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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 검박자(劍拍子) (2) (150/210)


150화 : 검박자(劍拍子) (2)
2022.06.15.


‘검박자?’

이번에도 타이쿤이 이상한 용어를 가져왔다.

이럴 때는 되도록 서둘러 해석하는 게 좋았다.

그래야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일단 맨 앞의 검은 이건가?’

진천우가 제 양손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양손에서 눈부신 빛이 폭사했는데, 각각 오른손에는 붉은빛, 왼손은 푸른빛이 마치 검 형태를 이뤘다.

신기하게도 그 빛은 형태만 검인 게 아니라 정말 손으로 움켜쥐는 것도 가능했다.

‘틀림없이 이거다.’

진천우가 바로 납득하며, 남은 타이쿤 용어를 유추했다.

‘그럼 박자는 뭐지?’

박자(拍子).

노래나 춤에서나 사용할 법한 용어.

‘잠깐 노래?’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이것만 가지고 뭔가를 눈치챌 수 없었다.

허나 진천우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도 타이쿤과 노래를 섞어 무언가를 이뤄낸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이프 게임도 그렇고 독공 매니아도 그랬지.’

여기까지 유추하자 대충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되었다.

“뭐, 뭐지?!”

한편, 진천우와 다르게 함께 신검의 시험을 받는 무진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사실 저게 평범한 반응이었다.

당장 양손에 느닷없이 빛이 폭사하는 일도, 그 뒤에 손으로 쥘 수 있는 빛의 검이 나타난 것도, 모두 보통 사람이면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을 수 없는 기사(奇事)였다.

진천우처럼 그런 일을 밥 먹듯 겪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우우웅!

그리고 잠시 뒤, 공터 중앙 바위에 꽂은 신검이 크게 진동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

무진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진천우는 담담히 신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잠시 뒤 저쪽에서 이변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역시나.

슥!

신검에서 갑자기 붉은 벽돌이 튀어나왔다.

허공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붉은 벽돌은 자신과 무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저건?!”

또 무진이 고함을 질렀다.

“흠…….”

진천우가 신중히 상황을 살폈다.

‘검박자…….’

검으로 박자를 맞춘다.

대충 이런 뜻일까?

‘그럼 내 손에 들린 빛의 검으로 저 붉은 벽돌을 어떻게 하라는 뜻?’

여기까지 생각을 미쳤으면 충분했다.

그가 바로 행동을 개시하려는데, 놀랍게도 무진이 먼저 선수쳤다.

“하얏!”

그가 붉은 벽돌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무 생각도 없이 한 행동이라면 대단한 거고, 본능에 따른 거라면 그것 역시 대단했다.

무진은 곧바로 오른손의 붉은빛으로 붉은 벽돌을 내려쳤다.

여기까진 진천우도 생각한 일이었다.

굳이 양손에 각각 붉은빛, 푸른빛의 검을 내주었으니, 같은 색으로 벽돌을 부수는 거라 생각했다.

텅!

“엇?!”

그러나 예상과 달리 벽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왕의 재능으로 꼽히는 그가 실력이 부족할 리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벽돌이 한 번 빛의 검에 닿더니 그 즉시 방향을 틀어, 무진의 안면을 향해 빠르게 솟구쳤다는 것이다.

핏!

다행히 그는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틀어 벽돌을 피했다.

이후, 붉은 벽돌은 곧바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게 한순간에 일어난 일.

“…….”

무진은 이게 전부 환상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주륵!

조금 전, 벽돌이 스치면서 뺨에 남긴 상처에 붉은 피가 흘렀다.

“음…….”

진천우는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어쨌든 제 예상이 틀렸다.

만약 자신이 먼저 나섰으면, 지금 뺨에 피를 흘리는 상대는 달라졌을 거다.

휙!

그리고 이제 진천우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의 눈앞으로 푸른 벽돌이 날아왔다.

‘같은 색을 맞추는 게 아닌가?’

그럼 붉은검으로 푸른 벽돌을 내려쳐야 할까?

진천우가 오른손을 들어 붉은 검을 들어 올렸다.

“?!”

그런데 그가 갑자기 왼손을 들었다.

왼손에는 눈앞의 벽돌과 같은 색인 푸른 검이 들려 있었다.

“무슨 짓인가!”

이를 본 무진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저걸로 벽돌을 자를 수 없는 걸 봤을 텐데. 왜?’

심지어 자신이 몸소 보여주었다.

헌데 왜 진천우는 굳이 자신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슥!

진천우가 푸른 벽돌을 단숨에 갈랐다.

그것도 무슨 부드러운 두부를 자르듯, 너무나 간단히.

“어떻게!?”

놀라는 무진을 놔두고, 진천우가 두 번째 벽돌을 갈랐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붉은빛의 검을 쳐올렸다.

슥!

역시나 손쉽게 벽돌이 반 토막 났다.

‘잠깐!’

이때, 무진이 그 모습을 보며, 뭔가를 느꼈다.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새 벽돌이 날아왔다.

역시나 붉은 벽돌이었다.

무진이 벽돌을 노려보았다.

정말 뚫어져라.

잠시 뒤, 그는 처음에 자신은 찾지 못한 무언가를 벽돌에서 찾아냈다.

‘저거구나!’

벽돌 한가운데 작은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이 도형은 진천우가 위에서 아래로 베어낸 푸른 벽돌에도 똑같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곧바로 붉은 검으로 벽돌을 내려쳤다.

슥!

그러자 벽돌이 일체 저항 없이 베어졌다.

두 번째 벽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로 베었다.

역시나 똑같이 손쉽게 벨 수 있었다.

두 개의 벽돌을 모두 벤 무진이 놀랐다는 눈으로 진천우를 쳐다보았다.

‘난 전혀 눈치채지 못한 걸, 단번에 알아차리다니.’

이전에도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볼수록 점점 더 진천우의 비범함에 놀라게 되었다.

“이 정도에 놀랄 겨를이 없을 텐데?”

“무슨?”

진천우가 무진에게 낮게 경고했다.

‘어차피 벽돌에 새겨진 도형 모양에 따라 베야 한다는 건 바로 들킬 일이었다.’

무진은 맹이 인정한 무왕의 재능을 지녔다.

그런 자가 자신이 직접 두 번이나 벽돌을 베는 걸 보고도, 벽돌에 어느 방향으로 베야 하는지 알려주는 도형이 새겨져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만일 그렇다면 무진을 키운 맹주의 눈이 옹이구멍이거나, 제 생각보다 무왕의 재능이 보잘 것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도 솔직히 처음에 무진이 벽돌을 가르려다 실패하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삼각형의 존재를 단번에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 경고는 해주는 게 옳은 일이었다.

“바로 자세를 취하게. 이제 곧 벽돌들이 밀려올 테니까.”

“벽돌들이 밀려온다고?”

“그래, 아마도…… 지금!”

진천우가 조곤조곤 말하다 말고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두두둑!!

그가 고함치는 동시에 신검에서 검은 벽돌이 무수히 쏟아졌다.

진천우는 첫 벽돌을 베자마자 바로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예상했다.

‘이게 바로 타이쿤식이니.’

언제나 처음은 가벼운 맛 베기.

‘그걸 아마 튜토리얼이라고 했나?’

그리고 튜토리얼이 끝나면, 곧바로 진짜가 밀려온다.

‘그 진짜를 달성해야 진정한 보상이 쏟아지는 법이지.’

그런데 타이쿤은 자신이 무진에게 조언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신검의 시험의 기초 지식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즉시 진짜 ‘검박자’가 시작됩니다.]

[사용자가 검박자의 기초 지식을 타인에게 공유했습니다.]

[덕분에 검박자의 기초 지식을 아는 이가 늘어났습니다.]

‘아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타이쿤은 자신을 퍽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분명했다.

진천우가 그리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이쿤이 현판에 이런 글귀를 새길 리 없기 때문이었다.

[‘경쟁전’이 발발합니다.]

[경쟁전에 승리하면, 보상이 배로 늘어납니다.]

보상이 배가 된다?!

슥!

진천우가 즉시 자세를 잡았다.

원래도 설렁설렁할 생각은 없었지만, 보상이 늘어난다는 말에 절로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그는 곧장 제 쪽으로 쏟아지는 벽돌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슥! 슥슥슥!

진천우는 쉬지 않고 벽돌들을 차례로 썰었다.

붉은 벽돌은 붉은 검으로, 푸른 벽돌은 푸른 검으로.

“휴!”

그러다 잠시 휴식.

물론 벌써 검박자가 끝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벽돌을 썰면 아주 살짝 숨을 돌릴 시간이 주어지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잠시 쉬는 동안, 옆의 무진을 확인했다.

그의 머리맡에 숫자가 적힌 현판이 보였다.

[699]

그리고 제 머리맡에는 ‘719’가 적힌 현판이 떠 있었다.

‘겨우 이십 개 차이인가?’

확실히 무진은 무왕의 재능을 지닌 자가 맞았다.

‘검을 휘두르는 속도나 정확도가 날 월등히 앞지른다.’

자신과 달리 원래부터 검을 다루는 검수라 검박자와 상성도 좋았다.

그럼에도 진천우가 무진보다 성적이 좋은 이유는 간단했다.

휙!

또 벽돌이 날아왔다.

그런데 이전과 조금 달랐다.

벽돌 한가운데 어디로 베는지 알려주는 삼각형 대신 작은 원이 새겨져 있었다.

슥!

진천우가 바로 벽돌을 사선으로 베었다.

이게 처음 등장했을 때는 조금 당황했지만, 한 번 겪고 나자 원은 아무 방향이든 썰어도 된다는 걸 알아냈다.

‘원 외에도 십(十)자가 비스듬히 돌아간 모양의 ‘乂’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무조건 피해야 했지.’

이 벽돌은 건드리는 순간, 기껏 쌓은 점수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 외에도.

부웅!

“흡!”

다른 벽돌과 달리 아예 커다란 벽이 날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처음에는 어디에도 도형이나 문양이 없어 당황했는데, 이것도 ‘乂’자 벽돌처럼 무조건 피해야 하는 벽이었다.

이런 벽돌이나 벽이 하나만 날아오면 아무 문제없지만, 쉬지 않고 베야 하는 벽돌 사이에 간간이 섞여 날아오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간 타이쿤 경험 덕에 이것들의 해답을 단박에 찾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진천우가 무진을 상대로 계속 우위를 점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

진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새로운 게 계속 나올까?

그러고 그것들을 한 번도 빠짐없이 무진보다 먼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자신은 그대로 뒤처지고 만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경쟁전이었다.

“…….”

진천우가 어떻게든 해결법을 찾으려고 사고하고 또 사고했다.

휙!

그때, 또 신검에서 벽돌이 줄줄이 나왔다.

진천우는 일단 잠시 사고를 멈추고 그것들을 베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는데.

“…….”

그러다 갑자기 뭔가를 보고 몸이 굳었다.

신검에도 또 새로운 뭔가가 나온 걸까?

그건 아니었다.

이번에 나온 벽돌은 이전에도 나온 평범한 벽돌이었다.

“…….”

하지만 진천우는 여전히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휙!

결국 그중 하나가 진천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718]

바로 머리 위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717]

[716]

[715]

……

진천우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무진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716]

그러다 결국, 그의 숫자가 진천우의 것을 넘겼다.

도대체 왜?

왜 진천우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걸까?

‘찾았다.’

그 순간, 진천우가 제 쪽으로 날아오는 벽돌들을 뻔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 시험의 진짜 의미를 찾았다.’

씨익!

입꼬리를 가볍게 비틀더니, 느닷없이 이상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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