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 타구(打狗)의 달인 (2) (86/210)


86화 : 타구(打狗)의 달인 (2)
2022.01.17.


사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미 타구의 달인이 시작되었다.

오결 거지의 말이 거짓이든 아니든, 어차피 팬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진천우가 손에 든 의자를 내리쳤다.

-쿵!

묵직한 한 방.

의자가 살을 때리자, 충격이 몸속 깊이 침투했다.

틀림없이 이 한 방으로 내장이 크게 뒤틀렸을 터.

“…….”

그러나 오결 거지는 인상 한 번 쓰지 않았다.

‘제법!’

확실히 보통 거지가 아니다.

그렇담 이건 어떨까?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딱!

이번에는 의자가 뼈를 때렸다.

틀림없이 오른팔이 부서졌다.

“…….”

‘그런데도 아무 반응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설마 정말로 내 성이 풀릴 때까지 그냥 맞을 생각인가?’

믿기지 않았다.

‘이래도?’

슥!

진천우가 다시 의자를 들었다.

하늘 높이.

이때 그는 빈틈투성이였다.

여기서 거지가 몸을 움직이면, 어렵지 않게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

그러나 오결 거지는 그 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쉐엑!

그 직후, 하늘 높이 올라간 의자가 땅을 가르듯 무서운 기세로 아래로 떨어졌다.

이번에 노리는 부위는 머리였다.

‘!?’

처음으로 오결 거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만한 고수가 이 일격의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하물며 이미 살에 한 방, 뼈에 한 방을 맞았으니 더더욱.

만약 이 의자가 그대로 머리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살에 닿으면, 뇌가 진탕된다.

뼈에 닿으면, 골이 쪼개진다.

둘 중 무엇이든 치명적.

휙!

의자가 거지의 코앞까지 떨어진 순간!

진천우가 두 눈을 치켜떴다.

‘눈을 감아?!’

-당장 손에 든 의자로 날 패시오! 그대가 만족할 만큼 맞겠소.

-나, 정철의 말은 천금보다 무겁소.

그는 정말 제가 뱉은 말을 지켰다.

‘정철!!’

이때, 진천우가 거지의 정체를 알아챘다.

협개(俠丐) 정철.

천하의 수많은 사람이 의협(義俠)을 숭상하지만, 정작 그 이름 앞에 협(俠)과 의(義)를 붙일 수 있는 이는 모래알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둘은 이름 앞에 붙이는 것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건 그 백배로 어려웠다.

한번 협으로 불리면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수많은 세인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헐뜯음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정철은 협이 되기 이전부터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남을 돕기 위해서라면 죽고 사는 것도 잊으며, 제 재주를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부끄러이 여겼다.

그만큼 대단한 정철은 언제나 개방의 자랑이며, 나아가 구파일방 그리고 맹의 자랑이었다.

또한 그의 위명은 일찍이 천하를 진동시켰기에, 변방이나 다름없는 진씨세가에도 퍼질 정도.

우뚝!

진천우는 차마 그런 자를 의자로 내려칠 수 없어 손을 멈췄다.

“유명한 분이셨군요.”

“전혀 그렇지 않네.”

“조건을 바꾸겠습니다.”

“무슨?”

“지금부터 손에 든 타구봉으로 절 제압하세요. 만약 제가 당신에게 진다면 오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자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처지인데 어찌 타구봉을 휘두를 수 있겠나!”

정철이 처음으로 진천우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확실히 협의 이름을 짊어진 이에게 해서는 안 될 조건이지만.

“내 알 바입니까?”

“뭣?”

“잘못을 저지른 주제에, 피해자가 하라는 대로 용서를 구하지는 못하겠다는 말입니까?”

“그, 그런!!”

정철이 진정 협이라면, 진천우가 무슨 요구를 하든 들어줘야 했다.

“당장 타구봉을 휘두르지 않으면, 내게 사죄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 휴!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지.”

그는 어쩔 수 없이 타구봉을 들고 휘둘렀다.

앞서 진천우의 실력을 보았기에 대충이란 없었다.

-쿵!

“엇?”

그런데 첫 일격이 너무나 손쉽게 성공했다.

진천우는 타구봉을 맞고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정철이 놀라 물었다.

“왜 피하지 않았지?”

“그쪽도 내 공격을 그냥 맞지 않았습니까?”

“그 무슨?”

“아직 한 대 더 남았습니다.”

“뭐?”

정철은 진천우가 억지로 자신을 제압하라고 할 때보다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고쳤다.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자다.’

그는 진천우가 정당한 승부를 위해 일부러 맞아주는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 생각은 틀렸다.

-딱!

“큭!”

진천우가 가슴에 두 번째 타구봉을 맞고 몸을 잘게 떨었다.

고통이 상당했음에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진정한 타구(打狗)를 제 몸에 직접 체험했습니다.]

[지금부터 ‘타구(打狗)의 달인’의 난이도가 ‘쉬움’에서 ‘어려움’으로 바뀝니다.]

[높은 난이도를 깰수록 보상이 커집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앞서 ‘보다 효율적으로 개를 패기 위해서’란 말을 들은 것만으로 타구의 달인이 시작되었고, 진정한 타구를 목도한 것만으로 튜토리얼이 넘어갔다.

‘그렇다면 당연히 직접 타구봉에 맞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지.’

물론 이것도 정철이 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천우는 설사 이 사실을 미리 알았어도, 절대 삼결 거지에게 일부러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놈은 어디까지나 의당에 허락 없이 숨어든 침입자.

그놈에게는 오로지 뼈와 살을 분리시키는 몽둥이찜질만이 필요할 뿐, 그 외에 다른 건 필요 없었다.

그리고 그가 정철에게 연이어 두 방을 허락한 건, 이것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MISS로 인한 마비가 풀립니다.]

본래라면 세 번째 공격으로 그의 대가리를 찍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은 관계로 몸이 마비되었다.

어차피 이 마비가 풀릴 때까지 진천우는 움직일 수 없었기에 시간을 끌어야 했다.

마비가 풀리자마자 그는 다시 의자를 움켜쥐었다.

[서둘러 가장 가까이 있는 둔기를 손에 드세요.]

“음?”

분명 손에 의자를 들었는데, 왜 현판에 엉뚱한 글이 뜨는 걸까?

타이쿤에 잠시 오류가 났나 싶어, 일부러 의자를 손에 놓았다 다시 쥐었다.

그래도 현판의 글은 바뀌지 않았다.

‘혹시?’

진천우가 설마 하며, 옆으로 손을 뻗어 또 다른 의자를 들었다.

슥!

그러자 곧장 타이쿤의 시작을 알리는 하얀 줄이 나타났다.

‘난이도 어려움이라고 하더니.’

이제부터는 양손에 하나씩 의자를 들고 싸워야 했다.

“먼저 가오!”

그 순간, 정철이 다시 자세를 잡고 달려들었다.

진천우도 서둘러 대나이신법을 펼쳤다.

속도로는 자신이 훨씬 우세했다.

허나.

스륵!

“엇!?”

저 움직임.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기묘한 움직임이 다시 선보였다.

처음에는 도가의 현기가 섞였다고 생각했지만, 개방은 도가 계열은커녕 무림에서 가장 세속적인 집단이었다.

정철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진천우는 곧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현기(玄機 : 깊고 오묘한 기운)가 아니라 현기(眩氣 : 어지러운 기운)였군.’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지의 신형이 기이하게 비틀렸다.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휙!

그 순간, 난데없이 안면을 향해 타구봉이 날아왔다.

진천우가 화들짝 놀라며 의자를 휘둘렀다.

쾅!

간신히 의자가 타구봉을 막았다.

이를 보며 정철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

빈말이 아니었다.

분명 진천우의 신법이 더 뛰어나지만, 그에게는 사선을 뛰어넘은 숱한 경험이 있었다.

거기다 조금 전 자신이 펼친 취팔선보(醉八仙步)는 개방의 자랑.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걸음에 오히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허허실실의 묘리에 숨어있었다.

‘이대로는…….’

진천우가 난색을 보였다.

타구봉의 변화무쌍한 투로에 취팔선보의 기묘한 걸음이 섞이니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그것도 간단했다.

‘타구의 달인을 포기하면 된다.’

애초에 정철과 정면 승부만 피하면, 이렇게 몰릴 이유도 없었다.

진천우의 진가는 하늘조차 뛰어넘는 경신법.

거기에 그가 가진 의술, 독술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면, 아무리 협개라 불리는 이도 쉽게 제압이 가능했다.

‘허나 그리하면 타구의 달인은 실패하겠지?’

그러면 보상이 날아간다.

진천우는 이를 극도로 경계했다.

본래 그가 천하제일 타이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 천형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진천우는 아직 천형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타구의 달인의 보상이 천형을 극복할 방도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타이쿤 보상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모든 타이쿤에 반드시 전력을 다한다.’

휙!

다시 의자를 들고 몸을 날렸다.

정철 역시 타구봉을 들고 몸을 날렸다.

이후, 둘의 공방이 얼마간 이어졌다.

-쿵! 쿵! 딱! 쿵딱!

역시 개방은 강했다.

진천우는 정철의 타구봉에 연거푸 다섯 대나 맞고 뒤로 물러났다.

한 대, 한 대가 내장을 뒤틀고 뼈를 부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대단하오!”

정철이 다시금 크게 감탄했다.

이미 패색이 역력한데도 절대 물러나지 않는 모습에는, 근자에 보기 드문 기개가 느껴졌다.

개방의 거지는 누구보다 귀가 밝다.

그는 최근 천하에 퍼지기 시작한 ‘맹 위험설’을 걱정했다.

교와 련은 눈을 떼기 무섭게 성장하는데, 맹은 수년째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 수하의 불의를 보았으나 동시에 남다른 인재를 찾았다.’

그렇다면 이자를 똑바로 맹의 희망으로 키우는 게 협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내가 직접 이 젊은이를 지켜보며, 그에게 깃든 의협의 싹을 틔우리라.’

정철은 진천우에게 당연히 의협의 싹이 깃들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남을 의심하지 않는 것 역시 협의 특징 중 하나였다.

휙!

그는 이제 승부를 결정하기 위해 타구봉을 휘둘렀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다.

-쿵!

그런데 이를 진천우가 막았다.

정철은 조금 놀랐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다음 일격을 날렸다.

-딱!

두 번째 공격도 의자에 막혔다.

-쿵!

‘세 번째도?!’

한두 번까지는 우연일 수 있지만, 세 번이나 막힌 건 어떻게 봐야 하지?

그 순간 정철의 얼굴에는 경악이란 감정이 담겼다.

진천우의 공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예리해지고 더 정확해졌다.

이는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지금도 ‘타구(打狗)의 달인’을 진행 중이었다.

타이쿤은 진천우에게 강제로 정면승부를 강요해 불리함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가 의자를 휘두르고 타구봉에 맞을 때마다 숙련도를 올려주었다.

-확실한 성과에는 명확한 보상을.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타이쿤의 성향이었고, 진천우는 그것을 굳게 믿었다.

그는 의자 휘두르기에 능숙해질수록 타구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타구(打狗)의 본래 의미는 구걸을 방해하는 개를 팬다는 뜻.’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 개 같으면, 개처럼 땅을 네발로 길 정도로 작심하고 패버리란 뜻이지.’

그러니 뼈를 부수는 ‘딱’은 사지를 박살 내 두 발로 서지 못하게 하란 의미이고, 살을 부수는 ‘쿵’은 내장을 진탕시켜 고통으로 땅을 구르게 하란 의미이다.

진천우는 연거푸 타구봉에 맞아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그 의미를 곱씹으며 의자를 휘둘렀다.

어찌 보면 저 상태야말로 무인들이 그렇게나 닿고 싶어 하는 무아지경이 아닐까?

“멋지군. 그러나 나도 지지 않겠소!”

하지만 정철도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그 역시 물러섬을 모르는 협이다.

정철은 즉시 타구봉을 어지럽게 휘둘렀다.

-쿵!

-딱!

일순, 진천우가 주춤했다.

무아지경이 풀려서가 아니다.

정철 역시 무아지경에 지지 않는 속도로 타구봉을 휘둘렀다.

설마 이 상황에 진천우와 함께 성장하다니.

엉뚱함도 정도가 있지!

놀랍게도 협개의 우직함은 한번 굳어진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아니, 아예 뒤집어버렸다.

원래부터 천형을 짊어졌던 진천우의 몸은 진정한 무인인 정철에 비해 다소 처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앞서 연이은 공격을 허용한 점도 컸다.

-쿵!

결국 둘 중 먼저 공격을 허용한 건 진천우였다.

‘끝났다.’

정철이 승리를 확신함과 동시에 아쉬워했다.

‘조금 더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우선은 여기서 내 기대를 뛰어넘은 인재의 탄생을 기뻐하도록 하지.’

그는 결심했다.

이 일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진천우의 큰 힘이 되겠다고.

그러나 그 생각은 일러도 너무 일렀다.

-쿵!

“컥!”

정철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설마 제 타구봉에 맞은 직후, 이런 공격이 날릴 줄이야.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다시 타구봉을 휘둘렀다.

-딱!

-딱!

둘의 공격이 교차를 이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정철은 모르지 않았다.

‘방어를 포기했어?’

그랬다.

지금까지는 타구봉과 의자를 부딪쳐 서로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진천우는 일부러 타구봉에 몸을 내주었고, 대신 맞은 만큼 의자로 후려쳤다.

그의 두 번째 승부수였다.

‘이미 내가 깨달은 타구의 참뜻은 정철을 넘어섰다.’

이 순간에도 타구의 달인이 숙련도를 가파르게 올려주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마지막까지 타이쿤을 믿고 휘두르는 수밖에 없었다.

-쿵!

-쿵!

-딱!

-딱!

진천우는 이제 막지 않고 때렸다.

타구의 의미?

그딴 걸 생각할 새도 없이 그저 때리고 또 때렸다.

기껏 깨달은 타구의 의미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쿵딱!

-쿵딱!

-딱쿵!

-딱쿵!

그러자 텅 비어버린 머리에 새로운 의미가 떠올랐다.

‘개건 사람이건 팰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패야지, 의미고 뭐고 무슨 상관이랴!’

그냥 팬다.

실로 간단명료하고 단순한 의미가 의자에 깃들었다.

-쿵!

-쿵딱!

-딱!

-딱쿵!

-쿵딱!

-쿵딱딱!

-딱!

-딱쿵쿵쿵! 쿵딱쿵딱!!

“컥!”

가장 간단한 의미만 담은 공격이, 정철의 깊은 의지가 담긴 타구봉을 뛰어넘었다.

“…….”

결국 정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쏟아지는 매타작에 함몰되는 순간, 진천우의 눈앞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현판이 등장했다.

[초월 달성!!]

1655097461299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