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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 맹으로 가기 전에 (4) (107/210)


107화 : 맹으로 가기 전에 (4)
2022.03.07.


휙!

진천우가 급히 몸을 비틀어, 제 쪽으로 날아오는 손을 피했다.

그러나 상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핏!

한 번 피한 새하얀 손이 공중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거의 직각으로 꺾였는데도 그 속도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아니, 처음보다 더 매섭게 이쪽으로 날아왔다.

허나 보통이 아닌 것으로는 진천우도 지지 않았다.

쿵!

발로 강하게 땅을 밟자, 그의 신형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떠올랐다.

아무리 매서운 손길도 이것까지는 따라올 수 없었다.

진천우가 멀찍이 떨어지자 상대는 약간 빈정대듯 혀를 차며 말했다.

“내 자랑인 금나수를 연속해 피한 것도 대단한데, 단 한 걸음으로 그만큼 날아가다니, 정말 대단한 경신법이군.”

“어째서 날 공격한 겁니까?”

갑자기 자신을 공격한 섬섬옥수의 주인은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은 하오문의 여인이었다.

사실 굳이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진천우의 품에는 여전히 하오문 후계의 증표인 혼원옥이 있었다.

또 그의 소매에는 이번에 얻은 개방의 비리 증거도 있었다.

이걸 하오문이 얻으면?

그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팟!

그녀 역시 설명이 필요 없음을 느꼈는지, 아무 대꾸 없이 다시 몸을 날렸다.

‘빠르다.’

그리고 매섭다.

결코 평범한 몸놀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무서운 건.

휙! 휙!

“어딜!”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집요하게 제 소매를 노리는 여인의 희고 긴 섬섬옥수였다.

조금 전에 금나수가 자랑이라고 했던가?

진천우는 절대 그녀의 자랑이 금나수뿐이 아님을 확신했다.

“아무래도 평범한 하오문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평범한 하오문도가 하오문의 장로보다 훨씬 뛰어난 소매치기술을 지녔을 리 없으니까요.”

진천우는 이미 하오문의 장로인 흑월에게 소매치기당한 적이 있다.

곧바로 복수했지만, 당시 흑월의 솜씨는 과연 하오문이 왜 그만한 명성을 지녔는지 단번에 이해시켜 주었다.

그런데 그만큼 감탄한 흑월을 뛰어넘는 소매치기술이라니.

눈앞의 여인은 절대 평범한 하오문도일 리 없었다.

“거참, 겨우 흑월 따위와 날 비교하다니. 나도 많이 죽었네.”

하오문의 장로를 따위라고 말하다니?

진천우가 놀라는 사이, 그녀는 갑자기 몸을 숙였다.

스륵!

그러자 입고 있던 흰 경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분명 옷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직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잠시 땅에 떨어진 경장에 시선을 내렸다가 올리자,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억!”

휙!

느닷없이 등 뒤에서 섬섬옥수가 뻗어 나왔다.

곧바로 역근경으로 감각을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당할 뻔했다.

“마치 변검술 같군요.”

진천우가 하오문 축제가 열렸던 마을에서 본 변검 가면을 떠올렸다.

그와 비슷하게, 여인이 걸치고 있던 새하얀 경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야행복 차림으로 바뀌었다.

반면, 하오문의 여인은 기껏 비장의 수까지 사용했음에도 큰 수확을 얻지 못하자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것도 피한다고? 자존심 상하네. 여기서 내가 널 털지 못하면 도귀의 이름이 울 거야.”

“도귀?”

드디어 여인의 정체를 알아챘다.

-하오문에 대해 궁금하다고?

진천우는 우여곡절 끝에 혼원옥을 지니게 되었고, 거기다 하오문에 스스로 제 정체를 밝혔다.

덕분에 하오문과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으로 묶이게 됐다.

이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자네가 알고 싶다면, 우리 개방이 파악한 선에서 얼마든지 알려주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百戰不敗)라.

즉시 정철에게 하오문에 대해 물었다.

그렇게 들은 정보 중 도귀에 대한 것도 있었다.

-현 하오문주에게는 아주 뛰어난 세 제자가 있지. 그들의 불행은 하필 동시대에 하오문에 적을 둔 거야.

다른 이도 아닌, 협개로 불린 정철이 그리 말했다.

그만큼 셋 다 대단한 인재였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개방과 하오문의 대립에서, 이들 셋이 개입한 일에는 번번이 개방이 당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개방에서도 하오문주의 세 제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후개를 빨리 뽑자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중 도귀(盜鬼)는 훔치는 귀신이란 명칭을 가진 하오문주의 둘째 제자였다.

“날 아는구나. 그럼 내가 왜 이러는지도 이해하겠지?”

어디 이해만 할까?

그녀가 하오문주의 제자라면, 진천우가 가진 혼원옥을 훔치려 하는 게 당연했다.

혼원옥은 하오문의 후계라는 증표이니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원래부터 도둑이 아닌가!

‘아직 내 소매치기술로는 도귀를 당할 수 없다.’

그만큼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달아나야겠군.’

반면 진천우에게는 그녀보다 명백히 뛰어난 경신법이 있었다.

본래 하오문의 신법은 은밀함이 주가 된다.

빠르고 자유로운 것으로 치면, 대나이신법에 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여기서 도귀과 드잡이질할 이유가 하등 없다.’

자신에게는 도귀가 탐낼 혼원옥과 개방의 비리 증거가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진천우는 철저히 득으로 움직이는 자.

그는 바로 미련 없이 등을 보였다.

헌데.

철컹!

갑자기 발아래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그 직후, 땅이 반으로 갈라졌다.

“아닛!?”

휙!

진천우는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살에 기겁하며 몸을 흔들었다.

휙! 휙휙!

다행히 이 정도 피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익힌 대나이신법은 천하에서 손꼽는 최절정 신법.

휙! 팟!

하지만 기습적인 함정이 작동되는 동시에 하오문에서 가장 뛰어난 도둑이 달려들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녀의 흰 손이 어느새 소매 바로 앞까지 날아왔다.

다른 방도가 없다.

“이까짓!!”

쾅!

진천우가 억지로 몸을 비틀어 도귀의 손을 쳐냈다.

“웃!”

도귀가 다시 뒤로 물러나며 놀랍다는 시선을 보냈다.

“완벽하게 걸린 줄 알았는데, 그걸 피하다니. 점점 더 놀라운걸?”

확실히 대단하다.

허나 미리 함정을 파놓고 진천우를 이렇게 몰아넣은 당사자는 더 대단했다.

“후!”

진천우가 한 손으로 제 허리를 감쌌다.

스멀!

상의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무리한 움직임을 취하느라 함정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탓이다.

그런데 그녀의 대단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달아날 생각만 하는 모양인데?”

슥!

갑자기 도귀가 제 가슴팍을 열었다.

물론 검은 야행복 안에 따로 받쳐둔 천이 있었다.

그러나 진천우의 시선은 그녀의 가슴에서 떠날 줄 몰랐다.

도귀의 가슴팍에 어디서 본 듯한 영롱한 구슬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혼원옥.

총 다섯 개뿐인 하오문의 후계 증표 중 둘이 한자리에 모였다.

도귀가 자신의 혼원옥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이 혼원옥을 세 개만 모으면 하오문의 후계자로 인정받는다.”

“셋? 그래도 둘이 남아있을 텐데?”

“어차피 두 개로는 셋을 못 이기잖아? 현 하오문주도 다섯 개 전부 다 모아서 문주가 된 건 아니다.”

“그렇군요.”

진천우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제 생각과 달리, 하오문의 주인이 되는 데 꼭 혼원옥을 다섯 개나 모을 필요는 없는 모양.

그 말로 눈앞에 있는 하나의 가치가 크게 올랐다.

손해 득실을 생각하면, 아까처럼 미련 없이 몸을 돌리기 아까울 정도.

“아직도 달아날 생각인가?”

“고민 중입니다.”

“그 고민, 내가 해결해주지.”

슥!

도귀가 한 손을 올렸다.

그러자 들판 주위에 지금껏 없던 인기척이 튀어나왔다.

“이만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가까이 숨어있었다고?”

진천우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였다.

첫 함정에 당할 뻔한 직후, 그는 곧바로 감각을 총동원해 주위를 살폈다.

헌데도 저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래도 다른 함정을 기대한 모양인데, 미안하군. 사형이 근방에 만든 함정은 그것뿐이야.”

“사형?”

누군지 안다.

그 또한 정철에게 들었다.

하오문이 낳은 최고의 기린아 중 하나.

하오삼귀의 맏이, 잡귀(雜鬼).

‘그 또한 이만큼이나 대단하다고?’

진천우도 함정설치를 배운 만큼, 조금 전 잡귀의 함정이 얼마나 뛰어난 지 모를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의 제 실력보다는 잡귀가 더 위다.

여기에 도귀 외에 다른 삼귀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런 거로 안도하면, 내가 조금 섭섭한데.”

슥!

도귀가 다시 손을 들자, 검은 야행복의 무리가 진천우를 둘러쌓았다.

그 수는 모두 열 명.

“적다고 하면 적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시하지 않는 게 좋아.”

그녀가 일부러 친절하게 이들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이 녀석들 모두 하오문에서 손꼽히는 도비들이니까.”

그래, 그 정도이니 자신이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게 이해되었다.

도둑의 특기는 단순히 무공의 고하로 구분할 수 없는 은밀함이다.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닌 하오문의 은신술을 익혔다면, 아무리 뛰어난 진천우의 감각이라도 쉽사리 알아챌 수 없었다.

거기에 도귀까지.

“자, 그럼 이제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겠지?”

그녀가 아까와 똑같이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순순히 혼원옥과 개방의 비리 증거를 내놓으면 몸 성히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하듯.

피식!

‘웃어?’

그러나 진천우는 도귀의 친절한 협박에 도리어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도망친다는 선택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미 대나이신법을 뛰어넘는 신법인 여덟 걸음을 사용해 여기서 달아났을 거다.

진천우는 들판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오직 하나의 선택지를 골랐다.

“진 공자!”

“진 공자!!”

갑자기 동과 서에서 커다란 일갈이 터졌다.

“아니!?”

“이런?!”

진천우를 포위한 열 명의 하오문도가 그 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

이때 도귀가 곧바로 일갈을 지르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포위망에 틈이 생겼을 텐데.

“쳇!”

“쯧!”

두 남녀가 동시에 혀를 찼다.

그러나 지금은 여자 쪽이 더 어처구니없어했다.

“분명 백풍대주와 협개는 이번 일을 보고하기 위해 따로 불려갔을 텐데?”

“그러는 척하고 절 따라와 달라고 미리 부탁했습니다.”

“이 자식!”

으득!

도귀가 바로 이를 갈았다.

자신이야 정체를 숨기고 있었고, 또 하오문 내부 사정이 있었지만, 저놈은 그냥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으로 이 들판을 찾았다는 게 아닌가?

“배신이라니. 그저 제가 좀 철두철미한 성격일 뿐.”

“염병! 좀 철두철미한 게 저 둘이라면, 평범하게 철두철미하면 지부의 고수들까지 모두 대동했겠군.”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다음에 꼭 참고하겠습니다.”

진천우가 조금의 비꼼 없이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다.

비록 백풍대주와 정철이 대단한 고수지만, 눈앞의 도귀와 열 명의 하오문도 역시 평범한 상대가 아니었다.

정말 제대로 상대를 찍어누를 생각이었다면, 제갈세형에게 몰래 서신을 건넸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걸 진천우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하지만 이 이상의 후회는 눈앞의 하오문도들을 깨부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백풍대주, 정철 대협! 각자 좌우에서 이들을 깨부숴주기 바랍니다.”

“이를 말이오!”

“맡겨두시오!”

둘이 믿음직스럽게 답하자, 하오문도들도 눈빛을 굳혔다.

그러자 도귀가 진천우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너와 나 모두에게 아주 힘든 밤이 되겠구나.”

슥!

그녀가 곧바로 다시 손을 들었다.

이것으로 세 번째 신호.

저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하오문도들은 물론이고 진천우와 백풍대주 그리고 정철도 함께 몸을 날리리라.

그런데 일촉즉발의 순간!

-잠깐!!

이번에는 남쪽에서 커다란 일갈이 터졌다.

진천우와 도귀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

그리고 둘 다 동시에 얼굴을 굳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의 등장.

그러나 이때 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한 명은 웃었고, 다른 한 명은 인상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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