.’
지금 둘은 단순히 승패를 결정짓고 끝내는 평범한 비무를 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련주는 이렇게 말했다.
-싸워라!
셋째는 이 말을 가볍게 여기고 비무라 착각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여기서 이기는 자가 온전한 셋째가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다음은 둘째, 그리고 그다음은 바로 첫 번째다.
‘오직 한계를 뛰어넘은 자만이 그리고 이긴 자만이 나의 첫 번째 제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둘 다 이런 낮은 한계조차 뛰어넘지 못하면…….’
한순 련주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거기다 그의 손은 아주 조금이지만, 검이 걸려있는 자신의 허리춤으로 이동했다.
만일 그리된다면, 제 손으로 직접 저 둘의 목을 치리라.
비정하지만 이는 당연한 처사였다.
그만큼 사도련주의 첫째 제자 자리는 무겁기 그지없다.
언젠가 자신 대신 천하의 모든 사파 놈들을 등에 짊어져야 하는 자리.
그 무게가 절대 가벼울 리 없고, 그런 무게를 견디지 못할 자라면 여기서 목을 치는 게 맞았다.
‘어차피 자격 없는 놈이 거기에 앉아봤자, 경계가 열리는 순간 허무하게 무너질 게 뻔하니.’
잠깐, 경계?
챙!
그때, 갑자기 두 번째 이변이 벌어졌다.
스륵!
“음?”
이번 이변은 련주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꼬리를 기이하게 비틀렸다.
챙! 스르륵!
어느 순간부터 첫째의 검과 현석의 도가 부딪치자, 놈의 도에서 희미한 검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상대의 검에 깃들었다.
“큭!!”
그 기운은 정말 극미했지만, 그것만으로 셋째 놈의 내상이 빠르게 악화되었다.
저게 무슨 현상인지 련주는 단번에 알아챘다.
‘마도가 수작을 부리는군.’
그러고 보니 현석의 도는 평범하지 않았다.
마도(魔刀).
경계를 가르는 무구.
‘하지만 녀석이 벌써 마도를 완전히 다룰 리 없으니, 저건 마도의 독단이란 뜻인데……. 그만큼 새 주인이 마음에 들었나?’
나쁘지 않다.
원래라면, 두 손 들며 환영할 일이다.
허나 지금은 안 된다.
이 비무는 련주가 제 셋째 제자와 현석의 한계를 가늠하는 시험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도가 개입한다면, 기껏 맞춰놓은 균형이 깨지게 된다.
‘그럴 순 없지.’
슥!
련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라면 비무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엇나간 균형을 다시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현석에게 마도를 빼앗고 다른 적당한 도를 내어줄까?
그게 아니면, 셋째 놈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려 내상을 치료하고 새로운 기운을 더할까?
그것도 아니면, 마도는 내버려두고 가볍게 현석의 단전을 진탕시켜 비무를 더욱 진흙탕 싸움으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이 좋겠군.’
그편이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둘 모두의 한계를 더 높일 수 있었다.
곧바로 련주가 계획을 행동에 옮기려는데.
휙!
“음?”
그가 움직이는 것보다 한발 먼저 현석이 움직였다.
만약 련주가 끼어드는 것보다 빠르게 승부를 지을 속셈이라면 헛된 발악이다.
그런 걸 용납할 만큼 련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허!”
허나 련주는 현석이 지금 하려는 짓을 알아차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지금 저놈이 하려는 행동은 또다시 균형을 어긋나게 하는 행동.
그런데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게 아니라, 도리어 한없이 불리하게 바꿨다.
현석이 손에 쥔 마도를 허리 아래로 천천히 내렸다.
련주는 놈에게 저런 자세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내가 알려준, 셋째 놈의 상극인 무공을 버리겠다고?’
“허허!”
이걸 보고 어찌 웃음을 참을까?
현석이 련주가 무슨 짓을 하기 전에, 스스로 한계의 한계를 끌어올렸다.
팟!
그리고 녀석은 그 한계를 한꺼번에 넘겠다며 기세 좋게 앞으로 달려갔다.
* * *
진천우가 검봉으로 돌아왔다.
그는 곧바로 검선에서 신검 외의 또 다른 무구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다.
“때맞춰 내려왔군.”
그런데 내려오자마자 검선이 먼저 진천우를 찾았다.
휙!
그는 다짜고짜 제 허리춤의 검을 풀어 진천우에게 던지더니.
“이 녀석과 싸워라.”
손가락으로 방금 막 새로운 무공 전수를 끝낸 무진을 가리켰다.
무진도 느닷없는 진행에 당황한 표정으로 검선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천우는 의외로 순순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선에게 검을 건네받는 순간,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 적힌 내용이 평소와 달랐다.
[긴급 퀘스트!]
[최대한 빨리 무진을 쓰러트리십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