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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 만남 (3) (112/210)


112화 : 만남 (3)
2022.03.19.


“네 이놈!”

“감히 삼 공자께 무슨 짓을!”

혈야방의 삼 공자가 의자에 맞아 눈을 까뒤집히자, 좌우의 호위들이 칼을 뽑았다.

사파라고 모두 불한당인 건 아니다.

대개 그 손속과 수단이 모질고 잔인해서 그렇지, 그들 역시 자기만의 법도와 질서를 중시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맹 이상으로 철두철미했다.

그런데도 그 같은 법도와 질서를 무시하는 망나니의 존재가 용납되는 이유는 하나였다.

혈야방의 방주가 셋째를 특히 아꼈다.

첫째, 둘째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그러니 지금껏 셋째가 저지른 온갖 패악이 공공연히 용인될 수 있었다.

그런 삼 공자가 기습을 당하다니.

당장 수습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목이 달아난다.

두 호위가 동시에 진천우에게 몸을 날리려는데.

퍽!

“컥!”

갑자기 오른쪽 호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들은 너무 경악한 나머지, 그만 아래층에 있던 백풍대주를 잊었다.

그는 어느새 상층까지 올라와 오른쪽 호위의 목덜미를 검집으로 내려쳐 제압했다.

툭! 툭툭!

거기다 점혈까지!

“이, 이놈!!”

기겁한 왼쪽 호위가 급히 뽑아 든 검을 휘둘렀다.

뭔가 잊은 게 있지 않나?

퍽!

“크헉!”

이번에는 진천우가 나섰다.

단단한 의자에 가격당한 왼쪽 호위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단순히 의자로 때린 것뿐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방금 그건 무려 역근경과 타구, 그리고 점혈 등 무려 다섯 가지의 스킬로 만든 조합 공격이었다.

이제 혈야방의 셋째와 마찬가지로 두 호위도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이 정리되자, 뒤늦게 백풍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일단은 급한 마음에 몸을 날렸지만, 이 일을 어쩐다?

‘하필 혈야방을 건드리다니!’

문제가 심각했다.

안 그래도 련의 기습이 자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마당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자칫 잘못했다간 정말 맹과 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거기에 시발점이 된 게 바로 자신이라니!

걱정도 되고 혼란도 됐지만, 백풍대주가 가장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진 공자!”

그가 급히 진천우를 불렀다.

“이 일은 내가 책임지겠네. 자네는 당장 이 자리를 뜨게.”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백풍대주는 괜히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스스로 짊어지려 했다.

“…….”

그러나 진천우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진 공자!”

“…….”

백풍대주가 다시 한번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진천우는 쓰러진 혈야방의 무인들을 무시하고, 조금 전까지 그들이 앉았던 탁자부터 살폈다.

스윽!

쓸데없이 방해되는 그릇과 술잔을 치우고, 탁자 위에 새겨진 족적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걸로 현석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찾아야 한다!

‘이 방향은?’

진천우가 급하게 족적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에 창이 보였다.

틀림없이 발자국의 주인은 이 탁자를 밟고 저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즉시 창을 열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웅성웅성!

아래는 인파가 가득했다.

이곳은 본 맹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 중 하나라 어딜 가든 사람, 사람, 사람뿐이었다.

게다가 이미 시간도 너무 흘렀다.

“진 공자, 아쉽겠지만 그걸로는 현석을 찾지 못할 걸세.”

보다 못한 백풍대주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장 진천우를 내보내고 자신은 여기 남아 지부에 급히 전갈을 보내야 한다.

휙! 휙!

그런데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 창밖으로 내민 고개를 연신 세차게 좌우로 저었다.

소중한 사람을 찾기 위해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래!’

이를 지켜보던 백풍대주의 가슴이 사뭇 뭉클해졌다.

‘제 하인을 위해 저리 마음 쓰는 젊은이를 지킬 수 있다면, 내 어찌 상부의 질책 따위를 두려워하겠는가?’

그는 더더욱 진천우를 위해 오명을 뒤집어쓸 각오를 다졌다.

휙!

그때, 진천우가 객잔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쓰러진 혈야방의 무인과 백풍대주에게 시선을 한 번씩 주더니, 급히 입을 열었다.

“아까 날아간 점소이는?”

“그 아이는 걱정할 것 없네. 다행히 외상이 크지 않아서 바닥에 눕혀두고 왔다네.”

“그럼 됐습니다. 빨리 이쪽으로!”

“아니, 나는 됐네. 난 여기 남아서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됐으니까 빨리!”

진천우가 드물게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고집으로는 백풍대주도 지지 않는다.

애초에 어떤 외압과 유혹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자만이 맹의 외부 감찰을 맡는 백풍대의 대주직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진천우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무척 다급한 건 물론이고, 당장이라도 자신을 따라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만약 저 표정이 연기라면, 그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건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건 다른 어떤 윽박과 유혹 이상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백풍대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그는 마치 홀린 듯 진천우가 뻗은 손으로 걸어갔다.

“아, 아니!”

그렇게 몇 걸음 옮기다, 정확히 창 앞에서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안 된다.

이대로 달아나는 건 있을 수 없다.

자신은 본 맹의 무인으로서 어떤 책임도 피하지 않고 당당히 짊어져야 할 책임이…….

그때, 진천우가 다시 입을 뗐다.

“절 믿으셔야 합니다.”

“으으으…….”

여전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기만 했다면, 백풍대주는 결코 이 이상 걸음을 떼지 않았을 터.

방금 진천우의 목소리에는 남들은 모르는 아주 강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알겠소.”

그것을 믿기에 백풍대주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진천우와 함께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진천우와 백풍대주가 객잔을 떠나고 얼마 뒤.

“큭!”

혈야방의 셋째가 정신 차렸다.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놈을 찾았다.

허나 그놈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쓸모없는 제 주위에 쓰러진 호위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이!”

퍽!

그는 곧바로 제 호위를 걷어찼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날 지켜야 할 놈들이 여기서 쓰러져 있어?

퍽퍽퍽!

“큭!”

“요, 용서를!”

“쓰레기들! 쓰레기들!”

얻어맞으면서 간신히 점혈을 푼 호위들이 삼 공자에게 용서를 빌었다.

무조건 빌고 또 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이 날아간다.

“좋아, 용서해주지.”

어?

이렇게 간단히?

평소 삼 공자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히 팔 하나쯤 날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용서 뒤에는 다른 속셈이 숨어있었다.

“대신 내가 치욕을 당한 일을 아예 없는 일로 만들어라.”

두 호위가 목숨을 구제할 기회는 반대로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야만 이뤄질 수 있었다.

확실히 이대로 물러났다간 혈야방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치욕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오늘 이 객잔에서 혈야방의 치욕을 본 자들은 모조리 죽여 그 입을 다물게 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존명!”

두 호위가 그 즉시 아래층으로 몸을 날렸다.

뿌득!

객잔 상층에 홀로 남은 혈야방의 셋째가 분노로 이를 갈았다.

‘내 반드시 그 두 놈을 찾아내 오늘의 치욕을 갚겠다!’

털썩!

잠시 뒤, 아래층에서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털썩!

곧바로 똑같은 소리가 또 울렸다.

‘빠르군.’

그리고 일 처리도 깔끔했다.

설마 비명 하나 지를 새도 없이 처리하다니.

‘하긴, 그러니까 아버님이 내 호위로 붙여준 거겠지.’

원래라면 살인멸구를 끝내도 방으로 돌아가면 바로 두 녀석의 목을 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열심히 한다면, 목 대신 팔 하나로 봐줄 수도 있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대로 꽤 시간이 지났는데 더는 어떤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이 객잔에 불과 두 사람만 있을 리가 없는데?

당장 자신이 여기서 본 점소이만 셋이나 되었다.

“이것들이 조금 칭찬해주려 해도 또 금세 또 날 실망시키는군.”

저벅!

그때,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왜 벌써 올라오지?

설마 놓친 건가?

“이 무능한 것들이! 그것 때문에 내게 빌 시간이 있으면 당장 도망친 놈들을 쫓아서 베고 와야 할 것…….”

혈야방의 셋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려다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지금 계단에서 올라오는 이가 자신의 예상과 너무 동떨어졌다.

“손님?”

“너, 넌?”

자신들을 상층으로 안내했던 어린 점소이.

그 안내했던 자리에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고 자신이 직접 발로 걷어찼던 바로 그 꼬마였다.

저놈이 어떻게 벌써 정신을 차린 거지?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밑으로 내려갔던 호위 놈들이 뭘 했길래 저깟 꼬맹이가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혈야방의 셋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일단 당장 그가 할 일은 하나였다.

스릉!

서둘러 칼집에서 칼을 뽑고!

이 칼로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이 어린놈을 잔인하게 도륙 내는 것!

“이야아앗!!”

혈야방의 삼 공자가 꼬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휙!

서슬 퍼런 칼이 꼬마의 정수리를 향해 매섭게 떨어졌다.

쾅!!

그 직후, 어째서인지 칼에 베이는 소리 대신 아주 커다란 굉음이 객잔 전체를 크게 진동시켰다.

* * *

“이럇!”

히이이이잉!!

진천우가 서둘러 말을 재촉했다.

“진 공자?”

역시나 말을 탄 백풍대주가 옆에 바짝 붙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오? 이대로 가다간 얼마 안 가 말이 쓰러질 거요.”

휙!

진천우가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받고 보니 그건 색색깔의 환약이었다.

얼마 전, 지부의 약재를 모두 써 대량으로 만든 바로 그 환단.

그런데 이걸 왜?

“서둘러 말에게 먹이고 나머지도 드십시오.”

“어째서 이걸?”

그 순간, 백풍대주가 뭔가를 번뜩 떠올렸다.

“하인의 행방을 찾은 것이오?”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그가 알기로 진천우가 느닷없이 서두를 이유가 그것밖에 없었다.

헌데 아니었다.

“아니, 우리는 지금 본 맹으로 향합니다.”

“본 맹으로?”

어째서?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진천우는 당장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설령 말한다 해도 백풍대주가 믿지 않을 거란 걸 그는 알았다.

아니, 믿으면 믿는 데로 또 문제였다.

자신이 아는 백풍대주의 성격상 결코 이 일을 그냥 두고 볼 리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족적을 발견할 때까지는 좋았다.

‘이건…….’

맨 처음 족적을 발견한 혈야방의 무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탁자와 창 사이 거리가 생각보다 제법 떨어졌다.

아마 그들은 평생 무공을 익힌 무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무공을 익힌 지 얼마 안 된 진천우는 달랐다.

‘무공을 모르는 범인이 단숨에 뛰어넘을 거리가 아니다.’

그렇다는 건 족적의 주인은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란 뜻.

현석은 무공을 모른다.

즉, 그 객잔에 있던 건 현석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깨닫고 아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는 순간, 진천우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현판의 내용을 확인한 그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러나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당장 여기서 달아나야 한다.

달아나?

무엇으로부터?

당시 백풍대주가 느꼈던 다급함과 심각함은 실제 진천우가 느낀 감정의 십 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객잔과 상당 거리나 떨어진 지금도, 진천우는 여전히 심각하고 두려웠다.

“백풍대주! 절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아, 알겠소.”

그가 다시 한번 백풍대주에게 다짐을 받으며, 달리는 말 위에서 시야 구석의 현판을 확인했다.

너무나 끔찍한 내용이 적힌 그 현판을.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는 객잔!’과 ‘무림에서는 특히 노인과 아이를 조심해라!’가 맞부딪쳤습니다.]

[특수 이벤트 ‘타임 어택’이 발생합니다!]

[사용자가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하늘을 거꾸러트릴 마, 천마(天魔)’와 조우했습니다.]

[천마가 사용자에게서 희미한 천마신공(天魔神功)의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그에게 완전히 들키기 전에, 그리고 붙잡히기 전에 서둘러 본 맹의 담장 안으로 몸을 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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