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 또다시 나타난 영물 마스터! (2) (73/210)


73화 : 또다시 나타난 영물 마스터! (2)
2021.12.18.


“망할!”

선두에 선 학수선의가 산적 무리를 보고 이를 갈았다.

이를 본 흑호채의 두목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후후! 겁에 질린 모양이군.”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근방에 가장 악명 높은 흑호채 산적이다.

‘그 덕에 요 몇 달간 장사가 안 돼 옆길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손님이 찾아오다니, 이런 횡재가 있나!’

두목 산적이 손가락으로 먹음직한 손님의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겨우 열 명.

그중 허리에 칼을 찬 이는 겨우 셋.

본디 이번 여정은 학수선의의 갑작스러운 변덕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백풍대주는 급히 수하 둘만 데려왔지만, 신의 본인이 벽을 넘은 고수이고 그 아래 다섯 의원 중 셋이 상당한 실력자다 보니, 이만큼만 따라와도 문제는 없었다.

‘저것들만 주의하면 되겠군.’

이를 변방의 작은 길목 하나 간신히 움켜쥔 산적 따위가 알 리 없었다.

이때, 학수선의 역시 손가락을 들어 산적의 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쳇!”

생각보다 그 수가 많자, 신의는 바로 혀를 찼다.

열댓 명의 산적들.

“빌어먹을!”

분통이 터진다.

와아아!

반면 뒤에서는 또 환호가 터졌다.

산적이 열이 넘었으니, 저것들을 다 사로잡으면 밤낮 교대로 수레를 끌게 할 수 있다.

즉, 자신들은 남은 일정 동안 달구지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아아!”

학수선의가 신음을 흘렸다.

이러면 수련이 안 되는데.

그러나 앞서 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힘이라 말한 만큼, 본인들이 직접 산적을 때려눕혀 굴복시키는 걸 말릴 수 없었다.

게다가 차라리 못 보고 넘어갔으면 몰라도 백풍대와 동행한 이상, 눈앞에 나타난 산적을 이대로 두고 넘어가는 것도 맹의 정신과 맞지 않았다.

“신의님.”

그때 진천우가 몰래 학수선의에게 다가왔다.

“왜?”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한 그가 까탈스럽게 대꾸했다.

허나 그다음 진천우가 하는 말에 곧장 반색했다.

“제가 저놈들을 붙잡으면, 그만큼 다 부릴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저 중 셋을 붙잡으면 셋을 부릴 수 있고, 다섯을 붙잡으면 다섯을 붙잡을 수 있는지요?”

“어?”

학수선의는 너무 뜻밖의 질문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금세 그 의도를 깨닫고 한껏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나야 저 산적 때문에 수련 안 하고 노는 놈이 줄수록 더 좋으니.’

그러니까 만약 진천우가 저기 열댓 놈을 모두 사로잡으면, 결국 다섯 의원은 계속 달구지를 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만 신의는 어째서 그가 이런 제안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진천우에게만 보이는 현판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영물(靈物) 마스터’가 일시적으로 실행됩니다.]

[눈앞의 가련한 인마(人馬)를 보다 많이 펫으로 길들일수록 보상이 늘어납니다. (0 / 15)]

[최대한 많은 펫을 확보하세요.]

‘보상!!’

이제 그는 보상이란 단어만 봐도 눈이 뒤집혔다.

“그러거라.”

그런 진천우의 모습에 학수선의는 살짝 질린 눈을 하고 제안을 수락했다.

“저것들이 실성했나?”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던 산적 두목이 언성을 높였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자신들을 보고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두의 중년인부터 계속 혀를 차질 않나, 뒤에서는 환호를 지르지 않나.

그 작태가 너무 황당하고 해괴하여, 일단 눈에 보이는 건 다 턴다는 산적의 생리와 정반대의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 같은데, 그냥 보내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말도 안 되지!”

아아!

산적 두목은 어쩌면 자신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쳐라!!”

“와아아아아!”

두목의 일갈이 떨어지자마자, 산적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째서 저쪽이 우리보다 더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거지?

“뭐,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산적들도 화들짝 놀라서, 달려들다 말고 한 발씩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어떤 산적 놈 하나가 당황해서 한마디 했다.

“저놈들이 단체로 약을 했나?”

그런데 그게 그냥 한 헛소리가 아니었다.

으직! 으지직!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다섯 의원이 동시에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자세히 보니 각각 먹고 있는 게 달랐다.

누구는 기운을 북돋는 약재를 생으로 씹고, 누구는 잠시 고통을 마비시키는 약을, 또 다른 이는 시야와 머리가 맑아지는 약을 삼켰다.

그러니까 의원 놈들이 진짜 약을 먹고, 산적들에게 달려들었다!!

* * *

“컥!”

“어허! 이놈이 감히 걸음을 멈춰?!”

“제대로 달구지를 끌지 못해!”

“자, 잠시만 쉬면!”

“쉬긴 뭘 쉬어! 네놈의 걸음이 느려질수록 우리가 마을에 늦게 도착하는 걸 몰라!”

퍽!

“크헉!”

산적 놈이 달구지를 끌던 중 옆에서 날아온 발길질에 옆으로 넘어졌다.

녀석은 땅에 머리를 처박는 즉시 다시 일어나 달구지를 끌었다.

이때, 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다섯 의원이 떼거리로 몰려와 자근자근 밟는다는 걸 몇 번이나 몸으로 겪었다.

‘지독한 놈들!’

‘이것들이 정녕 의원인가!?’

그 광경을 본 다른 산적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하루 꼬박 달구지를 끌면서 이것들의 정체가 의원이라는 데 놀라고, 거기다 그들이 무려 신의로 불리는 학수선의의 일행이라는 데 다시 한번 놀랐다.

‘뭔 의원이 사람을 개 패듯 패?’

‘그러고도 당대 제일 의원이라는 학수선의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절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설령 입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저놈들이 하는 작태를 보니, 그런 말을 떠냈다간 정말 입을 찢어버릴 게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반항?

무기를 뺏기고 점혈까지 당한 마당에, 저 무서운 의원 놈들에게 어떻게 반항을 할 수 있으랴!

“네놈은 어딜 한눈을 팔아!”

퍽!

잠시 동료의 불의에 시선을 돌렸던 산적이 달구지 끄는 속도가 늦춰졌다며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놈이 한 대 얻어맞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뭐, 이게 한눈을 팔았다고?”

“죽고 싶냐?”

퍽퍽퍽!

“커억!”

역시나 누군가 한 대 때리기 시작하자, 바로 다른 놈들이 주먹과 발길질을 날렸다.

‘이 미친놈들!!’

산적이 얻어맞으면서 이를 갈았다.

맞을 때마다 그 고통이 뼈에 사무쳤다.

그러면서 신기한 건, 맞을 때는 그렇게 아픈데도, 다 맞은 뒤에는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이들 다섯은 이미 명의의 반열에 든 자들.

맞을 때는 더럽게 아파도, 절대 뒤끝 남지 않는 공격에 최적화된 이들이었다.

“호오?”

진천우가 이를 보고 짧게 감탄했다.

‘의술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구나.’

그 또한 다섯 의원 못지않은 의술 실력을 지녔다.

거기다 추가로 의안 스킬까지 가진 그는, 항상 저 다섯을 보며 많은 것을 깨우쳤다.

덜컹!

그 순간 진천우가 탄 달구지가 살짝, 정말 아주 살짝 들썩였다.

“이것들이!”

퍽! 퍽퍽퍽!

진천우가 그 즉시 방금 막 깨우친 기술을 따라 했다.

지금 그의 달구지는 한 명, 두 명도 아닌 무려 다섯 명이 달라붙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용서를!!”

이들은 처음에는, 다른 녀석들이 혼자 한 달구지를 끌 때 자신들은 다섯이나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놈들! 이놈들!!”

진천우의 달구지에는 다른 달구지와 달리 크게 주의를 요하는 약병과 의료 기구가 실려있었다.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달구지가 흔들리면 지체 없이 발길질이 날아왔다.

덕분에 그들은 다른 산적 놈들보다 배로 더 얻어맞았다.

“쯧쯧!”

“너는 저 달구지가 아니라 내 달구지를 끌게 돼서 다행인 줄 알아.”

“나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지, 저 달구지를 끌었으면 넌 뒈졌어.”

다섯 의원이 그 참상을 보고 차례로 한마디씩 내뱉었다.

“…….”

달구지를 끄는 산적들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들 말대로, 자칫 잘못했으면 자신들이 진천우의 달구지를 끌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13 / 15)]

진천우는 혼자 열셋을 사로잡았다.

학수선의가 일부러 자기가 사로잡은 산적만 부릴 수 있다는 조건을 다른 의원들에게 말하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그는 교묘하게 다른 의원이 실컷 다 쓰러트리기 직전인 놈만 찾아 마무리를 날렸다.

일명 막타치기.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다섯 의원은, 처음에는 진천우가 진짜 열심히 자신들을 도와준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나중에 학수선의에게 진천우 혼자 열셋의 산적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경악했는지.

다행히 그는 열셋의 산적을 모두 독식하지 않았다.

-일손이 필요하십니까?

그는 당장 제 달구지를 낮밤을 가리지 않고 교대로 끌 열 놈을 정한 뒤, 남은 셋을 팔아치웠다.

-대신 의원님들이 산적들에게 달려들 때 사용한 약재가 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만일 그들이 무인이나 독인이었다면 기운을 북돋는 약재, 잠시 고통을 마비시키는 약, 시야와 머리가 맑아지는 약을 천금보다 귀하게 여겼겠지만, 이들은 다름 아닌 의원이었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알려주지!

-먼저 씹으면 기운을 북돋는 적피혁초부터 알려줄까?

-나는 삼키면 잠시 고통을 잊는 청파탕약을 알려주지.

[인마(人馬) 열세 마리를 사로잡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렇게 진천우는 다섯 의원에게 여러 상황에 유용하게 쓰일 약재들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익혔다.

그다음부터는 현석과 함께 달구지에 넉살 좋게 앉아 이를 복기했다.

덜컹!

“또! 또!! 또!!!”

퍽!

중간중간 달구지가 흔들릴 때마다 주저 없이 발길질을 날리는 건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용서를!!”

그때마다 산적들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진천우는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어차피 산적 놈들!’

그것도 그냥 산적인가?

진씨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산적이다.

이것들이 언제 제 가문에 위해를 끼칠지, 아니 이미 위해를 끼쳤을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다 보니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퍽퍽퍽!

“으허엉! 흑호채 두목인 내가 어쩌다 이런 수모를!”

결국, 산적 두목 놈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다 큰 어른을 울리다니, 도대체 얼마나 집요하게 괴롭힌 건지.

‘아이구!’

‘못 보겠군.’

‘난 저 꼴 당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세 산적, 그러니까 운 좋게 진천우의 손에서 다섯 의원에게 팔린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저 꼴 당하지 않게 쉬지 않고 달구지를 끌었다.

이미 온몸의 기력을 다한 뒤였지만, 산적들에게는 일말의 희망이 남아있었다.

그 희망은 바로!

“보, 보인다! 저 앞에 마을이 보인다!”

“오오!”

“다 왔다!”

와아아!

달구지를 끌던 산적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환호를 질렀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때, 다섯 의원 중 누군가 소리쳤다.

“달려!”

그러자 달구지 끄는 산적 하나가 바로 답했다.

“넷!”

곧바로 산적들은 남은 기력을 모두 써서 마을로 달려갔다.

히이이잉!!

그 모습이 어찌나 처절하고 절박한지, 헐떡이는 숨소리가 마치 말 울음소리 같았다.

“도, 도착!”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달구지가 마을에 들어섰다.

“어, 엇?!”

그런데 달구지 위에 앉은 산적 의원이 괴상한 신음을 뱉었다.

“이건?”

“무슨?!”

뒤따라 들어온 점소이와 마부도 눈앞의 광경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지?’

마지막으로 진천우가 들어왔다.

그는 먼저 들어온 의원들의 반응에 의아해하며 마을을 살폈다.

“엇?!”

역시나 진천우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어리둥절한 표정.

그런 표정을 짓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마을에는 사람은 없고, 대신 아주 이상한 것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16550973174293.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