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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 진짜 신검의 주인 (152/210)


152화 : 진짜 신검의 주인
2022.06.20.


‘이건?’

진천우가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슥!

오른손에 든 붉은 검이 눈앞의 붉은 벽돌을 갈랐다.

그 뒤, 왼손의 푸른 검이 곧바로 날아오는 푸른 벽돌을 갈랐다.

이후, 쉬지 않고 날아오는 벽돌을 연이어 썰었다.

아무리 봐도 처음 익힌 검법을 펼치는 모습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상당히 오랫동안 꾸준히 익힌 움직임이었다.

그랬다.

진천우는 이미 이것에 익숙했다.

도대체 언제?

* * *

-정신이 들었느냐?

첫 발작을 일으키고 간신히 눈을 떴을 때, 아버님이 자신을 꼭 껴안고 있었다.

-천우야! 천우야! 천우야!!

그 직후, 어미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냉큼 아비의 품에서 아들을 빼앗았다.

곧바로 현석이 외부에서 의원을 데려왔고, 자신은 의원에게 침이며 뜸이며 온갖 쓴 약을 조제 받아야 했다.

그렇게 발작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야, 아버님이 다시 자신을 찾아왔다.

-몸은 좀 어떻더냐?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슥!

아비가 가만히 아들의 머리를 쓸었다.

‘?!’

단지 머리를 쓸었을 뿐인데, 여전히 좋지 못하던 속이 단번에 진정되었다.

당시 어린 진천우는 그저 몸이 편해졌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아픈 환자의 웃음.

그것도 제 아들의 웃음.

그 처연한 모습을 보며, 아비가 못내 눈살을 찌푸렸다.

허나 지금은 아픈 아들의 앞이었다.

그는 곧바로 찡그린 인상을 풀었다.

다행히 아들은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니다. 그보다 내 수양이 아직 한참 부족하구나.

휴우!

아비가 짧게 한숨을 토했다.

아들의 첫 발작을 발견했을 때, 그는 저도 모르게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부인이 자신의 표정을 보았다.

그래서 천우가 정신을 차리자, 곧바로 아들을 빼앗듯 데려갔다.

아무렴, 당시 느낀 분노가 아들을 향한 게 아님은 부인도 알 것이다.

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그만큼 화낸 모습을 보인 적 없었기에, 당황해서 저지른 행동이었다.

진씨세가의 가주는 그날 온종일 부인에게 사과했고, 또 간신히 안정을 찾아 잠에 빠진 아들의 머리맡에 고개를 조아렸다.

슥!

아비는 한참 더 아들의 머리를 쓸어주다 말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아들이 누워있는 침상 옆의 창을 열었다.

당시는 봄이라 날이 따뜻해서 환자 방의 창문을 여는 데 큰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아들은 창을 열자마자 아비가 훌쩍 창을 뛰어넘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아무렴, 다 큰 어른이 어린 아들 방의 창도 못 뛰어넘을까?

그러나 아들이 놀란 이유는, 언제나 가주다운 진지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인근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학자인 아비가 이처럼 예법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약과였다.

진천우는 창을 넘은 아비의 다음 말에 이 이상 놀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아비는 곧바로 가문을 떠날 것이다.

-네?!

가주가 가문을 떠난다니.

이 무슨 망발인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아들이 발작을 일으키고 쓰러진 그날 떠난단 말인가?

부모에게 매정하다고 탓하기 이전에, 어린 아들은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비의 말에 아들은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의원이 어미에게 몰래 하는 말을 들었지?

-들었습니다.

-절맥이라더구나.

-네, 그리고 의원님께서 자신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똑똑하구나.

그래, 아이는 똑똑했다.

조금만 멍청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의원의 입에서 제 병이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은 아이의 심정이 어땠을지, 부모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더욱 가슴이 저미는 일은 따로 있었다.

-어째서…….

아비가 잠시 말을 아꼈다.

어째서 자신이 의원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던 부모에게 숨겼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어린 아들은 어미의 가슴이 찢겨질 걸 염려해 애써 아는 사실을 숨겼다.

이 어린 아들이…….

그렇기에 자신이 떠나려는 것이다.

아비니까.

아비이기 때문에.

-천우야, 걱정 말렴! 아비가 꼭 네 병을 고칠 의원을 모셔 오마. 대라신선만이 네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까짓 거, 신선의 멱살을 끌어서라도 데려오마!

그렇게 그날, 진씨세가의 가주는 아들의 병 구환을 위해 가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주륵!

아들은 거기에 감동하고, 또 차마 아비에게 가지 말라고 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네게 하나 가르쳐 줄 게 있다.

-네? 어떤?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체조인데…….

* * *

‘그때, 아버지께서 내게 알려주셨던 것.’

그건 진씨세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간단한 체조였다.

-아무리 학자라도 언제나 책만 끼고 살면 몸이 상하는 법이지.

-몸이 아프면 책도 읽을 수 없다.

-그럼 어느 정도 몸을 단련해야겠지?

그런 이유로 알려준 체조.

실제로 진천우는 틈틈이 그것을 반복하면서 몸이 조금씩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나 몸이 건강해지는 것 이상으로 그가 가진 천형이 몸을 갉아 먹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러다 종국에는 아예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만큼 절맥의 악성이 깊어졌다.

그렇게 간신히 일 년 남짓 익혔던 가문의 체조.

‘왜 그것과 신검이 알려주는 검법이 비슷한 거지?’

비슷하다.

그 말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허나 전체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항상 아비가 알려준 체조가 중간중간 조금씩 이상한 움직임이 들어있다는 건 느꼈지만.

‘그 부분에서 만약 손에 검을 들었다고 가정하면?’

꽤나 신검이 알려준 검법의 동작과 맞아떨어졌다.

과연 이 모든 게 우연일까?

그게 아니면…….

-그만!

그 순간 검선이 소리쳤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거기에 담긴 내력이 범상치 않았다.

진천우와 무진 모두 생각을 멈추고 몸을 곧추세웠다.

어느새 신검에서 벽돌이 튀어나오는 것도 멈췄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자, 검선이 놀라운 발언을 꺼냈다.

“신검이 제 주인을 정했군.”

벌써?

‘과연 누가?’

진천우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허나 그는 속으로 신검의 주인이 누가 될지 예상했다.

스릉!

바위에 박혀있던 신검이 홀로 튀어나왔다.

우우웅!

신검은 공중에서 낮게 진동하며, 검 끝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그것은 진천우를 가리키다 얼마 뒤 무진을 가리켰다.

그러다 다시 진천우를 가리키기를 반복하더니.

슥!

결국 한 사람을 정확히 가리켰다.

신검이 가리킨 자는.

“결정되었다. 신검의 주인은 너다!”

“저, 저 말입니까?!”

검선의 확답에 무진이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 * *

“제가 신검의 주인이라니!?”

무진은 처음에는 너무 놀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추슬렀다.

그 뒤, 그는 크게 소리쳤다.

아니, 정확히는 소리치려 했다.

-전 신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눈이 있다면 그 광경을 보지 못했을 리 없다.

신검의 시험 마지막에 진천우가 가볍게 휘두른 검이, 자신이 전력을 다하는 것의 배 이상의 벽돌을 썰어 버리는 모습을.

특히나 그는 무왕의 재능을 이은 무인이었다.

누구보다 무의 재능에 민감했고,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진천우의 능력이 월등함을 알아챘다.

허나 무진은 소리치지 못했다.

막상 신검의 주인이 되자 욕심이 나서?

그것보다는 검선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바로 의식을 진행하겠다.”

퍽!

검선이 곧바로 무진의 무릎을 굽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툭! 툭툭!

그 직후, 그는 무진의 몸에 몇 번 손가락을 대었다.

그러자 무진의 단전에서 내공이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사방에 퍼졌다.

“억!”

무진은 요동치는 내공을 진정시키기 위해 억지로 가부좌를 틀어야 했다.

툭!

그 와중에 검선이 다시 무진의 몸을 건드렸다.

내공을 운기하는 중에 외부에서 건드리는 건 매우 위험한 행위.

자칫 잘못했다간 주화입마에 빠져 폐인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무진을 건드리는 손가락의 주인은 검선이었다.

툭!

그가 또 무진을 건드리자, 이번에는 처음과 정반대 쪽 내공이 폭발했다.

그걸 간신히 진정시키면 이번에는 어깨에서, 그다음에는 대퇴, 또 다음은 허리에서 내공이 폭발했다.

‘이, 이건?!’

뒤늦게 무진이 검선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있었다.

“신검이 널 택했으니, 그 주인에게 쓸 만한 무공 하나쯤은 내줘야겠지.”

겨우 쓸 만한 무공?

지금 검선이 전수하는 것은 절대 그 정도의 무공이 아니었다.

무진은 맹주의 눈길에 들면서 맹에서 보관하는 최상승 무공을 다수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지금 검선이 전해주는 무공보다 한 수, 아니 몇 수나 아래였다.

“……!”

-익혀라!

“…….”

어차피 이 상태로 검선에게 저항하는 건 불가능.

무진은 그대로 눈을 감고, 검선이 이끄는 대로 기운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

진천우는 옆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느닷없이 무진이 신검의 주인이 되고, 검선의 무공을 전수 받는 상황을 보고도 별다른 불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곧바로 검봉을 내려가려, 자신이 올라왔던 무한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그쪽이 아니다.

검선이 무진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중에 진천우에게 전음을 보냈다.

휙!

그 직후, 그의 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에 이끌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정확히 무한 계단의 반대편.

허나 그곳은 텅 빈 허공이었다.

아니.

슥!

발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건?’

그것은 투명한 계단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검봉보다 더 위로?

-올라가라.

다시 검선의 전음이 들렸다.

진천우는 말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시험 중 검선이 갑자기 멈추라고 소리쳤을 때.

이미 신검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소비했다.

그리고 그 힘은 전부 진천우의 몸에 ‘신검의 의지’가 되어 깃들었다.

그러니까 신검이 바위에서 뽑히고 무진을 가리켰던 건 시험의 결과가 아닌, 검선이 허공섭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마 그대로 무진이 받을 것은 더는 신검이 아닌, 그저 꽤 날이 잘 드는 명검에 지나지 않았다.

진천우는 명검을 포기하는 대신 검봉보다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슥!

얼마 올라가지 않았는데 계단이 끝났다.

계단 위는 반경 일 장 크기의 원형 판이었다.

“여긴?”

원판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아도 특별한 건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높고 높은 하늘 위였다.

‘설마 이게 다인가?’

진천우가 그럴 리 없다며 다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려는 찰나.

그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튀어나왔다.

[비밀 장소, ‘경계와 맞닿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사용자와 ‘경계와 맞닿은 곳’과 연관된 ‘중간광고’가 하나 있습니다. 인연이 있습니다.]

[‘중간광고’를 보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슥!

진천우는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예’를 눌렀다.

그 직후, 곧바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갈(喝)!!

난데없이 귀청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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