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함정설치 (1)
(81/210)
81화 : 함정설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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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 함정설치 (1)
2022.01.05.
“련(聯)이?!”
학수선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도련(邪道聯).
본래는 녹림과 수로맹이 주축을 이뤄 그저 방대한 인원수만 앞세운 오합지졸이지만, 새로 취임한 련주에 의해 그들은 바뀌었다.
새 련주는 위아래를 나누지 않고 련 전체에 엄격한 규율을 세웠는데, 이에 반항하는 이는 가차 없이 찍어 눌렀다.
사도련주는 당시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천마교주와도 맞먹는 절대 고수.
흡사 강철같은 기세로 피 흘리는 걸 주저하지 않은 그의 결단에 련은 순식간에 맹, 교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런 련이 쳐들어온다.
이곳으로!
“큰일이군!”
신의가 곧바로 맹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다섯 의원이 황급히 그 뒤를 뒤따랐다.
“......”
하지만 진천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네는 왜 따라오지 않는가?”
이를 본 백풍대주가 맹의 문에 한 발을 걸친 상태로 그를 불렀다.
“어서 신의님을 뒤따르지 않고?”
“그게…….”
진천우가 조심스럽게 제 바로 옆에 선 무인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무리 이곳이 본맹이 아닌 지부일지라도 맹은 맹.
맹으로 처음 들어서려는 자는, 반드시 입구에서 엄중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여러분의 신원은 이미 학수선의께서 보증해주셨습니다. 그러니 따로 검문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는군.”
뒤늦게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진천우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
단순히 문 하나 넘었을 뿐인데 안과 밖은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척척척!
사방에 날카로운 기세를 뿌리는 무인들이 짝을 지어 돌아다녔고, 주위 전각과 석상, 하다못해 바닥에 새겨진 단순한 문양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허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순수히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자네는 일단 이곳에서 대기하게.”
백풍대주가 입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전각에 진천우를 남겼다.
확실히 학수선의의 일행이라 입구의 검문을 통과할 수 있었지만, 그 너머 내당으로 들어가는 검문은 별개였다.
더욱이 지금 같은 비상시에는 검문이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절대 허투루 할 리 없었다.
“아무쪼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네, 저는 이곳에서 얌전히 대기하겠습니다.”
진천우가 빠르게 백풍대주의 말을 끊었다.
그 나름의 배려였고, 백풍대주는 이에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급히 몸을 돌렸다.
그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내당에서 상세한 정보를 듣고 싶었다.
“금방 돌아오겠네!”
“기다리겠습니다.”
진천우는 백풍대주의 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배웅했다.
“후우!”
그런 뒤, 천천히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완전히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소가주님…….”
그의 옆에는 자신보다 훨씬 더 겁에 질린 현석이 있었다.
“괘, 괜찮은 걸까요? 입구에서 분명 련의 무인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온다는데…….”
“쉿!”
“하,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면 당장 여기서 달아나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그 입 다물라고 하지 않았더냐!”
진천우가 급히 하인의 입을 막았다.
현석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맹이 어찌 되든 오로지 제 주인의 안위만 걱정했다.
그 점은 언제나 고마웠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속내를 밖으로 꺼내지 않고 안에서 삼켜야 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굳이 그런 격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곳은 맹이다.
자신은 이미 사나운 범의 아가리 속에 발을 들였다.
진천우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학수선의와 백풍대주가 들어간 내당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손짓으로 흥분한 하인을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아마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을 거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 학수선의 일행은 내당으로 들어간 지 한 식경도 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그닥 다그닥!
그들은 들어갔을 때와 다르게 날렵한 준마 네 필이 이끄는 화려한 맹의 백색 마차를 탄 채, 모습을 보였다.
뒤늦게 들어간 백풍대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천우!”
휙!
마차 안에서 학수선의가 그에게 뭔가를 던졌다.
받고 보니 그건 백색 목패였다.
“난 이대로 맹의 선발대와 함께 련의 무인들이 집결한 장소로 떠난다. 그 목패는 이곳에서 너의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이니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해라.”
“안 그래도 바쁘셨을 텐데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천우가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 뒤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학수선의가 굳이 지금 이 목패를 내줬다는 건, 자신은 저 마차에 탈 수 없다는 뜻.
그는 그 사실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거겠지.’
이런 때에 제 감정을 내세울 수 없었다.
아니,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쯧!”
학수선의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진천우를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그만 들을 수 있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인상 쓰지 마라. 금방 돌아올 테니.”
“네?”
그가 진심으로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건가?
“아니, 내가 무슨 관상쟁이인 줄 아느냐? 어떻게 표정만 보고 네놈의 감정을 읽겠느냐? 그냥 나 같아도 이런 상황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면 기분 더러울 것 같아서 그런다.”
“전, 그런 생각은!”
“됐고. 여기 외당 구석에 가면 따로 내 처소가 있다.”
“네?”
맹에서 장로급 대우를 받는 학수선의의 처소가 내당이 아닌 외당에 있다고?
“그야 일단 내가 정식으로 맹에 소속돼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그곳을 잘 뒤지면 내가 숨긴 연구물이 나올 거다. 기다리는 동안 그거나 찾고 있거라.”
“아니, 그냥 숨긴 장소를 알려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재미없잖아!”
진천우의 의문에 학수선의가 되레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그의 어깨를 밀쳐 마차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곧바로 마차를 출발시켰다.
“인생은 짧고, 보물은 한정된 법이다. 그러니 네가 찾은 보물은 절대 남에게 뺏기면 안 된다.”
그는 마지막까지 뜻 모를 소리를 남기며, 맹을 떠났다.
“......”
진천우는 마차가 맹을 떠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마차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그제야 등을 돌렸다.
‘외당……. 신의의 거처라…….’
* * *
“소가주님, 조심히 갔다 오세요!”
현석은 진천우와 달리 따로 목패를 받지 못했기에 처음 머물렀던 전각에 계속 남기로 했다.
‘이 역시 따로 의미가 있는 거겠지?’
자신에게만 목패를 내준 의미.
아마 현석의 신분 때문에 목패를 내주지 않을 건 아닐 거다.
그렇다고 신의가 실수로 잊은 것 또한 아닐 터.
‘그런가?’
진천우가 학수선의의 처소로 걸음을 옮기며,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께서는 이 모든 걸 나 혼자 처리하라는 거군.’
처리?
무엇을?
슥!
사실 그는 맹 입구에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 뭔가를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
조금 전 전각에서 현석에게 크게 역정을 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르륵!
다행히 그것은 전각에 남겨둔 현석이 아닌, 자신을 쫓아왔다.
‘하하!’
이를 눈치챈 진천우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웃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이따위 서투른 미행으로 날 몰래 뒤쫓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꽤 우습게 보였구나!
일찍이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인 ‘미행’을 경험하고, 하오문 장로와 은신 및 소매치기 대결까지 펼친 자신을 뭐로 보고!
‘버릇을 고쳐줘야겠군.’
뭘 어떻게 고쳐줘야 잘 고쳐줬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진천우가 슬며시 입꼬리를 비틀었다.
* * *
“신의님.”
“뭐냐?”
학수선의와 함께 마차에 올라탄 산적 의원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가?”
“그…… 막내를 맹에 홀로 남겨둔 것 말입니다.”
그는 어느새 진천우를 막내라 칭했다.
이제 마차 속 다섯에게 ‘우리’는 다섯이 아닌, 여섯이 되었다.
학수선의도 이를 눈치채고 입꼬리를 야릇하게 비틀었다.
그러나 산적 의원은 여전히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 우리 중 한 사람이라도 함께 남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칫 녀석 혼자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아서…….”
“맹의 울타리 안에 남겨둔 놈에게 무슨 봉변이 생기겠느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눈이나 붙여라. 거기 도착하면 곧바로 처리할 일이 한 더미일 테니.”
“......”
결국 그는 신의의 타박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까지는 다물 수 없었다.
‘바로 그 맹에 홀로 남겨두었기에, 봉변을 당할까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학수선의는 맹에 적이 많았다.
안 그래도 지랄맞은 성격에, 누구라도 탐낼 뛰어난 의술을 지녔다.
예부터 의원의 의(醫)를 단순한 잡기라 무시하던 무인들에게, 맹의 장로와 동급 취급받는 학수선의는 알게 모르게 견제의 대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신의가 데려온 사람이 맹에 혼자 남는다?
과연 평소에 학수선의를 고깝게 보던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혹시나 붙잡아서 고문이라도……. 에이, 설마 맹이 그렇게까지 할까?’
고문까지는 아니어도, 여기저기 찔러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연못의 개구리는 아이가 무심코 던진 돌에도 죽을 수 있는 법.
산적 의원은 아까부터 그 같은 경우를 걱정했지만, 학수선의는 끝까지 어떤 대처로 내리지 않았다.
“후후!”
오히려 계속 입가를 비틀며 얕은 웃음을 흘렸다.
“신의님!”
“너는 그놈이 얼마나 똑똑한지 모르는군.”
“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지?
허나 학수선의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더는 이 주제를 꺼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장소는 맹의 마차 안.
어디에 맹의 윗대가리가 숨긴 눈들이 지켜보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녀석이 있는 장소는 이딴 좁은 마차 안이 아닌 내 처소 근처지.’
아무리 적이 많더라도, 맹에서 학수선의의 입지는 장로와 동격.
그는 제 권한을 남김없이 사용해, 처소 안에 온갖 말도 안 되는 장치와 기관을 설치했다.
바꿔 말하면, 그것들이 오히려 진천우를 위협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네놈에게는 아무것도 안 알려주는 게 더 재밌겠지?’
정확하게는 녀석이 더 재밌는 상황을 만들어 줄 터.
‘과연 너는 내가 설치한 함정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후후후!”
학수선의가 또 한 번 입꼬리를 비틀며, 뜻 모를 소리를 해댔다.
“원래 개와 거지는 생각날 때마다 패줘야 하는 법.”
“네? 개와 거지?”
“하하하, 그런 게 있다.”
그 뜻 모를 소리에, 그저 막내 걱정뿐인 산적 의원은 마차 안에서 속만 끓여야 했다.
* * *
[의당(醫堂)]
“여긴가?”
드디어 학수선의의 처소를 찾았다.
그런데 처소 앞에 서자, 진천우의 눈앞에 푸른 현판이 나타났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천하제일 타이쿤의 하위 타이쿤, ‘나 혼자 맹에?!’가 개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