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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 죽은 자의 비밀 (91/210)


91화 : 죽은 자의 비밀
2022.01.29.


“하아!”

화룡도객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후발대 지휘를 임명받는 자리에서 선발대가 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그럼 생존자는?

제갈세형은 그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대는 련의 무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했고, 개방의 거지만이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와 그 소식을 전했다.

이후 선발대의 소식이 완전히 끊겼기에, 맹은 어쩔 수 없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했다.

전멸.

이는 불과 물처럼 상극인 맹과 련의 관계를 생각하면 결코 과장이라 볼 수 없었다.

허나 막상 눈앞에 펼쳐진 참상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참혹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곳곳에서 비분강개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군가는 거칠게 주먹을 움켜쥐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그중 일부는 커다란 두려움을 숨기지 못했다.

무림인은 속된 말로 칼 밥을 먹고 사는 이들.

언제 갑자기 칼에 베여 죽는 것쯤 진작에 각오했다.

하지만…… 하지만…….

“어찌 이런……!”

화룡도객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앞에 마치 석상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무인의 시체가 서 있었다.

“귀도(鬼刀) 선립.”

한 자루의 엽도를 귀신같이 다룬다 하여 그같이 불린 이는 이번에 선발대의 지휘를 맡은 자였다

그가 선 채 죽었다.

대단했다.

어떻게 죽는 순간까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무인이라면 기꺼이 그에게 찬사를 보내야 했지만.

“귀도뿐 아니라 풍림객, 선화검, 진무고검까지.”

화룡도객이 고개를 돌려, 귀도와 함께 선발대에 참여한 무인들의 별호를 읊었다.

그들 모두 귀도 옆에 함께 서 있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네 명의 무인이 같은 자리에서 딱딱히 굳은 채 죽었다?

이는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넷 모두 고통으로 얼굴을 끔찍하게 일그러트렸다.

“도대체 어쩌다…… 누가…….”

화룡도객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디뎠다.

그가 손을 앞으로 뻗어 고인의 눈을 감기려 하자.

“건들지 마!”

진천우가 급히 이를 말렸다.

“무슨?”

“독입니다.”

“독?”

“당장 거기서 물러나세요!”

“헉!”

팟!

그 직후, 화룡도객 외에도 선발대에게 다가갔던 무인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서둘러 제 몸을 살폈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이건 석신(石神)이라는 독입니다. 단순히 가까이 다가간 것만으로 중독되진 않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은 환단을 먹고 가볍게 일주천해 몸을 달구세요. 그러면 설사 독이 몸에 들어갔다 해도 바로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 알겠소.”

진천우의 조언에 후발대 무인들은 곧바로 약을 먹고 내공을 운용했다.

잠시 뒤, 화룡도객이 가장 먼저 일주천을 끝내고 진천우에게 다가왔다.

선발대가 당한 독에 대해 자세히 듣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이제 자신들이 이 독을 상대해야 했기에.

“석신은 호흡을 통해 중독되는 독입니다. 그 증상은 보시는 바와 같이 온몸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버리는 것입니다.”

“얼마큼 독을 들이마셔야 중독되는 거요? 독을 구분하는 방법과 독에 중독된 뒤 해독할 방법은?”

화룡도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천우가 아는 바를 숨김없이 알려주었다.

“한 사람을 중독시키는 데 필요한 석신의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대신 반드시 운무 상태로 들이켜야 중독됩니다. 그러려면 아마 다섯 모금 이상? 하지만 석신의 연기 색은 피처럼 짙은 붉은 색이라 구분이 쉽고, 한두 모금 들이켠 정도는 내공으로 어렵지 않게 몰아낼 수 있습니다.”

“천만다행이군.”

설명을 모두 들은 사람들은 안도했다.

내공으로 독을 몰아낼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이 사람들도 몰랐을까요?”

진천우가 돌처럼 굳은 시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랬다.

무림인은 일단 독에 중독되면 바로 내공으로 그것을 몰아낸다.

이렇게 일반적이다 못해 이제는 상식이 된 방법을 과연 선발대 무인들이 몰라서 당한 걸까?

“아마 내공을 쓰지 못하게 했거나, 그게 아니면 폐쇄된 장소에 가둬 지속적으로 석신을 흡입하게 만든 겁니다.”

즉, 이들은 석신에 중독된 건 맞지만, 죽은 이유는 꼭 석신 때문이 아니라는 소리다.

내공이 제한하거나, 폐쇄된 장소에 갇힐 정도면, 독이 아니더라도 죽일 방법은 많았다.

“그럴 수가!”

“이제 어쩌실 겁니까?”

독에 관해 모두 밝혔으니, 이제 진천우가 화룡도객에게 물었다.

이만한 상대와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건지, 그게 아니면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설 건지.

화룡도객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당연히 복수해야지요.”

이는 단순히 감정에 따른 결정이 아니었다.

후발대는 선발대보다 뛰어난 전력에 본 맹 소속의 백풍대까지 함께했다.

결코 련의 무인에게 당할 전력이 아니었다.

거기다 화룡도객에게는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숨겨진 비책까지 있었다.

“그러시다면…….”

답을 들은 진천우가 마차로 돌아갔다.

그 안에는 오는 동안 빻은 약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는 즉시 거기 있는 약초를 조합해 다량의 환단을 만들었다.

“이 검은 환단을 먹고 내공을 운용하면, 보다 빨리 몸에서 독을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만일 이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이 노란 환단을 삼키세요. 그러면 내공으로 몰아낼 수 없는 독도 한 번 정도는 해독할 수 있을 겁니다.”

“고맙소. 내 반드시 이것들을 사용해 련을 물리치겠소.”

“무운을 빕니다.”

진천우는 만든 환단을 모조리 화룡도객에게 넘긴 뒤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현석과 함께 여기에 남기로 했다.

원래부터 그 둘은 전투 인원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러자 백풍대주가 호위를 위해 백풍대에서 몇 명 떼주려 했지만, 진천우가 이를 거절했다.

그들은 자신을 호위하는 것보다 련을 상대하는 데 더 필요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여긴 련의 무인들이 나타난 장소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죽은 이들도 한번 련에서 풀어준 후 여기까지 필사적으로 달아난 거였다.

“그리고 저 혼자서도 충분히 저와 현석이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백풍대주가 다시 한번 호위를 남기길 권했지만, 진천우는 단호했다.

“?”

다만 협개만이 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천우는 제 수하와 자신을 의자로 개 패듯이 팬 뛰어난 고수인데 왜 저렇게 걱정하는 거지?

그는 백풍대주가 진천우를 지독한 환자의 모습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몰랐다.

결국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백풍대주가 먼저 의지를 접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이틀이나 줄인 시간을 어떻게든 유용하게 써야 했다.

“진 공자, 만일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치시오. 그리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맹의 이름을 파시오. 알아듣겠소? 반드시 그리해야 하오!”

백풍대주는 떠나는 순간까지 진천우를 걱정했다.

진천우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더니.

“후우!”

그들이 완전히 점이 되어 사라지자,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바로 선 채 죽은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소가주님, 위험합니다!”

이를 본 현석이 기겁하며 말렸다.

그러나 진천우는 괜찮다며 손을 들어 현석을 안심시켰다.

독괴의 맥을 이은 그가 독에 당할 순 없었다.

‘거기다 이건 독괴록에 나온 독이다.’

뭐?!

그래서 처음 보는 독임에도 그 성질을 줄줄 꿰찬 것이다.

허나 독괴록에 나왔다고 모두 독괴가 만든 독은 아니었다.

독괴는 천하를 주유하며 마주친 온갖 기이한 독을 독괴록에 기록했는데, 석신도 그중 하나였다.

‘심지어 지독하기로는 괴혈독보다 한 단계 위의 독.’

그래서 더 좋았다.

진천우가 어떻게든 후발대를 먼저 보내고, 백풍대의 호위도 거절하고,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현석하고 둘만 남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꿈틀!!

그 순간, 갑자기 소매가 크게 들썩였다.

꽤 오랫동안 소매 속에 숨어있던 영물이 뒤늦게 제 존재를 알렸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둘만 남은 게 아니라 셋이지.’

꿈틀꿈틀!

독고가 그제야 기분이 풀렸는지, 소매 속에서 느긋하게 재롱을 부렸다.

“이쪽은 내가 확인할 테니, 현석이 너는 마차로 돌아가거라.”

진천우가 독고를 꺼내기 전에 현석을 멀리 떼어놓았다.

“그리고 마차를 언제든 출발시킬 수 있게 준비해놓고.”

굳이 지금 마차를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따로 일을 시켜 놓아야 녀석의 주의를 완전히 돌릴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소가주님, 절대로 조심해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하인이 주인의 명을 받들어 몸을 돌리자,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제 풍성한 소매를 들췄다.

꿈틀!

소매 끝에서 커다란 눈의 독고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녀석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진천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따로 나오라고 하기 전까지 소매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말아다오.

독고는 진천우의 말을 열심히 따랐다.

물론 밤이 되면 소매 밖으로 나오게 해주었고, 녀석도 때때로 소매 속에서 몸을 뒤척이거나 옷 속을 휘저으며 제 존재감을 알렸지만, 이처럼 밝은 낮에 얼굴을 마주하는 건 정말 오랜만.

독고는 그렇게 진천우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역시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아주 맛난 독.

스륵!

간만에 맛있는 독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독고의 입에서 투명한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

모르는 이가 보면 그저 평범한 타액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만독의 제왕이라 불리는 영물의 입에서 나온 것.

“조심해야지. 내 옷을 녹일 셈이냐?”

하지만 진천우는 웃으며 맨손으로 그것을 만졌다.

그뿐 아니라, 손끝으로 액체를 들어 다시 독고의 입가로 넣어주었다.

독괴의 맥을 이어 온전한 독인이 된 그가 아니면 쉽사리 할 수 없는 재주.

꿈틀!

독고가 곧장 제 실수를 깨닫고 진천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보면 볼수록 진귀한 광경이었다.

겨우 손바닥 크기의 애벌레와 이렇게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니.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동시에 대단한 영물이었다.

덜컹!

그때, 저 뒤편에서 현석이 부산하게 마차를 움직였다.

아마 얼마 뒤면 마차 정비를 끝내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릴 게 분명했다.

그 전에 석신을 완전히 해결해야 했다.

“부탁한다.”

진천우가 마차를 등지고 고개를 숙여, 독고만 들을 수 있도록 낮게 속삭였다.

꿈틀!

녀석이 이를 알아듣고 바로 땅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곧장 딱딱히 굳은 시신 쪽으로 가, 석신을 빨아들였다.

[독고가 새로운 형태의 독을 흡수합니다.]

[독고는 다양한 독을 흡수할수록, 만독의 제왕에 걸맞게 성장합니다.]

[독고가 강하게 성장할수록 ‘영물 마스터’의 효과로 사용자의 ‘독 저항력’과 ‘독공’의 숙련도도 함께 상승합니다.]

진천우가 독괴에게 석신을 흡수하게 한 건, 단순히 독공을 강화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시체는 비록 입을 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을 말한다.

중독된 석신을 완전히 흡수해 깨끗해진 시체를 조사하면, 왜 련이 굳이 다른 방법이 아닌 독을 사용했는지,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독에 중독된 뒤에도 여기까지 달아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검시(檢屍)와 수사술을 모른다는 게 안타깝군.’

아마 정보를 다루는 개방 출신인 정철이라면 이에 깊은 조예가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만 따로 남겨둘 수 없었다.

게다가 남겨둔다 해도, 아직 현석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독고를 그에게 보여줄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은 자신의 번뜩이는 기지와 혹시 모를 타이쿤의 능력만 믿고 시신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꿈틀?!

그런데 독고가 한참 독을 빨아들이다 말고 갑자기 몸을 곧추세웠다.

녀석은 곧장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뭐, 뭐야?’

너무 놀란 진천우가 뒤늦게 이를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

독고가 왜 몸이 굳은 거지?

설마 녀석도 석신에 중독된 걸까?

아무리 독괴의 독이라지만, 영물인 독고도 중독시킨다고?!

꾸……꿈틀!

다행히 가까이 다가가자, 독고가 석신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후우! 뭐냐, 깜짝 놀라잖아.”

진천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녀석이 실없는 장난이라도 친 줄 알고 가볍게 한 소리하려 했는데.

움찔!

“응?”

방금…… 뭐가 움찔거렸지?

움찔!

“……어?”

진천우는 갑자기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천천히 목만 옆으로 비틀었다.

움찔찔!!

“헉!?”

그 직후, 그가 비명을 질렀다.

“우왁?!”

그러자 그 비명에 호응하듯, 눈앞의 시체도 함께 입을 열었다.

세상에!

죽은 시체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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