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 또다시 나타난 영물 마스터! (1)
(72/210)
72화 : 또다시 나타난 영물 마스터! (1)
(72/210)
72화 : 또다시 나타난 영물 마스터! (1)
2021.12.15.
“그 같은 일은 마땅히 제가 하겠습니다.”
진천우에게 달구지를 끌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현석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달구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네놈에게 시킨 게 아니니 물러나라!”
그 순간 학수선의의 호통이 떨어졌다.
이때의 목소리와 표정은 그야말로 추상같아서 감히 어길 생각이 들지 않았고, 설사 하더라도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털썩!
현석이 달구지를 붙잡던 손을 놓았다.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이대로 물러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진씨세가의 가장 충실한 하인.
그것도 제 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바칠 수 있었다.
“못 물러나겠습니다만?”
“뭐?”
설마 미천한 하인 놈이 당대 제일의 의원으로 명망 높은 학수선의에게 쌍심지를 치켜들고 달려들 줄 누가 알았을까?
반문하는 신의 역시 얼굴에 불신과 황당 그리고 약간의 흥미가 깃들었다.
“소가주께서는 환자입니다.”
“그래서?”
“신의는 의원이 아니십니까? 세상에 어떤 의원이 환자에게 말 대신 달구지를 끌라고 시킵니까?”
“허어!”
저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네가 의원이냐?’라고 묻는 놈이 있을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군!’
신의가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
이를 본 백풍대주가 즉시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학수선의의 괴팍함은 맹에서도 유명했다.
한번은 그가 맹주에게 돈 내놔라고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른 일화가 있을 정도.
‘아무렴, 신의께서 무공도 모르는 하인에게 겨우 이런 일로 손찌검을 하진 않으시겠지만.’
백풍대주는 이 일행의 호위를 맡은 이로서, 특히나 진씨세가의 소가주에게 은혜를 입은 이로서 분란의 불씨를 미리 제거할 책임이 있었다.
“그만두거라!”
그는 일부러 기세를 드러내 현석을 압박했다.
물론 이 기세로 진가의 하인을 찍어누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쨌든 현석은 진천우의 사람이니까.
백풍대주는 그저 이대로 녀석을 뒤로 물려, 달궈진 머리를 식히게 할 속셈이었다.
다행히 놈도 제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살짝 놀란 얼굴로 얼른 뒤로 물러나려는데.
“난 의원이다.”
기껏 식힌 하인의 머리에 학수선의가 끓는 기름을 쏟아부었다.
“누가 뭐래도 난 의원이다. 그런데 네가 뭐길래, 의원이 환자에게 시킨 일을 못 하게 막는 거지?”
애초에 환자에게 시킬 일과 못 시킬 일이 있지 않은가!
허나 그 발언을 한 이가 하필 학수선의였다.
당대 제일 의원.
무려 신의(神醫)로 불리는 이.
병에 관해서만은, 그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모두가 입을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적어도 백풍대주는 그리 믿었다.
그러나 현석은 그렇지 않은 모양.
“난 진씨세가의 하인입니다!”
그는 백풍대주가 잠시 기세를 푼 틈을 타, 그를 옆으로 밀치고 학수선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주인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게 바로 하인입니다. 그런 내가 소가주님 대신 달구지를 끌겠다는데 어찌 의원께서 끼어드시는지!”
“허어?”
학수선의가 두 번째 탄식을 터트렸다.
이 무슨 개 소리인가!
허나 그는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녀석보다 먼저 개소리를 지껄인 건 자신이었다.
이놈은 그냥 개소리를 개소리로 답했을 뿐이다.
“핫!”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진천우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려 했는데, 차마 참을 수 없었다.
‘설마 현석이 이렇게 학수선의를 곤란하게 만들 줄이야!’
재밌는 점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녀석이 언제 저렇게 말재간이 좋아졌지?’
분명 자신이 아는 현석은 언제나 제 뒤에서 우직하게 제 할 일만 하는 근면한 하인이었다.
지금처럼 남의 말꼬리를 붙잡고 물어지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잠시 뒤, 진천우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눈앞에 현판이 나타났다.
[‘현석’은 사용자와 주종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주종관계에서 주인은 일방적으로 하인의 스킬을 공유합니다.]
[반면 하인은 그 충성도에 따라 주인의 스킬 중 일부를 공유합니다.]
[현재 현석의 충성도는 ‘최상’입니다.]
이거구나!
현석은 너무, 너무 충성스러운 하인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언변 스킬에 영향을 받아 아까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
뜻하지 않게 타이쿤의 또 다른 기능을 알아냈다.
진천우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물러나거라.”
짧은 한마디.
돌아온 대답 또한 짧았다.
“알겠습니다.”
주위의 모든 이가 너도 할 것 없이 두 눈을 치켜떴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나 악착같이 학수선의에게 대들던 종놈이, 아무리 주인의 명이라지만 저리도 순순히 물러나다니.
그러나 정작 당사자 둘은 너무나 당당했다.
“왜 그러십니까?”
오히려 반문까지?
“되었다!”
결국 학수선의는 거칠게 손을 흔들며 상황을 끝마쳤다.
그도 괴팍하지만, 그 이상으로 괴팍한 주종이 나타났다.
그렇게 진천우가 홀로 달구지 앞에 섰다.
현석이 그의 옆에 바짝 붙어,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덜그럭!
마침내 달구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헉!”
“헉헉!”
달구지를 끈 지 얼마나 됐을까?
“크흑!”
“후우!”
사방에 헐떡이는 소리가 진동했다.
짐승이 끌어야 할 달구지를 사람이 끌다 보니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공을 지닌 산적, 마부, 거지는 괜찮지 않냐고?
이는 학수선의를 전혀 모르고 한 소리였다.
-네놈들은 맨 앞의 달구지를 끌어라.
여섯 개 달구지 중, 앞의 세 개는 대량의 약재가 실려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무겁다.
셋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달구지를 끌어야 했다.
덕분에 내공이 없는 점소이와 장사꾼은 거의 비어있는 달구지를 끌게 됐다.
그럼 진천우는?
-넌 이걸 끌어라.
그의 달구지에는 약간의 짐이 있었다.
다행히 그 양이 많진 않았다.
“헉!”
허나 진천우는 앞서 무거운 달구지를 끄는 셋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며 심력을 쏟았다.
“소가주님, 제가 뒤에서 밀어 도와드려도?”
“아니, 내 달구지에 절대 손대지 말거라!”
이를 보다 못한 하인이 손을 뻗었지만 진천우가 단호히 거부했다.
녀석은 살짝 시무룩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안타까운 장면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진천우가 끄는 달구지는 현석은 물론이고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제엔장!!’
“후!!”
그가 달뜬 숨을 토하며, 다시 달구지를 끌었다.
길 위에는 거친 자갈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진천우가 끄는 달구지는 잘 닦인 관도 위를 지나듯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이 모두 그가 전력을 다해 달구지 끄는 데 신경 쓴 덕분이었다.
아니,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달그락달그락!
그의 달구지에서 다른 달구지에는 들리지 않는 높은 소리가 간간이 울렸다.
비록 학수선의가 따로 주의 주진 않았지만, 진천우는 단번에 그 소리의 정체를 눈치챘다.
‘내 달구지에만 약병과 의료 기구가 실려있다.’
이것들은 작은 충격에도 깨질 수 있었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비록 지금은 말 대신 달구지를 끄는 신세지만, 진천우는 의원이었다.
의원이라면 달구지에 실린 약병과 의료 기구로 얼마나 많은 환자를 구할지만을 생각해야 했다.
진천우는 달구지 바퀴가 한 바퀴 도는 동안 제 머리를 몇 바퀴나 굴리며,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성심을 다했다.
“…….”
이 모습을 선두에 선 학수선의가 남몰래 지켜보았다.
‘녀석! 이제 좀 의원 티가 나는군.’
그래, 모름지기 의원이라면 약병과 의료 기구를 제 몸처럼, 아니 제 몸보다 더 소중히 아껴야지.
분명 신의는 진천우에게 달구지에 무엇이 실려있는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렇다 하여 진천우가 그저 제 한 몸 편하겠다고 거칠게 달구지를 끌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았을 거다.
또 스스로 의원이 되겠다는 놈이 달구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도 저게 약병과 의료도구인 것도 못 알아챘다면, 그 또한 용서할 수 없었다.
다행히 진천우는 학수선의의 시험을 둘 다 통과했다.
다만 그것이 정말 순수하게 이뤄진 것이었다면 좀 좋으련만.
진천우는 한참 달구지를 끌다 말고 잠시 고개를 하늘로 들었다.
‘후우! 이제 해가 지기까지 얼마 안 남았군.’
왜 갑자기 해가 지는 시간을 알아보는 걸까?
그의 시야 한구석에 푸른 현판이 평소와 달리 아주 작게 떠 있는 게 보였다.
[맹으로 향하는 동안 소소한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날이 질 때까지, 달구지 안의 물건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세요.]
이럴 수가!
중간에 퀘스트가 끼어있었다!!
* * *
태양이 고즈넉이 지평선으로 떨어질 때쯤 달구지가 멈췄다.
그러나 아직 야영이 결정되지 않았다.
바로 앞에 작은 산이 보였다.
백풍대주와 학수선의가 서둘러 산을 넘을지, 아니면 여기서 야영을 할지를 정하기 위해 잠시 일행과 떨어졌다.
그 둘이 돌아올 때까지의 일행에게 짧은 휴식이 주어졌는데, 갑자기 산적 의원이 진천우를 찾았다.
“자네는 이곳 사람이지?”
“네?”
“진씨세가를 떠난 지 이제 겨우 반나절이니, 여기 지리도 좀 알지 않나?”
“하하!”
진천우가 잠시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이곳 지리를 잘 알아?’
십수 년째 가문 밖은커녕 처소 밖을 나선 적도 손에 꼽았다.
“그런데요?”
굳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것보단 산적이 먼저 말을 건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자 완전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혹시 근방에 산적이 나올 법한 길목을 아는가?”
“산적?”
산적이 산적을 찾네?
‘그것도 그렇지만, 그런 게 왜 그런 게 궁금하지?’
혹시나 산적이 겁나서라면, 호위를 맡은 백풍대주가 어련히 알아서 마주치지 않게 행로를 정할 텐데?
잠시 기다리자, 또 예상하지 못한 답이 이 연타로 날아왔다.
“제발 우리를 산적이 나올 행로로 안내해주게.”
“네?”
이 작자가 미쳤나?
어떻게든 피해 가도 모자랄 판에 일부러 산적을 만나러 가겠다고?
진천우의 어이없는 눈빛을 직시하고, 그도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 않고서야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산적 의원이 한껏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사실은 말일세…….”
“진천우!”
그 순간, 학수선의가 큰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산적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신의가 제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근방에 산적이 있을 법한 장소를 아나?”
“…….”
세 번째.
뭐라 입이 안 떨어졌다.
그래도 학수선의는 정상적이었다.
“호위로 백풍대가 함께하니 설사 산적과 마주쳐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만날 필요는 없지. 이 지도에는 여기서 맹으로 향하는 길은 세 갈래라는데, 그중 가장 안전한 경로를 짚어봐라.”
“그런 거라면…….”
진천우가 고갯짓으로 현석을 불렀다.
앞서 말했듯, 자신은 이곳 사정에 어두웠다.
반면 현석은 아무리 제 시중 전담이라 해도, 진가의 하인답게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그래도 근방 소식에 밝았다.
“방금 신의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지?”
“네.”
“네가 대신 답하거라.”
“알겠습니다.”
현석은 즉시 머리를 필사적으로 돌렸다.
‘절대 산적이 나오는 않을 길을 택해야 한다.’
소가주님이 가시는 길에 산적이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그는 머리에서 김이 날 만큼 깊은 고민 끝에, 지도에 나타난 세 경로 중 한가운데 길을 택했다.
“좌우 두 길은 각각 석 달 전과 한 달 전에 산적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운데는 제가 알기로 그동안 산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알겠다.”
학수선의가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현석이 알려준 대로 행로를 정했다.
하인의 한마디에 바로 경로를 정하는 모습이 언뜻 섣불러 보일지 모르나, 앞서 말했듯 백풍대가 호위하고 있기에 실제로 도적이 나오든 말든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날이 저물기 직전.
“멈춰라!”
딱 보기에도 험상궂은 이들이 길을 막았다.
“하하하, 우리는 일대에 가장 이름난 흑호채의 산적이다!”
‘망할! 하필 여기에 산적이 나타나다니!’
현석이 참담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그의 앞뒤에서 영 엉뚱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쳇!”
앞의 학수선의는 산적을 보고 혀를 찼다.
와아아아아아!!
반면, 달구지를 끌던 다섯 의원은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현석이 가장 이해하지 못할 반응은 그가 가장 귀히 여기는 주인의 입에서 나왔다.
“하하하!”
약간 놀라고, 기쁘고 또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나타난 현판에 참으로 재밌는 글귀가 휘갈겨져 있었다.
[날이 질 때까지, 달구지 안의 물건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지켜냈습니다.]
[소소한 보상으로 ‘영물(靈物) 마스터’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됩니다.]
[눈앞의 가련한 인마(人馬)를 펫으로 길들이겠습니까? (예 / 아니오)]
그제야 진천우는 왜 다섯 의원이 그렇게 산적을 찾고, 또 지금 환호를 지르는지 이해했다.