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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 문왕의 재능 (120/210)


120화 : 문왕의 재능
2022.04.06.


우우웅!

갑작스러운 진동과 광장을 감싸는 투명한 푸른 막.

그 즉시 지원자들이 반응을 보였다.

“진법이다!”

“이런?!”

여기 모인 이들은 모두 책사 지망이라, 진법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이를 지켜본 사마중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예정에 없었는데…….’

그가 일이 이렇게 된 원흉을 노려보았다.

“하!”

그런데 녀석의 꼴이!

“사마선생.”

그때, 사마중과 함께 등장했던 맹의 무인이 다가왔다.

그들은 예상외의 사태가 벌어지자 익숙하게 책사에게 의존했다.

“어떻게 이대로 여기 남아있을 수는…….”

“물론입니다.”

스윽!

사마중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당장 이 사태를 만든 놈에게 한마디 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미처 진법이 다 구축되지 않은 지금이 아니면 빠져나올 기회를 잃기 때문이었다.

쿠르릉!

진법이 그의 손짓에 맞춰 크게 진동했다.

잠시 뒤, 투명한 막의 일부가 갈라졌다.

“어엇!”

“저거!”

이를 본 지원자들이 눈을 치켜떴다.

개중 성질 급한 이는 급히 사마중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스륵!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사마중과 맹의 두 무인이 동시에 진법을 빠져나왔다.

이들이 나간 구멍도 그들이 빠져나가자마자 빠르게 복구되었다.

그들을 향해 달려간 지원자들은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허나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

순백의 학창의를 입은 제갈세가의 청년, 제갈민.

그는 사마중이 진법을 빠져나가는 걸 묵묵히 바라보았다.

애초에 제갈민은 남의 성과에 빌붙어 시험을 통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사마중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본 뒤, 그를 따라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이렇게인가?”

우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또다시 진법이 반응했다.

사마중이야 사전에 시험에 사용되는 진법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즉, 처음 본 진법에서 남이 하는 걸 한 번 본 것만으로 진법의 해체법을 알아냈다는 것.

과연 제갈세가!

그런데 뜻밖의 성과를 내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우우웅!

제갈세가의 흰 학창의와 대조적인 검은 학창의 차림의 종리세가의 막내, 종리우.

뿌득!

그는 모처럼 진법 해체에 성공하고도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갈민은 한 번에 해체에 성공했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사마중이 한 번, 그리고 제갈민이 진법을 해체하는 걸 본 뒤에야 간신히 진법을 해체할 수 있었다.

이걸로 종리가가 또 제갈세가에 뒤쳐졌다고 여겼는지, 종리우는 분함에 몸까지 떨었다.

“엇!”

“저기, 둘이 진법을 풀었다.”

“어떻게 벌써?”

그제야 두 사람이 진법을 해체했단 걸 알아챈 다른 지원자가 그쪽으로 다가왔다.

슥!

둘은 인파에 휩싸이기 전에 먼저 진법을 빠져나왔다.

“이런!”

“거, 치사하게 자기들만 빠져나가다니!”

이때, 종리우가 연 입구가 바로 닫혔다.

입구가 닫히기 전, 그는 일부러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자신이 힘들여 성공한 성과에 다른 이가 이득 보는 걸 원치 않았다.

지원자들은 그것을 보며 크게 아쉬워했다.

허나 다른 한쪽은 달랐다.

“이쪽은 계속 열려있다!”

“뭐!”

“입구가 닫히기 시작한다.”

“서둘러!!”

제갈민이 나간 입구는 그가 사라지고도 얼마간 닫히지 않았다.

제갈민은 다른 이가 자신을 따라 진법을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이들과 시험에서 큰 차이를 둘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둘의 성향 차가 드러났다.

어쨌든, 그 덕에 눈치 빠른 몇 명은 운 좋게 진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절반 이상이 남았다.

“흠…….”

진천우도 남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아까 실수를 가장해 광장의 진법을 발동시킨 다음부터 아예 광장 구석에 자리를 몸을 뉘어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마중이 그런 자신을 보고 화를 내려다 급히 빠져나가는 것도, 뒤이어 제갈민과 종리우가 빠져나가는 것도 모두 보았다.

그는 그 모든 걸 계속 지켜보았다.

말 그대로 이곳의 진법의 모든 것을.

‘쉽지 않은 진법이구나.’

진천우는 결론을 내렸다.

우웅! 웅!

시간이 지날수록 진법이 점점 더 견고해졌다.

분명 처음에는 평범한 바닥이었던 것에 희미한 문양이 생기기 시작했다.

잠시 뒤, 다른 이들도 이를 눈치챘다.

“이런!”

“큰일이다!”

“서둘러 빠져나가야 해!”

“누구 진법에 대해 아는 사람?”

원래 진법은 아주 수준 높은 공부였다.

그러나 여기 모인 이들 역시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적어도 맹의 책사 시험을 보겠다며 전국에서 모인 인재들.

개중 어느 정도 진법을 익힌 이가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다른 이들이 머리를 맞댔다.

“여기에는 이런 방법이…….”

“잠깐, 그 말대로라면 이 방법도 되지 않아?”

“아니, 난 이 방법 같은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그들 중 일부가 곧 진법의 해체법을 알아냈다.

우우웅!

“됐다!”

“지금이야!”

그렇게 또 절반이 진법을 빠져나갔다.

헌데 그 무리에도 진천우는 들어있지 않았다.

“…….”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슥!

그러다 마침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알겠다.’

드디어 첫 번째 시험의 의미를 알았다.

‘이건 시험이 아니다.’

시험은 원래 무언가를 평가하는 것.

그런데 광장을 뒤덮은 진법은 무언가를 평가하기 위한 진법이 아니었다.

되려.

‘우리를 가르치기 위한 진법이다.’

무엇을?

당연히 진법을 가르치기 위한 진법이었다.

우우웅!

그때, 처음에는 희미했던 바닥에 문양이 선명하게 바뀌었다.

스륵! 스르륵!

문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양을 바꿨는데, 처음에는 하나 그다음은 둘, 셋 이렇게 차례로 문양의 수가 늘었다.

하나와 둘일 때는 뭔지 몰랐는데, 그 수가 셋으로 늘어나자 진천우가 문양의 의미를 알아챘다.

‘삼재(三才)?’

문양 셋은 천지인(天地人)을 뜻하는 삼재였다.

슥!

문양이 넷으로 늘어났다.

‘이건 사상((四象).’

이제야 문양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했다.

문양은 삼재와 사상 외에도, 무극, 음양, 오행, 육합 등 진법을 구성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을 차례로 나타냈다.

“저건 칠성?”

“이건 아무리 봐도 팔괘 같은데?”

숫자가 일곱으로 늘어나자, 진천우 외에도 문양의 의미를 알아채는 이가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 모인 이는 전국에서 모인 인재였다.

개중 진법이 처음인 자도 있지만, 앞서 몇 번이나 다른 이들이 진법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보았다.

거기에 이렇게 기초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면.

우웅!

“돼, 됐다!”

“잠깐, 나도!!”

우우웅!!

이렇게 직접 진법을 해체하는 이도 나왔다.

어찌 보면 먼저 진법을 나간 이들은 아주 큰 손해를 본 것이다.

눈앞에 닥친 난관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남의 성과에 빌붙어 해결하려 한 덕에 직접 진법을 해체하는 천금보다 귀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우우우웅!

“됐다!”

문양이 구궁(九宮)에 이어 십방(十方)을 가리킬 무렵, 또 몇 명이 진법을 빠져나갔다.

이때도 진천우는 진법 안에 남아있었다.

“쯧!”

오히려 그는 먼저 진법을 나서는 이를 보고 혀를 찼다.

왜 벌써 나가지?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이곳은 진법을 가르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최대한 오래 남아 조금이라도 더 진법을 익히는 게 이득이었다.

‘아마 저들은 아직도 이게 그냥 시험이라 생각한 모양이군.’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아직 다섯이나 남았다.

그들 모두 진천우처럼 묵묵히 바닥의 문양을 바라보며 진법을 익혔다.

허나 이제 바닥의 문양은 더 바뀌지 않았다.

우웅!

결국, 남은 이들도 그간 배운 지식을 활용해 진법을 빠져나갔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번째 사람은 앞의 둘보다 좀 더 참을성이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양이 더 바뀔 기미가 없고, 주위를 살펴도 더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그는 미련 없이 진법을 빠져나갔다.

이제 진천우와 한 명, 그렇게 둘만 남았다.

‘깃발은 쓸 수 없겠군.’

그에게는 진법과 상극인 물건이 있었다.

청색과 백색 그리고 누런색의 깃발.

그러나 진천우는 이걸 쓸 생각이 없었다.

굳이 맹 한가운데서 깃발을 사용해 주위의 이목을 모을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그는 아직 여기서 관찰한 대상이 남아있었다.

자신과 함께 남은 마지막 한 사람.

“…….”

갈의 차림의 청년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듯,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옷이 어찌나 낡았는지 변방 출신인 진천우의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하지만 바닥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세상 어떤 것보다 눈부셨다.

그 빛은 하물며 종리세가와 제갈세가의 화려한 학창의와도 비할 수가 없었다.

“중얼중얼…….”

갈의 청년은 바닥을 바라보며 계속 쉬지 않고 중얼거렸는데, 가만히 듣고 보니 진법의 기초부터 중등, 고등 이론까지가 모두 녹아있었다.

[스킬 ‘진법’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단순히 그 중얼거림을 듣는 것만으로 숙련도가 상승했다.

‘대단하군.’

진천우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자를 천재라 하는 걸까?’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

그것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뚝!

그때, 갑자기 천재가 중얼거림을 멈췄다.

그 즉시,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바로 직전까지 여기에 남아있던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이걸 찾나?”

그때, 진천우가 처음으로 입을 뗐다.

“?!”

그제야 옆에 누가 있다는 걸 알아챈 천재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옆에 진천우가 있는 것도 몰랐던 모양.

“!?”

허나 그는 한 발짝 물러난 직후, 곧바로 세 걸음이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자신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찾던 게 진천우의 손에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누구?”

“진천우.”

“손에 든 검을 빌려주면…….”

“미안하지만 빌려줄 수 없네.”

“…….”

천재가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이상은 강요할 수 없었다.

책사 시험이라고 무시하여 따로 날붙이를 가져오지 않은 건 자신이었다.

헌데 그는 진천우의 다음 말에 한 번 찡그린 눈을 크게 치켜떴다.

“자네가 쓰는 것보다는 내가 더 쓸 수 있을 테니까.”

“뭐?”

설마 내가 검을 빌려 그걸로 뭘 할지 안다는 건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갈의 청년에게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다면, 진천우에게는 타이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여기서 나간 이들 모두에게 없었던 중요한 한 가지를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나간 자는 혹시나 진법에 더 얻을 게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진천우와 갈의 청년이 주위를 둘러본 이유는 달랐다.

“이 진법을 완전히 박살 낼 생각이지?”

“…….”

둘은 단순히 진법을 빠져나가는데 만족하지 않고, 아예 진법을 박살 내려 했다.

그래야만 이 진법을 온전히 흡수한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내게 검을 빌려주면…….”

“안 빌려준다니까. 잔말 말고 이거나 돕게.”

진천우가 곧바로 상대의 말을 잘랐다.

아무렴!

이 진법을 온전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흡수할 기회를 어찌 남에게 줄 수 있을까?

‘너는 내가 먹고 남은 찌꺼기로 만족해라!’

그렇게 맹의 시험과는 별개로, 진천우와 이름 모를 천재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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