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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 적룡의 능 (2) (129/210)


129화 : 적룡의 능 (2)
2022.04.27.


“무슨 짓이냐!”

네 번째 지휘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 청년은 지금 제 앞을 막아선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행위인지 모르는 건가?

‘간신히 천마의 후예를 몰아넣었는데!’

당장 소천마의 앞은 천 길 낭떠러지에 막혔다.

그리고 그녀의 뒤와 좌우는 맹의 무인들이 막아섰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

그만큼 지난 사흘간 소천마가 보인 행동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네 번째는 이 방심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조금의 이상도 생기지 않길 원했다.

만일 그런 게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쳐내야 했다.

설령 그게 본 맹에서 지원 나온 책사라 할지라도.

아니, 그런 자라면 더더욱 확실하게 쳐내야 했다.

“당장 저놈을 끌어내게.”

“존명!”

다행히 지금 그 주위에는 명을 받들 무인이 발에 차이도록 있었다.

자신과 같은 지부에서 나온 무인 둘이 진천우에게 다가갔다.

“…….”

그는 무인들에게 양팔이 붙들리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응?”

“음!”

뒤늦게 이상함을 눈치챈 무인들이 양손에 힘을 줬다.

진천우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책사라더니?’

‘이 정도 무공을?’

그의 양팔을 붙잡은 무인들이 두 눈을 치켜떴다.

허나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들은 그 즉시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들이 검을 뽑는 것보다 진천우가 소리 지르는 게 더 빨랐다.

“이건 함정입니다.”

“뭐?”

“함정?”

한발 늦게 검을 뽑은 무인들이 그 상태로 멈췄다.

함정이라니?

누가?

설마 저기 절벽에 몰린 소천마가?

“다 잡은 사냥감이 무슨 함정을 파두었다는 거냐?”

네 번째 지휘관이 다시 진천우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극도로 조심성이 많은 자다.

그렇지 않았다면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의 뒤를 따라 소천마에게 목이 날아갔겠지.

그렇기에 그는 천마의 후예를 다 몰아넣고도, 진천우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슥!

물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네 번째는 즉시 한 손을 들어 맹의 무인들에게 포위망을 좁히라고 명령했다.

소천마 주위 십 장 간격으로 둘러싼 포위망이 천천히 좁혀졌다.

이렇게 느리게 다가가면 어떤 함정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대로 그녀를 짓눌려 죽일 셈이었다.

진천우도 이것까지는 막진 못했다.

대신 그는 손가락으로 소천마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함정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느닷없이 종리우가 끼어들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지원 나온 녀석이 이 상황에서 헛소리를 하는 걸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괜히 저놈 때문에 내 평판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고 보니 저놈, 시험 중에 맹이 독을 풀었다고 외치던 놈이 아닌가?

‘위험한 놈이다!’

최대한 빨리 녀석의 입을 막아야 했다.

“무슨 근거로 저기에 함정이 있다는 거지? 미안하지만 난 그런 흔적을 전혀 찾지 못했는데?”

종리우는 종리세가의 자제다.

제갈세가와 함께 무림에서 손꼽히는 책사 명가.

당연히 명가의 후예는 어릴 때부터 학문과 책략은 물론이고 진법과 천문 등 다양한 공부를 익혔다.

그중 적이 파둔 함정을 미리 알아내는 공부도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확신했다.

‘저곳에는 함정은 없다.’

혹시나 싶어 몇 번이나 곁눈질로 살폈다.

딱히 숨겨진 진법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관의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놈은 뭘 믿고 저곳에 함정이 있다는 거지?’

“함정은 있습니다.”

그러자 진천우가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확실히 낭떠러지 앞에는 어떤 진법의 흐름이나 숨겨진 기관, 함정 따위의 흔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저곳에 함정이 있음을 확신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소천마가 절대 이대로 붙잡힐 리 없다.’

진천우는 종리우보다 소천마에 대해 천 배, 만 배 더 잘 알았다.

그는 처음부터 맹의 추적대에게서 그녀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천마에게는 제 도움이 크게 필요 없었다.

진천우는 이를 맨 처음 그녀를 발견하고, 의안으로 그녀의 몸을 살피자마자 직감했다.

‘지금 그녀의 단전은 봉인돼 있지만…….’

그 뒤 꽤 시간이 흘렀다.

무려 사흘.

소천마는 지난 사흘간 맹의 추적대에게 쫓겼다.

그만큼이나 시간이 흘렀으면.

‘그리고 내가 이렇게, 잠깐이나마 한숨 돌릴 시간을 벌어주면…….’

-멍청한 놈들!

소천마가 갑자기 일갈을 터트렸다.

그 목소리에 항거할 수 없는 내력이 담겼다.

산천초목이 벌벌 떨 정도의 강렬한 목소리에, 한창 포위망을 좁히던 맹의 무인들이 멈춰 섰다.

그중 일부는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다.

“겨우 고함 소리에 뒤로 물러나다니, 이 무슨 추태냐! 당장 포위망을 다시 좁히지 못할까!”

네 번째 지휘관이 즉시 무인들의 지적했다.

그의 얼굴에 낭패인 기색이 역력했다.

‘다 잡은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도 저만한 내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그는 처음부터 소천마의 단전이 봉인된 줄 몰랐기에, 이 상황이 당연히 소천마가 의도한 함정이라 여겼다.

“자네, 대단하군!”

그러니 위기를 미리 알려준 진천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허나 진천우는 네 번째의 칭찬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네 번째는 그가 긴장해서 그런 줄 알았다.

긴장한 건 맞았다.

-고맙다.

조금 전, 진천우의 귓가에 짧은 전음이 울렸다.

‘역시 그녀는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렇게 쫓기는 와중에 자신을 기억해주다니 감격스러울 지경.

-어쩌다 단전이…….

휙!

진천우가 급히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려 하자, 소천마가 그 즉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자신과 달리 진천우의 무공수위는 그리 높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형적이다.

몇 가지만 특출하게 높고, 다른 부분은 아직 부족하다.

이곳은 적지 한가운데.

보는 눈과 귀가 많았다.

혹여나 누군가 전음을 엿듣는다면?

자신은 상관없겠지만, 진천우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일이 벌어질 터.

소천마가 빠르게 심각한 얼굴을 고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아까부터 궁금했던 아주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맹으로 갔느냐?

하긴 진천우가 풍기는 분위기와 성향을 보면, 교나 련보다 맹이 더 어울렸다.

-어디 거기서 마음껏 능력을 펼쳐보거라.

그녀가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짧지만, 진심 어린.

진천우가 주위를 의식하며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다. 쳐라!”

그 순간, 네 번째가 지시를 내렸다.

그는 소천마가 제 상태를 숨겼음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그것조차 찍어 누를 만큼 인원을 추가하면 된다.

파파팟!

네 번째의 지시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맹의 정예 궁사였다.

이미 소천마를 여기로 몰면서 그 실력을 톡톡히 선보인 철궁대의 검은 화살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흥!”

확실히 활은 성가시다.

허나 소천마가 그리 느꼈던 건, 어디까지나 단전이 봉인된 상태로 힘겹게 도주 중에 화살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단전을 회복했고, 더는 달아날 생각도 없었다.

팟!

소천마가 바로 몸을 날렸다.

그 뒤, 그녀는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휘리릭!

날아드는 화살이 그녀의 풍성한 소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내공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조율해야만 펼칠 수 있는 신기.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파라라랏!!

소천마는 방금 자신이 회수한 화살을 사방에 퍼트렸다.

“큭!”

“컥!”

그 속도와 위력이 활로 쏜 것을 상회했다.

믿을 수 없는 일.

지금의 실력을 갖추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궁사들은 제 어깨를 꿰뚫은 화살을 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본 네 번째는 속이 타들어 갔다.

이대로면 기껏 몰아넣은 천마의 후예를 놓칠지도 모른다.

그만한 지원을 받고서!

“실례되지 않는다면.”

그때, 종리우가 네 번째 지휘관 쪽으로 다가갔다.

“뭐지?”

“제가 지휘를 맡겠습니다.”

“뭐?”

“제가 지휘를 맡으면 천마의 후예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

네 번째는 곧바로 종리우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방금 말은 마치 자신이 종리우보다…….

‘아니, 틀림없이 내 지휘 능력은 그보다 떨어지겠지.’

놀랍게도 네 번째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

네 번째라고 하지만, 맹에서 지휘를 맡길 만한 인재로 손색이 없는 인재였다.

그런 만큼 그는 결단도 빨랐다.

“알겠네. 지금부터 자네가 지휘를 맡게.”

“감사합니다.”

종리우가 그 즉시 지휘를 맡았다.

“궁수대는 그대로 대기합니다. 부상이 심각하지 않은 이상, 다시 활을 잡으세요. 지금 바로 총공격에 들어갑니다.”

느닷없는 총공격 명령.

그러나 이미 지휘권은 종리우에게 넘어갔다.

와아아!

맹의 무인들이 노고처럼 소천마에게 달려들었다.

휙!

그 틈새로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칫!”

다시 화살이 성가셔졌다.

아까와 달리 무인과 함께 하는 화살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성가신 건 화살만이 아니었다.

“일 대는 우측으로 돌아가십시오. 이 대와 삼 대는 그대로 정면으로. 사 내는 좌측을 맡습니다.”

아까와 달리 무인들의 움직임이 교묘해졌다.

모두 새로 지휘를 맡은 이의 능력이었다.

이전처럼 지휘관부터 처리하려 해도.

“오 대는 즉시 돌아와 제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순식간에 그들 사이에 벽이 쌓아졌다.

‘저만한 능력이면 벽 하나 세웠다고 시야가 막히거나 판단이 느려 지지 않겠군.’

과연 종리세가.

항상 제갈세가에 비교당하며 한 수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어도, 객관적인 능력으로 충분히 신동과 수재의 영역에 발을 들인 가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순순히 당할 소천마가 아니었다.

와아아아!!

“육 대와 칠대는 딱 세 발만 뒤로 물러나 대기합니다. 만일 천마의 후예가 도주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면 즉시 그쪽을 지원하세요.”

이제 달아날 곳까지 완전히 막혔다.

그러나 소천마는 제 쪽으로 달려드는 백이 넘는 무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휙!

그 순간, 검은 화살 하나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그 화살이 신호가 되었다.

“흥!”

그녀는 곧바로 한 손을 들어 화살을 쳐냈다.

“년!”

소천마가 화살을 쳐낸 틈을 노려, 가장 앞서 달려간 맹의 무인이 그녀를 향해 거도를 내려쳤다.

일촉즉발의 순간!

씨익!

놀랍게도 소천마는 그 상황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쿵!

그리고 딱 한 번, 발을 굴렀다.

천마가 내딛는 걸음.

천마보(天魔步).

쾅!

원래부터 천마보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주위에 강한 충격파를 퍼트린다.

우르릉 쾅쾅!!

허나 그 범위가 너무 컸다.

아무리 천마보라지만.

“어, 엇?!”

맨 먼저 이상을 느낀 건 종리우였다.

뭔가 잘못됐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그때, 맹의 무인 중 누군가 소리쳤다.

“땅이 무너진다!!”

콰르릉!!

그 말대로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몇몇 무인이 그 즉시 물러났지만, 이미 너무 깊게 들어왔다.

“아아악!”

결국 소천마와 백이 넘는 맹의 무인들이 무너진 땅과 함께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거기에 진천우도 포함돼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사전에 미리 예상한 듯 전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서.

‘아무렴, 그녀가 하는 일인데 이런 사태야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그리 믿고 차분히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덕분일까?

“저건?”

진천우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서 무언가 이상한 걸 목격했다.

‘저게 뭐야?’

어째서 절벽 아래에 저런 게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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