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 무한의 계단 (5)
(148/210)
148화 : 무한의 계단 (5)
(148/210)
148화 : 무한의 계단 (5)
2022.06.11.
쿵!
“큭!”
진천우가 급히 두 눈을 치켜떴다.
검은 계단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등 뒤에 난데없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커다란 쇳덩이가 몸을 찍어 누르는 것 같았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다른 방해가 더 있는 건가?’
확실히 이러면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 정도 방해에 당할 진천우가 아니었다.
슥!
즉시 다음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휙!
그때, 등 뒤에서 단검이 날아왔다.
그러나 진천우는 이때 단검이 날아올 걸 예상했고, 곧바로 몸을 틀어 단검을 피했다.
확실히 온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의 효과가 컸지만, 영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챙!
방금 막 피한 단검이 계단과 부딪혀 옆으로 날아갔다.
이제부터 날아오는 단검은 환상이 아니란 소리.
휙! 휙휙!
단검들이 또다시 날아왔다.
진천우는 서둘러 그것들을 피하고 동시에 계단을 올랐다.
점점 더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여기서 한 번이라도 계단을 잘못 오르거나, 한 계단에서 삼 초 이상 머뭇거려도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이 정도 방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분명 더 큰 함정이 남아있겠지.’
쿵!
“젠장!”
진천우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몸을 찍어누르는 무게가 늘었다.
몸에 매달린 쇳덩이가 배가 되었다.
휙휙휙!
이 와중에도 단검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챙챙!
그리고 그것들 모두 환상이 아닌 진짜였다.
챙!
“?!”
그 순간, 조금 전에 피한 단검이 계단과 부딪쳐 튕겨졌다.
그런데 하필 튕겨진 방향이 진천우의 눈을 향했다.
“미치겠군.”
휙!
그가 급히 고개를 틀어 단검을 피했다.
하마터면 단검에 찔려 한쪽 눈을 잃을 뻔했다.
그게 아니면 그대로 단검이 눈을 뚫고 뇌에 박혔을지도?
허나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게 정말 우연히 벌어진 일인가 하는 점이었다.
챙!
그때, 또 피한 단검 중 하나가 제 쪽으로 날아왔다.
이번에는 종아리.
당연히 바로 피했다.
이것으로 밝혀졌다.
‘이제부터는 한 번 피하는 거로 끝나지 않나 보군.’
피한 단검이 계단에 맞고 다시 날아오는 것도 생각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야말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쿵!
“큭!”
이때. 또 무게가 추가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을 찍어누르는 무게가 더해지는 건가?’
지독하다.
정말 지독하다.
휙휙휙!
이 상황에도 자신에게 날아드는 단검은 늘었으면 늘었지, 전혀 줄지 않았다.
“?!”
진천우가 갑자기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그의 시선이 검은 계단의 끝을 향했다.
아직 계단을 완전히 오르려면 한참 남았다.
저 끝까지 계속 이런 식으로 올라가야 한다니!
누구라도 정신이 아득해질 터.
그런데 진천우도 이에 정말 정신을 놓은 걸까?
휙!
그는 제 등 뒤로 날아오는 단검을 미리 눈치채고도 이전처럼 몸을 비틀지 않았다.
결국.
푹!
날아온 단검이 그대로 등에 박혔다.
주륵!
단검은 자신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의 등에 붉은 피를 흘리게 했다.
하지만 진천우는 신음을 지르지도, 등에 박힌 단검을 뽑지도 않았다.
휙!
그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휙!
또 새로운 단검이 날아왔지만, 진천우는 이번에도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단검이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휙!
그런데도 그는 그저 걸음만 서둘렀다.
단검을 못 피하는 게 아니었다.
단검을 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에 피하지 않은 거였다.
진천우는 계속 계단을 올랐다.
다른 모든 걸 잊고 오직 계단을 오르는 데만 집중했다.
푹!
그러다 또 새로운 단검이 몸에 박혔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가 이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쿵!
“큭!”
또 몸을 찍어누르는 무게가 늘었다.
쇳덩이가 몇 개나 추가된 걸까?
그러나 진천우는 숨 돌릴 틈도 아쉬운 듯 계속 걸음을 옮겼다.
당연했다.
‘더 시간을 끌면 끝까지 올라가지 못한다.’
그랬다.
이제부터는 계단을 오르지 않고 삼 초 이상 쉬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때문이 아닌, 그냥 시간이 부족해 계속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는 조금 전, 고개를 위로 들어 목표를 바라봤을 때, 이 모든 걸 계산했다.
계산 결과는…….
푹!
젠장, 그럴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휙!
진천우는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 와중에 계속 단검이 날아왔지만, 심장과 머리와 같이 치명적인 위치가 아니면, 그리고 계단을 오르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하체가 아니면 그냥 피할 생각도 않고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쿵!
이때, 또다시 무게가 추가되었다.
“……!”
이제 신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등 뒤에 정말로 태산을 얹은 것 같았다.
부들부들!
온몸이 미친 듯 떨렸다.
슥!
하지만 그는 또 계단을 올랐다.
다행히 이제 목표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얼마 안 남았다.’
정말 얼마 안 남았다.
슥!
진천우는 천근만근의 몸을 억지로 움직여 간신히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푹! 푹푹!
쿵! 쿵쿵!
허나 날아오는 단검과 늘어나는 무게 역시 멈추지 않았다.
으득!
진천우가 이를 갈았다.
이제 남은 계단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남은 체력은 그보다 훨씬 적었다.
솔직히 처음 계산했을 때, 이미 이리될 줄 예상했다.
그때의 계산 결과는 ‘무조건 실패’였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체력을 회복한 뒤 도전하는 게 맞았다.
그게 아니면 애초에 검은 계단이 아닌 하얀 계단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진천우는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진천우도 잘 몰랐다.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데 억지를 부린다?
평소의 그답지 않았다.
그런데도 진천우는 여전히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정상까지 불과 백여 계단만 남겨놨는데.
휙! 휙휙휙!!
또 사방에서 단검이 날아왔다.
이전까지 한 번에 날아왔던 단검의 수의 배가 넘었다.
쿠쿵!
거기다 마치 노린 것처럼 이때 또 무게가 더해졌다.
진천우는 그대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줄 알았다.
아니,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슥!
갑자기 등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주 단단하고 따뜻한 손길이었다.
세상 어떤 것보다 믿음직한 손길.
그런데 진천우는 어째서인지 이 손길이 낯설지 않았다.
아니, 익숙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어째서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평소답지 않은 억지를 부리며 여기까지 꾸역꾸역 올라왔는지.
“너!!”
진천우가 바로 고개를 돌려 제 등을 미는 이를 확인하려는데.
휙!!
그가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먼저 몸이 날아갔다.
“안!!”
그리고 진천우는 그대로 위로 날아갔다.
“돼!!”
그가 곧바로 하려는 말을 모두 끝내는 순간!
쾅!!
진천우는 무언가 투명한 막을 찢고 땅 위에 떨어졌다.
“크윽!”
처음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줄 알았는데.
“얼씨구?”
머리맡에서 처음 듣는 음성이 들렸다.
그제서야 진천우는 제 한쪽 발이 첫 계단을 밟지 않고, 두 발 다 땅을 밟고 있음을 깨달았다.
“넌 어떻게 올라왔지?”
힘겹게 고개를 들자, 웬 노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건 진천우가 보고 싶었던 얼굴이 아니었고.
“……빌어먹을!”
덕분에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
그렇게 진천우는 검봉을 정복했다.
* * *
“허?!”
이건 또 뭐지?
‘지금 이놈이 내 얼굴을 보고 욕한 건가?’
뭐 이런 경우가!!
검선이 기가 찬 얼굴로 혼절한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이걸 이제 어쩐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발로 차 다시 무한계단 아래로 떨어트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놈은 무한계단을 올라 검봉 정상에 당도했다.
‘분명 이놈이 나타나기 직전까지 무한의 계단이 깨질 기미는 안 보였는데?’
그게 지금 검선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무한의 계단은 달성 직전에 특별한 반응이 나타난다.
원래 검선은 그 반응을 알아채고 미리 밖으로 나와 검봉에 도착할 자를 기다린다.
앞서 현석이 검봉에 오를 때, 그가 먼저 나와 기다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내 눈앞에 갑자기 떨어지기 직전까지 그런 반응이 없었단 말이지?’
이는 지금껏 한 번도 없는 일이었다.
‘설마하니 그 녀석이 도와준 건 아니겠지?’
검선이 기절한 진천우를 노려보며,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 녀석이 검봉에 오르기 직전에 아래로 내려간 놈.
‘아니, 아니지.’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말 그대로다.
검봉을 오르는 무한계단에는 아주 신묘한 진법이 설치돼 있다.
그 진법은 계단을 오를 때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처음으로 되돌릴 뿐 아니라, 하나의 무한의 계단에 반드시 한 사람씩 도전하도록 만들었다.
안 그래도 깨기 힘든 무한계단의 시련을 도전자끼리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공정한 절차였다.
‘거기에 외부인이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껏 검봉에 형제자매, 부부 등 온갖 인간군상이 무한계단을 올랐지만, 둘이 한 계단을 오르거나, 외부에서 다른 계단에 도움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혼까지 공유하는 특별한 인연이라도 묶여있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확실히 저 혼자 실력으로 무한계단을 올랐다는 건데. 젠장! 아무리 그래도 내 면전에 대고 욕한 놈에게!’
아무래도 검선은 난데없는 욕설에 꽤나 마음이 상한 모양.
그가 쌍심지를 든 채, 제 허리춤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걸린 두 자루의 검 중 유독 새하얀 검이 보였다.
신검(神劍).
앞서 현석에게 내준 마도(魔刀)와 한 쌍인 이 검에는 아주 신비한 능력이 잠들어 있다.
‘이 신검을 정말 이놈에게 내주라고?’
“흐음…….”
검선은 계속해서 기절한 녀석을 다시 계단 아래로 떨어트리는 상상을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쉽게도 한번 검봉에 오르면 다시 떨구는 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검봉에 오른 다음부터는 여기서 내려가는 것도 다음 시련으로 책정되기 때문이었다.
“뭐, 됐다.”
결국 검선은 포기한 듯 고개를 옆으로 세차게 저었다.
여기서 자신이 진천우를 거부해봤자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차피.
‘검봉에 오른 건 기껏해야 첫 관문에 통과했을 뿐이지.’
그랬다.
신검의 주인이 되려면, 검봉에 올라온 것 외에도 신검의 시험을 따로 치러야 했다.
현석이 마도의 시험을 치른 것처럼.
‘하지만 이 녀석은 마도와 달리 아주 까다롭지.’
정확히는 지랄맞다.
마도는 정말 순수하게 몸의 고통, 정신의 고통을 번갈아 준 뒤 이를 견뎌내는 것으로 시험을 끝나지만, 신검은 그보다 수십 배 더 힘든 시련으로 제 주인을 평가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기껏 검봉에 오르고도 신검이 시험조차 하지 않고 내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녀석은 과연 신검의 시험이나 볼 수 있을지?’
검선은 신검이 진천우를 시험조차 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하며 낮게 웃었다.
우선 이대로 계속 놔둘 수 없기에 그는 진천우를 제 처소에 눕히려 했다.
그런데 그가 기절한 진천우를 안아올리려 할 때, 아주 가볍게 신검의 끝이 그의 몸에 닿았다.
우우웅!!
“응?”
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신검이 느닷없이 검명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왜?!”
그건 그동안 검선이 신검을 맡으면서 한 번도 없던 반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