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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 대회 난입 (2) (77/210)


77화 : 대회 난입 (2)
2021.12.27.


‘난입?’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하면, 현재 이 마을에 하오문이 주최하는 소매치기 대회가 열리는 중이고, 자신은 거기에 도중 참가할 수 있다는 소리?

‘재밌군.’

확실히 재밌는 소리다.

그러나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하오문이 아무리 풍문으로만 떠도는 전설의 집단이라 하나, 아니 그런 만큼 더더욱 진씨세가처럼 변방의 약소가문 따위가 함부로 건드릴 존재가 아니었다.

스윽!

‘저놈이!’

하지만 저것들이 먼저 자신을 건드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감히 의원의 눈앞에서 환자의 약을 훔쳐!’

의원인 진천우는 절대 그 같은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다.

스륵!

그는 곧바로 몸을 낮췄다.

은잠술과 역근경, 화후기식법, 심지어 귀식대법마저 동시에 운용되었다.

소매치기에 필요한 모든 걸 사용한 셈.

휘릭!

인파 속에 몸을 숨긴 진천우가 마찬가지로 인파 속에 몸을 숨긴 소매치기의 배후에 섰다.

‘까짓 거, 하오문이든 뭐든 안 들키고 다 털어주마!’

그렇게 의원도, 무인도 아닌 도적 진천우가 하오문의 소매치기 대회에 난입했다.

* * *

“장로님!”

“무슨 일이냐!”

하오문의 장로, 흑월이 제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수하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은 한창 대회를 치르는 중이다.

이에 집중하기 위해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면 자신을 찾지 말라고 일러두었다.

그런데도 수하 놈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건?

“크, 큰일입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설마 관에서 우리를 눈치챘더냐?”

“그건 아닙니다.”

흑월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에 잠시 안도했다.

그럼 무슨 큰일이 생긴 거지?

“아무래도 외부의 도적놈이 대회에 난입한 것 같습니다.”

“그게 뭐?”

하오문은 편협한 개방과 달랐다.

같은 거지끼리도 허리춤에 볼품없는 매듭의 유무에 따라 급을 나누는 개방과 달리, 하오문은 천하의 모든 뒷세계 인간의 집합체다.

그러니까 이름 모를 변방의 천한 기녀조차 자신이 하오문도라 자각하면 그 순간 하오문도인 것이다.

당연히 천하의 모든 도적, 도둑, 도비 역시 하오문도였다.

그러니 그들 중 누구라도 하오문이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허나 놈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허어! 어디 고명한 대도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양이구나! 그런데 이는 오히려 크게 기뻐할 일이 아니더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수하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흑월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뭐가 문제란 거냐?”

“그러니까 난입한 놈이! 그놈이 우리 하오문도만 골라 털어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아니, 왜 도둑놈이 같은 동업자를 터는 건데?”

“그러니까 제가 큰일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놈은 그냥 돈만 터는 게 아니라, 대회 참가자의 증표인 목패까지 함께 훔치고 있습니다.”

“뭐라고!”

흑월이 언성을 높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대회에서는 참가자 전원에게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검은 목패를 내주었다.

이건 단순히 참가 자격을 나타내는 증표.

대회 우승은 어디까지나 이번 축제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돈을 훔친 도적이 차지한다.

그런데 굳이 그 증표를 훔치는 녀석이 있다?

‘처음부터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대회를 망치는 게 목표인 거군.’

누군지 몰라도 가만 놔둘 수 없었다.

흑월은 당장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지금 당장 대회에 참가 중인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놈을 사로잡고 녀석이 훔친 증표도 회수하게 해라.”

그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는데, 모두 뛰어난 실력의 도비였다.

그중 첫째는 특히 월등한 재능을 보여, 몇 년 안에 일급 도비가 될 게 확실시되었다.

‘그 녀석들이 나서면 난입자가 어떤 놈이든 문제없겠지.’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장로의 명이 떨어졌음에도 수하는 명령을 전달하러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남았다.

그것도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마하니……?’

“그, 그게!”

설마가 사람 잡았다!

수하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렸다.

“세 분 모두 이미 그 정체불명의 대도에게 당해 목패를 잃었습니다!”

“이 무슨!”

다른 이도 아니고, 하오문 장로의 직계 제자가 소매치기를 당해?!

그러나 흑월에게는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 그 세 분은 목패만 뺏긴 게 아니라 동패까지…….”

쾅!

이 이상 참고 들어줄 수 없었다.

흑월은 당장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으아아아아!!”

그는 즉시 가슴 속 울화를 사방에 쏟아냈다.

목패에 이어 동패까지 훔쳐 가다니!

제자들의 동패는 그저 상징에 불과한 목패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최소 지부장급 외에는 발급이 불가능한, 설사 하오문의 장로라 할지라도 세 개 이상 만들 수 없는 하오문 고위층의 증표였다.

이를 빼앗겼다는 건, 하오문도의 자격이 의심되는바!

아무리 따로 사정이 있다 할지라도 한 번 동패를 잃어버린 이상, 그의 제자들은 향후 수년간 하오문의 활동에서 제외된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내 제자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려 언젠가 다음 대 하오문주로 만들려 했던 내 제자들이!?’

“으아아아아아아!!”

흑월이 다시 한번 크게 울분을 토했다.

다행히 그 행위는 효과가 있었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른 덕에 흥분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는 곧바로 이번 일을 일으킨 자를 냉정히 유추했다.

‘이번 일은 틀림없이 그것들 중 하나가 범인일 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일을 벌일 이유는 하나뿐이다.

자신 혹은 제 제자들의 실각.

그렇게 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이가 누굴까?

거기다 제 제자들에게서 동패를 훔칠 실력자는?

자연스럽게 그 목표가 좁혀졌다.

‘하오문주! 아무리 내가 당신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다음 대 후계 자리를 뺏으려 한다지만, 이렇게 제 제자를 보내 훼방을 놓으려 들어?’

자신에게 세 제자가 있듯, 현 하오문주에게도 세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역시 문주의 제자답게 각자의 실력이 또래 어떤 하오문도와 비교할 수 없이 월등했다.

다만 그 셋 다 성격에 아주 큰 하자가 있었다.

그랬기에 흑월을 포함한 일부 장로들은 그들 셋 중 누구도 다음 대 하오문주가 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데 셋 중 어떤 놈이 여기 온 거지?’

아니, 누구든 무슨 상관일까!

어쨌든 이미 제자들의 동패가 빼앗겼고, 이를 되찾을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었다.

‘나머지 정보는 현장에서 습득한다.’

“너는 지금부터 근방의 모든 하오문도를 부려, 오늘 낮이 밝을 동안 마을 밖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달아나지 못하게 통제해라.”

“존명!”

수하가 명을 받자마자, 밖으로 달려갔다.

장로가 직접 내린 동원령이다.

최소 백 명이 넘는 하오문도가 마을 주위를 빼곡히 에워쌀 테니, 설령 하오문주의 제자라 할지라도 들키지 않고 달아나는 건 불가능했다.

‘놈이 마을 밖으로 몰래 빠져나가지만 못하게 해도 성공이다.’

동패를 훔친 이가 하오문주의 제자란 사실만 밝히면, 제자의 실수를 무효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일이 잘 풀려 자신이 하오문주 직계 제자의 증표인 은패를 훔칠 수만 있으면!

‘되레 녀석들을 하오문의 행사에서 배제할 수 있다.’

그야말로 통쾌한 역전극!

이를 위해 흑월이 즉시 채비를 갖췄다.

그는 바로 자신의 현역 시절 승부복인 낡은 갈의로 갈아입었다.

그 뒤, 검은 쥐 가면을 머리 위에 삐뚤게 썼다.

마지막으로 제 소매 안의 것을 확인했다.

도둑질에 필요한 몇 가지 도구들.

툭!

그때, 소매 안에서 가장 최근에 훔친 주머니가 떨어졌다.

‘아, 이걸 따로 금고에 넣는다는 걸 깜빡했군.’

아쉽지만 지금은 이걸 금고에 넣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흑월은 겉에 ‘진(眞)’이란 글자가 새겨진 주머니를 다시 품에 넣고, 급히 밖으로 몸을 날렸다.

* * *

[스킬 ‘소매치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소매 넣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소매치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소매 넣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

‘이상하군.’

진천우 쉬지 않고 새 글을 갱신하는 현판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만큼이나 훔쳤는데…….’

정작 자신이 도둑맞은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겉에 ‘진(眞)’이란 글자가 새겨진 주머니.

그 말인즉, 제 주머니를 훔친 도적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그 주머니에 있던 돈보다 열 배 넘게 벌었으니, 그냥 이쯤에서 멈출까?’

사실 멈추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아까부터 주위에 소매치기가 한 놈도 보이지 않았다.

‘다 겁을 먹고 달아났나?’

비슷하지만 달랐다.

진천우는 설마 놈들이 마을 주위를 에워싸기 위해 사라졌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때 현판에 다시 새 글이 나타났다.

[스킬 ‘은신’의 숙련도가 일정 수치를 넘겼습니다.]

[지금부터 은신 스킬의 새로운 기능이 개방됩니다.]

‘음?’

갑작스러운 내용이었지만,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금껏 하오문도들을 털면서 가장 숙련도가 오른 건 소매치기도 소매 넣기도 아닌 은신이었다.

인파 속에 몸을 숨기고, 하오문도의 배후에 접근하고, 녀석들이 소매치기에 성공하는 걸 지켜보고 그 직후 바로 훔친 걸 훔치고, 그걸 다시 본래 주인에게 돌려줄 때까지 은신 스킬은 실시간으로 계속 숙련도가 올랐다.

‘그런데 새로운 기능이 개방된다니, 도대체 어떤 게…….’

이때, 그의 시야 한가운데 못 보던 선이 하나 생겼다.

그 선은 아주 작고 희미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었다.

이 선이 은신 스킬의 새로운 기능인가?

‘도대체 어떤 기능인 거지?’

진천우는 손으로 선을 건드리거나, 일부러 고개를 흔들어 선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외 다양한 실험에도 일절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되레 오기가 샘솟았다.

‘아주 까다로운 기능인 모양인데?’

도대체 어떤 기능인 걸까?

다른 것도 아닌 타이쿤이 내놓은 기능이니 절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터.

그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시야 한가운데 선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때!

“……!”

진천우가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이쪽으로 온다.’

선을 확인하기 위해 역근경과 화후기식법을 최대로 운용하지 않았다면 그만 놓칠 뻔했다.

그 정도로 은밀한 움직임.

‘그리고 이만큼이나 은밀히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고수는 한정돼 있지.’

필시 하오문의 고수일 터.

그런 자가 여기 왜?

‘날 찾으러 온 건가?’

그 외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진천우가 우선 가장 가까운 가판 뒤로 몸을 숨겼다.

그대로 귀식법까지 펼쳐 기척을 완전히 없앴다.

척!

하오문의 고수가 걸음을 멈췄다.

‘들킨 건가? 들키지 않은 건가?’

모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가판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야 했다.

그런데 진천우가 움직이려던 찰나, 현판이 눈앞을 가렸다.

[특수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특수 이벤트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가 시작됩니다.]

‘이게 뭐야?!’

처음에는 다소 황당했다.

하지만 현판 내용을 모두 읽자마자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보상 : 도둑맞은 주머니]

‘저놈이구나!’

자신은 저자에게 어떤 원한도 없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소매치기 스킬을 익혔으니, 오히려 은혜를 입은 셈.

[추가 정보 : 상대가 지닌 것을 털면 털수록 보상이 늘어납니다.]

“人有恩於我(인유은어아)는 不可忘(불가망)이나, 而怨則不可不忘(이원즉불가불망)이라.”

문사 가문에서 나고 자란 진천우는 곧바로 채근담의 한 구절을 읊었다.

해석이면, ‘원한은 잊되, 은혜는 기억해라’.

씨익!

곧바로 그의 입꼬리가 한껏 기이하게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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