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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 변모하는 중간광고 (153/210)


153화 : 변모하는 중간광고
2022.06.22.


‘큭!’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진천우가 양손으로 두 귀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다행히 호통은 한 번으로 그쳤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내리쬐는 햇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승려?’

매끈한 맨머리에 주황 승복과 붉은 가사를 두른 승려가 보였다.

그런데 초면이 아니다.

진천우는 서둘러 머릿속에서 그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이 자는 분명 금지에서 본 중간광고에서 천마와 싸웠던 그 승려잖아?’

금지 안에서도 특별한 공간.

마치 수차례의 천재지변이 한자리에서 벌어진 것 같은 참상이 펼쳐진 그곳.

거기서 소천마는 천마신공의 원류를 깨우쳤고, 자신은 남겨진 발자취를 따라 최상승 신법인 대나이신법과 그것마저 뛰어넘는 여덟 걸음을 얻었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승려는 진천우에게 무공을 전수해준 사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흠!”

승려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난데없이 소리치고, 또 제멋대로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다니.

‘원래 이렇게 괴팍한 자였나?’

분명 전에 본 기억에서 그는 상당히 인자한 인상의 전형적인 승려였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승려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입을 뗐다.

“연자는 들어라.”

‘누구에게 말하는 걸까?’

진천우가 승려의 말을 집중함과 동시에 현재 이 몸의 주인을 추리했다.

처음 중간광고에서 그는 어린 의선의 몸에 들어가 그의 기억을 엿보았다.

그러던 게 독괴의 기억으로 넘어갔고, 마침내는 정체불명의 장인의 기억까지 보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중간광고에서는 단순히 상대의 기억만 엿보는 걸로 끝나지 않고, 타인의 몸에 들어가 자신이 정말 장인이 된 것처럼 움직이고 말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더 직접적으로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내가 누구의 몸에 들어갔는지 알기 힘들어졌지.’

당장 그 예로 진천우는 처음에는 어린 의선에 몸에, 다음에는 독괴의 몸에 들어간 걸 쉽게 알아차렸지만, 맨 마지막으로 겪은 장인의 정체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이번에도 같은 장인의 몸에 들어간 걸까?

그게 아니면 다른 이의?

진천우는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눈앞의 승려에게 집중했다.

승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그대에게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우리? 그리고 끔찍한 짓?’

“우리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단순히 대화를 듣는 거로 단서를 모으는 거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저번 중간광고에서 때처럼 대화하는 상대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

허나 승려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그가 다시 입을 여는가 싶었는데.

“그 점에 대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그대에게 사과하고 싶구나. 미안하다.”

별 쓸데없는 사과만 돌아왔다.

이후로도 승려는 몇 번이나 사죄와 사과의 말을 건넸다.

확실히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담겨있었지만, 정작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러서 사죄하는지를 말하라고!’

아쉽게도 승려는 끝까지 진천우가 원하는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툭 꺼냈다.

“조만간 경계가 열릴 거다.”

‘경계?’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중간광고를 보는 조건 중에 ‘경계와 맞닿은 곳을 발견했다’가 있었지?’

타이쿤이 명시한 경계가 뭘까?

‘이건 가르쳐 주겠지?’

그러나 승려가 알려주는 건, 경계의 정체가 아닌 그에 대한 대비였다.

“다섯 개의 깃발과 두 개의 무기 그리고 세 개의 심장을 모아라. 그것들이 우리가 연자를 위해 준비한 대책들이니.”

다섯 개의 깃발과 두 개의 무기 그리고 세 개의 심장?

‘다섯 개의 깃발이란 게 설마 내가 가진 청색, 백색 그리고 황색 천을 말하는 건가?’

진천우는 자신이 가진 세 개의 천 외에도 다른 색의 천이 더 있음을 알았다.

중간광고를 통해 다른 색의 깃발이 어떻게 뺏기고 뺏겼는지 보았고, 또 맨 처음 깃발이 걸려 있던 장소에 정확히 다섯 개의 깃대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 천이 지닌 신비한 능력을 생각하면, 아마 승려가 말한 다섯 개의 깃발이 다섯 천을 말하는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두 개의 무기 중 하나는 아마 신검인가?’

진천우는 아직 마도의 존재를 몰랐다.

허나 이 중간광고를 볼 수 있게 한 ‘경계와 맞닿는 곳’과 검봉에 기거하는 검선이 가지고 있던 신검이 그 무구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두 개의 무구에 대해서는 나중에 검선에게 따로 물으면 되었다.

‘하지만 세 개의 심장은 도대체 뭐지?’

확실히 이것만큼은 앞의 두 단서처럼 즉시 떠오르는 게 딱히 없었다.

‘세 개…… 세 개…….’

“세 개의 심장은 도대체 뭐…… 큭!”

다시 한번 승려에게 물으려는 찰나,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진천우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중간광고가 끝나려 하는 현상. 하지만 벌써?’

자신이 여기서 한 거라고는 승려에게 몇 마디 들은 게 다였다.

“미안하구나, 연자여!”

그조차 대부분 지금처럼 승려에게 사죄 듣는 게 거의 전부였다.

“내가 겨우 이런 거나 들으려고……!”

진천우가 광고를 끝내려는 타이쿤에게 반항했다.

앞서 억지로 광고를 연장했던 경험이 있는 그이기에 가능한 일.

“미안하다.”

“됐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는 승려의 말을 기다려줄 수 없었다.

‘본래라면 당신과 사제 비슷한 관계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 참을성 있게 들어주려고 했지만.’

“됐으니까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뭔가 쓸 만한 말을 하란 말이야!”

“연자에게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죄해도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하!”

허나 아무리 크게 고함을 질러도 씨알도 먹히지 않자, 기가 탁 빠졌다.

‘이젠 다 틀렸다.’

결국 진천우가 저항하기를 멈추고, 그냥 여기서 중간광고를 끊으려 힘을 뺐다.

“?!”

그런데 그때, 승려가 마지막으로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연자여, 아니 진가의 후예여…….”

“잠깐! 뭐?!”

당신, 방금 뭐라고?

“진가의 의지를 모아라. 그리고 다가올, 경계가 비틀리는 그날을 대비하라.”

그 말을 끝으로 승려는 입을 닫았고, 진천우의 시야도 완전히 닫혔다.

* * *

“…….”

중간광고를 마치고 한참이 지나고도 진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중간광고 마지막에 승려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연자여…….

‘그 연자가 설마…….’

-연자여, 아니 진가의 후예여…….

‘거기서 진가가 왜 나와?’

그랬다.

승려가 계속 말을 건 대상은 의선도, 독괴도, 정체 모를 장인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물론 승려가 말한 진가의 후예가 진천우의 진씨세가를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긴. 왜 알 수 없어. 무조건 진씨세가일 게 분명하잖아.’

천하제일 타이쿤.

애초에 타이쿤이 없으면 중간광고를 시청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타이쿤을 가진 건 진씨세가의 소가주인 자신뿐이었다.

“감쪽같이 속았군.”

지금껏 중간광고는 항상 다른 이의 몸에서 과거의 일을 듣기만 했다.

마지막 광고는 장인의 몸에 들어가 직접 움직이는 게 됐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갔다는 건 변함없었다.

허나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중간광고를 사용했을 줄이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잠시 잊었다.

그럼 승려는 자신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던 걸까?

-다섯 개의 깃발과 두 개의 무기 그리고 세 개의 심장을 모아라. 그것들이 우리가 연자를 위해 준비한 대책들이니.

‘일단 앞의 두 개부터 모아야겠군.’

여전히 마지막의 세 개의 심장이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급한 대로 아는 것부터 모으려 했다.

모르는 건 그것들을 모으면서 차차 정보를 수집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 모으면.

-진가의 의지를 모아라. 그리고 다가올, 경계가 비틀리는 그날을 대비하라.

진가의 의지.

‘이건 또 어떻게 모으는 거지?’

이 역시도 앞의 것을 먼저 모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어려운 걸 나중으로 미루는 게 아니었다.

당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어려운 일을 함께 해결할 방법을 강구하는 거였다.

그렇게 앞으로 할 일을 막 결정 내렸을 때, 진천우의 눈앞에 타이쿤이 나타났다.

‘아, 그러고 보니 중간광고를 모두 시청하면 보상이 주어졌지.’

원래라면 보상에 관해서는 절대 잊어버릴 진천우가 아니었지만, 조금 전에 워낙 큰 충격을 받아 잠시 생각이 멈췄다.

허나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현판 내용을 확인했다.

[소림승 ‘일승(一僧)’이 전하는 이야기를 모두 시청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중간광고로 전할 수 있는 내용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확실히 이번 중간광고는 이전과 달리 자신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이었다.

그 때문에 많은 내용을 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대로 전달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을지도.

-미안하다.

그렇기에 승려는 혹시나 누락될까 싶어 그렇게 쉬지 않고 사죄의 말을 건넨 건지도.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진천우는 승려가 계속 쓸데없는 말이나 한다고 탓한 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일단 보상 확인부터 해야겠군.’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는 것과 보상을 확인하는 건 어디까지나 별개의 일이.

“?!”

그는 보상을 확인하자마자 아주 크게 놀랐다.

“이건?”

[중간광고 보상으로 일승이 남긴 ‘세 개의 심장 중 하나’가 주어집니다.]

광고 중 계속 의문이 들었던 세 개의 심장.

그중 하나가 보상이었다니.

그렇담 승려가 굳이 세 개의 심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계속 사죄한 것도 용납이 되었다.

아니, 이러면 오히려 자신이 생각이 얕아 그만 고승을 욕한 게 된다.

그저 부끄러울 따름.

[첫 번째 심장을 받기 위해 양손에 내공을 단단히 두른 채 앞으로 내밀어야 합니다.]

“?”

타이쿤이 평소답지 않게 보상 전에 특정 자세를 요구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지만, 다름 아닌 타이쿤의 요구였기에 진천우는 순순히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곧바로.

스륵!

앞으로 내민 손 위에 아이 주먹만 한 뭔가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왜 타이쿤이 양손에 내공을 단단히 두르라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 처음 보는 건데, 이상하게 낯이 익다.

내가 이것과 비슷한 걸 어디서 봤더라?

스륵! 스르륵!

갑자기 제 손에 나타난 보상의 검은 빛을 지닌 구슬이었는데, 그 안에 물이 가득 찬 상태로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아!”

그 순간, 진천우가 이와 비슷한 걸 어디서 봤는지 떠올렸다.

“패왕의 알!”

맨 처음 타이쿤의 튜토리얼을 끝내고 받은 보상에 나왔던 세 개의 알.

그중 저것과 비슷하게 생긴 알에서 독고가 튀어나왔는데.

휙!

과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한동안 진천우의 소매에서 가끔 장난이나 치며 움츠리고 있던 독고가 익숙한 기운에 곧바로 모습을 보였다.

아니, 녀석은 그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합!

“어?”

그대로 그걸 삼켜버리는 게 아닌가?!

그 직후 현판에서 눈부신 빛이 터지더니,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첫 번째 심장이 만독의 지존에게 흡수됩니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만독의 지존이 첫 번째 심장을 완전히 흡수합니다.]

[만독의 지존, ‘독고’가 진화를 시작합니다.]

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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