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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 천마 대 소천마 (1) (126/210)


126화 : 천마 대 소천마 (1)
2022.04.20.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천마가 물었다.

그는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구음절맥이 뭔가?

온몸에 아홉 개의 절맥을 가지고 태어나는 체질이다.

절맥이 막힌다는 건 생명 활동에 커다란 장애를 갖는다는 것과 같다.

그런 게 무려 아홉 개.

어떻게든 구음절맥을 극복하지 못하면, 단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구음절맥 외에도 또 다른 체질까지 타고났다.

바로 천마지체.

구음절맥이 음이라면, 천마지체는 양이다.

그것도 극음과 극양.

절대 상충할 수 없는 두 체질이 한 몸에 있으니 매순간 고통이리라.

-무엄한 놈!

‘그런 몸인데도 지 아비를 죽인 날 똑바로 노려보며 되레 호통까지 쳤지.’

천마는 잠시 회한에 잠겼다.

* * *

화원 속에서 자란 나비라고 거세게 타오르는 불꽃의 뜨거움을 모를까?

게다가 천마가 본 그녀는 결코 가냘픈 나비 따위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한 눈.

아니, 죽음 따위는 진작에 각오하고, 언제든 자신을 찌를 비수를 숨긴 당찬 무인이 그를 노려보았다.

휙!

소천마, 당시에는 죽은 전 교주의 여식에 불과했던 그녀가 손에 비수를 쥐고 달려들었다.

제법 날카로운 한 수였다.

아마 교에서도 저 나이 때에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이는 몇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그녀 앞에 선 이는 무려 하늘을 거꾸러트리는 마.

그가 아무리 조금 전에 전대 교주를 쓰러트리느라 상당한 내력을 소모했어도, 아니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천마의 감각은 최고조에 달했다.

퍽!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비수가 날아가고, 그대로 교주의 여식까지 벽에 처박혔다.

천마가 굳이 그녀의 숨통을 끊을 이유는 없었다.

그렇지만 끊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다.

전 교주의 여식을 살려두면, 여전히 전 교주에게 충성하는 자들이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

물론 천마는 반란 따위 두렵지 않았다.

전부 쓸어버리면 그만.

단지 귀찮을 뿐이다.

그런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살려둘 이유가?

없다.

주륵!

그런데 그 이유가 생겼다.

“허?”

천마가 제 손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주르륵!

피가 흐른다.

그것도 붉은 피가.

천마도 사람이니 피가 흐르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누군가 그 광경을 봤다면 경악할 게 분명했다.

그는 전대 교주를 백여 합 만에 무릎 꿇렸을 때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사실 천마가 본 실력을 발휘하면 십 합 만에도 끝낼 수 있었다.

그만큼 그의 무공은 압도적이었다.

그런 천마에게 피를 흘리게 하다니.

“재밌군.”

꽈악!

천마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자, 근육이 조이면서 출혈이 바로 멎었다.

그 뒤 그는 조금 전, 교주의 여식이 자신을 찌르려 한 비수를 주워 들었다.

검디검다.

호롱불에 가까이 비춰도 어떤 광채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만년한철(萬年寒鐵).

그 귀하디귀한 철로 만든 비수.

하지만 아무리 귀한 철이라 해도 이것만으로는 자신의 상처가 설명되지 않았다.

전대 교주가 사용한 검 역시 만년한철로 만든 검이었지만 제 몸을 상처 입힐 수 없었다.

분명 교주의 여식이 찌른 공격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 제 손이 비수와 함께 그녀를 쳐내는 순간, 비수 끝에서 아주 기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건 분명…….

“그렇군.”

천마가 홀로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는 괴물이다.

적어도 무공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렇기에 몇 가지 단편적인 단서만으로 원하는 걸 유추해냈다.

‘천마신공! 천마지체!’

교는 지금까지 천마지체를 숭상해왔지만, 그 몸이 천마신공에 최적인 것 외에 다른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만큼 천마지체를 타고난 이가 교주 가문에서도 손에 꼽았기 때문.

천마가 방금 그 비밀을 알아냈다.

허나 천마는 천마지체를 타고 나지 않았다.

상관없다.

‘그럼 내 몸을 갈아치우면 되겠군.’

반로환동(返老還童).

원래는 몸의 시간을 되돌려 신체 최적화를 이루는 현상이지만, 천마는 이것을 다르게 사용할 생각이었다.

반로환동으로 자신의 몸을 천마지체로 만든다.

누가 듣더라도 말도 안 된다고 할 행위였지만, 천마는 강행하기로 했다.

자신보다 몇 배나 뒤져지는 재능을 가진 전대 교주가 그나마 제 상대라도 됐던 건 모두 천마신공의 효과였다.

그 무공에 감탄해 일부러 지켜본다고 백여 합이나 끌었던 것이고, 덕분에 천마는 전대 교주에게서 천마신공을 뺏을 수 있었다.

여기에 천마지체까지 얻으면 얼마나 강해질까?

“살려주마.”

그러니 널 바로 죽이지 않으마.

자신의 몸을 천마지체로 만들려면 원본을 완벽히 숙지해야 하니까.

물론 천마의 능력이면 그녀의 몸을 가볍게 훑어본 것만으로 그 신체 특징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천마지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구음절맥은 빼고 천마지체의 특성만 뽑아내야겠지.’

그러려면 어느 정도 그녀의 성장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천마는 그러기로 했다.

대신 누구도 그의 원대한 계획을 방해하지 못 하게 해야 했다.

“마침 내가 아는 금지가 하나 있는데, 거기라면 네가 달아나지 못하고, 누가 함부로 들어오지도 못하겠지.”

그렇게 천마는 그녀를 금지에 던져놓았다.

하지만 금지에서 교주의 여식이 자살이라도 하면 곤란했다.

“이 금지 안에 화후가 있다더군.”

만약 화후의 내단을 취하면 구음절맥을 극복하는 게 가능했다.

천마는 그녀를 금지에 가두고, 또한 희미한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렇게 교주의 여식은 제 수발을 들 시녀와 함께 천마에게 사육되었다.

그것이 그녀가 금지에서 진천우를 만나기 전까지의 사정이었다.

“구음절맥을 극복한 걸 보니, 화후를 붙잡아 내단을 꺼냈나 보군. 내단은 맛있던가?”

끼이익!

그때 소천마 뒤에서 웬 원숭이가 천마를 향해 삿대질했다.

“응?”

원숭이가 삿대질이라니?

생전 처음 겪는 기이한 체험에 천마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평범한 원숭이가 아니었다.

“화후?”

문헌에 따르면 화후의 털은 눈부신 금빛이지만, 지금은 그저 붉은 기가 약간 섞인 누런 원숭이였다.

허나 방금 자신이 화후의 내단이 맛있었냐는 물음에 역정을 낸 걸 보면, 아마도 화후임이 틀림없었다.

역정을 냈다는 건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거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원숭이는 화후가 유일했다.

끽! 끽끽!

그런데 화후가 돌아버렸는지 천마를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다.

지금 천마는 반로환동으로 어린아이의 모습이었고, 대부분 경지를 넘은 고수가 그렇듯 기운을 완벽히 갈무리해 겉으로만 보면 어떤 특이한 기색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천마가 화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넌 이랑과 함께 멀리 떨어져 있어라.”

끼익?

“저자를 상대로 널 지켜 줄 수 없다.”

끽?!

화후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소천마와 함께 다니며,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꼈다.

그런 인간 암컷이 가볍게 몸까지 떨며 물러나라고 하다니.

끼익?

어라?

그럼 혹시 나 방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지?

“후후후, 나중에 산 채로 네놈의 가죽을 벗겨주마.”

끼이익!!

천마가 분위기를 읽고 가볍게 농을 던지자, 녀석이 기겁하며 그 자리에서 멀리 달아났다.

이제 보니 저 어린 수컷에게도 인간 암컷과 비슷한 냄새가 풍겼다.

어딘가 아주 크게 비틀린 인간 냄새.

저런 냄새를 풍기는 것들은 결코 그냥 농을 던지지 않는다.

아마 인간 암컷이 지면, 저 어린 수컷은 정말 제 가죽을 산 채로 벗기려 할 것이다.

끼긱! 끽끽끽! 끽!!

화후는 정말 머얼리 떨어진 상태로 열과 성의를 다해 인간 암컷을 응원했다.

원숭이가 사람을 응원하는 꼴이라니.

이것도 어찌 보면 참 기괴한 광경이었다.

“소주.”

화후가 물러나자 백의 여인이 주인 곁으로 다가갔다.

“너도 물러나라.”

“하지만…….”

“방금 내가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천마를 상대로 지켜줄 수 없다.

그랬다.

지금 자신은 그녀에게 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백의 여인은 자신의 부족함에 한탄하며 그 자리를 물러났다.

“이야기는 다 끝났나?”

“기다리게 했군.”

천마의 물음에 소천마가 편안한 어조로 대꾸했다.

“흐음?”

그 태도가 천마의 흥미를 끌었다.

‘다 포기하고 수하만이라도 살리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 따로 숨기는 게 있나?’

천마가 소천마를 주의 깊게 살폈다.

허나 이내 곧 실망한 눈빛을 지었다.

특별한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약해졌다.

‘천마지체를 잃었군.’

어떻게?

천마지체는 전설로까지 내려오는 지고의 육체다.

그런 육체를 어떻게 한 건지 절반가량 뚝 떨어졌다.

그 덕에 구음절맥과 반쪽짜리 천마지체가 균형이 맞춰지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천형을 극복한 듯하지만, 그뿐이다.

실망스럽다.

이전보다 약해진 그녀는 천마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제 굳이 더 살려줄 이유가 사라졌다.

“죽어라.”

“네놈이나 뒈져!”

휙!

먼저 입을 연 건 천마지만, 먼저 몸을 날린 건 소천마다.

소천마가 천마의 안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쐐에엑!

섬뜩할 정도로 빠른 일격.

그러나 속도란 언제나 상대적인 것.

소천마의 일격은 교의 장로조차 기겁할 빠르기였으나 천마의 눈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천마지체를 잃은 전 교주의 여식에게 흥미를 잃었다.

“휴!”

천마는 그저 낮게 한숨을 토하더니.

휙!

가볍게 손을 들어 그녀 쪽으로 휘저었다.

둘이 처음 만났을 그때와 똑같았다.

그때도 소천마는 천마에게 비수를 찔렀다.

하지만 천마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둘렀다.

그 손은 만년한철로 된 비수를 튕겨내고, 그대로 그녀까지 쳐냈다.

쾅!

이번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 천마의 손짓은 한없이 느렸지만, 그렇게나 빠른 소천마의 일격을 막은 건 물론이고 그대로 그녀를 덮쳤다.

한 손에 담긴 막강한 거력에 소천마는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쿵! 휙! 휙!

얼마나 강한 힘이 서려 있었는지, 소천마가 양손으로 공격을 막았는데도 견디지 못하고 날아가 몇 번이나 땅 위를 나뒹굴었다.

“소주!”

“오지 마!”

이를 지켜보던 백의 여인이 즉시 제 주인에게 달려가려다, 소천마의 매서운 일갈에 몸이 굳었다.

다행이다.

소주께서는 전혀 기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제 주인의 일갈에 담긴 강한 의지를 읽고 즉시 뒤로 물러났다.

주륵!

소천마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았다.

천마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똑같았다.

그때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주르륵!

그때처럼 또 제 손에서 피가 나는 거지?

“너?”

천마가 놀란 듯, 그리고 감격한 듯 소천마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약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더 강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심지어 방금 그녀가 펼친 무공은 분명!

‘천마신공!’

약했던 전대 교주가 펼친 천마신공 따위가 아니다.

그때 천마신공을 보고 스스로 터득한 자신의 천마신공과도 다르다.

저게 어떻게 익혔는지 모르겠지만, 저 천마신공이야말로 초대 천마가 펼친 진정한 천마신공의 원류다.

즉, 무공만으로 보면 자신보다 훨씬 위.

“카악! 퉷!”

소천마가 가래와 피가 섞인 걸쭉한 침을 옆으로 뱉었다.

조금 전 일 합으로 천마가 경악했다면, 반대로 소천마는 확신했다.

‘해볼 만하다.’

해볼 만하다?

당대 제일인인 현 천마가?

‘선수필승(先手必勝)!’

팟!

그 직후, 소천마가 하늘을 거꾸러트리는 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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