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 만박자(萬博子) (2) (94/210)


94화 : 만박자(萬博子) (2)
2022.02.05.


‘시간제한이 있다고?’

진천우가 뜬금없는 타이쿤 내용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지금은 의문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일각은 보통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실 시간.

그게 두 번이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현석아, 지금 당장 마차를 출발시켜라.”

단!

“반대 방향으로.”

“네, 알겠습니다.”

충성스러운 하인이 주인의 급한 목소리에 곧바로 명령을 수행했다.

“잠깐, 자네!”

“진천우입니다.”

“그렇담 진 공자!”

그때, 귀도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저곳은 위험하네.”

“맞네.”

“게다가 진법까지 펼쳐지지 않았나!”

귀도뿐 아니라 다른 선발대 무인들도 진천우를 만류했다.

히이잉!

허나 어느새 준비를 끝낸 현석이 마차를 출발시켰다.

넷이 황당한 듯 떠나는 마차를 바라보다 급히 몸을 날렸다.

“멈추게!”

조금 전까지 석신으로 굳어있던 몸임에도, 그들은 마차와 거의 같은 속도로 따라붙었다.

“위험하네!”

“그렇다니까!”

그들의 음성에는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 대한 염려가 가득 배어 있었다.

하지만 은인을 힘으로 강제할 수 없기에, 억지로 마차를 세우지는 못했다.

“이랴!”

이때, 현석이 더욱 속도를 올렸다.

“옜다. 너희도 이 환단을 먹거라.”

내친김에 그는 마차를 끄는 말에게 검은색, 녹색, 붉은색 환단을 모두 먹였다.

히이이이잉!!

약 먹은 말이 갑자기 전설의 명마, 적토(赤兎)로 현현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무려 네 마리!

“아, 아니?!”

“이럴 수가!?”

“무슨 말이!!”

네 무인은 진천우의 환단을 처음 보았기에, 갑작스러운 말들의 변화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들은 너무 빨라진 마차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전력으로 경공술을 펼쳤다.

만약 저것들이 마차를 끌지 않고 홀로 관도를 질주했다면 그들도 놓칠 정도로 재빨랐다.

“이만 멈추거라.”

그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천우가 마차를 멈췄다.

[남은 제한 시간 : 일각(一刻)]

순식간에 일각이 흘렀다.

하지만 덕분에 진법이 펼쳐진 산 바로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헉! 헉!”

“헉! 헉! 헉!”

“헉! 무슨 말이 저리 빨라?”

한발 늦게 네 무인도 따라왔다.

그들이 잠시 숨 돌리는 사이, 진천우는 마차에서 내려 진법을 확인했다.

우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 모를 힘이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도 한 겹이 아니다.’

그는 천옥산에서 타이쿤 보상으로 진법의 기초를 익혔다.

덕분에 진법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었다.

‘최소 세 겹. 그리고 안으로 갈수록 진법의 힘이 더 강해진다.’

철저하게 적을 한곳으로 몰아 죽이기 위한 진법.

누가 이런 끔찍한 진법을 설치한 걸까?

-내가 그를 막을 동안!

설마하니, 학수선의가 말한 ‘그’?

‘진법 안에 함정도 설치돼 있군.’

진법 주위를 둘러보던 진천우는 숨어있는 함정을 발견했다.

독, 함정 그리고 진법까지.

셋 모두를 이처럼 지독하게 다루는 자라면, 확실히 신의조차 경계해야 할 상대였다.

그러나 이걸 아는가?

슥!

진천우는 진법을 앞에 두고 갑자기 몸을 돌려 네 무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다가가자 넷의 만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잘 생각했네.”

“저 진법은 너무 위험하네.”

“자네는 당장 돌아가게.”

마지막으로 귀도 선립이 입을 열었다.

“이 앞부터는 우리만 가겠네.”

그랬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천우를 도망칠 핑계로 이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넷은 명예를 아는 맹의 무인으로서, 련이 무슨 함정을 파두었든 후발대를 구하기 위해 진법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다만, 그들의 계획에 진천우는 없었다.

애초에 의원이 갈 곳이 아니며, 하물며 그는 자신들의 은인이었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그 은인이 제 쪽을 향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무슨 부탁인가? 말만 하게. 우리가 입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네.”

“암!”

“물론이지!”

넷이 격하게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진천우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이었다.

헌데 그 부탁 내용이 다소 뜻밖이었다.

“네 분 모두에게 꼭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넷?”

“우리 모두?”

“그건…….”

한번 입은 은혜는 마땅히 그 배로 갚아야 하는 법이나,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은혜를 미루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일.

그렇기에 넷은, 설령 제 목숨이 아까워 후발대를 버리고 간 비겁자라는 말을 듣더라도 감수할 생각으로 진천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하리!

“감사합니다.”

진천우가 이들의 각오에 기쁜 듯 고개를 숙였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자세였다.

은공께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잠시 뒤, 진천우가 자신이 부탁할 걸 말했다.

“저와 같이 저 안으로 들어가서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뭐라?”

“안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나?”

진천우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 안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자 넷이 다시 만류하기 시작했다.

“허나!”

“일단 진법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려고?”

“맞네. 이 진법은 한눈에도 보통 진법이 아니네. 우리도 안에 들어가려면, 주위를 면밀히 살펴 틈부터 찾아야 하네.”

“아,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문제없다고?

비록 그들이 진천우를 말리기 위해 핑계로 댔지만, 실제로 눈앞의 진법은 보통의 방법으로 뚫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진법을.

스륵!

진천우는 아무렇지 않게 양손을 휘둘러 외벽을 찢어버렸다.

“?!”

그 광경을 본 네 무인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선립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자네, 의술 외에 진법도 익혔나?”

진법은 매우 고등 학문이다.

그런데 학수선의의 의술을 배우는 이가 어떻게 진법까지 익힐 수 있지?

선립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진천우는 확실히 진법의 기초를 익혔지만, 본 실력만으로 이만한 진법을 가볍게 찢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그는 진법에 있어 아주 사기적인 도구를 하나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지니고 있었다.

양 소매에 숨어 있는 푸르고 희고 누런 천들.

천옥산의 결계마저 흩트려버리는 이 신비한 천은 거의 모든 진법의 천적과 다름없었다.

슥!

진천우가 빠르게 진법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멈추게!”

그러자 네 무인이 다시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마지막으로 선립이 소리쳤다.

“이 산에는 진법 외에도 각종 독과 함정이…….”

철컹철컹!

스르륵!

막 경고를 하려던 참에, 진천우가 그들 눈앞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독과 함정을 무효화시켰다.

“……세상에.”

“무슨?”

“어떻게…….”

넷은 더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스킬 ‘독공’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함정해체’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그랬다.

이것들을 설치한 이처럼, 진천우도 독과 함정 그리고 진법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런 그가 완벽히 해독된 독 무더기에서, 완전히 해체된 함정 속에서 그리고 완전히 파헤쳐진 진법 가운데서 선발대 무인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제 제 부탁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는 물음이었다.

“기꺼이!”

“암!”

“뭐든 시키시게!”

넷이 차례로 고개를 끄덕이며, 진법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진법 밖에는 한 사람만이 남았다.

“…….”

현석.

앞서 당당히 진법으로 들어간 넷과 달리 어떤 무공도 익히지 않고, 신분도 미천한 그는 마차 옆에 바짝 붙어 연신 불안한 표정만 지었다.

그런 녀석을, 진천우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뭐 하느냐?”

“네? 아…… 저…….”

-전 여기 남아 마차를 지키겠습니다.

현석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라고 왜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자신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아니 도움은커녕 방해나 될 걸 알기에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천우에게 현석은 부모보다 가까운 가족.

이제 녀석이 눈썹을 찌푸린 것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차렸다.

그가 즉시 오만상을 지었다.

네 무인과 달리, 진천우는 현석에게는 어떤 부탁도 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진씨세가의 하인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바짝 붙어 명을 기다려야지.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느냐!”

그저 명령할 뿐.

“어엇?”

현석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시간이 없다!”

그러니 냉큼 따라와라!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하인이 감격한 듯, 그 자리에서 모두가 놀랄 만큼 크게 답했다.

“넵!!”

그렇게 진천우에게 필요한 모든 사람이 진법 속으로 들어갔다.

* * *

뿌득!

화룡도객이 이를 갈았다.

적이 어쩐 준비를 하든 모두 방비했다고 생각했다.

독을 해독할 환단을 잔뜩 준비하고, 함정에 대비해 눈을 밝게 하는 약도 복용했다.

마지막 진법은 확실히 의외였지만, 그것만으로 맹에서 엄선된 무인들이 이리 쉽게 당하다니!

‘아니, 진법 때문이 아니다.’

그는 자신들이 당한 진짜 이유를 알았다.

단 하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존재.

“만박자!”

화룡도객이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원흉을 향해 소리쳤다.

“…….”

허나 상대는 이쪽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슥!

대신 피처럼 붉은 피풍의에서 처연하기 그지없는 가는 손을 꺼내 하늘을 향해 뻗었다.

우우웅!

그 직후, 진법이 반응하더니.

휙! 쾅!!

사방에 설치된 함정이 제멋대로 가장 가까이 있는 후발대 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만박자는 진법을 이용해 함정을 마음대로 조종했다.

당연히 그가 조종하는 건 함정만이 아니었다.

스르륵!

갑자기 땅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건?!”

“독이다! 모두 숨을 참아라!”

가장 먼저 메케한 냄새를 맡은 백풍대주가 수하들에게 경고했다.

‘이럴 수가?!’

뿌드득!

그 광경에 화룡도객이 아까보다 더 거칠게 이를 갈았다.

본래 후발대의 전력은 련의 무인보다 그 수와 질로 압도했다.

그런데 그 전력 차가 단 한 사람에 의해 허무하게 농락당했다.

과연 세상 모든 이치에 통달했다고 전해지는 련 최고 두뇌.

허나 화룡도객은 후발대의 지휘를 맡은 자로서, 이대로 적에게 감탄만 보낼 수 없었다.

‘당장 퇴각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만박자!”

화룡도객이 또다시 같은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

만박자는 이번에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려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화룡도객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슥!

아까처럼 만박자가 손을 흔들자 사방에서 함정과 독이 튀어나왔다.

“이까짓 독과 함정 따위!”

챙챙챙!

놀랍게도 한 자루의 대도가 그것들을 모조리 쓸었다.

주륵!

물론 화룡도객도 무사하지 못했다.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선혈.

허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으득!

화룡도객은 가지고 있는 환단을 모조리 입에 털어 넣으며 소리쳤다.

“모두 달아나라!”

그러나 자신은 달아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여기서 만박자를 붙잡아둬야 하니까.

그렇다면, 그 한 명은 반드시 자신이어야 했다.

그게 지휘를 맡은 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었다.

“…….”

만박자가 다시 한번 피풍의 밖으로 손을 흔들어 진법을 조정했지만, 죽음을 각오한 화룡도객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에게는 아직 꺼내지 않은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슥!

화룡도객이 소매에서 흰 죽통을 꺼냈다.

앞서 사용한 검은 죽통은 아쉽게도 불발이었다.

아니, 그걸 불발로 봐도 좋을까?

검은 죽통이 사용되는 순간, 만박자는 눈치 빠르게 련의 무인들로 앞을 막았다.

세 명이 눈 깜짝할 사이 명을 달리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만박자는 화룡도객의 손에 들린 흰 죽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타깝구나!’

애석하게도 흰 죽통의 위력은 검은 죽통과 비할 수 없었다.

본래 흰 죽통는 공격용이 아니기 때문.

하지만 만박자의 주의를 끈 것으로 흰 죽통은 본래 용도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

여기서 그의 이목을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달아난 수하들이 생환할 확률이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라면 여기서 내 목숨을 버린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너!”

그 순간, 만박자가 한 손을 들어 화룡도객을 가리켰다.

설마 벌써 흰 죽통의 정체를 눈치챈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상대는 다름 아닌 만박자니까.

‘지금까지 속인 거로 충분하다.’

휙!

화룡도객이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몸을 날렸다.

한 손에 대도를 들고, 반대 손에 흰 죽통을 꺼냈다.

아직 만박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더는 화룡도객을 바라보지 않았다.

“날 봐라! 날 보란 말이다!!”

화룡도객이 어떻게든 만박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최고 절기를 꺼냈다.

우우웅!

붉은 도신에 내공이 깃들자, 비장한 도명(刀鳴)이 터졌다.

우우우웅!!

‘응?’

그런데 제 목숨까지 도외시한 채 앞으로 달려가던 화룡도객이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우우우우우우웅!!!

‘뭐지?’

장엄한 진동이 사방에 퍼졌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목숨을 건 비기를 사용했지만, 이렇게나 엄청난 기파가 퍼질 리 없는데?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엇?!”

알고 보니 진동은 자신의 도가 아니라, 등 뒤에서 울리는 거였다.

아까부터 만박자가 시선을 보내던 쪽.

‘지, 진법이!?’

갈기갈기 찢기고 있어?

쑥!

거기서 놀랍게도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 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네는 귀도?”

귀도뿐 아니라 풍림객, 선화검, 진무고검까지!

분명 다 석신이란 독에 중독돼 죽었을 텐데?

죽은 이가 살아나?!

그런데 죽은 자 가운데서 명백히 산 자, 그리고 절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이까지 등장했다.

“종일 대협!”

“아니, 어째서 진 공자가 여기에!?”

“미안하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니!?”

“당장 이쪽으로!”

진천우가 진법을 찢고 등장하자마자, 다짜고짜 화룡도객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때, 그의 시야에 푸른 현판이 섬뜩한 붉은 빛으로 반짝이며 연신 경고를 보냈다.

[지금 막 제한 시간이 종료했습니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특수 이벤트 ‘레드 존(Red Zone)’이 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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