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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 맹으로 가기 전에 (5) (108/210)


108화 : 맹으로 가기 전에 (5)
2022.03.09.


“꼼짝 마라!”

남쪽에서 몰려온 이들.

“아니!?”

“이런!?”

그들을 알아본 진천우와 도귀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한 명이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도귀는 웃었다.

“하하하!”

기뻐서 나는 웃음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당했다는 생각에.

사람이 정말 화가 나면 웃음이 나올 수도 있구나.

“네놈……. 날 희롱했구나!”

“…….”

진천우는 침묵했다.

솔직히 그는 억울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자기가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설마 지부의 고수들이 나타날 줄이야.

-염병! 좀 철두철미한 게 저 둘이라면, 평범하게 철두철미하면 지부의 고수들까지 모두 대동했겠군.

이때, 진천우는 이렇게 답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다음에 꼭 참고하겠습니다.

‘아니, 그건 진심이었는데.’

그런데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부의 고수들이 등장했다.

지금 도귀가 속으로 얼마나 기가 찰지 절로 짐작이 갔다.

“이이…….”

그녀는 아예 분노로 몸을 떨었다.

금방이라도 몸을 날려 분노를 풀 줄 알았는데, 도귀는 의외로 수하들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지 마라!”

명이 떨어지자, 하오문의 도비들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부의 무인들이 그들을 완전히 포위할 때까지.

허나 그건 참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호오, 자네는 그 유명한 하오삼귀 중 둘째가 아닌가?”

“제갈세형…….”

서슬 퍼런 기세를 내뿜는 무인들 뒤로 제갈세형이 모습을 보였다.

제갈세가의 숨은 괴물 중 하나인 그는 지금의 도귀로는 꽤 벅찬 상대였다.

꽈악!

그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단순히 벅찬 상대라면 자신도 이리 무력하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오문의 자긍심을 걸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제갈세형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것 참 뜻하지 않게 귀한 이를 만나게 되었군.”

제갈세형의 등 뒤에서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신안.

제갈가의 괴물보다 열 배는 더 무서운 존재.

그는 용이었다.

그것도 다른 용에게도 없는, 이마에 제삼의 눈을 지닌 세눈박이 용.

“흐음…….”

용의 세 번째 눈이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볼 기세로 도귀를 내려다보았다.

부르르!

그 시선을 느낀, 도귀가 다시금 몸을 떨었다.

도무지 반항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목이 날아간다.’

신안은 맹에서 가장 뛰어난 책사 중 하나.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곳이 바로 하오문이었다.

하오문은 천하제일의 정보단체인 개방에 필적하는 존재.

그들은 천하에 널리 퍼진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조합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허나 신안 같은 진짜 괴물은 그들의 능력으로도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다.

하오문이 백, 천의 정보를 모아 간신히 깨닫는 사고도, 이들 괴물은 단 하나의 정보로 끌어낸다.

거기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

괴물들은 또 그 자리에서 두셋의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고 퍼트려, 하오문이 만의 정보를 모아도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흩트려버린다.

가실 개방이나 하오문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천하제일인이나 절세고수가 아닌, 신안과 같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책사들이었다.

“하오문……. 하오문…….”

신안이 계속 그녀를 바라보며 하오문을 읊조렸다.

그 한 번 한 번이 눈앞의 하오문도들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당장 그들은 수로도, 무력으로도 지부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그들이 할 일은 하나뿐이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시게.”

“!?”

“?!”

신안이 그 즉시 하오문도들의 수작을 눈치챘다.

“제 목숨을 바쳐 도귀만은 빼돌릴 생각이지? 거기에 하나 더하면 내 목이라도 칠 생각이고?”

“!!”

과연 그는 모든 걸 꿰뚫었다.

신안은 아예 하오문도들에게 조언까지 해주었다.

“그러면 안 돼. 그러잖아도 자네들은 모든 게 불리한 상황일세. 거기에 욕심을 부리면 안 되지. 나 같으면 도귀를 탈출시키거나 내 목을 노리는 것 둘 중 하나에 집중할 걸세. 물론 그중 가장 가능성 높은 걸 고르자면, 도귀가 아닌…….”

“거기까지 해주십시오.”

도귀가 신안의 말을 잘랐다.

이 이상 그를 계속 내버려 뒀다간 수하들이 심마에 빠질 게 자명했다.

“호?”

그리되기 전에 자신의 말을 자른 상대를 보고 신안이 흥미를 보였다.

반면 그녀는 품에서 얕고 긴 소도를 꺼냈다.

진천우를 상대했을 때는 꺼내지 않았던 그것을 꺼낸다는 건, 그만큼 도귀가 진심이란 뜻이었다.

“싸우려고?”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 인원을, 그리고 날 상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군.”

진심이었다.

신안은 정말로 눈앞의 어린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서 자신을 향해 눈을 똑바로 부라리는 모습.

바로 얼마 전에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를 생각나게 했다.

‘그때는 이놈에게 정면승부를 허락해주었지만.’

신안이 바로 옆에 있는 진천우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다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과 달리 도귀에게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대신 다른 선택을 하게 해주었다.

“됐으니 가보시게.”

“……?”

도귀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아니, 이해되지 않았다.

“안 가는가? 참, 먼저 우리가 비켜줘야지.”

슥!

신안이 포위망 뒤편을 맡은 무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이제는 지부의 무인이 당황했다.

이거 정말 비켜줘도 되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신은 지부의 무인이고, 신안은 본 맹의 최고 책사.

그에게는 애초에 거부권이 없었다.

슥!

잠시 뒤, 포위망이 풀리자 뒤늦게 도귀가 입을 뗐다.

“정말 이대로 풀어주는 겁니까?”

“아까 말했듯, 난 자네가 마음에 들거든.”

“…….”

그녀는 또 입을 다물었다.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따로 함정을 파둔 게 아닙니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여기서 꺼내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신안이 마음을 바꾸면 자신들을 이 자리에서 죽는다.

“물러난다.”

도귀는 애써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떠나면서 그녀는 정말 잠시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그 눈매가 어찌나 매섭던지, 자칫 얼굴이 뚫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

허나 진천우는 그 시선을 모두 무시했다.

앞서 말했듯, 이 상황은 절대 자신이 노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

그런 둘을 남모르게 찬찬히 지켜보는 천하에서 가장 날카로운 눈썰미를 지닌 노인, 아니 세 개의 눈을 가진 용이 있었다.

* * *

오늘 하루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는 개방과 다른 하나는 하오문과 관계돼 있었다.

“어르신!”

제갈세형이 지부로 돌아오자마자 따로 신안과 독대했다.

“이번에 하오문도들을 놓아준 건…….”

그가 두 사건 중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건 후자였다.

제 생각이 맞다면, 신안이 하오문을 순순히 놓아준 이유는.

“맞네. 난 이번 기회에 맹의 정보망을 전부 뒤엎을 생각이네.”

“역시!”

제갈세형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신안의 말은 맹이 이전처럼 개방에만 의존하지 않고, 하오문에게도 정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게 가능한 건, 하오문이 비록 사파지만 련에는 속하지 않은 탓이 컸다.

그래도 이전 같으면, 아무리 맹의 최고 책사인 신안의 주장이라도 씨알도 먹힐 리 없었다.

하지만 오늘 벌어진 첫 번째 사건을 기점으로 사정이 달라졌다.

“확실히 개방에서 그간 너무 많이 해 먹었어. 원래 고인 물은 썩는 법이지.”

“그렇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하오문은 하오문이다.

사파 중에 사파인 그것들과 본 맹이 손을 잡는 건.

그러자 이번에도 신안이 제갈세형의 마음을 읽고, 그의 걱정거리를 덜어주었다.

“아무렴, 정말 맹이 하오문과 손을 잡겠나?”

“그럼?”

“그저, 끈 하나 연결해 두는 거지. 개방에 어느 정도 긴장감을 주기 위해. 둘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나. 하오문에 이전 개방의 십 분지 일의 권한만 줘도, 개방은 절치부심해서 전보다 더 맹에 충성하겠지.”

“그렇군요.”

십 분지 일이라.

그 정도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불어 아직 맹의 수뇌부에서 개방을 두둔하는 이들도 뭐라 대꾸할 수 없는 수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신안의 계획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확신이 들지 않으면 쉽사리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움직이면 반드시 끝을 본다.

그는 언제나 과거 성현은 말씀을 본받아 그대로 실천하려 했다.

“이 기회에 개방을 손볼 수 있을 때 손봐야지.”

“그 말은?”

“본 맹으로 돌아가는 즉시 용두방주에게 후개를 선출하라고 압박을 가할 걸세.”

원래라면 진작에 후개를 뽑아야 했다.

개방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협개 정철.

개방은 물론이고, 맹과 무림을 통틀어도 손꼽힐 만한 인재가 있음에도 용두방주는 후개 선출을 망설였다.

개방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 좌시하는 것도 오늘까지다.

오늘 사건으로 맹은 개방의 일에 개입할 명백한 근거를 얻었고, 이를 최대한 사용해 후개 선출을 강행할 것이다.

정철은 그야말로 협의 표본 같은 자.

맹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위치에 그보다 적임은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

신안이 제 생각을 모두 밝혔다.

그런데 그 대답은 정면에 있는 제갈세형에게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럼 누구에게?

제갈세형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신안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둘은 지부로 돌아오자마자 지부장 처소에 있는 모든 이를 물렸다.

그리고 딱 한 사람을 불렀다.

바로 진천우.

“…….”

부름을 받은 그가 입구에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안이 되물었다.

이미 앞에서 한 말을 진천우가 모두 들은 걸 알았다.

일부러 들으라고 크게 떠든 거였다.

“…….”

하지만 그 질문에도 진천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함부로 답할 수 없었다.

둘이 자신을 부른 이유.

그는 무엇보다 그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여기서 말을 잘못 놀리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도.

“오늘 일 때문에 본 맹은 밑동부터 파헤쳐지게 생겼다. 당연히 그것을 후일 맹이 더 크고 강하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건 내 몫이지만, 어쨌든 최근 십 년간 한 번도 없었던 큰 사건이 일어난 건 부정할 수 없지.”

스윽!

완전히 몸을 다 돌린 신안이 한 손을 들어 손끝으로 진천우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입을 뗐다.

“모두 너 때문이다.”

“…….”

여전히 어떤 대꾸도 못 하는 진천우를 향해 신안이 확신하듯, 거듭 말했다.

그의 다음 말은 그야말로 진천우의 가슴을 부서트릴 만큼, 큰 충격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난 네놈이 하오문의 첩자가 아닌가 의심 중이다.”

쿠쿵!

곧바로 제갈가의 괴물과 맹의 세눈박이 용의 매서운 눈길이 진천우의 심장을 내리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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