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 진법 해체 (2)
(122/210)
122화 : 진법 해체 (2)
(122/210)
122화 : 진법 해체 (2)
2022.04.11.
“이런!”
갈의 청년이 급히 방금 자신이 박은 말뚝을 뽑았다.
우르르르릉!!
하지만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지맥의 힘을 이용한 효과는 이제 말뚝이란 매개 없이도 그 힘을 점차 키웠다.
이대로라면 본 맹 전체를 둘러싼 진법이 박살 날 때까지 진동이 멈추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원래라면 본 맹을 두른 대진법이 이렇게 쉽게 깨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필 시험장에 펼쳐진 진법이 대진법과 연계돼 있어 그 충격이 내부에서 퍼질 줄이야.
진법을 구축한 이도 설마 내부에서 공격당할 줄은 몰랐던 탓이다.
아니, 이제 와서 원인을 찾아 무엇하랴!
당장 필요한 건 이 사고를 해결하는 일.
갈의 청년, 문왕의 재기를 지닌 천재가 급히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지맥의 힘을 꺾어야 한다.
그 방법이란?
“아!”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다.
갈의 청년이 급히 진천우를 찾았다.
“당장 내게 검을!”
“이유가?”
“지금 그런 걸 설명할 틈이!”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검을 줄 수 없소.”
“이자가!”
휙!
갈의 청년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문왕의 재능을 지녔지만, 무공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지식에만 국한하지 않고 익힐 수 있는 건 전부 익힌 덕에, 그는 책사면서 맹의 무인 못지않은 뛰어난 무공을 겸비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게 어디서 수작질이야?”
뻑!
진천우의 무공이 결코 그보다 낮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새 그 손에 들린 검이 검집에 들어갔다.
검집째 휘두르는 검은 충분히 훌륭한 둔기라 할 수 있었다.
둔기라면 그가 지닌 타구 스킬이 적용된다.
“아무리 강호의 도리가 바닥을 쳐도, 해가 떡하니 떠 있는 대낮에 주인이 두 눈을 시뻘겋게 뜨는 면전에서 물건을 훔치려 들어?”
뻑! 뻑뻑뻑!
“컥!”
한 대 한 대가 뼈를 울렸다.
당연했다.
타구 스킬의 효과로 그 충격이 배로 늘어났다.
우습게도 진천우는 검을 뽑을 때보다 검집에 넣고 휘두를 때 더 큰 피해를 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상황이 상황이니…….”
뻑!
“그러니까 그 상황을 설명하라잖아. 그런데 내 말을 안 듣고 막무가내로 손을 뻗어!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네놈 사부가 그리 가르쳤냐? 알 만하군!”
“사부님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뻑뻑!!
“까고 있네! 그렇게 사부를 생각했으면, 애초에 사부가 욕먹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 하오문 종자 같은 놈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작자가 하오문의 후계자 자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뻑뻑뻑!
진천우는 갈의 청년이 다시는 제 쪽으로 손을 뻗지 못하도록 아예 넝마로 만들었다.
“그, 그, 그만……!”
역시 매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비록 옷차림은 초라했지만 고매하고 단아한 기운이 흘러나오던 청년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옷차림과 똑같이 초라한 거지새끼가 땅을 기었다.
“휴우!”
진천우가 그제야 손에 든 검을 내리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기는 갈의 청년과 눈을 맞췄다.
“이제 말해봐.”
“네?”
“나한테 검을 빌리려는 이유.”
“그게…….”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네, 넷!!”
우르릉!
이 순간에도 진동이 점점 더 거세졌다.
갈의 청년이 급히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진천우에게 고했다.
“삼과 삼과 칠을 이용해 이와 오와 팔을 꺾으려고 합니다. 이때 구와 칠과 일이 필요한데, 거기에 필요한 새 말뚝을 깎기 위해 그쪽이 가진 검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어야지!”
진천우가 한 차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군.’
갈의 청년은 지맥에서 빌린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꺾을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 방식대로라면 말뚝을 매개로 지맥에서 빌린 힘을 반절로 꺾을 수 있었다.
이러면 힘이 부족해져 본 맹을 둘러싼 진법은 무사할 터.
‘다만 그리 돼도 이후 대진법의 힘이 크게 꺾이는 건 피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자신들이 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하오문의 첩자 혐의를 완전히 씻지 못한 진천우였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자신은 하오문의 첩자 따위가 아니라 맹에서 직접 지목한 공적이 될지도 몰랐다.
결국 진천우가 갈의 청년이 알려준 데로 말뚝을 깎으려던 찰나.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그가 알려준 방법을 완전히 이해한 덕에 다시 진법 스킬의 숙련도가 크게 올랐다.
이번에는 관련된 진법이 너무나 중요한 대진법인 덕에, 숙련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올랐다.
진천우가 굳이 갈의 청년에게 설명을 강요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물론 단순히 숙련도만 올리는 거로 끝내려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그 방법은 못 쓰겠군.”
“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삼과 삼과 칠 대신 일과 일과 칠로, 구와 칠과 일 대신 구와 칠과 이로 바꾼다.”
처음에는 갈의 청년도 진천우의 변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문왕의 재기.
금세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됩니다!!”
당연했다.
‘삼을 일로 바꾸고 일을 이로 바꿔?’
“그건 지맥에서 끌어올리는 힘을 배로 늘리겠다는 말 아닙니까!”
지금도 본 맹의 대진법을 모두 깨버릴지 모를 상태였다.
여기서 힘을 더 줬다간 진법뿐 아니라 본 맹의 건물까지 무너질 수 있었다.
“아니, 건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설명할 시간이 없다.”
여기서 갈의 청년에게 설명하고 그가 되묻는 말을 들어 진법 숙련도를 또 올리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곧 대진법이 무너진다.
진천우가 급히 뽑았던 말뚝을 깎았다.
“안 돼……!”
이를 본 갈의 청년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조금 전에 맞은 충격으로 차마 그 손을 앞으로 뻗지 못했다.
진천우는 아까 녀석을 개처럼 패길 잘했다고 여기며 바로 칼질을 끝마쳤다.
푹!
다 깎은 말뚝을 급히 땅에 박았다.
푹푹푹!
동서남북 각기 다른 방향으로.
우우웅!
말뚝을 꽂자마자 진법이 반응했다.
곧바로 지맥의 힘도 용솟음쳤다.
“안 돼!!”
뒤늦게 갈의 청년이 닫았던 입을 열고 절규했다.
그런데.
“안 돼…… 어?”
와장창!
그 직후, 광장을 둘러싼 진법이 무너졌다.
그게 끝이었다.
원래라면 이것과 연계된 맹의 진법도 함께 무너져야 하는데?
확실히 이곳의 진법과 본 맹의 진법은 연계돼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시험용으로 잠시 연계했을 뿐인 얄팍한 관계.
그 연결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진법이 함께 박살 날 뻔한 건, 자신들이 지맥의 힘을 이용할 때, 보다 철저히 무너트리기 위해서 아주 천천히 그 힘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예 단숨에 지맥의 힘을 끌어올리면!’
시험용 진법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본 맹의 진법은 그 충격에 영향을 받기 전에 연결을 끊는다.
이론뿐이지만 완벽했다.
곧장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우수수!!
부서진 진법의 파편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이때, 진법 주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진법의 효과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안다.
특히 이번 시험을 주도하고, 또 일부러 다른 이들을 제자의 제물로 바치려 했던 본 맹의 고위 관계자는 하마터면 무슨 일이 벌어질 뻔한 건지 모를 수 없었다.
“현소야!!”
“사, 사부님?!”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맹주 다음가는 권력자인 총책사의 서슬 퍼런 안광에, 다른 구경꾼들이 기가 질려 뒤로 물러났다.
다만 그의 제자는 그 표정에 두려움보다 황당함이 앞섰다.
“네, 넷?!”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아니, 내가 한 게 일부 있긴 하지만, 전부 내가 한 건 아닌데?
좀 더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저놈이 주도했는데!!
그러나 그의 사부는 변명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네놈! 아무리 내가 새로운 걸 익히는 데 최선을 다 하라고 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느냐!”
“아, 아니!!”
문왕의 재기, 현소가 진심으로 억울해 죽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제 옆에 있는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같이 있는 이 녀석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건데?
“??”
그러자 진천우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아직 신안의 추천장이 위로 올라가지 않은 이상, 자신은 그저 변방 소가문의 후계자일 뿐.
감히 본 맹을 뒤덮은 대진법을 무너트릴 뻔한 실력이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았다.
“허어!?”
그 직후, 현소는 생전 처음으로 울화병이 치밀어 올라 뒷목이 뻐근해지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현상을 겪었다.
* * *
두 번째 시험이 이어졌다.
첫 번째 시험에서 아주 큰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사고로 발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범인으로 여겨지는 자가 총책사의 제자라니.
어떻게든 유야무야 넘겨야 했다.
‘아니,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에 현소가 소리 없이 절규를 질렀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변명을 해봤자 소용없음을 모르지 않았다.
역시 문왕의 재능!
“두 번째 시험은 협업이다.”
“협업?”
지원자 중 누가 바로 되물었고, 시험관은 대답 대신 옆으로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불렀다.
“나오시게.”
시험관의 부름과 동시에 일단의 무리가 광장 주위로 몰렸다.
근 삼백 명에 가까운 인원.
모두 허리나 등에 무기를 들었다.
“이들은?”
“오늘, 자네들처럼 입맹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온 이들이지.”
그 말은 맹의 무인 지원자란 뜻.
그제야 협업의 의미를 이해했다.
아마도 자신들은 저들과 함께 시험을…….
“열 명씩 뽑게.”
“네?”
“아니면, 열 명에게 선택받아야겠지.”
시험관의 엉뚱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좌우에 붙은 맹의 무인들이 아주 커다란 대자보를 뒤편 벽에 붙였다.
지원자들은 처음에 저게 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대자보의 내용을 이해했다.
책사 지원자는 물론이고 무인 지원자조차 그것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저 오른쪽 대자보 가장 위에 제갈민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아래에 적힌 이름은 종리우.
즉, 저 대자보에는 첫 번째 시험의 우수 성적자를 순서대로 나열했다.
그렇다면, 왼쪽 대자보에 적힌 내용은 무인 지원자의 성적순이 분명했다.
두 번째 시험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다 뛰어난 자들끼리 뭉치는 편이 더 수월하게 시험에 통과할 거란 건 자명했다.
“나는 왼쪽 대자보의 열 번째로 이름 적힌 천무기요!”
“난 왼쪽 대자보 일곱 번째요!”
“난…….”
급히 무인들이 오른쪽 대자보 가장 윗줄인 제갈민과 종리우를 찾았다.
반면 진천우에게는 한 사람도 모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누구도 대자보 가장 아랫줄인 이와 함께 하고 싶을 리 없었다.
솔직히 진천우는 누구와 함께해도 크게 상관없었으나.
“어!”
“응?”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은공?”
진천우가 제 쪽으로 다가오는 상대를 알아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만류검법은 제대로 손에 익히셨습니까?”
“네, 시험 중반까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조금 당황했지만, 지금은 완벽히 손에 익혔습니다.”
비록 상대는 왼쪽 대자보 맨 아래쪽에 위치했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직접 강화한 검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