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 현석아!!
(97/210)
97화 : 현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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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 현석아!!
2022.02.12.
“현석아!!”
간신히 녀석의 손을 붙잡았다.
꽈악!
진천우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러나 좀처럼 쉽지 않았다.
휘청!
독 때문에 힘이 빠진 몸이 마구 요동쳤다.
현석의 예상대로, 이대로라면 둘 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
“……!”
“그만!”
진천우가 또 현석의 마음을 읽고 소리쳤다.
안 떨어진다.
설령 떨어져도 너는 구할 거다.
반드시!
‘그러니 내게 명령 내릴 생각하지 마라!’
감히 하인이 주인에게 명령을 내려!
내가 이러려고 그간 저놈의 조련 스킬을 올려준 줄 아냐며, 마음 한구석에 강한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 일은 아무리 너라 해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중에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려주마!’
그러니 벌을 받기 위해 꼭 살아라!
꽈악!
진천우가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휘청!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몸은 점점 불안하게 떨렸다.
그걸 본 현석이 할 행동은 하나였다.
“소가주님!”
“그만!”
이제는 네가 어떤 명령을 내려도 듣지 않을 테다.
멈추라고?
여기서 몸이 굳으면 차라리 이 손을 놓지 않겠구나.
그래,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
그런데 현석의 다음 말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살아주십시오.”
“뭐?”
“꼭 살아주십시오.”
명령이 아닌 부탁.
그렇기에 명령보다 더욱 강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그 진실된 마음에 타이쿤이 또 반응했다.
스륵!
“아, 안 돼!!”
진천우가 제 손을 강제로 푸는 무형의 기운에 절규했다.
“안 돼!!”
안간힘을 쓰며 저항했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독과 내상 그리고 타이쿤 효과까지.
스륵!
끝내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자신의 손에서 천천히, 가장 소중한 게 빠져나갔다.
곧바로 의식의 끈도 함께 멀어졌다.
“안……!”
진천우는 빠르게 어두워지는 시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기력을 동원해 절벽 쪽으로 기어갔다.
첨벙!
아래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안!!”
그가 간신히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
콰콰콰!
그러나 절벽 아래에는 그저 시끄러운 물소리만 쉬지 않고 울렸다.
그 어디에도 현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거기까지 확인하고, 진천우는 더는 못 견디고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 * *
“진 공자!”
번뜩!
눈을 뜨자,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여긴 어디?
“정신이 드는가?”
백풍대주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허나 해독환을 먹고 가볍게 일주천한 덕분에 몸 안의 독은 완전히 몰아냈다.
물론 아직 정양이 더 필요하지만, 이 상황에서 쉴 수 있을 리 없었다.
“현석!!”
진천우가 곧바로 가장 소중한 것을 떠올렸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제 손에 쥐었던 그 녀석.
“쿨럭!”
하지만 그의 상태는 심히 좋지 않았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게. 진 공자는 청명환을 먹고 간신히 정신만 차렸을 뿐이니.”
“청명환?”
학수선의가 만든 요상환을 말했다.
청명환의 가장 큰 효과는 어떤 상황이든 즉각적으로 정신을 차리는 데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정신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
그럼 당장 현석이부터 구해야 했다.
“큭!”
그러나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어김없이 독 기운이 올라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백풍대주가 더는 참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그의 짧은 일갈이 진천우를 무겁게 찍어눌렀다.
하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청명한 기운은 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던 머릿속에 한 줄기 바람을 일으켰다.
진천우의 눈이 아까보다 맑아지자, 백풍대주가 급히 상황을 설명했다.
“조금 전에 맹의 지원부대가 도착했네.”
다행히 제갈세형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들 전부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네. 그리고 정철 대협이 그들을 이끌기로 했네.”
정철 역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쉬지 않고, 절벽으로 떨어진 진씨세가의 하인을 찾는 데 가장 먼저 나섰다.
역시나 협개.
진천우는 그런 그가 그저 고맙고 고마웠다.
“나 역시 진 공자의 하인을 찾고 싶었지만…….”
“아닙니다. 백풍대주님이 남아서 어떤 수고를 해주셨는지 압니다.”
전혀 백풍대주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른 백풍대 대원을 지킬 의무가 있었고, 또 맹의 지원대가 절벽 아래로 내려갔으니, 아직 남은 후발대 무인들도 함께 지켜야 했다.
아마 그가 여기 남지 않았으면, 지원대는 절대 절벽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을 거다.
백풍대주는 정철과 함께 진천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감사합니다.”
진천우가 백풍대주를 향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큭!”
그러자 또 독기가 올라왔다.
진천우가 독괴의 맥을 이은 독인으로서 독 저항력이 유달리 높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이런!”
백풍대주가 황급히 해독환을 먹였다.
그리고 진천우의 등에 손을 올렸다.
“내가 내공으로 독기를 몰아내지. 저항하지 말고 마음을 편히 먹게나. 알겠나?”
그라고 왜 진천우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절벽 아래로 내려가 제 하인을 찾고 싶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할 일은 살아남는 일.
우선은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인이든 뭐든 구할 수 있는 법.
“흡!”
백풍대주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진천우의 몸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우웅!
“…….”
진천우가 말없이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우우웅!
백풍대주의 내공은 해독환의 효과와 맞물려 몸 안의 독을 빠르게 몰아내었다.
“……!”
또륵!
제 몸에서 독이 빠르게 사라지는 걸 느끼며, 진천우가 감은 눈으로 맑고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정말 아주 조금만.
자신이 바로 몸을 회복하고 내려갈 테니.
‘그때까지.’
그때까지 반드시 살아남거라.
‘반드시.’
그래, 반드시…….
* * *
“이쪽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쪽도입니다.”
절벽 아래에서 십수 명의 무인들이 무언가를 찾았다.
허나 그들이 찾는 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콰콰콰!
그저 계곡치고 유난히 깊고 넓은 그곳에 거친 물소리만이 사방에 울렸다.
어쩌면…….
자신들이 찾는 건 벌써 이 물살에 떠밀려 갔을지도?
“찾아라! 눈에 불을 켜고, 반드시 진씨세가의 하인을 찾아라! 일단 여기서 절반은 하류로 내려가 계속 찾고……. 에잇! 개방의 지원은 아직 멀었습니까?”
“진정하게.”
평소 협개라 불리는 정철이 그답지 않게 언성을 높이자, 제갈세형이 다가와 그를 말렸다.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하지만 자네가 그런다고 진가의 하인을 더 일찍 찾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제갈세형은 정철의 마음을 잘 알았다.
비록 그는 협이 아니지만, 누구보다 협을 잘 부릴 수 있는 자다.
게다가 이렇게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데 그 심정을 모른다면 어찌 제갈가라 할 수 있을까.
“이미 개방에 협조 요청을 보냈네.”
“그렇다면 어째서 이리도 늦게…….”
“그들에게는 여기 하류에서부터 훑어 올라와 달라고 부탁했네. 그리고 서신 말미에 맹의 지부장의 서명과 함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개방도를 불러 달라고 했다네.”
“…….”
정철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덥석!
그러나 곧 제갈세형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고맙습니다!”
새삼스럽지만, 정철은 눈앞의 상대가 얼마나 든든한 존재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처럼 몽둥이질만 할 줄 아는 거지는 제 눈앞의 상황만 살피는 데 급급한데, 역시 제갈가의 사람은 달랐다.
그들은 눈앞의 상황은 물론, 당장 급하고 중요한 일을 손짓 몇 번과 몇 마디 말로 모두 해결했다.
지부를 떠날 때 잠시 진천우와 말다툼이 있었기에 혹시나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줄 알았으나, 그건 가당치 않은 착각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갈세형 대협.”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어찌 감사를 받겠나.”
제갈세형은 정철의 진심 어린 포권에 마찬가지로 정중한 포권으로 답했다.
확실히 그는 아직도 마음속에 진천우에 대한 좋지 않은 앙금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감정과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일.
‘녀석은 결국 제 말대로 사흘거리를 하루로 줄였고, 또 무려 그 만박자가 만든 진법을 뒤엎는 쾌거를 해냈다지?’
비록 마지막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만박자는 스스로 물러났다.
이렇게 되면 결국 모든 공은 진천우의 몫이 된다.
‘그처럼 공을 세운 녀석과 굳이 날을 세울 필요는 없지.’
되레 은혜를 베푸는 게 훨씬 이익이다.
심지어 그가 개방에 주위 탐색을 부탁한 것도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만박자가 붉은 신호를 보고 갑자기 물러났다고 했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때, 개방보다 쓰기 좋은 장기 말은 없었다.
특히 맹의 지부장 자격을 서명할 때 그 위에 은근슬쩍 개방의 자랑인 정철의 이름까지 언급했으니, 개방은 반드시 모든 인원을 총동원해 이 주위를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었다.
철저히 리(利)에 따른 결정.
협으로 움직이는 정철과는 사뭇 대조되었으나, 그것이 진천우에게 도움 되는 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지부의 지원부대는 물론이고 개방도들까지 현석을 찾는 데 동원된 건 분명한 사실이니…….
“헌데…….”
정작 가장 중요한 진씨세가의 하인은 시간이 지나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군.”
“걱정 말게. 어쨌든 물살에 떠밀렸다고 했으니 물길을 따라 살피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걸세.”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칫 물살에 떠밀려온 시체를 찾게 되면?
‘안 된다!’
그건 절대 안 된다!
“좀 더 철저하게 찾으시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걸 발견하면 반드시 보고하고!”
정철이 안달복달하며 그답지 않게 사람들을 닦달했다.
‘제발 내가 생각하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 텐데.’
그래, 제발…….
* * *
늦은 밤, 계곡 중턱에서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운 사내가 있었다.
중년과 청년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그는 얼굴 전체에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핑!
그때, 낚싯대에 뭔가가 걸렸다.
“응?”
얕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낚싯대가 낭창낭창 큰 호를 그리며 휘었다.
“이거…… 보통 무거운 게 아닌데?”
사내의 미소가 짙어졌다.
월척이다!
“좋았어!”
자칫 낚싯대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크게 휘었지만, 놀랍게도 낚싯대는 거의 직각으로 꺾어졌음에도 멀쩡했다.
휙!
그 순간, 사내가 낚싯대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첨벙!
월척은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하늘로 비산했다.
어?
그런데 평생 다시없을 월척을 낚은 사내의 표정이 상당히 오묘했다.
기쁜 듯, 슬픈 듯, 황당한 듯, 허탈한 듯.
자신은 오늘 하루 힘든 일을 간신히 끝내고, 기분전환을 위해 낚싯대를 드리웠을 뿐인데…….
‘거참. 월척은 월척이군.’
그런데 자신이 낚은 그것이…… 영…….
“이건 못 먹겠는데?”
놀랍게도 물고기가 아닌 사람이었다.
쾅!
물에서 건진 사람이 땅에 떨어졌다.
“커억! 컥! 쿨럭!”
과연 대단한 월척답게, 녀석은 뭍에 올라오자마자 아주 싱싱하게 퍼덕였다.
“운이 좋은 놈이군.”
사내가 물고기 대신 남자를 낚은 계곡을 바라보았다.
콰콰콰콰!!
저리도 거센 물살에 휘말리고도 살아남다니, 운이 좋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콜록콜록!”
그는 떠밀려오면서 상당히 물을 먹었는지, 정신을 차린 뒤에도 한동안 속엣것을 뱉어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콜록콜록! 여,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 여긴 말일세…….”
사내는 일단 낚인 남자의 질문에 아는 대로 순순히 답했다.
“콜록! 그리고 뭐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됩니까?”
“그러게나. 이것도 인연인데 내 아는 대로 알려주지.”
그는 낚싯대를 어깨에 짊어진 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내가 사람을 낚다니!
이런 진귀한 경험이 어디 있을까?
그 대가로 시시한 질문 몇 가지에 답하는 것쯤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곧 그게 제 생각과 달리 아주 큰 문제임을 깨달았다.
“죄송한데, 제가 누구죠?”
“뭐?”
아니……. 그러네가…… 설마하니…….
“자네, 자네가 누구인지 기억 못 하나?”
뭐 이런 괴랄한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