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천마
(113/210)
113화 :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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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 천마
2022.03.21.
슥!
어린 점소이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정체 모를 말린 풀.
아이는 그걸 작은 곰방대에 꾹꾹 눌러 담더니, 그대로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스읍!”
후!
흰 연기가 아스라이 공중에 흩어졌다.
동시에 고약한 연기가 사방에 퍼졌다.
평범한 담배가 아니다.
아편,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독한 무언가.
보통 저런 아이가 이 같은 걸 피우면, 누군가 나서서 말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이 객잔에는 어린 점소이, 아니 하늘을 거꾸러트리는 마인 천마 외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었다.
“후우!”
천마가 또 한 번 흰 연기를 토했다.
홧김에 계획에 없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그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바라보았다.
어리고 미숙한 몸.
어찌 이런 몸을 한 자가 천마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은 천마다.
만일 이를 부정하는 이가 있다면, 그 즉시 사지를 찢어 발길 거다.
그렇다면 이 몸은 어떻게 된 걸까?
무림에 전해지는 전설 중 반로환동(返老還童)이란 게 있다.
벽을 몇 번이나 넘은 무인이 결국 깨달음을 얻어 몸이 젊어지는 현상.
그런데 천마는 너무나 뛰어난 능력으로 그 같은 전설조차 거꾸러트리고 말았다.
본래 반로환동은 노인에서 청년이 되는 현상일진데.
‘설마 반로환동으로 아이가 될 줄이야.’
교는 맹, 련과 아주 많이 다르다.
교는 철저한 강자존의 법칙으로 굴러갔다.
강자만이 존귀한 세상에 정점을 찍는 천마가 갑자기 어려졌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
그 사실을 안 장로들이 즉시 반기를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어려져도 천마는 천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잔인하며, 자비 없는 존재.
그날 천마는 교의 수뇌부를 숙청했다.
그리고 은거에 들어갔다.
이에 천마가 수뇌부를 숙청하느라 힘이 다했다 여겼는지 다시 반란이 일어났다.
천마는 또 그것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그런 뒤 다시 은거에 들어갔지만, 이제 교에서 불온한 움직임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교는 그대로 침묵했다.
지난 몇 년, 련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하는 동안 교가 이상할 정도로 가만히 있었던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런 천마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하늘을 거꾸러트리는 마는 천하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슨 일을 벌일까?
엉뚱하게도 그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아까 그놈…….’
느닷없이 혈야방의 셋째를 의자로 가격하고 달아난 놈.
거기까지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혈야방이 련을 따르는 가장 큰 일곱 세력 중 하나라도, 천마의 눈에는 조금도 차지 않았다.
이 일로 설사 맹과 련이 전쟁을 벌인다 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략과 음모.
이는 강자존에 크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물론 천마는 유연한 사고의 존재로, 필요하다면 음모든 계략이든 조금의 주저 없이 사용한다.
문제는 그는 그것들을 쓸 필요가 없을 만큼 너무 강했다.
천마를 자극한 건 따로 있었다.
두근!
“흠…….”
마지막에 진천우가 객잔을 빠져나갈 때, 천마의 심장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의 몸은 사소한 일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반응했다는 건 어쩌면…….
‘천마신공과 관계됐다는 건가?’
사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마는 현재 천마신공의 극의를 완성했다.
그런 자신이 다른 천마신공을 못 알아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놈이 나 이상으로 천마신공의 극성에 도달했거나, 그게 아니면 나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천마신공을 변형시켰다는 건데…….’
둘 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천마신공?
그 자체로 녀석은 천하제일인이란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천마신공은 천하에서 가장 순수한 기운.
순수할수록, 아니 순수하기 때문에 그것은 절대 성질을 바꾸지 않는다.
설령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천마신공은 절대 그 성질을 바꿀 수 없었다.
이는 천마 자신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재밌겠군.”
스읍!
천마가 천천히 공방대를 빨았다.
이 연기를 뿜는 즉시 움직이자.
비록 녀석이 객잔을 나가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주 조금만 진심을 발휘하면, 그까짓 거리가 아무리 벌어졌든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후우우!”
그러나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교주시여!”
천마가 세 번째 연기를 토해내는 순간, 그의 앞에 검은 무복 차림의 무인이 불복했다.
조금의 기척도 없이 나타난 무인.
천마는 진작에 그의 존재를 눈치챈 듯,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단지 궁금할 뿐.
“무슨 일이지?”
틀림없이 중요한 사항이 아니면 나타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놀랍게도 중요한 사항이었다.
“반역입니다.”
“하!”
재밌다.
정말 재밌다.
일찍이 은거 전에 두 차례에 걸쳐 난을 제압했다.
‘그런데도 또 반역을 일으킬 뚝심 있는 놈이 교에 아직 남아있었나?’
누굴까?
‘부교주? 아니면 대장로? 혹은 새로 세운 장로 중에? 그것도 아니면 마교 육가의 가주들인가?’
놀랍게도 그 모두 아니었다.
“그게, 전 교주의 여식이…….”
“뭐?”
천마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직 살아있었더냐?”
그는 그것의 상태를 잘 안다.
잘 알기에 일부러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다.
아무리 초대 천마의 적통을 이어 천마지체를 이뤘다 해도, 그녀가 가진 또 다른 체질이 모든 걸 망쳐 놓았다.
그런 몸으로는 반역은 꿈도 꿀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의 존재는 언젠가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살려두었다.
아무도 모르는 금지에 가둬놓고 간신히 목숨만 연명할 수 있도록.
‘그런데 그게 움직였다고?’
그것도 교에 반역을 일으킬 정도로 격렬하게?!
“재밌군.”
씨익!
천마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 이 객잔에서 있던 일들은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건 어디에 있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라!”
그 짧은 한마디가 끝나자마자.
휙!
천마와 검은 무복의 무인은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
그 뒤 객잔에는 한참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 * *
히이이잉!!
진천우가 탄 말이 울음을 터트렸다.
털썩!
그리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수고했다.”
그가 조용히 말의 갈기를 쓸었다.
자신이 타고 온 말은 정말 열심히 달렸다.
객잔을 떠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렸으니 수고란 말도 부족했다.
털썩!
그의 옆에 또 다른 말이 쓰러졌다.
백풍대주가 타고 온 말이었다.
“허허…….”
그도 자신이 타고 온 말의 갈기를 쓸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살짝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한 번 경험했건만.
“또 사흘 거리를 하루로 줄였군.”
“모두 백풍대주께서 본 맹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일러준 덕분입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는 참 대단한 일이다.
만일 진천우의 환단이 맹에 널리 보급된다면, 련과 교의 세력 다툼에서 크게 우위를 차지할 게 분명했다.
“정말 그 환단을 대량생산할 수는 없는 건가?”
“아쉽지만.”
아무렴 그런 생각을 지부의 다른 이들도 하지 않았을까.
당장 신안이 진천우에게 환단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천우가 일러주는 약재의 절반만 듣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환단에 사용되는 약재가 하나같이 너무 귀했다.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
다른 이도 아닌 신안이 그리 결론 내렸다면, 그렇다는 것.
백풍대주는 더는 아쉬움을 표할 수 없었다.
“백풍대주님!”
그때, 본 맹 입구를 지키는 무인이 백풍대주를 알아보았다.
“돌아오셨습니까?”
“그래, 돌아왔네.”
어찌 됐든, 잘됐다.
그는 맹으로 돌아온 김에 바로 혈야방의 일을 윗선에 보고해야 했다.
“진 공자도 같이 들어가지.”
그런데 맹의 무인이 진천우의 앞을 막았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따로 허가받은 분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로 허가라니!
“이보게, 진 공자는 신안 어르신께서……. 아!”
백풍대주는 뒤늦게 자신들이 너무 일찍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확실히 신안 어르신께서는 따로 전서구를 보내주신다고 했지만.’
그걸 자신들이 떠나자마자 보낸다고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흘 거리이니 하루나 이틀 뒤에 보내도 늦지 않는다.
게다가 만일 둘이 떠난 뒤에 바로 보냈다고 해도.
‘다른 이도 아닌 맹의 좌책사인 신안 어르신의 전갈이니, 따로 수뇌부에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터.’
그것까지 생각하면, 아무리 빨라도 지금부터 반나절은 더 걸릴 거다.
“허어, 이걸 어쩐다?”
백풍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맹의 무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백풍대주님.”
“진 공자?”
진천우가 조용히 백풍대주를 불렀다.
“전 괜찮으니, 먼저 안으로 드시죠.”
“그러나…….”
“급히 보고할 게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 근처에서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옳은 말이다.
적어도 혈야방의 일은 시급을 요하는 일이다.
이대로 진 공자를 떼어놓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백풍대주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 보고를 마치고 바로 자네를 찾을 터이니, 꼭 기다리고 있게나.”
그는 혹시 보고가 늦거나 허락이 늦을 때를 대비해 본 맹 근처 가장 큰 객잔을 알려주고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진천우는 혼자가 되었다.
‘잘됐군.’
잘됐다?
어째서?
사실 그가 정말 본 맹에 들어가려 했다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동행한 백풍대주의 신분이 확실하니, 그가 무조건 보장한다는 억지를 부리면 어떻게 허가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천우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홀로 남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벤트 ‘타임 어택’에 성공했습니다.]
본 맹에 도착하자마자 푸른 현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평균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습니다.]
[타임 어택의 신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물론 진천우는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힘을 낸 게 아니었다.
단순히 그런 거였다면, 절대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없었다.
‘왜 천마가 날 뒤쫓아오지 않았지?’
그는 말을 탄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정말 천마가 나타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만 생각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리는 말에게 미안할 정도로 계속 몰아붙였다.
그 덕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일단 본 맹에 도착했으니, 천마의 위협은 완전히 피한 거겠지?’
적어도 타이쿤의 보장이 떴으니 이건 믿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의문은 남았지만, 당장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일단 타이쿤의 마지막 남은 문구를 마저 읽고.
[초월달성!]
그것마저 읽으면, 남은 건 보상을 획득하는 일이다.
[보상을 확인하기 위해,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세요.]
진천우가 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