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 대회 난입 (4)
(79/210)
79화 : 대회 난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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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 대회 난입 (4)
2022.01.01.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시였지만, 현석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정말 충성스러운 하인.
“…….”
진천우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믿으마.’
그저 믿는다.
그 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현석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쥐 가면을 주시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군.’
놈은 처음 오른 소매가 털렸던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군.’
기다려? 무엇을?
그런데 뭔가를 기다리는 건 쥐 가면만이 아니었다.
‘나도 지지 않는다.’
슥!
진천우가 품에 갈무리한 소도를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목과 팔다리를 점검했다.
그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
진천우는 입을 닫고 몸을 숙인 채, 그 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렸다.
* * *
“흠……!”
하오문 장로, 흑월이 천천히 호흡을 낮췄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난입자가 다시 자신을 습격할 그때를.
‘놈이 훔친 건 내 오른 소매.’
그런데 거기 들어 있는 주머니는 기껏해야 자신이 가장 최근에 훔친, 어느 지독한 청년의 몇 푼 안 되는 돈이 든 주머니뿐이었다.
‘설마하니 녀석의 목표가 그 주머니일 리 없지.’
아니, 정확하면서도 정확하지 않았다.
분명 처음 진천우의 목표는 그 주머니가 맞았지만, 이제 그의 목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놈이 노리는 건…….’
흑월이 살짝 고개를 내려 가슴팍을 확인했다.
지금 자신이 가진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거기 있었다.
상대가 정말 하오문주의 제자라면, 녀석이 노릴 건 이것밖에 없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녀석들이라도 감히 하오문의 장로를 상대로 멍청하게 정면으로 달려들진 않을 거다.
흑월은 솜씨만 따지면 능히 일급 중에서도 손꼽히는 도비다.
문주의 세 제자 중 누구라도 일 대 일로 질 생각은 없었다.
이는 상대 역시 알고 있는 사실.
‘그러니 녀석이 내가 다시 덤빈다면, 그 순간은 이미 정해져 있다.’
와아아!
저 멀리서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울렸다.
그랬다.
처음 제 소매를 털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는 분명 마을 아이들이 제 옆을 스쳐 지나며 큰 소란을 일으킬 때 접근할 게 분명했다.
슥!
흑월이 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뿐 아니라 그는 소매에서 작은 철조를 꺼냈다.
칼날이 한 치도 안 되는 그것은 아주 특수해서 주먹을 움켜쥐면 그대로 날을 숨길 수 있었다.
그야말로 소매치기 전용 철조.
‘감각을 절호조까지 올린다.’
그 순간, 흑월의 눈빛이 변했다.
날카로우면서도 깊고 또 먹이를 앞둔 맹수처럼 거칠기까지 한 흑갈색 눈동자는 부정할 여지 없는 전성기 때의 그것이었다.
와아아아!
그가 감각을 가다듬는 동안에도 아이들의 함성은 점점 더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시끄럽다.
그러나 그쪽에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흑월은 아이들이 바로 옆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더욱더 감각을 끌어올려야 했다.
반드시 상대에게 하오문의 행사를 방해하고, 장로인 자신을 욕보인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와아아아아!!
그러기 위해, 일부로 장로란 위치도 팽개치고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던가!
와아아아아아!!!
‘그래, 그러니 설사 문주의 직계 제자라 해도 절대 봐주지 않겠…….’
와아아아아아아!!!!
그런데 마을 아이들의 함성이 너무 시끄럽지 않은가!
마치 진짜 전장에서 병사들이 지르는 함성처럼.
‘이것들이 뭘 잘못 먹어서 이리 시끄러운 거야?’
흑월이 참다못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맞았다.
아이들은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잘 먹어서 소리가 커진 거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지금 달려오는 녀석들의 손에 구운 떡과 당과, 전병 따위가 들려있었다.
-얘들아, 형이 이거 줄 테니, 내 부탁 좀 들어주련?
진천우가 현석에게 시킨 지시는 두 가지.
그중 첫 번째가 아이들이 보다 소란을 떨게 만드는 것이었다.
현석은 자신이 산 축제 먹거리를 모두 내주며 그 지시를 이행했다.
하지만 녀석도 설마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다.
“뭐, 뭐뭐, 뭐야?!”
흑월도 어찌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직후, 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쥐 가면을 덮쳤다.
* *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진천우가 아이들의 함성을 들으며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자신이 현석에게 내린 첫 번째 지시는, 아이들이 아까보다 소리를 좀 더 지르고, 아까보다 나무 막대를 좀 더 흔들며 달려오면 족한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아예 숫자도 처음보다 배 이상 늘고, 그 움직임도 진짜 군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일치단결해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마을 아이들뿐 아니라 옆 마을 그리고 옆 옆 마을 아이들까지 합세했다는 걸 진천우는 알지 못했다.
[조련사가 ‘근처 마을 아이들’의 조련에 대성공했습니다.]
[주종관계에서 주인은 일방적으로 하인의 스킬을 공유합니다.]
[스킬, 조련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현석에게는 따로 조련사란 직업이 있었다.
‘그게 설마 이때 발휘되다니!’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쥐 가면을 찾았다!”
‘응?’
아이들 뒤에 건장한 어른이 소리쳤다.
저 사람은 왜 쥐 가면을 찾는 거지?
“쥐 가면을 찾았다고?”
“저치가 돈을 무이자로 빌려준다고 했지?”
“축제 기간에는 항상 돈이 필요하지!”
“돈 내놔!!”
이게 다 뭔 소리지?
알고 보니 진가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하인은, 제 주인이 철석같이 내린 지시를 찰떡같이 알아들어,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까지 꾀어냈다.
이때, 의문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야 먹을 거로 꾀었다지만, 어른들은 뭐로 꼬신 거지?’
[‘현석’은 사용자와 주종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주종관계에서 주인은 일방적으로 하인의 스킬을 공유합니다.]
이거였다!
현석이 이번에도 제 언변 스킬을 이용해 대혼란을 일으켰다.
‘아무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진작에 준비를 마친 진천우가 그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몸을 날렸다.
* * *
“돈 내놔!”
“이놈들이 뭔 헛소리야!!”
흑월은 지금 상황이 그저 기가 찼다.
감히 무공도 모르는 범인들 따위가 제 멱살을 움켜쥐고 지랄이라니!
게다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아까부터 밑도 끝도 없이 돈을 내놓으라고 헛소리를 지껄였다.
‘밑에 놈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거야!’
이 마을에 있는 다른 하오문도들은 도대체 뭘 하길래, 이런 것들이 자기네 장로에게 달려드는 꼴을 방치한단 말인가?
‘아, 내가 다 마을 밖으로 내보냈지.’
그가 뒤늦게 자신이 근방의 모든 하오문도에게 이 마을을 에워싸라고 지시했던 걸 떠올렸다.
결국 이 사태는 온전히 저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슥!
“!?”
그 순간, 흑월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요놈!”
과연 하오문의 장로!
그는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누군가 제 허리춤에서 요대를 빼돌리는 걸 알아챘다.
‘언제 내 요대를 풀었지?!’
확실히 대단한 솜씨다.
그러나 이대로 놓칠 수 없었다.
흑월이 자신의 요대를 들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손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에게는 하오문의 금나수(擒拿手)가 있다.
하오문식 소매치기에서 파생돼 나온 금나수법은 살짝 어이가 없지만, 소매치기 후 달아나는 이의 수족을 낚아채는 데 특화돼 있었다.
도둑놈이 도둑 잡는 법에 능숙해진 격.
덥석!
“잡았다!”
흑월이 놈의 손을 붙잡았다.
“어?”
그런데 그는 곧바로 두 눈을 부릅떴다.
원래는 이 손의 주인은 하오문주의 세 제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네놈은 누구냐?”
비록 인파 속에 파묻혀 한쪽 팔밖에 보이지 않지만, 도둑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피할 수 없었다.
이 팔은 문주의 세 제자 중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일단 놈의 얼굴부터 확인하자!’
정체가 들킬 절체절명의 위기!
하지만!
휙!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흑월의 다리를 걸었다.
물론 그는 하오문의 장로답게 이를 피하고 도리어 역공까지 가했다.
실수였다.
이때 가장 최선은 역공이 아니라 도주였다.
그도 그럴 게 하필 자신의 다리를 건 상대는 바로!
“네놈이 감히 관원에게 반항해?!”
도둑의 천적인 관(官)이었다.
‘이들이 왜?!’
-아이쿠, 관원님들! 저희 소가주님이 오늘 낮에 신고한 도둑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놈이 딱 봐도 보통이 아닌지라,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진천우가 현석에게 시킨 두 번째 지시.
그건 바로 관으로 가 도적놈을 신고하는 거였다.
보통 때 같으면 관리들이 이렇게 빨리 나와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천우는 불과 반나절 전에 열댓 명의 산적을 넘기며 관의 실적을 톡톡히 올려준 은인.
그런 이가 또 다른 도적을 붙잡게 해준다니, 관원들도 얼씨구나 하며 달려왔다.
“아무리 신고를 받았다지만 우리도 일단 네놈의 사정을 들어주려 했으나, 이렇게 반항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잡아라!”
와아아!
“이, 이런!!”
흑월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도둑을 붙잡는데 특화된 이들.
심지어 그중 일부는 무공까지 익혔다.
평소라면 관원들이 아무리 무공을 익혔든, 하오문의 장로인 그가 붙잡힐 리 없겠지만.
“이놈들 당장 이 손을 놓지 못해!”
“못 놓는다!”
“빨리 돈부터 빌려줘!”
주위에 몰린 인파가 짜증 날 정도로 자신을 물고 늘어졌다.
그런데 이게 또 문제가 되었다.
찌익! 찍!
“억!?”
갑자기 제 옷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아무리 사람들이 제 옷을 잡아당긴다 해도, 원래 옷이 이리도 쉽게 찢어지는 거였나?
흑월이 뒤늦게 고개를 아래로 내리자, 제 옷 여기저기에 칼집이 나 있었다.
어느새!?
당연히 범인은 정해져 있었다.
하오문의 행사를 망친 난입자!
“그놈이구나!!”
흑월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찌이이익!!
옷은 이 순간에도 계속 길게 찢어졌고.
훌러덩!
“으악!!”
거기에 이제는 바지까지 벗겨졌다.
이것도 진천우가 조금 전에 요대가 벗긴 탓이다.
하오문의 장로가 저잣거리 한복판에서 알몸이 되다니!!
“어엇!? 이놈이 뭔 생각으로 옷까지 벗었지?”
“알 게 뭐야! 네놈을 도적 혐의에 공무집행방해죄, 거기다 공연음란죄로 체포한다!”
관원들이 흑월의 죄를 고하고,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으아아아!! 으아아!!”
그렇게 하오문의 장로로 명망 높은 흑월은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혐의로 관에 붙들렸다.
* * *
‘완벽하군!’
진천우가 조금 멀리 떨어져 흑월이 붙잡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이로써 그는 처음 놈에게 소매치기 당한 복수를 열 배, 백배로 갚아주었다.
‘진(眞)’이란 글자가 새겨진 주머니를 되찾은 건 물론, 진천우는 추가로 하오문 장로의 소매치기 도구까지 손에 넣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킬 ‘금나수(擒拿手) - 하오문식(下午門式)’를 습득했습니다.]
새로운 스킬까지 얻었다.
‘그리고 아직 보상이 더 남아있지.’
진천우가 여기에 추가 보상까지 확신했다.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추가 정보 : 상대가 지닌 것을 털면 털수록 보상이 늘어납니다.]
앞서 타이쿤이 알려준 정보.
그는 이 정보에 숨겨진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상대가 지닌 것이 꼭 물건일 필요는 없지.’
“으아아아아아아!!”
흑월이 끌려가면서 여전히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 가능했다.
단순히 물건을 훔친 죄로 끌려가면 또 모를까, 그는 지금 하오문 장로의 명예와 긍지, 그 외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어떤 하오문의 도둑도 저잣거리에서 알몸으로 끌려간 적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놈이 얌전히 있지 못할까!”
그때, 놈의 절규를 듣다 못한 관원이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컥! 으아아아!”
“그래도 이놈이!!”
퍽퍽퍽!
한 대로 효과가 없자, 그대로 난타가 이어졌다.
평소에도 여러 범죄자를 다루는 관원들인 만큼 이런 데서 인정사정이 없었다.
퍽!!
“컥!?”
결국 흑월은 뒤통수에 강렬한 한 방을 맞고 정신을 잃었다.
툭!
이미 반 넘게 찢겨 넝마가 된 그의 앞섬에서 아이 손톱 크기의 구슬이 떨어졌다.
관원도 이를 발견했지만, 한눈에도 구질구질하게 생긴 물건이라 그냥 무시했다.
또르르!
구슬이 땅에 떨어져 빠르게 굴러가더니 그대로 진천우의 발에 부딪쳤다.
그 순간, 푸른 현판에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초월 달성!]
[고개를 숙이면, 초월 달성의 보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