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 함정설치 (2)
(82/210)
82화 : 함정설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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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 함정설치 (2)
2022.01.08.
‘나 혼자 맹에?’
이건 또 뭐지?
[오늘 밤, 의당에 침입자가 숨어듭니다.]
[사용자는 의당에 숨겨진 함정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침입자를 물리치세요!]
‘간단하네?’
모처럼 타이쿤이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인 과제를 내주었다.
게다가 이건 처음부터 자신이 하려던 일.
진천우가 기쁜 마음으로 의당의 커다란 문을 밀었다.
“응?”
다시 팔에 힘을 주었다.
“어?”
꿈쩍도 하지 않는 문.
‘뭐가 이렇게 무겁지?’
뒤늦게 문을 살피니, 문고리에 무슨 장치가 되어있었다.
그는 얼마간 장치를 확인하다가 문 옆에 떡하니 안내판이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얼마나 오래 내팽개친 건지 안내판 위에 먼지가 가득했다.
‘이러니까 바로 발견하지 못했지.’
“후!”
입으로 먼지를 털고 안내판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 문은 문고리를 일정 세기 이상 강하게 비틀어야만 열림.]
‘그게 다야?’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끼긱! 끼기긱!
쇠로 만든 문고리는 아무리 힘을 줘도 요지부동이었다.
혹시나 싶어 역근경을 운용해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그극! 끽!
문고리가 절반쯤 비틀렸다가 또 멈췄다.
진천우가 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지간한 힘으로 이 문고리를 비트는 건 어림도 없겠구나.’
일단 자신의 근력만으로 이 문을 여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은 근력만이 아니었다.
철컹!
역근경과 내공을 동시에 운용해 간신히 문고리를 비틀었다.
끼이익!
드디어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둡군.’
아직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의당 내부는 어두웠다.
주위에 빛이 들어올 창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이 층은 어느 정도 광원이 확보됐는지, 약간의 빛이 계단 너머에서 흘러들어왔다.
아무래도 의당에 뭐가 있는지 확실히 알아보려면 중앙에 설치된 계단을 올라야 했다.
“......”
그러나 진천우는 입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한참을 더 움직이지 않다가 간신히 입을 뗐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제야 진천우가 밟을 옮겼다.
슥!
그런데 평범하게 걸음을 옮기는 게 아니라, 발을 바닥에 대고 천천히 앞으로 밀면서 이동했다.
그렇게 움직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툭! 툭툭!
발을 움직일 때마다 발끝에 뭔가가 부딪쳤다.
또르륵!
엄지손톱 크기의 쇠 구슬이 바닥 위를 매끄럽게 굴러갔다.
의당 일 층 바닥에는 이런 구슬이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에 이런 게 뿌려져 있다?
‘처음부터 함정이 설치된 건 줄 몰랐다면, 그대로 넘어질 뻔했어.’
그야말로 어린아이나 할 법한 장난.
그래서 더 악질이었다.
이곳에 이런 함정을 설치할 이는 학수선의뿐.
‘그 말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필시 함정이 설치돼 있다는 소리겠지?’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계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랫부분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휙!
계단 중간부터 손끝이 빠르게 옆으로 미끄러졌다.
‘기름칠!’
계단에 무색무취의 기름이 발라져 있었다.
왜 아래는 멀쩡한데 중간부터 기름이 발라져 있을까?
‘기름에 미끄러져 계단에서 넘어진 뒤,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더 크게 다치라는 거지.’
진짜…… 악질은 악질인데…….
‘왜 이렇게 발상이 유치하지?’
유치.
그 말대로다.
의당의 함정들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지만, 너무 약했다.
여기가 어딘가?
맹이다.
천하에 가장 강하고 뛰어난, 말 그대로 용과 호랑이가 모이는 장소.
그런 맹 한가운데서 겨우 이 정도 함정으로 어쩌자는 거지?
‘무공을 모르는 범인에게는 지독한 함정일지 몰라도,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큰 피해를 줄 수 없는 함정이다.’
진천우가 딱 잘라 단정했다.
맨 먼저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문.
이건 약간의 내공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열 수 있었다.
그다음 바닥에 뿌린 쇠 구슬도 자신처럼 조금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피하는 게 가능했다.
특히 내공을 다룰 줄 아는 무인은 내공으로 안력을 돋궈, 빛 없이도 바닥에 깔린 쇠 구슬을 간파할 수 있었다.
계단의 기름도 공략법은 쇠 구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지금 의당에 설치된 함정은 전부 무공을 모르는 범인들에게만 통하는 함정이라는 뜻.’
만일 나라면, 내가 만일 이곳에 함정을 설치했다면!
‘우선 입구의 문부터 바꾸겠지.’
진천우가 기껏 오른 계단을 내려와 입구로 돌아왔다.
그는 곧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생각한 새로운 함정에는 그게 꼭 필요한데, 주위에 그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지?’
막 머릿속에 떠올린 함정이 문 바로 옆에 놓여있었다.
진천우는 이걸 완전 처음부터 새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문 앞에 놓인 물건은 바로 문에 끼우기만 하면 되는 완성품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라?”
그다음, 따로 구상한 함정도 일 층 구석에 놓여있었다.
그 옆에는 다른 함정에 필요한 망치와 못 그 외 공구도 보였다.
전부 오래 방치해도 녹이 슬지 않게 꼼꼼하게 기름칠까지 돼 있었다.
“허어?”
감탄과 의문이 동시에 나왔다.
‘그러니까 신의께서는, 하려면 얼마든지 의당에 지독한 함정을 설치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약한 함정만 설치한 건가?’
왜?
진천우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의당에 숨겨진 학수선의의 연구물을 발견했습니다.]
[스킬 ‘함정설치’를 습득했습니다.]
‘어?’
난 신의의 연구물을 찾은 기억이 없는데?
자신이 찾은 거라고는 구석에 따로 설치하지 않고 늘어놓은 함정들 뿐.
-그곳을 잘 뒤지면 내가 숨긴 연구물이 나올 거다.
‘이 사람이?!’
그제야 진천우는 자신이 아주 크게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왜 학수선의의 연구물이 서책 따위에 적은 기록물이라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것들이 왜 당연하게 의술이라고 여겼을까?
‘그래, 신의께서는 의(醫)와 조금이라도 연관되면 어떤 잡기라도 서슴없이 익히는 분이고, 또 제가 인정한 자가 아니면 절대 제 것을 내주지 않는 분인데.’
아마 맹 또한 자신처럼 크게 착각해 지금껏 신의의 기예를 조금도 얻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계속 발만 동동 굴리다가, 난데없이 나란 놈이 나타나자 바로 사람을 붙인 거겠지.’
학수선의는 누구와도 사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가르침 받은 입장에서, 어떻게 가르침을 내려주신 이의 뜻을 거스를 수 있으랴!
철컥철컥! 땅땅땅!
[스킬 ‘함정설치’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진천우가 빠르게 기존 함정을 해체하고 새로 찾은 함정을 설치했다.
그러자 저녁쯤 모든 함정을 재설치할 수 있었다.
[의당의 함정 난이도를 ‘무공을 모르는 범인용’에서 ‘무인용’으로 수정했습니다.]
“좋군.”
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뒤, 제가 설치한 함정을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침입자가 밤에 온다고 했지?’
지금은 저녁.
그 말은 곧, 함정을 재설치하면서 늘어난 숙련도로 지금보다 더 극악 난이도로 바꿀 수 있다는 소리.
이미 자신은 학수선의를 반쯤 스승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원래 제자는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 법.’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진천우가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른 손에는 못을 움켜쥔 채, 입꼬리를 비릿하게 비틀었다.
“지옥을 보여주지.”
* * *
휙!
야심한 시각, 누군가 의당 주위로 숨어들었다.
“여긴가?”
흐린 달빛 아래, 여기저기 헤진 누더기 차림의 젊은 거지가 모습을 보였다.
이곳의 맹의 담장 안.
감히 거지 따위가 발을 들일 장소가 아니다.
그런데도 함부로 돌아다니는 거지가 있다면, 그 정체는 하나뿐.
개방(丐幫).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집단.
개방 거지는 진천우가 의당에 들어가고 반나절이나 지난 뒤에야 나타났다.
“진천우, 진씨세가의 소가주.”
그 반나절 동안, 그는 진천우에 대해 조사했다.
‘쯧! 차라리 어느 정도 유명한 가문의 후계자였으면 금방 알아냈을 텐데, 그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변방이라 정보를 찾는 게 늦었어.’
아무리 천하에 눈과 귀가 있는 개방이라도 정말 천하의 모든 일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개방 거지는 진씨세가에서 가장 가까운 분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찾아, 진가의 간략한 역사와 벌써 십수 년째 가주가 두문불출 중이란 점, 마지막으로 소가주가 큰 지병을 앓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랬던 진씨세가의 소가주가 학수선의와 함께 맹의 지부로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보고서에는 진천우가 신의를 만나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학수선의가 신묘한 의술로 진천우를 치료했다고 생각했다.
“쯧!”
젊은 거지가 낮게 혀를 찼다.
그 대단한 의술을 개방이 가질 수 있다면!
하지만 학수선의는 아무리 개방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자였다.
-불가(不可).
그 때문에 윗선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학수선의를 평범한 의원으로 생각하지 마라. 그는 매우 무서운 분. 너 따위가 당해낼 상대가 아니다.
특히 그의 상관이 불같이 역정을 내었다.
‘내가 학수선의의 뒤를 쫓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된다고만 하는 거야?’
허나 개방은 젊은 거지의 혈기를 우습게 보았다.
아니, 그보다는 피치 못한 상황 탓이 컸다.
그만큼 갑작스러운 련의 등장은 개방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이 뒤늦게 련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 젊은 거지가 일을 저질렀다
‘만약 이미 치료가 끝났다면, 학수선의가 굳이 진씨세가의 소가주를 이곳에 데려올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아직 진천우의 치료가 다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담 녀석의 몸을 살피면, 신의의 의술 중 일부를 훔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되면!
‘날 무시한 자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겠지.’
더불어 자신의 직급도 크게 오를 것이다.
‘최소 단두(團頭)급. 어쩌면 향주까지도?’
그다음은 무려 분타주다!
이만한 보상이면 위험을 무릅쓸 가치는 충분했다.
‘게다가 설사 일이 잘못돼도, 어차피 변방 가문의 후계자 따위를 누가 신경이나 쓸까?’
젊은 거지는 개방의 이름만 믿고 오만하게 나댔다.
거기다 그는 여러 위선자가 으레 그러하듯, 그럴싸한 명분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개방이 하는 일은 모두 천하를 위한 일이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은 어쩔 수 없는 법.”
그는 가증스러운 헛소리를 지껄이며 의당 입구로 다가갔다.
유독 크고 두꺼운 문이 그 앞을 막았다.
허나 거지가 보기에, 이처럼 쓸데없는 문은 없었다.
‘약간의 내공만 있으면 누구나 열 수 있는 문 따위로 개방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여긴 건가?’
그의 머릿속에는 의당에 설치된 모든 함정이 들어있었다.
아니, 그것들은 정말 함정이 맞을까?
“큭!”
생각할수록 코웃음만 나왔다.
‘이딴 걸 함정이라 만든 학수선의도 웃기지.’
그리고 이런 함정 따위를 믿고 의당 구석에서 안심하고 쉬고 있을 진천우란 놈도 불쌍했다.
하긴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출신의, 그러니까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자에게 무슨 기대를 할까?
“내가 오늘 그에게 우물 밖의 하늘을 보여주도록 하지.”
하늘?
그 직후, 젊은 거지는 의당의 문고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진천우의 첫 번째 함정이 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